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길로 이끌어가는 십자가 사랑 = 출애굽기22;1-31(210530)
부잣집에 사는 개와 닭
부정축재와 온갖 권모술수로 큰 부자가 된 정치인의 집에 살고있는 개와 닭이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개 : 닭아! 요즘 넌 아침이 되었는데도 왜 울지 않니?
닭 : 자명종이 있는데 내가 울 필요가 없잖아.
닭 : 그런데 개. 너는 왜 도둑이 들어와도 짖지 않는거야?
개 ; “도둑이 집 안에 있는데 내가 짖긴 왜 짖냐?”
그렇습니다.
도적은 집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도적은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남의 것을 강탈하면 행복할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자신의 처지에 맞도록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진솔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나그네처럼 살아야 하고, 종살이하면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생활을 하고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으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움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사는 것일까?
가수 김연자씨가 부르는 “아모르파티”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노래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라는 노랫말이 들어 있다.
과연 그럴까 싶다.
어쩌면 이 노랫말은 인간들의 근본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 가사를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위험한 노랫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뛰는 대로 사는 것이 무엇일까?
가슴이 요구하는 대로 살면 그야말로 막 살겠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러니 연애는 필수인데 반하여 결혼은 선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인간의 기본질서를 완전히 무시하고 깨뜨려버리는 노랫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야말로 우리 신앙인의 가슴에 요동치는 대로, 우리 가슴이 물결치는 대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서 우리 신앙인의 가슴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감정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게 요동치는 감정 그대로 사는 것이 신앙인이 살아야 하는 진짜 모습일까?
신앙인들의 감정을 다스리고 절제하면서 신앙인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실까?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어떤 삶일까?
진정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그 백성들이 진정으로 살아야 하는 삶의 기준은 어떤 것일까?
그 표준이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말씀이 되는 것일까?
잠언 30:7-9절에 보면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 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시고, 이미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모든 창조세계를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창조세계의 대명령을 주신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사람에게는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아울러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만들어주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다 누리고 다스리고 충만해질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이미 다 허락해 주셨다.
이미 다 허락해 주시고, 채워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악한 죄인이 되어서 만족함이 없고, 늘 욕구불만에 빠져서 살아가는 악인 중에 악인, 죄인 중에 죄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늘 욕구불만하고 만족함이 없기 때문에 늘 무언가로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착각과 중압감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욕구불만이 여러 죄악된 모습들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조목조목 말씀하시면서 가르쳐 주고 계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조항들을 제시하면서 말씀해 주고 계시는가?
① 도둑질에 대한 규례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남의 소나 양을 훔쳐서 죽이거나 팔았을 경우에는 소 한 마리에 5마리를 더하여 배상하라고 말씀하신다.
양 한 마리에는 4마리를 더하여 배상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이 어느 집에 밤시간에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오는 것을 집주인이 알고 그 도둑을 쳐서 죽이더라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에 환하게 밝은 날에 도둑질을 하려고 들어오는데 그 도둑을 죽이게 되면 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밤에는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환한 날에는 분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둑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배상을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도둑질한 소나 나귀나 양을 비롯한 가축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면 도둑질한 가축과 더불어 갑절로 배상하라고 하신다.
도둑이 배상할 처지가 못 된다면 몸을 팔아서라도 배상해야 한다.
곧 종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배상해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종으로 팔리는 몸값은 은 30세겔이다.
은 30세겔에 자신의 몸을 팔아서 도둑질한 것에 대하여 배상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소유물을 훔치려 하는 도둑질에는 반드시 배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곧 엄청난 손실을 당하면서 배상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②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에 대하여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을 자신의 밭이나 포도원에서 먹이다가 그 가축이 다른 밭으로 넘어가서 목초를 먹으면서 피해를 주게 되었을 때에는 자기 밭과 포도원의 가장 좋은 것으로 배상해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 만큼 자신의 가축들을 잘 관리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 밭이나 포도원 주변을 태우기 위해서 불을 붙였다가 그 불이 다른 사람의 밭이나 포도원이나 곡식더미를 태웠다면 반드시 배상해 주라고 말씀하신다.
병충해를 방제하기 위하여 밭두렁이나 논두렁을 태우려고 하다가 산불을 내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로 인하여 원치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 주어야 공평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하며, 만일에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면 합당하게 보상해 줌으로서 손실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살아갈 도리라고 가르쳐주고 계신다.
③ 이웃의 돈이나 물건을 맡아두었는데 도둑을 당했을 경우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면서 자신의 돈이나 물건을 임시로 보관하여 돌아올 때까지 잘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원치 않는 도적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여 그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되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다.
도둑이 잡히면 그 도둑이 배상하면 된다.
그러나 도둑이 잡히지 않았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재판장에게로 가서 자신은 그 돈이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았음을 재판을 받도록 한다.
돈을 임시로 맡았던 사람이 도둑으로 몰려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
돈을 임시로 맡아두었던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정의롭게 재판하여 판결하도록 말씀하시는 것이다.
재판받는 중에 잃어버린 물건을 찾게 되어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하면 재판장은 죄 있는 사람에게 갑절로 배상하도록 판결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④ 이웃의 가축을 맡아두었는데, 그 가축이 죽었거나 찢겨서 상처를 입었을 경우
가축을 맡았던 사람이 그 가축들을 죽이거나 상처내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면, 마땅한 증거가 없다면 가축을 맡았던 사람이 재판장 앞에서 그 가축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고 선언하고 가축의 주인은 그 선언을 그대로 믿고, 배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도적을 당했다면 그 주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한다.
찢겼다면 그것을 가지고 와서 재판을 받고 배상하지 않아도 된다.
⑤ 빌려온 것이 죽었거나 상했을 경우에 대하여
물건이든 가축이든 빌려왔다가 주인에게로 돌려주었는데, 그것이 본래 주인과 함께 있지 않았을 때 죽었거나 상했으면 배상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본래 주인과 함께 있다면 배상하지 않는다.
본래 주인이 죽일 수도 있는 것이고,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⑥ 약혼하지 않은 여자를 범했을 경우
어떤 사람이 약혼하지 않은 다른 여자를 꾀어서 동침했다면 납폐금 곧 신부값을 여자의 아버지에게 내고서 아내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여자의 아버지가 딸을 그 남자의 아내로 주지 않으려고 하면 신부값을 낸다.
신부값은 은으로 내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꾀에서 합의하여 동침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정죄하지 않는다.
결혼한 사람이 다른 이성과 동침하게 되면 간음이 된다.
⑦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무당, 신접한 자, 굿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자들은 사탄에 속한 사람이다. 어둠의 세력에 빠진 사람이다.
짐승과 행음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짐승은 짐승일 뿐이다. 영혼이 없다. 동물은 동물일 뿐이다. 고기덩어리,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짐승과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하는 자는 멸절시키라고 말씀하신다.
무당이나 수간자나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이방인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그러기 때문에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⑧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어야 할 대상을 말씀하신다.
이방 나그네를 선대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430년 동안 나그네로 살았었기 때문이다.
과부와 고아에게 선대해 주어야 한다.
이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지 않는다.
24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면 누구든지 과부가 될 수 있고, 고아가 될 수 있다.
과부와 고아를 선대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도록 했다면 그 사람의 가족들도 과부가 될 수 있고, 고아가 될 수 있다.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삶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는 아무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누구든지 나그네가 될 수 있고, 과부가 될 수 있고, 고아가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선대할 수 있는 여건에서 최대로 선을 베풀며 살아야 한다.
⑨ 채무자에게 선대해 주어야 한다.
누가 빚을 지면서 살고 싶겠는가?
어떤 이들은 빚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만, 가능하면 빚을 지면서 살려고 하지 않는다.
삶이 너무너무 고단하고 곤핍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고 사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긍휼과 자비의 대상이지 책망하고 억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고 사는 사람에게 채권자처럼 억압을 행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살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세상의 채권자들은 빚을 받아내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협박하고 폭행하고 법정에 고소까지 한다.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원금은 조금인데 이자에 이자가 붙으면서 감당할 수 없는 처지까지 된다.
그러면서 생명의 위협까지도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래서 채권자처럼 살지 말고, 이자도 받지 말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더더욱 겉옷을 전당받았다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돌려주라고 말씀하신다.
그 겉옷은 그 사람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겉옷은 단순한 외투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드시 써야 하는 찌찌트(tsitsit)라고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표가 되는 겉옷까지 전당잡혀서 가족들의 입에 풀칠해야 할 처지라면 얼마나 딱한 처지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럴게 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오죽했으면 하나밖에 없는 겉옷까지 전당 잡히면서 빚을 지겠는가.
그 겉옷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마지막 보루이다.
이 겉옷마저 없으면 죽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밤새 추위에 떨면서 울부짖으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 채권자에게 징계하실 수밖에 없다.
재판장을 비난하지 말고 지도자들을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재판장이 유전무죄 무전유죄 한다고, 권력이 있고, 빽이 좋으면 선처하고 권력도 없고, 빽도 없는 이들에게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고 한탄스러워한다.
지도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욕을 듣고 먹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기 때문에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재판장과 백성들의 지도자가 선하고 정의로워질 수 있도록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재판장과 지도자가 악해짐으로 백성들의 삶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곤고해 질 수 있다.
⑩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제대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농사하여 추수하는 것이나 포도즙이나 석류즙이나 올리브유와 같은 농산물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나 첫아들을 대속하여 드리는 것이나 초태생을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제대로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거룩한 백성으로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거룩한 백성은 짐승에게 찢겨서 죽은 고기 곧 부정하게 된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지라고 말씀하신다.
곧 사냥함으로 인하여 찢겨지고 피를 흘리면 부정하게 된다.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정확하고 명확하게 헌금을 드리는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은 매사에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배상문제와 긍휼과 자비와 선을 베풀면서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신앙인들은 모든 일들과 관계에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의 도리를 따라서 살아야 한다.
야고보서 2:14-18에서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은 믿음으로 사는 삶의 증표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표준은 예수님께서 짊어지시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사랑을 기준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삶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거룩한 신앙인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① 마음을 넓게 펼쳐서 주변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신앙인이 신앙인의 공동체만을 위하여 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신앙인의 공동체를 벗어나서 주변을 들러보면서 무언가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하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다함께 협력하면서 도움의 손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는 손길이 되면서 살아가면 좀 더 너그럽고 포근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고 누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을 지니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오감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과 발이 되어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심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피상적으로 생각으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온 인격으로, 온 영혼으로 만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의식속에서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주일에만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시간, 매 주일, 매 달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이다.
③ 믿음의 덕을 보여주며 살아야 한다.
베드로후서 1;5-9에서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신앙인에게서 찾아야 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삶이 믿음의 덕을 찾는 삶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니다.
뭔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 구별된 삶, 차별화된 삶을 살아갈 때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거룩한 삶이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짊어지고 걸어가신 십자가의 도를 따라서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이 진정으로 우리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믿음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