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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제국의 충돌’은 미·중 관계가 갈등으로 치닫는 근본 원인이 이념 차이가 아니라 자본 간 경쟁에 있다고 짚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5일 워싱턴 DC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화상 회담을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미·중 갈등에 낀 한국 기업의 대응에 대해 “중국이란 큰 시장을 포기하면 우리에겐 회복력이 없다”고 했다. 최대 교역 파트너인 중국 시장을 잃어버리면 이를 대체할 시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른 기업인들도 모두 하고 싶은 얘기일 것이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초강대국 사이에서 우리 기업들은 앓는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투자한 공장이 볼모로 잡히고, 거대 소비 시장이 닫힌다면 손해 보는 것은 기업이다.
미·중 경제 전쟁의 최전선에 있는 반도체는 특히 살얼음판을 걷는다.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반도체법은 우리 기업의 중국 공장에 대해서는 1년간 이 조치를 일부 유예했다. 오는 10월이 시한인데, 이 조치가 추가로 얼마나 유예되는지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심각한 영향을 받는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D램 40%와 낸드 20%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투자한 금액만 각각 33조원, 35조원에 이른다. SK하이닉스가 인텔에 70억달러를 주고 인수한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은 업그레이드 투자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미국 기업들도 아우성이다.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자, 마이크론은 오히려 7700억원 규모 추가 중국 투자를 발표했다. 세계 반도체 매출의 3분의 1이 중국에서 나오고,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도 최종적으로 중국에서 조립되고 테스트되는 게 현실이다. 반도체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갈라설 수 없다는 미국 언론 보도까지 나온다. 미국이 중국을 적대하면서도 블링컨 국무장관과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바탕엔 이런 경제적 이해가 깔려있다.
미국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이 동맹 관계를 해친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유지할 방법이 없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이다. 중국의 GDP 규모는 G7 국가 중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6국을 다 합친 것보다 크다. 유럽이 중국에 대해선 종종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국 시장 때문이다.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원칙을 지키되 신중하고 유연해야 한다. 그런 지혜를 찾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