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시모음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년 12월 4일 ~ 1926년 12월 29일 본명은 르네 마리아 릴케였으나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의 권유로 르네를 라이너로 고치게 되었다. 그는 1875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는데,젊은 시절 장교로서의 화려한 생애를 펼치려던 꿈이 좌절되고지방철도국의 하급관리로 근무하던 아버지 요셉 릴케와 큰 가문출신이며 사회적으로 큰 명예욕에 사로잡혀 있던 어머니소피 엔츠는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순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부성적 권위와 모성적 포근함의 균형을 상실한 릴케는 출생시부터 불안한상태였고 1884년 릴케가 9살 되던 해에 부모는 이혼하고 말았다.1900년 자신의 이름으로 『경구집 Ephemeriden』이란 소책자를 낼 정도로 활동적인 어머니는 정신질환에 가까울 정도의울화증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긴장 속에 몰아넣었다. 오죽하면 훗날 릴케가 29세 되던 해에 그런 어머니에 대하여 '바지저고리처럼 속이 텅빈 망상적이고 역겨운' 여인이라고 증오 섞인 어휘를 내뱉었을까. 신앙적 독선의 어머니에 대하여1915년 10월 14일 뮌헨에서 쓰여진 시구에서 릴케는 이렇게 절규한다.
아 슬프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허문다돌이 채곡채곡 나에게 쌓여 하루해가 큼직하게 움직이는 작은 집처럼 벌써 서있다혼자 뿐이었지 이제 어머니가 오셔서 나를 허문다 릴케의 어머니는 낳자마자 죽은 딸을 결코 잊지 못하여자신의 상실감을 메꾸어 줄 대용물로 릴케를 키운다. 여자옷을 입히고, 머리를 땋아주고, 소꼽장난을 하게 하며,남자 아이들과 노는 것마저 금지시킨다. 여자 이름인 '마리아'라는 영세명을 받게 된 것도이런 연유에서이다. 어린 릴케는 곧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1886년 11살 되던 해 릴케는 부모의 이혼에 따른 후속책으로쌍 폴텐에 있는 소년 군사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890년에는 메리쉬―봐이쓰키르헨의 고등군사학교에 들어간다.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충족시켜 주기 위해서였지만, 릴케는 튼튼한 소년들이 모여있는 환경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 세상적 욕심이 강한 어머니는 성실한 가문의 막연한 귀족신분의흔적을 가지고 릴케로 하여금 특수의식에 빠지게 한다. 원래 릴케의 집안은 합스부르크 왕가에 충성하는 매우 자유주의적의식을 지닌 시민계급이었다. 이런 과정이 산문시 작품 '코르넷 크리스토프 릴케의 사랑과 죽음의 노래Die Weise von Liebe und Tod Cornets Christoph Rilke'로표현되고 있다. 바람이 몹시 부는 11월 밤 백일몽상태에서 단숨에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소년시절의 억눌린 자아의식과소망을 꿈의 형태로 체험하는 청년 릴케의 심리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1891년 계속되는 질병과 허약한 체질로 인하여 릴케는 군사학교를그만두고 린츠(Linz)에 있는 실업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대학입학을 위한 인문교육과정을 준비,1895년 7월 대학입학자격 국가시험에 합격한다. 이때 발리(Vally David―Rhonfeld)라는 소녀에게 향해진 첫사랑이실연으로 끝난다. 이것은 어머니의 포로일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對연인관계에 가중된 장애요인이 된다. 평생 릴케는 남성 친구보다여성들이 에워싸고 있었던 것도 남성으로서의 역할부재와 무관치 않다.
가을날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벌판에 바람을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열매 위에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 맛이짙은 포도송이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외로운 자는, 오랫동안 외롭게 지낼 것입求?잠 못 이루어,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네.저 먼 곳에서 찾아온 듯 머나먼 하늘나라의 정원이 시들 듯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지고 있네.
밤이 되면무거운 대지가 무수한 별들로부터 정적 속으로 떨어져 내리네.
우리도 모두 떨어지고 있고여기 이 손도 떨어지고 있는 것을. 그대여 보라.온갖 것들이 떨어져내리는 것을.
허나 그 어느 한 분이 있어떨어지는 이 몸을 무한히 정감어린 손길로떠받아 주시는 것을.
두이노의 비가 1 내가 소리친들, 천사의 계열 중 대체 그 누가내 목소리를 들어 주리오? 설령 한 천사가 느닷없이 나를 가슴에 끌어안는다 해도, 나보다 사뭇 강한 그의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에 다름아니니까.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어두운 흐느낌의 유혹소리를 꿀컥 삼키는데, 아, 대체 우리는 그 누구를부릴 수 있을까? 천사들도 아니요 인간들도 아니다. 영리한 짐승들은 해석된 세계 속에 사는 우리가마음 편치 않음을 벌써 느끼고 있다. 우리에게 산등성이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어 날마다 볼 수 있을런지.우리에게 남은 건 어제의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습관에의 뒤틀린 맹종, 그것들은 남아 떠나지 않았다.오 그리고 밤, 밤, 우주로 가득찬 바람이우리의 얼굴을 파먹어가면, 누구에겐들 밤만 남지 않으랴, 그토록 그리워하던 밤, 모든 이의 가슴 앞에 힘겹게 드리운,약간 환멸을 느끼는 밤. 밤은 사랑하는 이들한테는 더 쉬울까? 아, 그들은 그저 몸을 합쳐 그들의 운명을 가리우고 있구나.너는 아직 그것을 모르는가? 우리가 숨쉬는 공간을 향해 두 팔을 벌려 네 공허를 던져라. 그러면 새들은더욱 당찬 날갯짓으로 넓어진 대기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봄들은 너를 필요로 할지 모르지. 수많은 별들은네가 저희들을 느끼기를 바랐다. 과거 속에서 파도 하나 일어나고, 혹은열려진 창문 옆을 지나갈 때너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었겠지. 그 모든 건 사명이었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완수했는가? 모든 것이네게 애인을 점지해줄 듯한 기대감에 너는 언제나 마음이 어지럽지 않았는가? (네가 그녀를어디에 숨겨도, 크고 낯선 생각들은 네 가슴속을들락거리며 밤이면 어김없이 네 안에 머무르는데.) 그리웁거들랑, 사랑을 하는 자들을 노래하라, 하지만그들의 유명한 감정도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리라. 네가 시기할 지경인 그 사람들, 너는 그들이 사랑의만족을 맛본 이들보다 훨씬 더 사랑스러움을 알았으리라. 결코 다함이 없는 칭송을 언제나 새로이 시작하라,생각하라, 영웅이란 영속하는 법, 몰락까지도 그에겐존재하기 위한 구실이었음을, 그의 궁극적 탄생이었음을. 그러나 지친 자연은 사랑에 빠진 자들을,두 번 다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는 듯이, 제 몸 속으로 거두어들인다. 너는 가스파라 스탐파를깊이 생각해 보았는가, 사랑하는 남자의 버림을 받은 한 처녀가 사랑에 빠진 스탐파의 드높은 모범에서자기도 그처럼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을? 언젠가 이처럼 가장 오래 된 고통들이 우리에게열매로 맺지 않을까?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면서 연인에게서 벗어나, 벗어남을 떨며 견딜 때가 아닌가? 발사의 순간에 힘을 모아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기 위해화살이 시위를 견디듯이. 머무름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목소리, 목소리들, 들어라, 내 가슴아, 지난날 성자들만이들었던 소리를, 엄청난 외침 소리가 그들을 땅에서 들어올렸지만, 그들, 불가사의한 자들은무릎꿇은 자세 흐트리지 않고,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귀 기울이고 있었다. 신의 목소리야더 견디기 어려우리.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를 들어라, 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끊임없는 傳言을.이제 그 젊은 주검들이 너를 향해 소곤댄다. 네가 어디로 발을 옮기든, 교회든 로마든 나폴리든그들의 운명은 조용히 네게 말을 건네지 않았던가? 아니면 얼마 전의 산타 마리아 포르모자의 碑文처럼비문 하나가 네게 엄숙히 그것을 명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는가? 내 그들의 영혼의순수한 움직임에 가끔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옳지 못한 인상일랑 조용히 버려야 하리라.
이 지상에 더 이상 살지 않음은 참으로 이상하다,겨우 익힌 관습을 다시는 행할 수 없음과, 장미들과 그밖의 무언가 나름대로 약속하는 사물들에게인간의 장래의 의미를 선사할 수 없음과, 한없이 걱정스런 두 손 안에 들어 있는 존재가이제 더 이상 아님이, 그리고 자기 이름마저도 마치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서로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이 그처럼 허공에 흩어져 날리는 것을 보는 것은 이상하다. 그러므로 죽어 있다는 것은점차 조금이나마 영원을 맛보기 위한 힘겨움과 만회로 가득 차 있는 것 ――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은모든 것을 너무나 뚜렷하게 구별하는 실수를 범한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자들 사이를 가는지, 죽은 자들사이를 가는지 때때로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영원한 흐름은 두 영역 사이로모든 세대를 끌어가니, 두 영역의 모두를 압도한다.
끝내 그들, 일찍 떠난 자들은 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니,우리는 어느 덧 자라나 어머니의 젖가슴을 떠나듯, 조용히 대지의 품을 떠난다. 그러나 그토록 큰 비밀을필요로 하는 우리는, 슬픔에서 그토록 자주 복된 진보를 울궈내는 우리는 ―― 그들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언젠가 리노스를 잃은 비탄 속에서 튀어나온 첫 음악이 메마른 단단함 사이를 꿰뚫었다는 전설은 헛된 것인가,거의 신에 가까운 한 젊은이가 갑작스레 영원히 떠나버려 깜짝 놀란 공간 속에서 비로소 공허함이우리를 매혹시키고 위로하며 돕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오 주여 누구에게나 오 주여 누구에게나 그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사랑과 의미와 고난의 알맹이가 들어있는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것이오니.
사람은 빈 껍질과 낙엽에 지나지 않으며 누구나 안고 있는 위대한 죽음이야말로,바로 모든 것의 알맹이가 되는 열매입니다.
나무에서 거문고가 나오는 것처럼소녀들이 나타나고, 아이들은 자라서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어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당신은 미래이십니다. 영원한 평야를 비추시는위대한 새벽 빛이십니다. 당신은 시대의 밤이 샌 뒤 때를 알리는 닭소리, 당신은 이슬이시고, 아침기도, 소녀이시며,낯선 사나이이고, 어머니이시며, 죽음이십니다.
당신은 변신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제나 고독하게 운명 속에서 솟아나 환호되는 일도 없이, 탄식되는 일도 없이원시의 숲 그대로 이름조차 없이 계십니다.
당신은 사물들의 깊은 본질이시되, 그 궁극적인 말은 침묵하시고사람들에게 항상 다른 모습으로 보이십니다. 배에서는 기슭으로, 뭍에서는 배로 보이시나니.
고독 고독은 비와도 같은 것 저녁을 찾아 바다에서 오른다.멀고 먼 외진 들녘에서 오른다. 늘상 고적하기만 한 하늘로 옮겨갔다가하늘에서 비로소 도시에 내린다.
아침을 향해 골목골목이 몸을 일으키고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육신들이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 떠나갈 때,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같은 잠자리에서 함께 잠들어야 할 때, 낮과 밤이 뒤엉킨 시각, 비가 되어 내리면
고독은 강물과 함께 흘러간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려 합니다.박해받으면 갇혀 있는 감옥에서 풀려나려는 듯이 그러나 이 세상은 하나의 위대한 기적입니다.나는 느낍니다.여기에는 모든 삶이 살고 있다고.
그러나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연주되지 아니한 선율이 하아프 속에 깃들여 있듯이저녁 어스름 속에 숨어 있는 것들이겠습니까. 물 위에 불어 오는 바람이겠습니까,신호를 주고받는 나뭇자기겠습니까, 향기를 풍기는 꽃송이겠습니까,늙어 가는 긴 가로수 길이겠습니까, 오고가는 따뜻한 동물들이겠습니까,갑자기 떠오르는 새들이겠습니까.
대체 누가 사는 것이겠습니까, 신(神)이여, 당신입니까-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지키는 사람처럼 포도밭에 원두막을 짓고서지키는 사람처럼 주여, 저는 당신 안에 있는 원두막입니다.오오 주여, 저는 당신의 밤에 싸인 밤입니다.
포도밭, 목장, 오래 된 사과밭봄의 계절을 건너뛸 줄 모르는 밭 대리석처럼 단단한 땅에서도많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
당신의 둥근 가지에서 향기가 흐르고 있습니다.당신은 저에게 지키고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진액에 거침없이 녹아 들어당신의 깊은 뜻이 제 곁을 고이 타오릅니다.
이웃 낯선 바이올린이여, 너는 어찌 내 뒤를 쫓는가? 머나먼 타향의 여러 도시에서 벌써 얼마나너의 쓸쓸한 밤은 나의 밤에게 말을 건넸던가? 수백의 사람이 너를 켜는가, 한 사람이 켜는가?
네가 아니라면 벌써 강물에 몸을 던졌을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마다 지금도 살고 있는가?네 소리는 어찌 이리도 나의 가슴을 치는가?
나는 왜 언제나 너로 하여 불안스레'삶은 모든 사물들의 무게보다 더 무겁다'고 노래하고 말하도록 하는 사람들의이웃이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