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으로 여행 하던 날
김 선 구
“生居鎭川 死居龍仁”라는 말이 있다. 살아서는 진천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이 좋다는 뜻이다. 옛날 한 여인이 용인으로 출가 하여 아들하나를 두었는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다. 고심 끝에 재가하여 또 아들을 낳고 진천 땅에 살고 있었다.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 성장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고 청이 들어오면서 형제간에 송사가 발생했다. 관아수령이 판결했다. “생전에는 진천에서 작은 아들과 함께 살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혀 큰 아들이 제사를 모시게 하라.” 진천은 물이 좋고 들이 넓어 살기가 좋고, 용인은 산이 좋고 명당이 많아 사대부들 유택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풍수와 지리 인심이 결합된 얘기인 것 같다.
진천은 차령산맥을 끼고 서쪽에 솟아오른 서운산과 만뢰산, 동쪽에 솟아오른 두타산 사이에 저지대를 이루고, 거기에서 발원한 미호천 백곡천과 다른 지류들이 흘러 평야를 이루었다. 여기가 충북 곡창지대의 하나인 진천평야다.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것이 이러한 환경 때문이지 않았을까. 지역민들이 풍년을 구가했을 옛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지난 초여름에 내가 속해있는 단체의 노익장들과 함께 진천으로 문화탐방을 나섰다. 이동 하면서 차창을 통 해 본 주변 경관은 아름다웠다. 초목들이 푸르름으로 생기를 뽐내었고, 산하의 경계가 잘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도 한가로운 풍경으로 옛 시절의 정취를 자아내었다. 먹고 살기가 어렵던 시절에는 땅이 비옥하고 넓은 평야지대가 주요 했지만, 의식이 풍족해진 지금은 구경거리며 노닥거리가 많은 곳이 좋다. 굳이 진천이 아니라도 가 볼만한 곳이 많지 않은가. 허지만 진천에서도 체험하고 둘러 볼 곳이 많았다.
삼국시대 진천은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국경지대였다. 그러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태령산성 만뢰산성 대모산성 등 역사의 흔적들이 전략적 요충지로서 숨결을 내쉬고 있었고, 김유신의 탄생설화도 함께 하고 있었다. 패망한나라의 왕족 김서현을 변방지역의 태수로 보내자 신라의 왕족인 만명부인이 그를 연모하여 벌인 사랑의 도피행각과 그들 사이에 태어난 김유신이 자라며 무술을 연마했다는 장소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인물이 태어난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생각. 김유신을 추모하는 사당 길상사, 통일대탑과 보물 백비를 간직한 보탑사, 헤그밀사의 한사람인 이상설의 생가, 종 박물관과 마차박물관, 농다리 등 문화재도 많았다. 그 외 천주교 박해의 현장인 베타성지도 있었다.
도심을 흐르는 미호천은 주변의 여러 하천들을 거느리고 있는 큰 물줄기였다. 미호천으로 유입되는 초평천의 하류에 만들어진 초평저수지는 커다란 호수가 되어 국민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원래는 영농저수지로 만들었으나 지금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낙시터로 유명했다. 호수 속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한반도지형에 가장 근접한 모습이고, 제주도와 일본 열도를 동반하는 것처럼 보여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다. 초평호는 한반도를 등에 업고 승천하는 용의 모습과 같다 하여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근래에 초평호에 미르309출렁다리가 놓여졌다. 미르란 용이라는 뜻이고 총 길이가 309m다. 깊고 푸른 물결 과 조용히 정화된 분위기속에서 출렁거리는 모습도 한 마리의 용처럼 느껴졌다. 진천 시에서는 농다리와 출렁다리 그리고 또 하나의 다리를 잇는 초평호 둘레길을 관광코스로 개발해 놓았다.
진천 농다리는 고려 초기에 사람들이 미호천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다리였다. 다리 밑에 28개 칸이 되는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상판석을 얹혀 놓았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동양별자리 28수를 채택하여 지내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고, 지내의 몸체 마디 사이로 물이 흐르게 하였다. 붉은 색 돌들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올린 교각은 상단으로 갈수록 좁아져서 물의 영향을 덜 받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날 까지도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경이로운 발상이었다. 다른 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수한 구조물로 천년의 역사를 지닌 문화유산이었다.
문화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농다리를 지나 미르309출렁다리로 이어졌다. 왕복 3km 코스라 했지만 산길을 걷는 즐거움도 넉넉했다. 출렁다리를 지나 계속 진전하자 다시 하늘다리로 이어졌고, 이어서 초롱길로 들어섰다. 초롱길은 농다리와 하늘다리 사이에 조성된 산책로로써, 정자 농암정까지는 트래킹코스이고 그 너머로 야생화와 수목이 어우러진 수변탐방로였다. 초평호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답사를 마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웬 젊은이가 올라와서 인사를 했다. “저는 홍삼제품을 개발하는 회사의 홍보담당 사원입니다. 귀가 길에 우리 회사를 방문하여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제품을 선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요지의 설명과 함께 사례로 금일봉을 기부했다. 제품을 구입하라는 것도 아니고 회사만 구경하고 홍보해 달라는 요구를 흔쾌히 수락했다.
버스가 한 시간 이상 달려 도착한 곳은 인삼으로 유명한 ○○시. 홍삼엑기스 생산 공장이었다. 여직원들의 친절한 안내로 홍보실로 인도했고, 전무란 분이 나서서 설명을 이어갔다. “인삼이 건강에 좋은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구성분이 고분자 물질이어서 우리 몸속에서 흡수율이 낮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홍삼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약효성분이 저분자 형태로 변하기 때문이 이용효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노인여러분들의 고민인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전립선비대증 등 모든 성인병을 해결하고,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장해 드립니다. 딱 3개월만 복용하면 바로 효과를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건강에 목마른 노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옆에 도열했던 여직원들이 각개전투 식으로 구입을 독려하자 여러분들이 바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매상액이 삽시에 기백만 원에 달했다. “제품을 구입하지 않은 분들에게도 선물을 드리겠습니다.”라는 안내에 따라 홍삼음료와 비누 등을 선물 받았다. 금일봉을 미끼로 기백만 원의 매상을 올리는 상술에 현혹된 것 같았지만 별로 거부감은 없었다. 사례금으로는 추풍령 휴게소에 들려 저녁까지 해결했다. 모두들 기분이 흡족했다.
추풍령을 출발한 버스가 대구를 향하여 힘차게 달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루의 피로와 흠감한 기분에 젖어 슬며시 잠이 찾아 올 무렵이었다. 회원 한 분이 넋두리를 했다. “홍삼제품을 사기는 잘 했다만 집에 가서 마누라에게 뭐라 설명해야하지?” 조용하던 버스 안이 삽시에 웅성거리기 시작하더니 각종 얘기들을 쏟아내며 웃음바다가 됐다. “집에서 쫓겨나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하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다. 기세꺾긴 노인의 신세란 가련한 것이다. 웃으면서 허탈한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니 여행을 잘 마쳤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좋을까? 다음은 용인 땅으로 가 봤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 보았다. 살기 좋은 곳을 경험했으니 죽어 누울 자리도 한 번 구경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