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철시…부안은 '전쟁중' 1만여명 참가 핵폐기장 반대집회
현장르포
전북
부안에서는 방사선 폐기물(이하 방폐물) 처리장 유치를 둘러싸고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25일에도 부안군민 6만9000여명 중
1만여명(주최측 집계)이 참가한 대규모 반대집회가 열렸다. 경찰과의 격렬한 충돌은 없었지만 외곽에서 들어오는 모든 도로가 통제되고 상점들은
대부분 철시해 부안의 중심가는 사실상 ‘마비상태’였다.
이날 오후 2시40분쯤 기자가 탄 고속버스는 교통 통제로 인해 부안읍 버스터미널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1km밖에서 멈췄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운전기사의 말에 기자와 승객들은 터미널쪽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터미널로 가는 길에는 집회에 참석하러 종종걸음을 걷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 10일 이후 시위에 계속 참가하고 있다는 배상삼씨(42ㆍ농부)는 기자를 보자 대뜸 “방폐물 처리장이 들어오면 농산물 판로가 막히고
값이 떨어질 것”이라며 “내가 구속당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배씨는 연일 구호를 외쳐 목이 쉬었다면서 “핵폐기장 때문에 관광객도
줄어 격포 등 해안가 상권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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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닫은 병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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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집회가 열리는 부안 중심가 수협 인근의 상가들은 문을 연 곳이
드물었다. 병원과 약국마저도 문을 닫았고 일부 가게는 ‘핵반대 금일 휴업’이라는 안내문을 붙이기도 했다.
상인들은 ‘방폐물 처리장’에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서진호씨(41)는 “상점 90%가 문을 닫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며 “방폐물
처리장 유치를 군수 독단적으로 한 것에 군민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치 신청 하루전까지도 군수는 유치에 반대한다고
했다”며 “지금의 부안군수는 부안군수가 아니라 위도군수”라고 말했다.
수퍼마켓을 운영한다는 50대 상인은 “당신 집 옆에 핵 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느냐”고 반문하며 “방폐장 유치는 당연히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위도 주민들이야 돈 받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낚시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46)는 “정부가 확실히 안전성과 보상 약속을 지킨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지킬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반대집회는 이날 오후 2시 번영로 네거리와 부안수협 앞 도로에서 열렸다. 곳곳에 ‘핵폐기장 철회’ ‘매향노 김종규(부안군수)’라고 쓰인
노란 깃발들이 나부꼈고 참석자들은 ‘핵반대’라고 쓰여있는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가슴에는 노란색 배지를 달았다. 집회를 주도하는 부안군민대책위원회
집행부가 위치한 임시 연단 뒤로는 ‘핵폐기장은 청와대로, 여의도로’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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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청앞서 시위하는 부안군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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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단에 오른 연사들의 구호는 격렬했다. “반민주적 밀실행정 노무현
정부 각오하라” “더이상 물러나면 안됩니다” “계속 투쟁합시다”…. 1만여명의 참가자들은 연설에 연신 박수를 쳤다. 대회 도중 군의원 2명과
여성 8명이 항의표시로 삭발하기도 했다. 대책위는 “너무 많은 분들이 삭발하겠다고 해서 말리고 있다”는 방송을 하기도 했다.
부안군민 중 일부는 ‘방폐장 유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인근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안모씨(25)는 “고기도 잘 안잡히는
등 연안 어업이 죽어가고 있다”며 “이렇게 부안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상태에서 ‘방폐장 처리장’ 유치와 함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인근 직장에 다닌다는 신모씨 “방폐장 시설은 안전성에서 전혀 문제없다고 본다”며 “관광객이 줄어든다는 것도 추정일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단체들끼리 공개토론을 하는 것도 좋은 해결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후 3시40분쯤 시위대는 ▲매일 저녁 8시 촛불시위 ▲노무현 정부 규탄 청와대 상경시위 ▲내달 2일 대규모 부안군민 대회 개최 등 3가지
투쟁 방침을 결의한뒤, ‘핵폐기장 절대 반대’라는 현수막을 앞세우고 군청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도로 곳곳에 경찰들이 수십여명씩 있었지만 이들의
행진을 막지는 않았다. 오후 4시쯤 시위대가 군청 앞에 도착했을 때 경찰 1000명이 군청을 완전히 둘러싸고 있는게 보였다. 경찰은 군청 정문과
주변을 컨테이너 8개로 봉쇄하고 2~3명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만 만들었다.
잠시후 군청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 선두와 이를 막는 경찰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5분정도 실랑이를 벌이던 시위대는 더이상
진입을 시도하지 않고 물러나 군청 정문앞 도로 위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핵폐기물 결사반대’ ‘노무현 대통령은 물러나라’ 등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 일부는 노 대통령과 김종규 군수에 대해 노골적인 욕설을 하기도 했다. 임시 연단에 오른 한모씨는 김 군수를 ‘개XX’라고 부르며
“핵처리 시설을 제대로 알게되면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육모씨는 “나는 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군수가 군민들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새만금 반대 3보1배' 행진에 참가했던 문정현 신부가 이 시위에 참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무렵 군청안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청사 밖 뿐만 아니라 청사 내 각 층마다 경찰병력이 수십명씩 배치돼 있었다. 종합상황실은
시위대가 군청 앞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외부인 출입을 통제했고 군청 직원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직원들 얼굴에는 긴장감이 흘렀고 한결같이 말을 아꼈다. 한 공무원은 “부안 군민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답변 못하겠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기획감사실의 한 직원은 “모두 비상근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이나 실별로 몇 명씩 차출해 야근
당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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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규 부안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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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장감에 싸인 것은 군수실도 예외가 아니였다. 군수실 입구에는 직원
2명이 출입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했다. 군수실 당직자라는 한 직원은 “민원인으로 가장해 들어오는 폐기장 반대론자를 막기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군수실 앞쪽 방에 들어서자 깨진 창문이 눈에 띄었다. 이현주 비서실장은 지난 22일 시위대가 던진 돌에 깨졌다고 말했다.
계속된 회의와 언론 인터뷰로 한 참 기다린 끝에 김종규 군수를 만날 수 있었다. 김 군수는 “부안군민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군수는 그러나 “(유치 신청은) 내 한 몸을 던져 자립형 지자체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라며 “낙후된 부안이 이제는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적인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면서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 주지 않을 때 가장 답답하다. 진실을 알게되면
부안군 발전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군수와의 인터뷰 내내 군청 밖에서는 시위가 계속됐다. 김 군수는 군수실까지 들려오는 시위대 스피커 소리에 “착잡하고 괴롭다”면서
“지금은 고향을 팔아먹은 사람으로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오후 5시30분쯤 군청 앞을 떠나 처음 집회가 열렸던 번영로 네거리로 이동했다. 대책위원회 지도부 중 한 명인
염형철씨(환경운동연합 녹색대안국장)는 “처음에 중저준위 폐기물을 부안에 유치한다고 했지만 산업자원부 자료를 보면 고준위 폐기물도 들어온다”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위험한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간저장시설도 만든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핵발전소가 들어온다는
뜻”이라며 “우리는 저강도 장기간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 이날 집회는 끝났고, 이후 그동안 대책위 활동상황과 언론 보도를 담은 동영상이 방영됐다. 이어 밤 9시쯤 어둠이 짙게 깔린
번영로 네거리에 3~4개의 임시 천막이 만들어졌고 대책위와 일부 군민들이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이로써 뜨거웠던 부안군의 하루는 끝이 났다.
(경창환 기자 chkyung@chosun.com">chkyung@chosun.com )
(이형걸 인턴기자 hglee77@hanmail.com">hglee77@han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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