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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봉을 오르다가 해수욕장을 바라보고 쉬면서>
아름다운 섬, 선유도
내 마음 속에는 늘 찾고 싶은 섬이 있었다. 군산 앞바다에 위치한 선유도였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섬 선유도는 몇년 전 우연히 어떤 잡지의 표지에 실린 그
사진을 보고 반하여 그 후 언젠가는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서 아내에게 늘
선유도, 선유도 하고 노래를 불렀었다. 무슨 일이 그리 많았던지 늘 말로만
간다간다 하면서 드디어 하계 방학을 맞아 며칠 휴가를 내어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몽돌 해수욕장 풍경>
승용차를 군산항 여객터미날 근처 길가에 주차하고 선샤인 호를 탄다. 그런데
이 배는 선실에서 밖으로 나올 수가 없는 배였다. 무척 불편하다. 오랜만에 바닷
바람도 쏘이고 또 물살을 가르는 쾌속선의 시원함도 맛보려고 했는데 그만 선실
에 갇혀 선유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아내와 난 섬 주위를 걷기로 하였다. 무녀도
쪽을 향하여 걷는다.
<무녀도 가는 길>
시멘트로 포장된 언덕길을 넘어서자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선유교가 나온다.
배를 타고 들어올 때 그림처럼 아름답게 우릴 유혹하던 다리였다. 저 밑에 바다
를 바라보니 어지럽다. 긴 다리를 건너 무녀도에 도착하여 다리 아래로 계단을
걸어 내려와 섬의 오른 쪽을 끼고 돌아서자 무녀봉이 우릴 맞는다. 관광객을
별로 찾지 않는 한적한 섬이다. 아내와 난 동네 민박집 마당의 차양이 처진
그늘에 앉아 주인 아주머니와 무녀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무녀도 초등학교에서 바라본 무녀봉>
이 무녀도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무녀가 춤을 추는 형상을 갖추었다 하여
무녀도라고 한단다. 그때 우릴 따라 걷던 일행 중에 역사 선생님으로 퇴직하였
다는 분이 참견을 한다. 여기가 바로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의 무대라고 가르
쳐 준다. 난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소설 무녀도를 꼭 읽어보리라 마음 먹는다.
우린 마을 뒤로 걸어 들어간다. 무녀도 초등학교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척 깨끗하고 조그만 학교이다. 파란 잔디밭에 학생수가 몇 되지도 않을 것만
같은 학교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우린 운동장 한켠 그늘에 앉아서 학교
정면에 언덕처럼 서있는 무녀봉을 바라본다.
<아름답고 소박한 무녀도 초등학교 모습>
학교와 마을 사잇길을 가로질러 넘어서자 해변이 나온다. 갯벌에 물이 빠져 넓은
평야같다. 멀리 선유도의 망주봉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뙤약볕이 뜨거워 우린
마을 옆의 해변에 있는 그늘을 찾아 쉬어가기로 한다. 한참을 쉬었다가 결국
우리는 또 걷기로 한다. 무녀도를 한바퀴 돌아 다시 선유교에 도착한다. 선유도
를 건너 이번 에는 선유도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내려간다.
선유도의 몽돌해수욕장이 나온다. 무척 인상적인 마을이다. 민박집이 해변에
자리하고 있고 그 끝에는 선유봉이 그림처럼 서있다. 해변에 널려있는 붉은
고추가 파란 바닷물과 대비되어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가을이나 봄에 조용히
찾아와 며칠 쉬어가면 좋을 것만 같은 아늑한 포구였다. 우린 더위를 쫓기
위해 얼음과자를 사먹는다. 달고 맛있다.
<몽돌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선유봉 모습>
한참을 쉬었다가 우린 산길을 걸어 선유봉을 오르기로 한다. 너무 덥다. 하지만
저 선유봉에 올라 사위를 굽어보고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확 열릴 것 같은 희망으로 우린 숲길을 걸어 나아간다. 언덕을 넘어 나아가자
삼거리가 나온다. 길벗이 너무 덥다고 다음에 오르자고 한다.
우린 그냥 해변 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간다. 해수욕장이 나온다. 선유도에서 가
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이다. 앞으로 장자도가 우뚝 서있고 오른 쪽으로는 망주
봉이 그림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때는 오후 1시경, 물이
빠져 있어서 넓은 개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지락을 잡고 있었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고 모두가 호미 같은 것을 들고 열심히 조개를 잡고 있었다.
<선유도 신선께서 내게 주신 말씀이었을까!>
우린 장자도로 가는 길과 선유봉으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그늘을 찾아 아예 자리
를 깔고 쉬어가가로 한다. 바람통이었다. 풀을 꺾어 깔고 자리를 마련 한다.
바다 쪽에서 선유봉 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음까지 서늘하게 해준다. 길동무
는 아예 드러 눕는다. 건너편에 말을 키우고 있는 조그만 농장이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잠들어버린 길동무 옆에서 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꺼냈다.
손바닥만한 책을 꺼내 몇 장을 넘기면서 나는 인상적인 느낌을 얻는다. 이렇게
명료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문장들을 읽으면서 나는 새삼 선유도엘
잘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치 도를 닦던 사람이 뭔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행복
한 모습으로 길동무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는 문구를 읽으면서 깊은 감동을 받아 행복해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동무는 행복하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들어 있다.
<해변의 명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둘이다.>
어쩌면 무심의 상태로 잠들어 있는 저 동무가 훨씬 행복한 지도 모르겠다. 두어
시간을 자고 일어난 그녀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
노라니 바지락을 자루에 캐담아 들고 몽돌 해수욕장 쪽으로 넘어가는 관광객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 물이 어느새 쑤욱 들어와 있다. 이제 바지락
을 캐던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수영을 하면서 해수욕을 즐기기 시작한다.
장자도 쪽으로는 둘이서 함께 페달을 밟는 자전거를 타고 선유도를 유람하는 관
광객들이 쉬임없이 지나간다. 저 자전거는 전동으로 움직이는 카트와 함께 선유
도의 특색있는 관광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자전거도 앞에서 페달을 밟는
사람과 뒤에 탄 메이트가 서로 호흡이 맞아야 잘 나아가는 것 같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아 체인이 벗겨져 고생하는 관광객을 여럿 보았다.
<선유도의 풍경, 자전거 하이킹>
젊은 남녀가 앞뒤에 나란히 타고 발을 맞춰 그림처럼 선유도를 돌아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뇌리에 남는다. 그 때 중년의 여성 관광객 몇이서 선유
봉을 올랐다가 내려온다면서 너무 아름답다고 우리더러 올라보라고 말을 건네며
지나간다. 길동무가 솔깃하여 올라보자고 한다. 우린 아직도 뜨거운 볕을 헤집고
선유봉에 오른다. 정말 아름답다. 날이 쾌청하였더라면 더없이 상쾌할 뻔했다.
<카트 드라이브도 선유도의 풍경이다.>
내려오는 길에 매미 한마리 길동무의 하얀 모자에 내려 앉는다. 매미도 경계하지
않고 찾아와 함께 해주는 저 친구와 내가 평생 친구라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평생을 사랑해도 그리울 사람, 그리운 내 친구여! 선유도에 오니 매미 한 마리도
우릴 이리 친밀하게 가교를 놓아주는구나! 선유도에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매미 한 마리와 정다운 동행>
선유봉에서 내려와 우린 장자도를 향하여 걷는다. 한 고비를 돌아 서니 바닷물
을 먹는 물로 바꾸는 담수화 시설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선유도에는 먹는 물이
귀했다. 또 한 고비 돌아서니 장자교가 높은 교각을 세우고 있었다. 내려다 보기
가 어지럽다. 우린 장자교 끝의 바닷가 포장마차에 들러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장자도를 둘러본 후 등대가 있는 방파제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등대와 어선 한
척 사이로 태양이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었다.
<등대 너머로 지는 해, 그리고 우리 둘>
방파제에서는 관광객 몇이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앞
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대고 셧터를 누르고, 나의 정다운 친구는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을 하거나 더욱 좋으면 물구나무를 서는 습관이 있다. 어려서부터
골 사랑방에서 오빠 친구들이 모이면 거꾸로 서기를 즐겨했단다. 박수를 쳐주는
오빠들의 응원에 힘입어 어린 시절부터 곧잘 물구나무를 섰다는 그녀, 오늘도
지는 해가 너무 아름다웠던지 방파제 위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나는 사진을 찍고,
그렇게 태양은 서서히 바다 건너 섬 산아래로 기운다. 우리도 저렇게 언젠가는
사라져 갈 것이다.
<물구나무 서기, 사진을 찍는 나, 그리고 등대와 지는 해>
선유도 해수욕장의 해병대 구조본부에 숙소를 정하고 우리는 밤이 늦도록 파도
소리를 벗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 후곡리에서 휴가를 즐
기고 있는 줄 안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여 선유도행을 말하지 않았다.
해변의 밤하는 별을 보면서 바치는 묵주기도는 참 좋았다. 길동무는 내가 그 기
도에 동참하자 더욱 행복해 한다. 아이들은 밤이 늦도록 바닷가 모래밭에서
폭죽을 터뜨린다.
아침 일찍 우린 다시 장자도까지 걸어서 장자봉을 오르다가 날이 후덥지근하고
바위산을 오르기가 부담스러워 할머니 바위 근처까지만 오르고 내려와 오던 길
을 되돌아 걷는다. 다시 해수욕장으로 돌아와 선유3구의 망주봉을 구경하고 전
월리 입구까지 해변을 거닌다. 해당화가 지천에 피어있다. 해당화와 달맞이 꽃
이 자주 눈에 띄었다.
<선유교 아래 선착장에서, 멀리 망주봉이 보인다.>
주중이라 해수욕장이 한산하다. 우린 뱃시간에 맞춰서 선착장 쪽으로 걸어 나아
간다. 우체국이 나오고, 선유도 안내판을 들여다 보다가 난 이순신 장군과 이
선유도가 매우 깊은 연관이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울돌목 해전
에서 배 열 두척으로 열 배가 넘는 일본의 전함을 물리치고 위도를 거쳐 이곳 선
유도에서 아픈 몸을 추스리며 쉬었다고 한다. 그 후 1년 후, 54세의 나이로 그는
장열한 최후의 전사를 맞는다.
아! 이순신 장군! 그는 지금의 내 나이에 나라를 구하고 내가 서 있는 이 섬에서
아픈 몸을 돌보고 있었구나! 선유도가 더욱 의미있게 내게 다가 왔다. 우린 그
안내판 근처에서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다. 맛있었다.
선유도에 가거든 꼭 이 음식을 맛볼 일이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선유봉에서 바라본 몽돌 해수욕장 쪽, 멀리 오른 쪽 무녀도에서 왼쪽 선유교를 지나
예까지 걸었다.>
우린 다시 어제 그 쾌속선을 타고 군산으로 나왔다. 그리고 계속 도보여행을
하려던 계획을 바꿔서 부리나케 후곡리로 향했다. 선유도에서 힘들었던 더위
탓에 더 이상 무리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의 고향 후곡리에서 내리
사흘을 꿈같은 휴식에 빠질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선유도에서의 고행이 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선유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혹 선유도를 여행하려거든 쾌속선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옥도 페리같은
선편을 이용하는 것이 바다 구경에 더 편리할 것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연인끼리 가야 할 섬이다. 물론 젊은 나이에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 혼자 갈
수도 있겠지만, 중년의 나이라면 반드시 길동무가 있어야 할 아름다운 섬이다.
(다음 까페, '마음의 고향, 후곡')
<선유도의 지는 해, 힘든 여행이었지만 행복했다.>
* 식당 '선유팔경횟집' 063-465-8667, 011-9436-6725
* 바지락 칼국수 5,000원, 게장백반 10,000원
* 김동리의 단편소설 '무녀도'를 읽어보았으나, 그 소설의 내용과 선유도 옆 무녀도와는
어떤 연관성도 발견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