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농민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국수-박은숙
박은숙
▲아주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 ▲한국문인협회화성지부 부지부장 ▲좋은친구들화성지부 지부장 ▲한국크리스토퍼남양반도센터 소장 ▲저서 수필집 <반지>
[심사평]
국수 소재로 화려한 수사 없이 삶을 담백하게 빚어내
천연두 치환한 ‘빗방울 화석’ 참신
‘흙벽’ 신선한 묘사력 빼어나 눈길
<농민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총 스무명의 시가 공히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었다.
속도의 저편으로 밀려난 삶의 그늘과 소외의 풍경을 그려내고, 타자들에 대한 저버릴 수 없는 관심을 어떻게 상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시선이 모아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밀행> 외 4편, <고라니> 외 4편, <노루발> 외 4편, <국수> 외 4편의 응모자들을 최종심에 올려놓고 집중적인 토의를 했다.
소재에 밀착하면서도 시적 인식의 확대를 도모한 <노루발>과 <국수>를 주목했다.
<노루발>은 경쾌한 어조와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동봉한 작품들의 에코페미니즘적 모성 서사가 익숙한 회로를 맴돌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국수>는 설명적 진술과 어색한 표현들에도 불구하고 동봉한 작품들의 안정감이 깊은 신뢰를 줬다.
특히 천연두를 <빗방울 화석>으로 치환한 비유의 참신함, 삶의 악천후를 품은 균열을 신체화한 <흙벽>의 신선한 묘사력, 문명의 맥을 짚은 <멸종의 거리> 같은 작품들은 당선작 못지않게 빼어난 시편들이다.
어쩌면 더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를 선택해 삶을 빚어내는 솜씨를 보며 우리는 시의 독창성이 어떤 유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질감의 문제이기도 함을 알게 된다.
과잉된 감각들과 화려한 수사의 먼지를 벗겨낸 자리에서 ‘맑은 물에 헹군 국수발 같은 주름’처럼 담백하게 씻긴 말들이, 겨우 존재하거나 잔상으로만 남은 부재의 측근들과 늘 함께 있기를 바란다.
새로움을 애써 여의면서 발효돼 나오는 시는 그때 굳이 새로움의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심사위원 - 나희덕, 손택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