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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절 불암사 원문보기 글쓴이: 선재행
552. 일지 (一指) - (1)
무주(務州) 금화산(金華山) 구지(俱胝) 화상은 누구든 법을 묻는
이가 있으면 한 손가락을 세웠다.
그 스님이 운명하려 할 때에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룡(天龍)에게서 한 손가락 선〔一指頭禪〕을 얻은 뒤로,
일생동안을 수용해도 다하지 못했느니라."
그 말이 끝나자 운명하였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구지 노인 칭찬하고 사랑하노라.
우주가 공했거늘 다시 누가 있으랴.
일찍이 바다에 나무토막 띄웠더니
밤 파도가 눈먼 거북을 건져 주더라.
흥교수(興敎壽)가 송했다.
구지가 한 손가락을 세워서
득과 실과 시비를 단번에 쫓았네.
만 가지 법, 모두가 참인 줄 알면
여러 말을 했었던 기록만 더할 뿐.
낭야각(瑯瑘覺)이 송했다.
구지의 일지두선을 그대에게 알리노니
아침에 태어난 새매가 날개를 치며 하늘 높이 난다.
솥을 들거나 산을 뽑는 힘이 아니면
천 리를 뛰는 오추마(烏騅馬)를 타기 어렵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구지 노인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
30년 수용해도 다하지 못한다.
도인의 방외(方外) 8) 에서 서술한단 말 믿을 수 있고
속된 물건 눈앞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얻은 바가 매우 간결하고
시설은 더욱 넓다.
대천(大千)세계의 바닷물 털끝으로 마시니,
기린과 용, 끝이 없어 누구의 손에 드는가?
그리고는 말하였다.
"진중(珍重)하라, 그대들 마음대로 낚싯대를 잡아라."
그리고는 다시 한 손가락을 세우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봐라."
숭승공(崇勝珙)이 송했다.
일찍부터 암자에 산 일, 옛사람과 같으나
구지 화상 헛수고한 일 우습기만 하여라.
비구니의 충동을 받지 않았다면
그 손가락 어떻게 천룡(天龍)을 만났으랴.〔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
또 송했다.
한 손가락, 평생 동안 못 다 썼다니
지게미가 천룡에서 나온 줄 누가 알리요.
뒷사람들 입을 모아 그 맛을 짜니
모르는 결에 꿈결같이 훈훈히 취한다.
불안원(佛眼遠)이 송했다.
큰 종사 스님 손가락을 세워서
평생 동안 사용하니 뛰어난 풍류로다.
현사(玄沙)가 꺾어 버리겠다 한 일 아는 이 없으니
해〔年〕가 가고 해가 올수록 찬 기운이 감도네.
지비자(知非子)가 송했다.
구지가 들어 보인 것은
먼저 깨달은 이와 나중에 깨달은 이요,
동자(童子)의 손가락은
기회에 따라 칼날에 떨어졌네.
눈물을 거두고 돌아다 봄이여,
줄탁(啐啄) 9) 과 같네.
남악(南嶽) 서원장(西園藏) 선사가 손수 목욕물을 데우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화상께선 어찌 사미를 시키시지 않고, 손수 이렇게 물을 데우십니까?"
그러자 선사가 손뼉을 세 차례 쳤다.
나중에 그 스님이 조산(曹山)에게 이야기했더니, 조산이 말하였다.
"마찬가지로 손뼉을 쳤지만 서원(西園)은 매우 신기하도다. 구지의 일지두
선은 대체로 알아듣는 곳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어떤 책에는 "어리둥절하다〔莽卤〕"로 되어 있다.〕
그 스님이 다시 조산에게 물었다.
"서원 스님이 손뼉을 친 일이 어찌 종이나 하인들의 짓이 아니겠습니까?"
이에 조산이 말하였다.
"그러하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위로 향하는 길에도 또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조산이 말하였다.
"있느니라."
스님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위로 향하는 일입니까?"
그러자 조산이 꾸짖었다.
"이 하인놈아!"
현각(玄覺)이 말하였다.
"말해 보라. 구지가 깨달았는가, 깨닫지 못했는가? 만일 깨달았다면 어째서
'알아듣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했겠는가? 만일 깨닫지 못했다면, '일지두선을
수용해도 다하지 않는다' 한 말은 또 어찌하랴? 말해 보라. 조산의 뜻은 어디
에 있는가?"
장경릉(長慶稜)이 대신하여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맛난 음식이라도 배부른 사람의 입에는 맞지 않느니라."
현사(玄沙)가 말하였다.
"내가 그 때 봤더라면 손가락을 꺾어 버렸을 것이니라."
현각(玄覺)이 말하였다.
"말해 보라. 현사가 그렇게 말한 뜻이 무엇인가?"
운거석(雲居錫)이 말하였다.
"현사의 그런 말이 그를 긍정한 것인가, 긍정하지 않은 것인가? 긍정했다면
어째서 손가락을 꺾는다 했으며, 긍정하지 않았다면 구지의 허물이 어디에 있
는가?"
설두현(雪竇顯)이 말하였다.
"원명(圓明)이 '구지 화상이 문답할 때엔 한 손가락만을 세웠으니, 추우면 온
천지가 추운 소식이니라' 하였는데, 그래서야 어디서 구지 노인을 보았겠는가?
그는 또 '더우면 온 천지가 덥다' 하니, 저울의 눈금을 잘못알지 말라. 삼라망
상(森羅萬象)이 밑바닥까지 위태롭고,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위까지 험하고 높
거늘, 어디서 일지두선(一指頭禪)을 얻었단 말인가?"
운문고(雲門杲)가 착어(着語)하였다.
"존귀한 사람은 잊은 것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설봉료(雪峰了)가 말하였다.
"구지 화상이 임종하기 직전에 대중들에게 시중(示衆)하여 말하기를 '내가
천룡(天龍)에게서 일지두선을 얻어 평생 동안 수용해도 다하지 못했다' 하였
는데, 대중들이여, 알고자 하는가? 손가락을 세우고는 갑자기 죽었느니라.
나중에 어떤 스님이 백운(白雲)에게 '구지가 아무것도 모르고, 단지 손가락
세우는 선만을 알았으나 죽기는 통쾌하게 죽었소.
요즘 사람들은 뱃속에 선법이 가득하거늘, 어째서 죽을 때엔 무수히 고생만
하면서 떠나지를 못하는가?' 하니, 백운이 말하기를 '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선에 얽매인 것이니라' 하였으니, 집안을 파탄시키는 현령(縣令)이며, 가문을
멸망시키는 자사(刺史)니라. 만일 독한 손길을 쓰지 않으면, 재채기 · 기침 ·
콧물 · 가래가 나리라. 어찌 구지 노인이 허공에 꽉 찬 것을 보리요?"
원오근(圓悟勤)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구지가 찾아오는 중들에게 항상 대답할 적에는 으레 한 손가락을 세웠으니,
아마도 위로 통하고 아래로 사무쳐 걸림 없는 경지에 계합(契合)해서 증득하
려는 것이다. 병이 나은 이는 약을 구하러 다닐 필요가 없거늘, 후세 사람들
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예사로 손가락만을 세우니, 검고 흰것도 구분 못하
고 사람을 속이는구나.
마치 제호를 가지고 독약을 만드는 것 같으니 가엾은 일이로다. 만일 분명
히 밑바닥까지를 봤다면 비로소 정중(鄭重)하게 행동해서 부질없는 짓은 끝내
하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천 균(鈞)의 쇠뇌〔弩〕로는 다람쥐를 향해 쏘지 않는다' 고 했으니,
그러기에 정수리의 눈을 갖춘 이라야 들어갈 수 있으니라.
나중에 조산(曹山)이 구지의 깨달은 경지가 어리둥절하다 했으니, 그는 겨우
한 계기, 한 경계만을 알았을 뿐이다.
어떤 소경 같은 이가 말을따라 알음알이를 내어서 구지를 억누른 일을 사실이
라 여기나니, 마치 벽돌을 뜨겁게 구워서 바닥까지 언 것을 치는 꼴과 같은 줄은
전혀 몰랐도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자세히 살펴 절대로 속이지 말라.
구지가 죽으려 할 때에 스스로가 '천룡의 일지두선을 얻어서 평생 동안 수용해
도 다하지 못했다' 고 하였으니, 이 어찌 공연한 말이겠는가?"
죽암규(竹庵珪)가 염(拈)하였다.
"지혜 없는 사람 앞에서는 말하지 말라. 그대의 머리를 깨뜨리고 이마를 찢으
리라."
육왕심(育王諶)이 상당하여 말하였다.
"구지가 한 손가락을 세운 것은 그대들 보라는 것인데, 만일 본다면 방앗공이에
꽃이 핀 줄을 알리라. 투자(投子)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와 선 것은 그대들 알라
는 것인데, 만일 안다면 부처님 얼굴에 새로이 백 가지 추한 꼴이 생긴 줄 알 것이
다. 노조(魯祖)가 사람을 만나면 벽을 향한 것은 그대들에게 깨우치라는 것인데,
만일 깨친다면 솜씨가 좋아서 달밤에 비파를 뜯는 줄 알리라.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대들에게 깨달으라는 것인데, 만일 깨달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깃대
끝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을 알리라."
경산고(徑山杲)가 상당하여 말하였다.
"구지 화상이 항상 누가 와서 물으면 다만 한 손가락만 세웠고, 또 스스로를 자
랑하기를 '내가 천룡에게서 일지두선을 얻어 일생 동안 수용해도 다하지 못한다'
하니, 나중에 낭야가 송하기를 '구지의 일지두선을 그대에게 알리노니……' 라고
하였는데, 구지 화상은 낭야가 숨통을 틔워 주지 않았더라면 그 일지두선은 묻혀
버릴 뻔하였다. 나〔妙喜〕도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뒷날에 다시 주를 낼 이가
없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송했다.
구지의 일지두선이여,
밥을 먹으면 배가 불러야 그만둔다.
허리에 10만 관(貫)을 차고 10)
학을 타고 양주(楊州)에 오른다.
또 보설(普說)할 때 말하였다.
"……보지 못했느가? 옛날에 구지 화상이 암자에 주지로 있을 때, 어떤 비구니
가 삿갓을 쓰고 곧장 달려와서 그의 선상을 한 바퀴 돌고는 '바로 이르면 삿갓을
벗으리라' 하거늘, 그 때 구지가 아무 말도 못하니, 비구니는 소매를 뿌리치면서
떠나갔다.
이에 구지가 '왜 더 쉬었다가 가지 않는가?' 하니, 비구니가 '바로 이르면 머무
르겠소' 하거늘, 구지는 또 아무 말도 못했다. 비구니가 떠난 뒤에 구지가 스스
로 한탄하기를 '나는 명색이 대장부로서 여인네만도 못하구나' 하고는, 당장 암
자에 불을 지르고 산을 떠나려 하는데, 그날 밤 홀연히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
타나 '화상은 산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곧 육신(肉身) 보살이 오셔서 그
대에게 설법해 주실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며칠 뒤에 천룡(天龍) 화상이 왔는데, 구지가 전의 일을 들어 이야기하니, 천룡
이 '그대는 나에게 물어라, 내가 대답해 주리라' 하였다. 구지가 '바로 이르면 삿
갓을 벗으리다' 하니, 천룡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거늘, 구지가 갑자기 크게 깨달
았다. 그런 뒤로는 항상 누가 물으면 한 손가락만을 세우면서, 늘 '나는 천룡에
게서 일지두선을 받아서 평생 수용해도 다함이 없노라' 하였다.
이에 대해 낭야각 화상이 송하기를 '구지의 일지두선(一指頭禪)을……"했는데,
그대들은 이 게송을 보라. 일지두선을 말할 줄 알았다고는 하겠으나, 그렇게 설
명한 것으로 어떻게 불법을 배울 수가 있겠는가.
구지의 곁에서 시봉하는 동자가 하나 있었는데, 항상 구지에게 와서 여러 다른
일을 묻는 사람들을 보았으므로, 자기도 손가락 세우는 선법을 배웠다. 어떤 사
람이 구지에게 '스님이시여, 저 동자도 희귀합니다. 그도 불법을 알아서 누구나
그에게 물으면 모두 화상처럼 손가락만 세웁니다' 하였다.
구지가 이 말을 듣고, 어느 날 가만히 칼 한 자루를 소매에 넣고 동자를 불러 '가
까이 오라, 듣건대 너도 불법을 안다 하던데 사실이냐?' 하자, 동자가 '그렇습니다'
하였다. 구지가 '어떤 것이 불법인고?' 하자, 동자가 손가락을 세우려던 차에 구지
가 붙들어 칼로 손가락을 끊어 버리니, 동자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나갔다.
이에 구지가 동자를 부르니 동자가 고개를 돌리거늘, 구지가 '어떤 것이 불법인
고? 하니, 동자가 모르는 결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세우려다가 손가락이 보이지
않자 갑자기 크게 깨달았으니, 기묘하구나. 불법은 전할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
는 것임을 분명히 알겠도다. 구지가 얻은 곳이 손가락에 있지 않고, 향엄(香嚴)이
깨달은 곳은 대나무가 부딪치는 곳에 있지 않으니, 〔위의 게송에서는 이 인연을 송했
다.〕 말해 보라. 어디에 있는가? 일시에 다 말해 버렸느니라."
송원(松源)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말해 보라, 어떤 것이 일지두선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들어 세우고 말하였다.
"보았는가? 만일 보았다면 구지와 손을 맞잡고 같이 다닌다 하겠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내〔新薦福〕가 다시 게송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없다."
한 발 디디매 한 발 높아지고
한 걸음 걸으매 한 걸음 넓어진다.
불조(佛祖)의 관문에 도사리고 앉으니
도리어 오던 길을 잊어버렸네.
8) 세속을 뛰어난 도인의 경지를 뜻한다.
9) 줄(啐)은 병아리가 계란에서 나오려고 안에서 쪼는 것이고, 탁(啄) 은 암탉이 밖에서
계란 껍질을 쪼는 것이다. 변하여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10) 허리에 돈 10만 관을 차면 부자요, 학을 타면 장수(長壽)요, 양주(楊州)는 중국에서
가장 큰 고을인데, 이 고을 군수가 되면 존귀함이니, 부(富)와 수(壽)와 귀(貴)가 구비
되었다는 뜻으로서 일지두선을 수용하는 이의 경지이다.
첫댓글 구지선사의 일지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