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이라는 약속의 마침표(시121:1-8)
갈등
1.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한 사람이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옷에는 먼지가 묻어 있고, 신발은 흙투성이입니다. 등에는 작은 짐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듭니다. 눈앞에 산이 있습니다. 한 봉우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산 뒤에 또 산이 있고, 그 뒤에 또 산이 있어요. 해는 점점 기울고, 산 그림자는 길게 내려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입니다. 가야 할 곳은 분명한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저 산을 넘어야 합니다. 산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돌부리에 발을 헛디딜 수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숨어 있던 강도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왔던 길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멉니다. 다시 앞을 봅니다. 산입니다. 산을 바라보던 순례자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1절,“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이것은 관광객이“산이 참 아름답도다.”고 노래하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 앞에 선 사람의 질문입니다.“저 산을 어떻게 넘지? 이 밤을 어떻게 지나지? 누가 나를 지켜 줄 수 있는가?”시인의 이 노래는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2.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날 우리 앞에도 산 하나가 나타납니다. 어제까지는 평지였습니다. 별일 없이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입니다. 그 순간 산 하나가 생깁니다. 어느 날 자녀에게서 이야기를 듣습니다.“아버지, 문제가 생겼어요.”또 하나의 산이 생깁니다. 어느 날 통장을 들여다봅니다.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데, 감당해야 할 것은 많아집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집니다. 풀어 보려고 하는데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산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산이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산 앞에 서면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던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가까이 있고,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때 시인이 노래했습니다.“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인은 산을 보다가 반전이 일어납니다. 산을 바라보던 사람의 입에서 2절,“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산이 없어졌습니까? 아닙니다. 길이 평탄해지 않았습니다. 밤이 갑자기 낮으로 바뀌지 않았어요. 달라진 것은 시선입니다. 처음에는 산을 보았습니다. 이제는 산을 만드신 분을 봅니다. 3절,“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순례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산 정상만이 아닙니다. 지금 내 발밑에 있는 작은 돌 하나입니다.
3. 산 전체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두렵지만, 실제로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발밑의 작은 돌 때문입니다. 순례자의 마음속에“하나님이 나를 지키신다면, 왜 내 발은 흔들리는가?”질문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흔들립니다. 기도하지만, 두렵습니다. 말씀을 붙잡지만, 마음이 무너집니다. 지키시는 하나님과 흔들리는 현실 사이의 간격입니다. 이때 시인은“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노래합니다. 4절,“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4. 순례자는 다시 걷기 시작합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아침에는 선선했던 길이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달라집니다. 머리 위에는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뜨거운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집니다. 바위에서는 열기가 올라옵니다. 입술은 마르고, 등에서는 땀이 흐릅니다. 길가 어디에도 쉴만한 나무 한 그루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시인은 5절,“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여기서 우리는 귀하게 느끼지 못한 귀한 단어가 나옵니다. 그늘입니다. 뜨거운 광야 길을 걷는 사람에게 그늘은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늘이 되신다면 왜 해를 없애 주시지 않습니까? 왜 뜨거움 자체를 제거해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하나님, 이 문제를 없애 주십시오.”하나님께서는 문제를 없애시는 대신, 문제 가운데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 낮이 지나고 밤이 옵니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갑니다. 순례자는 생각합니다.“이제 좀 살겠다.”뜨거운 해가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산길에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길은 보이지 않고,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립니다. 순례자가 걸음을 멈춥니다. 짐승일까-사람일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일까? 시인은 6절,“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5. 우리 인생 길에는 낮의 고난이 있고 밤의 고난도 있습니다. 낮의 고난은 보입니다. 경제가 부족합니다. 몸이 아픕니다. 관계가 깨집니다. 밤의 고난은 다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앞으로 어떻게 될까? 혹시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내일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벌써 그곳에 가 있습니다. 몸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생각은 산을 몇 개나 넘고 있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새벽 1시. 뒤척입니다. 다시 시계를 봅니다. 2시 30분. 눈은 감고 있는데 마음은 잠들지 못합니다. 7절,“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시인은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신다고 노래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믿는 사람도 아픕니다. 믿는 사람도 실패하고-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장례를 치르고-눈물을 흘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까?“하나님이 지켜 주신다면서 왜 아픕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서 왜 눈물이 납니까? 하나님이 모든 환난에서 지켜 주신다면서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립니까?”이런 질문 속에서 시인의 시선이 환경에서 영혼으로 바뀝니다. 산이나 길, 재산을 지켜 주신다고 하지 않고“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노래했어요. 8절,“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아침에 문을 열고 나갑니다. 저녁이면 다시 들어옵니다.
6. 수없이 문을 열고, 닫으며 우리의 인생이 지나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씩 문이 닫힙니다. 어느 날 직장의 문도 닫힙니다. 자녀들이 떠나면서 북적거리던 집의 문도 조용해집니다. 건강하던 시절의 문도 조금씩 닫혀 갑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문 하나 앞에 서게 됩니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묻게 됩니다.“하나님, 여기까지도 지켜 주십니까?”“지금부터”는 믿겠는데, “영원까지”는 어떻게 믿습니까? 시인은 우리를 마지막 질문 앞에 세웁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마침표는 누가 찍습니까? 질병입니까? 실패-고난-세월-죽음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침표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한 단어를 더 쓰십니다.“영원”입니다.
실마리
7. 시인이“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노래한 것은, 산속에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입니다. 그는 지친 몸을 바위 곁에 기대어 잠을 청합니다. 눈을 감으면서도 불안합니다.“밤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짐승이나 강도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하지만 너무 지쳐서 결국 눈꺼풀이 내려옵니다. 순례자는 잠이 듭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눈을 뜨니 햇빛이 산등성이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새들이 울고 있어요. 자기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시인은 그때“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깨어 계셨구나.”확신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잘 붙잡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두렵습니다.“내가 기도를 제대로 못했는데, 내 믿음이 이렇게 약해졌는데, 내가 하나님을 놓쳐 버리면 어떻게 하지?”시인은 우리의 방향을 바꾸어 줍니다.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단단히 붙잡고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길을 걷습니다. 길이 위험해지는 순간, 아버지의 손이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잡습니다. 아이가 한눈을 팔아도-발 을 헛디뎌도-힘이 빠져 손을 놓으려 해도-아버지는 놓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삶이 이렇습니다. 우리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졸 때에도 하나님은 졸지 않으셨습니다.
8. 시인은“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노래했습니다. 흔들린다고 버림받은 것이 아닙니다. 흔들릴 때 내 손을 붙잡고 계신 하나님의 손을 보십시오. 우리의 안전은 내 믿음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해를 없애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어요.“내가 네 그늘이 되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것은 뜨거운 해를 없애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뜨거운 해 아래에서도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그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을 지키시는 것은 환난이나 어떤 문제가 아니라‘너’입니다.
우리는“내 건강을 지켜 주세요. 자녀를-계획을-내가 가진 것을 지켜 주세요”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깊은 곳을 가리키십니다.“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키고 있다. 너다. 네 영혼이다.”(7절)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비를 한 번도 맞지 않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비를 맞았습니다. 바람도 맞고-온몸이 흠뻑 젖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직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눈물은 흘렸는데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떠났는데 주님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길은 막혔는데 기도의 길은 막히지 않았습니다. 쓰러졌는데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제야 깨닫습니다.
9.“하나님이 내 환경만 아니라 나를 지키고 계셨구나!”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심에 기한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시인은 지금부터 영원까지라고 노래했어요. 하나님의 지키심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보존해 주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만나도‘나’를 놓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낮에도-밤에도-눈물 속에서도요. 우리가 마지막 문을 통과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의 마지막 노래는 고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죽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찍으시는 마침표입니다.“지금부터 영원까지.”
복음 제시
10. 하나님은 어떻게“영원까지 너를 지키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그 답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보다 먼저 마지막 문-죽음을 통과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끝났다.”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하나님께서 무덤 문-돌을 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마침표를 찍었던 자리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한 단어를 쓰셨습니다.“영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죽음은 마지막 마침표가 아닙니다.
우리를 붙드신 주님의 손은 죽음의 문 앞에서도 놓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우리는 오늘 시인처럼 담대하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기대
11. 사랑하는 여러분, 산길을 걷던 순례자를 생각해보세요. 산은 여전히 있습니다. 해도 뜨겁고-밤도 찾아옵니다. 발밑에는 여전히 돌이 있습니다. 순례자는 다시 걷습니다. 산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 산 앞에 서 있습니까? 발이 흔들리고 있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밤을 지나고 있습니까? 내 인생의 마침표를 내가 먼저 찍지 마십시오. 질병에게-실패에게-고난에게도 마지막 마침표를 내어 주지 마십시오. 마지막 마침표는 하나님께서 찍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마지막 단어는 이것입니다.“영원.”
우리는 결국 도착합니다. 순례자의 목적은 산길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도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한 번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내가 너를 끝까지 지키겠다.”약속하십니다. 우리는 다시 인생길을 걷습니다. 오늘 한 걸음, 내일 또 한 걸음. 우리가 인생 발걸음이 마치는 마지막 문 앞에 서는 날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붙잡고 계시는 주님의 손이 있기 때문입니다.“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우리의 마지막은 산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지막은 영원입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