살다보면... 사노라면...
우리는 이런 말을 쉽게 한다.
허나 과거 한순간을 쉽게 떠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뇌사장기기증인들과
살던 가족들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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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모여 슬픔 치유한
뇌사장기기증인 유가족들:
자녀 장기 기증으로 36명 새 생명
부모 8명 모여 심리 치유 상담
“하늘에 있는 아들한테 ‘아빠와 함께여서
행복했어’란 말을 듣고 싶어요.” 지난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23년 전 아들을 떠나보낸 강호(68)씨가
아들과의 마지막 추억을 얘기했다.
강씨는 17세였던 아들이 쓰러지기 전날
나눴던 대화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쓰러지기 전날, 오목을
두는데 아들이 계속 져서 ‘아빠가 계속 이기니
좀 그렇지?’라고 물어봤다”며 “아들은 오히려
‘아빠가 오래 살았는데 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가끔은 져줄 걸 그랬나 후회가
남는다”고 했다. 뇌사 상태였던 아들은
9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날 사무실에는 뇌사 상태가 된 자녀의 장기를
기증한 8명의 부모가 모였다. 슬픔을 나누는
심리치유 상담 프로그램이 열렸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 이들 자녀의 장기기증으로
36명이 새 생명을 얻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아들을 2010년 겨울
떠나보낸 김선희(67)씨는 “아들이 가고 말로
표현 못 할 정도로 쓸쓸하고 힘들었다”며
“‘너는 혼자가 아니고 다 함께 있어’란 말을
듣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의 말에 옆에 있던
남편 양탁모(65)씨는 그의 눈을 보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고 다 함께 있어”라고 세 번 말해줬다.
양씨는 “집에서 보면 아내는 애들한테도 그렇고
모든 게 항상 다 바지런하다. 모든 게 다 고맙고,
내가 뒷받침 못 한 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김씨의 아들 진영(당시 21세)씨는 중학생 때
심실빈맥 진단을 받아 성인이 될 때까지
인공심박동기를 심고 지내다가 졸업식을
앞두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기적처럼
살아도 눈만 깜빡이며 살 것’이란 의료진의
말에 김씨는 아들을 놔주기로 했다고 한다.
김씨는 “슬프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싫다고
하는 유가족도 있었는데, 많은 분이 결국엔
그 자리에서 쏟아내셨다”며 “여전히 감기처럼
왔다갔다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지만,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얘기를 하며
많은 치유가 이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떠나보낸 자녀에 대한 슬픔을
공감할 뿐 아니라 어떻게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지도 공유한다고 한다.
이날이 아들 기일이었던 홍우기(74)씨는
“8년 전, 결혼 상견례를 앞둔 아들이 떠나가자
생업도 포기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었다.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들춰내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유가족이 모인 이런 자리에서
심리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했다.
홍씨는 아들이 떠난 후 직장을 그만두고 식음을
전폐하며 1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장기기증’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렇게 시작해 네이버 지식인
글에 단 답변이 4000여 건이라고 한다. 홍씨는
“장기기증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따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이날 모인 유가족들은 자녀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2011년 여름 딸을 떠나보낸 이복주(72)씨는
“처음엔 아이 몸에 상처가 나는 게 싫어 장기기증을
하기 싫었다”며 “그런데 남편이 몸은 갔어도
마음은 살아 있으니 마지막에 좋은 일 하고
가자고 설득했다”고 했다. 이씨는 “기증받은
수혜자를 한 번만이라도 보면 이런 사람이
내 딸의 장기를 갖고 살아가고 있구나 하면서
괜찮아질 것 같은데 매우 아쉽다”고 했다.
사랑의장기증운동본부에 따르면, 장기기증자
유족 상당수가 수혜자의 근황을 궁금해하지만
이들간 교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법이 제정된 2000년 당시 장기 매매를
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돼 기증
유가족과 수혜자의 직접 접촉은 금지돼
있었다. 이후 일부 법 조항이 개정됐지만,
장기기증 관련 기관을 통해 쌍방이 동의하는
경우에만 서신을 교환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지난 1일부터
장기기증 유가족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코로나 전부터 그룹 미술 상담,
동일한 장기기증 유가족 간 상담 등을 해왔지만,
이번처럼 종합적인 상담 기법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달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이혜란 상담센터장은 이날 상담에서
“아직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조선일보, 김예랑기자... 2023.7.31.기사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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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보듬어가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내용이 제일 귀중한데,
'도너패밀리' 가족들은 앞으로도 함께 하며
위로와 희망을 나누고자 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1588-1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