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못 / 한재범
하굣길에는 갈대밭에 들러 혼자 울었지 아이들은 끈질기게 따라와 시체장사하는 애비 자식이라고 놀렸다 나도 한명 쯤은 자신이 있어서
주머니 속 대못을 움켜쥐었지 교복바지 속에서 그것은 점차 커지는 것 같았다
그해 여름은 홍수가 잦아서 매일 밤 아이 하나 정도는 쉽게 떠내려갔다 급히 거리를 떠도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사람들의 얼굴이 꿈틀거렸고
마을의 하나뿐인 뒷산 위 골동품처럼 쌓여 있는 무덤들 사이 아버지는 매일 대못을 박는다고 했다
교회도 없는데 마을에는 한동안 종소리가 났지
아버진 내게 보여준 적 있다 미리 파놓은 누군가의 묫자리, 비가 고여 큰 못이 된 그것이 찰랑거리던 모습
장의사는 마을에 하나면 족하다고 그 일을 너도 맡게 될 거라고 언젠가 벽에 걸린 작업복을 보는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려는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서 나는 하루 종일 손가락이 아팠지
빈손을 자꾸만 쥐어서
밤마다 아버지의 삽을 들고 뛰쳐나갔어 그날도 마찬가지였지 뒷산에 올라가 땅을 팠지 주변에는 내가 매일 파놓은 구멍들이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지
무딘 칼질 같은 장대비 소리
온 마을을 뒤흔들 것처럼 켰다
구멍들마다 물이 차올랐다 못처럼 박힌 구멍들이 징그러워졌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삽을 버리고 도망쳤지 도망칠수록 더 길을 잃게 되는 산속에서
더는 그곳과 멀어질 수 없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 뛰었다 숨이 찰수록 자꾸 무언가를 움켜쥐게 되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다시 갈대밭이었다
젖은 주머니 속 무언가
서서히 나를 찌르고 있었다
- 2019 <창작과비평사> 신인문학상 수상작
* 한재범 시인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철학과 졸업
2011년 <문학세계> 등단
Una Lagrima Furyiva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