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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브론슨, 그는 꽤 특이한 이력을 지닌 배우입니다.
보통 영화배우들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기는 청춘스타일 경우 20대~30대중반,
액션스타일 경우 30대~40대, 연기파일 경우 30-50대일 경우가 많죠. 찰스 브론슨은 분리를 하자면 '액션배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죠. 그는 '단역배우' '조연배우' '주연배우'로 착실히 성장한 배우입니다. 그렇다고 차츰 차츰 한계단씩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단역출연하는 배우로서 그의 외모나 이미지가 필요한 영화에 조금씩 나오다가 어느날 '주류유명영화'에서 개성강한 조연으로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한순간에 '주연급 스타'가 되었던 것이죠. 그의 최고 전성기는 1968년부터 시작됩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이
그는 68년도에 걸출한 두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그 두편이 모두 미국영화가 아닌 '유럽영화'였죠. 아무래도 미국의 메이저영화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던 인지도있는 배우가 유럽영화에 진출하기가 헐리웃주연을 따내기보다는 다소 쉬운 편이었죠. 1968년 작품인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옛날옛적 서부에서)'은
사실상 '콧수염없는 찰스 브론슨'의 마지막 영화라고 할 수 있고, 그의 '조연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영화였으면서 '메인주연'이 아닌 영화중에서 가장 그가 돋보인 걸작이었죠. 이 영화의 메인타이틀에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헨리 폰다, 제이슨 로바츠가 먼저 등장하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찰스 브론슨이었습니다. '하모니카맨'으로 그가 보인 신비감과 고독한 이미지는 악역 헨리 폰다나 투박한 제이슨 로바츠를 훨씬 압도했습니다. 같은 해, 그는 '콧수염배우'로 변신하여 유럽 최고의 미남스타인 아랑 들롱과
범죄영화에서 공연했습니다. 이게 바로 찰스 브론슨의 오늘날의 슈퍼스타로 만든 영화 '아듀 라미'입니다. 사실상 '주연급배우'로 첫 발을 디뎠다고 할 수 있는 영화이면서 최고 미남 아랑 들롱과 노동자같은 추남 찰스 브론슨의 절묘한 콤비는 이 영화에서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미 국제적인 대스타였던 아랑 들롱과 대등한 공동주연이면서 야성적인 콧수염배우의 탄생이 된 영화죠. 이후의 영화들에서 찰스 브론슨은 콧수염을 붙이고 출연하는 것이 오마 샤리프나 클라크 게이블처럼 자연스런 것이 되었고, 몇편의 유럽영화들을 거쳐서 메이저 영화들에 주연급으로 계속 출연하면서 70년대에 최상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아듀라미에 출연할 때가 47세였으니, 47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경우가 정말 드물죠. 사실 아듀라미 이후, 빗속의 방문객, 밤의 불청객, 레드선 등 유럽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쌓으면서 그냥 그랬다면 그는 빨리 내리막길을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74년 그는 '데스 위시'라는 걸출한 폭력물을 히트시키고, 거기서 폴 커시라는 캐릭터를 창출하여 다시금 한단계 점프를 하였죠. 더티 해리시리즈와 함께 70년대 폭력시리즈물중 성공한 케이스인 이 영화는 찰스 브론슨이 출연한 미국메이저 영화중에서 가장 히트작이면서 그의 이미지와 잘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국내에 '추방객'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2편, 3편이 모두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5편까지 시리즈가 나왔죠. 물론 4편, 5편등은 데스 위시라는 영화의 나이든 찰스 브론슨을 다시 우려먹었던 영화였지만 말이죠. 찰스 브론슨은 우리나라와도 연관이 깊은 배우입니다. 70년대 초반
'맨담 화장품'광고에 출연한 그는 야성미의 상징적 배우였습니다. 귀족스럽고 조각같은 미남의 상징은 아랑 들롱이었고, 야성적이고 야만적인 남성적 이미지는 찰스 브론슨이었습니다. 사실 외화의 수입규제로 인하여 1년에 개봉되는 외화가 30편이 채
안되었던 70년대에도 아랑 들롱과 찰스 브론슨의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실컷 볼 수 있었습니다. 흥행도 주로 성공했죠. 한국에서 70년대에 가장 잘 팔리던 배우가 찰스 브론슨과 아랑 들롱이었죠. (라이언 오닐과 버트 레이놀즈가 한국에서 거의 소외됬던 것과는 대조적이죠) 찰스 브론슨은 아듀 라미 이전에도 많은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죠.
단지 조연급 배우라서 그가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50년대 젊은 시절에 그가 출연한 영화중 '베라크루즈'나 '밀랍인형의 집' '패트와 마이크'같은 주류영화에서 그는 '찰스 부친스키'라는 이름으로 단역출연했고,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중반에는 꽤 유명한 감독과 배우가 출연한 작품에 개성있는 조연으로 출연했죠. 대표적으로 '전쟁과 애욕' '황야의 7인' '대탈주' 등 존 스타제스 감독의 영화들과, '특공대작전' '발지대전투' '고백'같은 영화들이 우리나라에 개봉된 그의 조연작들이죠. 제가 어린시절 맨담 광고로 유명한 찰스 브론슨이 세계에서 손꼽힐 스타인줄
알았는데 대탈주, 황야의 7인, 고백등에서 그의 비중이 적어서 왜 그런 조연급배우가 그렇게 유명했었는지 이해를 못했었습니다. 당연하죠. 그가 스타가 되어 메이저급 주연배우로 활동한 것은 훨씬 후인 70년대 였으니까요. 그가 첫번째 주연을 맡은 작품은 1958년도 로저 코만 감독의 '기관총 켈리'라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알다시피 'B급'영화의 거장감독의 작품이니 주류영화는 아니었죠. 즉 그의 이력은 '주류영화단역'에서 'TV시리즈단역'에서 '주류영화 조연'에서 '유럽영화주연'에서 '헐리웃메이저영화 주연'으로 차츰 위상이 변한 것이죠. 그는 1968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대략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2003년
세상을 떠났죠. 그의 성공은 사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1. 절대 미남배우가 아니며
2. 절대 키가 큰 배우가 아니며 3. 미국 혈통이 아니며 4. 나이가 많은 배우 라는 4대 악조건을 뚫고 성공한 것이었죠. 47살의 못생기고 키도 크지 않은
인디안이나 동양계처럼 생긴 남자가 조각같은 스타가 줄줄이 자리잡은 헐리웃에서 메이저영화의 주연으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나라에서 히트한 그의 영화들의 제목은 대략 '아듀라미' '레드선'
'밤의 불청객' '무명객' '방문객(빗속의 방문객)' '추방객(데스위시')' '정오에서 3시까지' '신디케이트' '군용열차' '마제스틱' '매카닉' 등 다수입니다. 개봉편수도 많았고, 흥행도 잘 되었죠. 다른 추남 배우인 '안소니 퀸'의 경우 주로 덜 떨어지거나 바보같은 역할을
맡은데 비해서 주류배우시절 찰스 브론슨은 강하고 남성적인 역할을 맡았으니 정말 용된 것이죠. (안소니 퀸과 그는 황야의 산 세바스찬이란 영화에서 공연하고, 중간에 절벽에서 떨어져 죽죠) 콧수염과 넓은 가슴, 그리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못생긴 얼굴을 휘둘렀던
'오 ~ 맨담'의 찰스 브론슨, 긴 영화여생을 살면서 2003년 82세의 나이로 그는 떠났습니다. |
첫댓글 사진이 없어 좀 서운 하지만...그래도 좋으네요....
잉~~어디가지...?? 지송
잘 보았습니다....
잘보고갑니다.좋은 자료있으면 자주 올려 주세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