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아래
나희덕
누군가 맵찬 손으로
귀싸대기를 후려쳐주었으면 싶은
잘 마른 싸릿대를 꺾어
어깨를 내리쳐주었으면 싶은
가을날 오후
언덕의 상수리나무 아래
하염없이 서 있었다
저물녘 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며
잘 여문 상수리들을
머리에, 얼굴에, 어깨에, 발등에 퍼부어주었다
무슨 회초리처럼, 무슨 위로처럼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1989년 〈중앙일보〉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선집 『그녀에게』. 현재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첫댓글 가슴이 철렁,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