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젊은 시절 학교 다닐 때에 친구들 간에 유독 폼을 잡는 친구가 있었다.
남자라면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의리의 사니이'처럼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말하자면 '폼생폼사'였다.
나도 배를 타면서 맛도 모르고 커피를 마시다 보니 근이 박혔는지 한 동안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게 되었다.
요즘이야 우리나라가 커피 공화국이라 할만큼 커피 종류도 많고 시내에 나가면 여기 저기가 커피숍이고 까페지만
우리가 배 탈 때만 하여도 병에 든 네스카페나 테이스터스 초이스, 맥심 등은 보따리 장사의 주류품이었다.
당시엔 우리나라에선 부잣집에서나 손님 접대용으로 내어 놓았던 귀한 기호품이었다.
해군에서 제대를 하고 송출선원으로 나가 1년을 근무한 다음에 휴가를 받아 집에 쉰 후 1기사 진급과 동시에
원목선으로 발령이 나서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런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으므로 공항에서 몇시간 체류하게 되었는 데 대기시간이 지루하여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그중에 식기를 파는 곳에 들어가 로얄달톤 찻잔 한 세트를 샀다.
우윳빛 찬잔 표면이 매끈하고 그려진 무늬가 선명해서 차를 마시거나 커피를 마시게 되면 맛이 있겠다 싶었다.
코로나사태가 아니어도 뱃사람중에는 자기 수저를 가지고 다니거나 자신의 밥그릇을 챙겨 다니는 사람들이 간 혹 있었다.
나는 밥그릇이나 수저는 갖고 다니지 않았지만 그 찻잔을 줄곧 지니고 다녔다.
배를 타고 있을 동안에는 부원들이 타 주는 커피를 주로 마셨다.
커피를 끓이는 사람에 따라 맛이 변하기도 하므로 커피 당번을 정해 놓고 미리 데운 물로 예열을 한 다음에 커피(주로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한 스푼반 정도 퍼 넣은 다음에 포트에서 팔팔 끓는 물을 부어 잘 저은 후 커피 메이트를 넣고 다시 티 스푼으로 잘 섞어서 한모금씩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도 찻잔에는 한동안 온기가 그냥 남아 있다.
안도현 시인은 타고난 연탄재를 두고,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고 하면서, '너는 언제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해 불태운 적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요즘 세상이 변해 을이 갑질을 하는 세상이다.
중국 상해 푸동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상전벽해가 된 곳이 많다. 서울 강남 잠실도, 해운대 마린시티도 허허벌판이 마천루 숲을 이루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해서는 안될게 있다. 그게 우리의 선비정신과 전통이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과의 시작이 어려울 정도로 커피에 중독이 되었다가 당뇨라는 판정을 받고는 커피를 멀리하게 됐다. 그래도 오랜 친구를 영영 끊을 수야 있겠는가 싶어 설탕을 빼고 하루 한 잔 정도 마시고 있다. 커피를 마신 후 잔에 남은 온기를 그냥 내버리기 아까워 두 손바닥으로 감싸안았다가 볼에 대고 문대기도 하고 온기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빈 잔을 볼에 대고 있으면 잔의 온기에서 돌아가신 울 어머니의 사랑이 전해오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