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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3장 3-5절.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는 성령
여러분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성령을 받은 증거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 일어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일시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또 일시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 교회는 감각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만져지고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쏟습니다.
또한 그런 교회들의 특징 중 하나가 열광적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이며 신비적이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교회만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교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교회의 우월성과 더불어 그 교회에 다니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교인들은 계속해서 감정적이며 신비적인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심해집니다. 이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성령충만에 대한 생각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이 임하시기 전과 무엇이 달라진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들이 성령을 구하고 계신다면 왜 성령을 구하십니까? 성령이 여러분들의 생활의 어느 부분을 좋게 하실 것을 믿고 성령을 구하십니까? 지혜로워져서 입니까? 아니면 큰 능력을 받고 행할 수 있어서입니까? 공부를 잘하게 되어서 입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이런 일들을 위해 성령이 오신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성령을 구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그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이에 비하여 어떤 사람들은 아예 성령을 구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제자들처럼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 못하였다”고 고백하는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자기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성령을 구하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으면 종교적인 열심을 내는 외에 별로 자신에게 실제적인 이익을 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성령을 구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생각은 성령을 주신 예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줘도 되고 안줘도 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밥 먹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밥을 먹지 않으면 뱃 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밖에 까지 들립니다. 밥을 먹음으로 여러분들은 며칠의 생명을 더 지속시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한 힘을 냅니다. 밥은 여러분들의 인생을 살게 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을 줍니다. 여러분들의 몸의 에너지가 밥을 먹음으로써 나옵니다.
굶주림을 경험해본 사람은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압니다. 매일 같이 규칙적인 식사를 하는 사람보다는 며칠 굶어본 사람이 밥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습니다. 또한 오랫동안 금식을 해본 사람은 보호식을 하면서 한 숟가락의 밥을 으깨서 끓여낸 그 미음이 자기의 몸에 얼마나 큰 힘을 주는 지를 금방 깨닫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미음만 가지고서는 힘을 내어 살 수는 없습니다. 규칙적으로 밥을 먹어가면서 힘을 내야합니다. 그러면에서 볼 때 여러분들의 삶은 밥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한두 끼니를 거를 수는 있지만 계속적으로 거르면 안되는 것이 바로 밥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밥을 불규칙하게 먹거나 안먹는다면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몸속에 면역체계가 깨지고 몸의 균형들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속에서부터 밥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병든 사람이지요? 병든 사람은 밥이 먹히지 않습니다. 몸의 에너지들이 그 병과 싸우느라고 아픈 쪽에 몰려 전쟁을 치르는 통에 밥맛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영양제를 넣어주고 그 병의 치료에 맞는 약을 먹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몸이 회복되면 곧바로 밥을 찾게 되고 밥이 맛있게 느껴지는데 이것은 몸이 회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건강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영양이 고르게 갖추어진 식단으로 짜여진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면 그는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밥을 먹는 이유입니다. 밥은 건강과 성장과 일을 할 수 있는 몸의 에너지를 보충해줍니다. 그렇게 되면 기운이 소생하여서 또 나가서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끼니때가 되면 밥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밥을 찾는 것처럼 건강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날마다 성령충만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구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을 날마다 구하는 사람은 그의 영혼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나 하나님의 성전으로 쓰임을 받는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성령충만은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나타나는 신비적인 일들을 보거나 경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교인들이 나타나거나 경험되어지는 어떤 뜨거움이나 시원함, 그리고 방언이나 입신, 쓰러짐이나 육신의 치료를 받는 것등 이런 것들이 성령의 활동을 결정 짓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이런 역사는 그런 경험을 계속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로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참여시키기 위한 만남의 첫부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주실 때 이런 현상을 경험하게 하기도 하시지만 주님과의 만남의 확신 외에 다른 것들을 체험하지 않게 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은 사람들이 육신적으로 체험하는 신비적인 현상보다 더 거룩하고 고상하며 놀랍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그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셔서 교회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상의 구원과 연관이 있으며 구원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원이 구원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로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세상에서로 아름다움이며 선한 성품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들입니다. 이 열매들을 금지하는 법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런 삶을 살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며 그로 인해 여러분들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게 될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가 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인정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주신 선한 삶이 무엇인지를 드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구체적으로 듣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에스겔의 환상 속에서 성전 문지방에서 나와 동편으로 흐르다가 제단을 둘로 남쪽으로 향하던 그 물이 강이 되어 모든 것들을 되살아나게 하고 강 물 속과 강 밖의 주변에 엄청난 풍요를 가져다 주었듯이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교회는 생명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 열매의 풍성함으로 인해 그것을 보는 세상은 자신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선한 삶을 산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을 비추고 맛을 내는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삶의 원인을 주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로인해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의 그 행동이 여러분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자기들도 역시 예수님을 믿어야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를 보게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그 이전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언젠가부터는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하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성령을 받고 거듭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진정한 변화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가능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은 유대땅인 갈릴리에서 사역하시던 예수님을 한 밤중에 남들 몰래 조용히 찾아왔던 니고데모에게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들이나 예수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들이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낮에 찾아오지 못하고 한 밤중에 몰래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을 부숴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던 기드온이 낮에 이를 행할 용기가 없어서 밤에 부쉈던 것처럼 예수님을 낮에 찾아올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 와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분이 맞다고 찾아온 이유를 이야기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입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3장 3-5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들을 보고 놀라거나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 틀림없다고 인정하는 것만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수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새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셨습니다.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자신도 들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온 인류 가운데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역사와 더불어 영생의 삶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때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걸고 들어올리면서 “이것을 보는 사람마다 나음을 받아 살게 되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불뱀에 물렸던 많은 사람들이 장대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즉시 그들은 나음을 받았으며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와같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마다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뜻이 무슨 뜻일까요? 먼저 여러분들이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요엘선지자가 예언한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령을 받은 이들이 보는 꿈과 환상은 모두 다 하나님 나라의 환상이고 꿈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통하여 이루어 질 꿈과 환상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에게 보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헌신하게 됩니다. 기도와 몸과 물질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듭난 사람들의 기도는 자기들의 육신의 정욕을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거듭난 자들에게 보이십니다. 그들이 비록 나이가 어리거나 아니면 청년이거나 어른이거나 노인일지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은 모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하니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를 위해 살게 하십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에서의 눈에 아버지로부터 받는 장자권보다 한그릇의 팥죽이 귀해 보였듯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이 더 관심이 가져지고, 귀하게 생각하며, 사랑스럽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만일 여러분들 가운데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는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아직도 영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사람이 교회에 빠짐없이 오랫동안 출석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많은 봉사를 하고, 또 전도를 하고 열정적으로 각종 교회 사역을 하고 있을 지라도 그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한 그는 거듭난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런 많은 종교적인 행동을 헌신적으로 했을 지라도 그는 결코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 세상을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해서 그것들을 얻고자 행한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아들의 권세보다 이 땅의 나라의 팥죽 한 그릇을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땅의 축복을 받고자 하나님 앞에서 헌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한은 그가 행한 모든 것들이 땅을 위해서 심은 것이며 땅의 것을 얻는 것으로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전도자의 말대로 헛된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전도서 1장 14절에서는 말합니다.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여러분들의 기쁨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성령으로 기뻐하는 사람과 인간적인 기쁨을 갖는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다른 기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에 들어가서일을 하다가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옆에 사람에게 묻습니다. “일을 하시면서 기쁘고 즐거우신가요?”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기쁘냐고요? 솔직히 어렵고 힘듭니다.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해야지 안그래요?” 그러자 질문을 했던 사람이 말합니다. “저도 힘이 들기는 하지만 기쁩니다. 저는 일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맡겨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하면서 기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기 손에 얻어질 때에야 잠시 동안은 기뻐하지만 금방 그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월급날을 기다리다가 월급을 타면 좋아하지만 금방 여기저기 들어가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서 그 기쁨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염려와 근심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 염려와 근심은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순식간에 앗아가는 도적과 같습니다. 여러분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구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영생을 얻고 영생을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만이 이 세상이 구하는 잠깐의 낙을 구하지 않고 영원한 나라로부터 오는 진정한 낙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자신의 기쁨을 여러분들에게 주시며, 또한 성령을 통해 자신이 가지셨던 평안을 주십니다.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들이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예수님의 몸인 교회로부터 받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계속적으로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마치 메마른 땅과 거친 광야와 물하나 없는 모래 땅인 사막에 샘이 넘쳐 흘러 옥토의 땅이 되어 완전히 오아시스가 펼쳐지는 일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성령의 역사 안에서 여러분들이 영혼이 강건하기를 구하십시오. 은혜와 진리가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들의 주변 사람들에게 스며듦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게 되시길 바랍니다. 배고픈 사람이 밥을 찾듯 성령에 주린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해지길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성령을 주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성령을 구함으로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믿은 재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성령을 구했고 열흘이 되던 날에 성령이 그들에게 불의 혀처럼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의 역사로만 끝난다면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역시 자신의 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계속해서 예수님과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구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사람들과 더불어 그 나라를 위해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건강한 사람이 밥맛을 알고 밥을 구하는 것처럼 영혼이 거듭난 사람들, 그래서 건강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성령의 맛을 알기에 성령충만을 계속적으로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땅의 나라 일과 하늘 나라 일 가운데 어떤 것을 구하면서 하루를 보내십니까? 성령은 하나님 나라를 여러분들에게 보여주시며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갈망하게 하십니다.
골로새서 3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여러분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이로인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심은 물론, 여러분들과 우리 제석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일을 이루시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성령으로 거듭나기를 구하며, 또한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보여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구하는 제석교회 여러분들에게 충만히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