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주도 밀감은 임금님에게만 진상했다는 귀한 과일이었다.
우리 어릴 때만해도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도 하지 못했다.
요즘 흔한 사과조차도 제사지내고 가져오는 남의 집 제사음식상에 종잇장처럼 아주 얇게 썰어 오는 것도 오른들 몫이었다.
내가 밀감을 실컷 먹어본 것은 실습할 때 배를 타고 일본 구주에 갔을 때였다. 육지에 상륙하여 시내로 나갔을 때 식료품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귀한 바나나와 밀감이 눈에 띄었는데 우리나라에 비해 값이 아주 쌌다. 친구와 같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사먹는 대신 밀감을 사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에 가서 까먹기로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밀감나무 한 두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밀감값이 비쌌다.
재배면적도 차츰 늘어나 밀감값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무역자유화가 되어 미국산 오렌지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미군PX를 통해 깡통시장으로 조금씩 흘러 나오는 정도 였다. 오렌지에 비해 밀감은 크기나 맛에 비해 상대가 되지 않았다.
미국산 오렌지가 수입되기 전 배타고 롱비치에 들어가 선키스트 한 박스를 사서 집으로 들고 온 적이 있었다. 동생들이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처음이라며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허긴 밀감도 먹어 보지 못했으니까 그럴만도 했다.
몇년전 제주도로 놀러 갔더니 밭에 심어두었던 밀감나무를 다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밀감값이 내려서 수지가 안맞다고 했다.
어떤 밀감밭에는 겨울에도 노오란 밀감이 가지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주인은 밀감을 따서 파는 것보다 입장료를 받고 사진을 찍게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사진의 배경을 빌려주는 댓가를 받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상품이 아니라 보험과 같이 무형의 것도 상품이라더니 이런 것도 상품으로 간주하여 돈을 받는다니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엊그제 아들넘이 퇴근할 때 한라봉 한 박스를 들고 왔다. 껍질을 까서 한 조각 떼어 입에 넣어 보니 달콤했다. 밀감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당도가 높았다. 밀감도 한 소쿠리에 2천원 3천원 할 정도로 값이 싸다. 한라봉은 밀감을 개량해서 새품종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들었다. 밀감보다 크기도 크고 당도도 높아 값을 비싸게 받는다고 들었다. 한 때 미국산 오렌지가 많이 수입돼 온 길거리가 노오란 오렌지로 물들어 있을 때가 있었다. 국산 과일 농가 다 망친다고 농민들은 아우성을 질렀다. 어떻게 된 판인지 요즘은 조용해졌다. 내가 볼 때는 한라봉은 밀감이 아니라 오렌지에 가깝다. 겉모양만 약간 밀감형태를 갖추었지만 내부 과육은 영낙없는 오렌지다.
오렌지는 온대지방 해안에서 약100km이내의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과일이라고 한다. 선키스트는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오렌지 상품명인데 미국 현지에서 잘 익었을 때 다 먹으면 정말로 달고 맛있다. 배 타고 LA입항했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집에 초대되어 갔는데 정원에 심어둔 오렌지나무에 열린 잘 익은 오렌지를 따 먹었더니 그렇게 달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들어오는 오렌지는 다 익기도 전에 미리 따기 때문에 당도나 맛이 덜하다. 미국외의 지역으로는 호주산이 있고 중동에는 이스라엘산이 있다. 유럽의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도 오렌지가 날 것으로 보이나 아직까지 구경해 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