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박근혜의 수락 연설문 중에는 “앞으로는 국민들만 보고 가겠다”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갑작스런 김정일의 사망으로 인해 박근혜의 이 발언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여론의 관심은 김정일 사망 정국으로 급변하게 돌아갔다.
매일경제와 mbn이 2012년 신년 특집 프로에 내 보내기 위해서 지난 주말인 24일과 25일에 걸쳐 한길리서치를 통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내년 대선에서 다자구도의 경우와 안철수와의 양자대결 구도에 대한 설문도 실시했다. 다자구도는 말할 것도 없고 안철수와의 양자구도에서도 박근혜 40.4%, 안철수 38.9%를 받아 지난 11월에 실시했던 여론조사결과와 반대로 나타났다. 지난 11월 여론조사는 안철수 47.3%, 박근혜 39.9%였다.
일부에서는 김정일 사망으로 인해 북한의 예측불가한 상황의 돌출 변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보 불투명 전망이 안철수의 지지율에서 대폭락을 가져 왔다고 하는 해석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 어정쩡하게 안철수에게 붙어 있었던 중도적 부동층이 박근혜의 전면 등장에 따라 유체이탈을 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설일 것이다. 안철수의 지지율은 실체가 없는 현상의 일부분이므로 앞으로도 유체이탈은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와중에 브라인드가 비켜서자 드디어 비대위의 인사 면면이 드러났다. 드러난 인적 구성을 보면 그동안 구태에 젖어왔던 웰빙 체질의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이젠 죽었구나하고 복창하게 생겼음을 단박에 느낀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청와대 역시 반짝 긴장하게 생겼다. 이명박 더러 탈당하라고 할 필요도 없어졌다.
김종인의 등장은 한마디로 조조의 길목을 막아선 조자룡과도 같은 형국인바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이제 확실한 집도의를 만나게 된 것과 같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앞으로 박근혜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바로미터를 보는 것과 같다. 만약 차기 대통령에 박근혜가 당선이 된다면 재벌들도 좋은 시절 다 끝났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만 같다. 김종인은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이자 중소기업 육성론의 실전형 경제학자이니 말이다.
김종인의 등장과 이상돈의 등장이 시사해 주는 것은 바로 mb와의 차별화요 , 서류에 도장만 찍지 않는 사실상의 별거를 선언한 것 같아 보인다. 이상돈은 4대강, 측근비리, 내곡동 사저문제에 대한 독설과 비판은 별도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조동성과 이양희의 등장은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복지의 확장성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단초라고 보이며, 성공한 벤쳐 기업인인 조현정의 이름을 보는 순간, 지난번 서울시장 지원유세를 시작할 때 박근혜가 왜, 가장 먼저 구로 디지털단지를 찾아 갔는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 셈이다. 바로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등장한 이름일 것으로 짐작이 된다.
유달리 눈길이 가는 또 한 사람, 약관의 나이 26세의 이준석, 이 청년이 하는 사회적 행위를 보면, 앞으로 안철수에 필적할 만한 재목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의 동량 자질이 있어 보인다. 어디서 이런 물건을 골라 데려왔는지 박근혜의 수첩 내용이 정말 궁금해지기도 한다.
비상이 걸린 곳은 한나라당 뿐만이 아니다. 김종인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자 한겨레가 바짝 긴장한 기사를 내 보내고 있고 야당에서도 비상이 걸려 허둥대는 광경도 나타난다. “김종인은 박근혜가 데려갔다.” 아니 “낚아 채갔다”. 이런 뉴스도 보인다. 또 한사람이 있다. 바로 안철수다. 김종인의 등장으로 이제 안철수는 본업에 더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가장 안철수다운 안철수가 가야할 제 갈 길일 것이다.
야당에서 나오는 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김종인을 비롯한 박근혜의 비상위 구성 인적 면면을 보면 박근혜의 개혁 태풍은 상상 그 이상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며, 박근혜가 얼마나 개혁에 대한 의지가 굳건한지, 인적 개편도 어느 누구도 감히 예상치 못하는 수준이 될 것 같다는 전망이며 , 이러다간 내년 4월 총선에서 야당이 또 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들이 야당일각에서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반응이 이토록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막상 개혁이 시작되면 창당 그 이상의 폭풍이 될 것 같은 예감도 든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살아남은 사람의 이름도 보인다. 한나라당 최연소 의원인 쇄신파 중에서도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인 김세연과 주광덕 의원이다.
모든 언론들이 박근혜 비대위가 성공하기 위한 문제의 핵심은 민심 회복에 있다고 주장한다. 말인즉슨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오로지 국민들의 눈과 귀만 보고 가겠다는 그 생각 하나만 딱 가지고 가장 박근혜 다운 방식대로 해 나간다면 민심은 절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