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길 <본문> 겔47:1-5 (겔47: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겔47: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겔47: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47:4)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겔47: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더라
기도를 시작하신 성도님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첫발, 축복의 첫걸음, 성공의 제 일단계에 올라서신 것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열매맺으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축복의 길을 가르치신다.
1. 성전에서 흐르는 물 생수는 축복상징, 생명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생명의 시작을 말한다.
2. 물이 발목에 오르다 열심히 성전을 찾아 나오는 발걸음은 축복과 승리의 시작이다.
성전을 찾는 발걸음 남편 잃은 과부가 먼저 엘리사를 찾아감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부르고 따라감 문둥이들이 에수님에게 찾아옴. 시므온과 안나가 성전에 있다 예수님을 만남.
3. 물이 무릅에 오르다 기도하는 삶은 승리와 축복의 지름길이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 진실한 기도 - 세리의 기도 간절한 기도 - 겟세마네 기도 큰소리, 손을 들고, 회개하며, 성령받으려,
4. 물이 허리에 오르다 겸손과 봉사의 삶은 승리와 축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승리와 축복속에 살아도 겸손과 봉사가 없는 삶은 가난한 신앙인이다. 교만과 이기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는 지름길이다.
5. 헤엄할 물이 되다 누리고 사는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런 은혜에 잠겨 감사하며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자. 그 지름길이 성전을 열심히 찾는 것이고, 기도에 힘쓰는 것이며, 겸손과 봉사로 주님을 바라보면,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귀한 축복의 삶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기도제목 : 총동원 주일을 위하여,(5월 26일) 40일 새벽기도학교를 위하여, 병마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2일 예수님의 기도 <본문> 막6:34-46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막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막6: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막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6: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막6: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막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막6:42) 다 배불리 먹고 (막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6: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명이었더라 (막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요한복음 13: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고전 11:1 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의 제자는 마귀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도 '기도의 삶 '을 제일 먼저 닮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1. 은혜 충만하시고 형통하셨을 때 기도하시는 주님을 볼수 있 습니다. 마 3:16-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 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생활을 돌아보면 어려운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하다가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닫힌 문들이 열리게 되면 기도를 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를 쉬게 되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기도는 형통할 때도 해야합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여유 있을 때 저금을 하듯이 형통할 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환난과 고난의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신앙의 자셉니다.
2.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 다. 구세주로서 인류 구원의 대역사를 시작하는 첫 발걸음은 광야로 향했고, 그의 첫 음성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12제자를 택하는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시작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일입니다. 신앙인들이 기도없이 시작한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울의 실패와 다윗의 성공을 비교해 볼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억지로 임금이 되는 행운을 안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선택 되었지만, 고난의 연속이었고 오랜 시련 끝에 왕좌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실패했고, 다윗은 성공했습니다. 그 차이는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기도가 없는 사람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사울이 좋은 조건이었지만, 그는 기도하지 않다가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일생을 보내고 원수에 둘러 쌓여 있었지만 기도하므로 성군이 되고 최후의 승리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시작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마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 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는 손님은 마귑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제일 두려워 하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찾아와 방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귀의 공격에 넘어지고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응답 받는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응답 받을 때까지 굽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비참합니다. 이겨야 응답이 있고,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끈질기게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40일은 인간이 견디기에는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좋은 일도 40일을 하면 실증이 날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40일을 먹으면 짜증이 납니다. 먹고 쉬면서도 40일 기도하자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하면서 기도에만 전념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끈질긴 기도는 그 사람의 신앙과 그의 인격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요 대화이기 때문에, 몇일이나,몇시간 동안 소리소리 지르면서 하는 기도보다는 일생을 두고 꾸준히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0일 기도의 의미도 그런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할 정도면 나의 생명이나, 어떤 것도 다 하나님 앞에서 포기 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만 살겠습니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일생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라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의 삶이었습니다. 요즈음 40일 금식기도 했다는 사람들이 하나도 변한 것은 없이 '40일 금식기도 '를 간판처럼 들고 다니다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3번씩 기도했습니다. 찰스 시몬이라는 사람은 매일 새벽 4시-8시까지 4시간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웨슬리는 매일 2시간씩 기도하면서 4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만일 내가 매일 새벽 2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것을 실패한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오늘은 3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하나님 앞에 먼저 나와서 무릎을 꿇는 것보다 더 경건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른 아침에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주님께 드리지 않는 다면 우리의 삶은 하루종일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새벽기도는 광신자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성도들이 하는 영혼의 힘찬 도약입니다.
예수를 닮지 않은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 100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읍시다. 먼저 예수님의 기도하는 삶을 본받아 실천하므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3일
아브라함의 기도 <본문> 창18:22-23 (창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18: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여러모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쫓았고, 철저하게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해서 행복을 누리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어떤 형편이 있습니까 ?
1. 소돔성 사람들을 봅시다. 롯의 집에 천사가 방문한 것을 보고, 소돔성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이성을 잃고 음난한 생각을 하며 흥분을 했습니다. 이들을 말리는 롯을 향하여도 이놈이 들어와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창19:9)고 폭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게된 음난과 살인의 광기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움과 화려한 것으로 위장한 죄악의 모습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롯과 같은 곤경에 처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을 봅시다.(창 19:14) 천사가 롯의 가정에 긴급대피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 복음은 롯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의 사위들에게 함께 가지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농담 '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는 사람은 망합니다. 주의 종의 말을 농담으로 받는 사람은 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이처럼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임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깨어서 근신하는 자들 만이 도적같이 임하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롯의 처를 봅시다. 영문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소돔성을 나서는 이 여인은 이미 그의 마음을 소돔성에 빼앗겼습니다. 아니 그의 몸도 그의 삶의 의미도 이미 소돔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맛본 쾌락과 풍요로움과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그의 영은 너무도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경고가 그의 마음에 들어 올리가 없었고, 손을 잡아 끄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자연스럽게 소돔성을 향하여 아쉬운 눈길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나의 추한 모습이 아닌지...,
4. 롯의 두 딸을 봅시다. 육신에 속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듯 합니다. 천사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겨우겨우 소알성으로 대피합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소돔성에서의 경험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해야할 일을 바로 알지 못했고, 아버지를 돕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짐이 되고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망하게 된 소돔성과 조카 롯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번 부탁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간청하며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데도 열정을 가지고 매어 달립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자셉니다. 구원의 기쁨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셉니다.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나와 나의 자식을 위한 이기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다면, 나의 신앙을 한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형제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수 있을때에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들려질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4일 쫓겨난 자의 기도 <본문> 창21:8-21 (창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창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창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창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창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창21:15)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창21:16)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창21: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창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약속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12:2-3) 그러나 10년이 지난 85세까지 아들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애굽사람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00세가 되던 해에 사라를 통해서 약속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어린 이삭과 이스마엘이 갈등을 빚게 되고 급기야는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쫓게 됩니다. 아침 일찍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며, 아들과 함께 막막한 광야로 내 몰린 하갈은 방성대곡하며 울부짖습니다. 그것은 절규였고, 탄식이었습니다.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 않은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갈의 기도를 통해서 세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하나님 앞에 나갈수 없는 기도의 무자격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 합니다. 하갈은 인간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서 버림을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출신이 이방 애굽 사람이었고, 종의 신분이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아들을 낳았고, 또 아들을 얻은 것을 빙자해서 주인을 학대하고 교만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울부짖을 때에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가 원한에 맺힌 통곡을 토해 낼 때에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아뢰기만 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2.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하갈이 광야길에 내 동댕이 쳐졌을 때에,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갈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에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집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는 기도 소리를 들었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하나님에 대해서 평소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성대곡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기다리셨다는듯이 달려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절박한 심정에서 오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속히 들어 주십니다. 3. 자녀를 위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 하갈이 기도했는데 17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얼마나 기쁜일입니까?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더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녀가 비록 기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자녀의 기도로 들어 주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이와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은 다 해결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죽은 딸이 일어 나기도 했습니다. 귀신이 쫓겨갔습니다. 결국 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문젭니다. 자녀의 신앙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육신으로 낳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신앙으로 다시한번 잉태하고 해산하는 십자가를 지면서 하갈처럼 방성대곡하면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5일 이삭의 기도 <본문> 창25:19-26 (창25: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창25:20)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창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25: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창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창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은 개척자의 일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보람과 기쁨도 많이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이삭의 생은 순풍의 돛단 듯한 평탄한 삶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과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죄를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20:6)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식인 이삭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이삭의 완전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아직 어릴때에 모리아산의 제단에 아버지에게 결박 당하여 제물로 바쳐지게 될때에 그는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통해서 이어 받은 신앙이 이삭에게 이르러서는 보다 성숙하고, 체질화 되어 있음을 보게 해주는 사건입니다. 신앙이 갈등을 겪으면, 평안이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신앙의 수준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엄청난 재물과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와 하는 일마다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복한 이삭에게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이 40이 되었으나 20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삭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되, 완전하게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인생의 그릇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십니다. 이삭에게 자녀의 축복도 속히 주셨다면, 교만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것 때문에 그는 겸손히 20년 동안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2) 기도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 더욱 귀합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큰 아들은 남성적이고, 둘째 아들은 여성적이며, 첫째 아들은 용맹스럽고 둘째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둘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울하던 가정이 활짝 갠 봄날이 되었습니다. 기도해서 얻은 것이라야 귀합니다.
3) 영적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삭이 자녀를 낳기 위해서 기도했듯이 우리는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오랜동안의 기도와 10개월의 부담과 수일간의 진통이 따르듯이 우리도 영적인 자녀를 생산하기 위해서 고통을 달게 받고, 수고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럴때에 훌륭한 영적인 자녀를 생산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6일 아들을 위한 축복기도 <본문> 창27:27-29 (창27: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성경 중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이 많은 믿음의 사람, 존경 받는 족장이 혈기방장하고 앞길이 창창한 아들을 앞에 꿇어 않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 기도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배경에는 형과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그림자처럼 너울 거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명백히 알수 있다. 에서와 야곱은 모두 자기의 아버지를 존경했던 것 같다. 아들이기 때문에 가지는 인지상정의 감정이 아니라, 인격과 신앙에서 우러 나오는 영적이 권위에다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족장으로서의 위엄이 함께 어우러진 외경심이었을 것이다. 특히 교활하리만큼, 지혜로운 야곱은 이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과 영적인 축복이 형 에서에게 다 돌아 간다는 것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현숙한 여인인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과 공모한 것을 보면, 축복권에 대한 야곱의 염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수 있다. 야곱은 아버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축복기도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건 모험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한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청춘을 바쳤고, 일생을 나그네가 되어 살았다. 그러나 그는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을 아울러 누릴수 있었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바른 크리스챤이다.
2. 복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 에서는 장자로서 당연히 받을수 있는 축복에 무관심하다가 빼앗기고 말았다. 나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누릴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에서에게서 배워야 한다.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알면서도, 또는 바라보면서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하여 사모하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 '가 얻는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야곱은 둘째이면서도 할수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축복권을 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씀으로 자신이 누릴수 있었고,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힘입을수 있었다. 하나님은 에서를 사랑하시지 않고, 야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3.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자신이 누렸던 축복을 잘 지키고, 아들에게 물려 줍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버집니까? 또 얼마나 부러운 아들입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아버지,어머니가 누리던 그 축복을 나에게 주십시요! 나에게 꼭 한번 머리에 손을 얻고 축복해 주십시요! '라고 말할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부모가 되겠습니까? 재산을 탐내서, 형제끼리 다투고,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상속 받기 위해서 갈등을 빚고 있는 시대 !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 버리고, 노인과 어른을 푸대접하는 시대의 풍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아이들을 탓하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조차 이런 불신과 미움이 팽배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들이 욕심낼 만한 축복과 권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월중앙교회교회 성도 여러분! 영적 부모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받기위해 야곱과 같은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7일 벧엘의 서원기도 <본문> 창28:10-22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28: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28: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창28: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28: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벧엘은 '하나님의 집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벧엘을 세운사람입니다. 그는 벧엘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그토록 얻고자 했던 축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수 있었고, 흔들리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1. 축복의 안수 뒤에 온 것은 시련이었습니다. 야곱은 꿈에도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투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당장 찾아온 것은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부모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그의 가진 것이라고는 손에 잡은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그의 등 뒤에서는 분으로 가득찬 형 에서의 칼이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집을 향해서 광야길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쓰러지듯이 돌을 베게 삼고, 입고 있던 옷한자락을 이불 삼아 덮고는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에게도 이런 시련과 절망은 찾아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야곱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처럼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에게서 멀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2. 야곱은 무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놓여 하늘과 땅이 연결되었습니다.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따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15) 인생의 절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리빙스턴이 옥스포드로 돌아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채플 시간에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한쪽 팔을 늘어 뜨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생 여러분, 내가 어떻게 저 검은 대륙에서 지탱할 수 있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내 곁에 서서 함께 걷고 계심을 느낄수 없었다면 도저히 계속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야곱이 밤을 새워 소리 지른다거나, 유창한 말로 조리있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는 못했습니다. 지친 몸을 빈들에 누이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 몸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어떤 말보다도 더 절실한 기도를 그는 하나님께 보여 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시위 '는 함성을 지르는 데모보다 더 위협적인 것을 알고 있듯이, 우리의 말이 떨어지고, 더 어떤 것을 요구할 수도 없는 그 때에 우리는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몸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 놓을수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에 신속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어 나서 돌베개를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바로 감사를 해야합니다. 찬양을 해야 합니다.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의 은혜는 날로 더 풍성해 지고, 더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곳 벧엘을 자신의 신앙의 이정표로 삼아서, 인생의 고비마다 여기에서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고, 도약의 계기를 삼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은혜가 임할 때에 즉시 하나님께 반응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8일 얍복강가의 결사기도 <본문>창32:23-32 (창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창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창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1. 마지막 훈련장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오랜 피난생활을 통해서 그가 저질럿던,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도적질한 죄값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형의 진노로부터 해방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향하며, 강을 사이에 두고 형을 만나야할 순간에 그는 다시 좌절을 느꼈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문제들을 미리 해결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옛일을 잊어버리고 기쁨으로 형제가 상봉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0년간 라반에게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야곱이었지만, 하나님은 이제 마지막 훈련을 통해서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고통은 사랑의 훈련과정입니다. 어떤 똑똑한 젊은 목사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마침 신학교 때에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거기서 목회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교회에 가서 은사인 목사님을 도우면서 학비도 보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날입니다. 한참 설교를 하는데, 노인 목사님이 벌떡 일어나서 강단의 제자를 보고 내려와서 여기 앉으라고 했습니다. 설교 도중에 단어 하나를 잘못 사용했다고 심하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교인들 앞에서도 얼마나 혹독하게 야단을 치시는지 속으로 수없이 원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은사님이기 때문에 온갖 수모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자기를 그렇게 무섭게 훈련시키셨던 스승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겸손하고, 실력있고, 경건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짐짓 그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서는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연단하시며, 부수고 깨뜨리십니다.
2. 그는 홀로 싸웠습니다. 신앙은 개인적입니다. 하나님과 1:1로 싸울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러 오면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재산을 보고 든든히 여겼고, 처자식들을 생각하고 자랑스러움이 은근히 있었고, 수많은 종들이 있으니까 염려할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하나님 앞으로 홀로 나갔습니다. 처음에 아버지 이삭에게 안수 받을 때와, 벧에서 홀홀 단신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처럼, 이 밤에는 정말로 혼신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참고 매어 달리는 씨름이었습니다. 해결 받지 않고는 물러설수 없는 절박한 전쟁이었습니다.
3. 그는 변화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이 바뀌었습니다. 협잡꾼, 거짓말쟁이, 속이는 사람이 '이스라엘 '로 바뀐것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승리한 것입니다. 일생을 두고 얻으려고 하던 축복을 드디어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원수가 되었던 형과도 화해하고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번 기회에 야곱의 기도를 드립시다. 매어 달립시다. 끝까지 싸워봅시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9일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여 <본문> 삿7:2-8 (삿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삿7: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말것이니라 (삿7: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삿7: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삿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삿7: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흔들리게 됩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응답 받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드온이 어떻게 위기에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는 중에 우리도 바른 기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큰 승리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역사서인데, 한가지 패턴을 가지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은 평안해지니까 영은 오히려 메마르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옵니다. 이 때에는 이웃의 숨을 죽이고 있던 이방나라들이 발호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수년 혹은 수십년씩 이방 나라에 시달리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는 비명을 지르고, 매달려 호소를 합니다. 회개를 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사사)를 보내어 이방 나라를 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평화와 형통을 주십니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였고, 인류의 역사입니다.
개인의 생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신앙생활의 결과가 매맞고 울고불고 회개하는 것이 전부인 경우를 보게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영월중앙교회교회의 새벽기도 용사 여러분들은 우리의 원수들을 일거에 제압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 실패하지 않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드온의 승리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1.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 6:34 소년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에 사울왕과 수많은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모세도 호렙산에서 불꽃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두려워서 감히 사람들이 앞에 나설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증거를 가지니까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 300명의 소수의 훈련 받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미디안의 수십만 대군을 대적하여 이길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 도망하던 겁쟁이였고, 확신이 없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변화 되었습니다. 용기있는 사도들이 되어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다 이름없는 기드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역사를 바꾸는 기드온이 될 수 있습니다.
2. 기드온은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기드온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선택했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육에 속한 생각과 영에 속한 생각이 항상 공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의 생각을 이길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양털을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데, 이것은 하나님과 기도의 싸움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것과 비길수 있고, 모세가 증거를 요구할 때에 손에 문둥병을 주셨다가 고쳐주시고,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던 기사를 보여 주셨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나자신과 싸워 이겨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떤 대적도 두렵지 않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0일 목마른 자의 기도 <본문>삿15:14-20 (삿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삿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삿15: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삿15: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삿15: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삿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삿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블레셋사람들에게 40년간이나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보내신 사사였습니다. 그는 날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귀턱뼈 하나로 무장한 군사 300명을 죽일 정도로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1. 그러나 삼손도 목말라 쓰러질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삼손과 같은 장사는 그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태어 났고, 부모들의 신앙과 정성을 힘입어 깨끗하고, 경건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무서운 힘으로 이스라엘을 불레셋으로부터 구하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삼손은 강했기 때문에 유혹에 더욱 약했고, 더 외로웠는지 모릅니다. 삼손이 강하다고 자신감을 가질 때에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아버렸고, 결국 그는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삼손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손을 강하게 쓰셨던 것을 삼손은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2. 연약한 인간이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가 강한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계속 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붙잡아서 일으키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삼손은 목이타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여, 샘이 터지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물질로, 건강으로, 사랑으로 목이 마릅니다. 기도의 샘을 파십시요! 생수를 얻기 위해서는 큰 샘을 파야 합니다. 깊이 파야 합니다. 얕은 샘에서는 건수가 나오기 쉽습니다. 깊은 곳에서라야 시원한 샘물이 솟아납니다. 기도의 샘은 파면 팔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수가 솟아 날 것입니다.
3. 삼손의 20년 사역은 몇 줄의 읽을 거리 밖에 안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고, 뛰어난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오래지 못했고,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를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평범했던 사사들 만큼의 업적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정욕을 잘못 다스려 그가 거둔 성공보다 더 큰 실패와 치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거룩하게 쓰임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물질과 쾌락과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맨발의 성자 프랜시스의 이야깁니다. 아씨시로 구걸 전도하러 갔다가 술집에서 옛날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프랜시스여, 이런 자리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어 반갑군. 하지만 우린 도무지 자네를 이해할 수 없다네. 어찌하여 부잣집 귀동자가 이처럼 빌어 먹을 거지가 되었는지 말야 그러나 프랜시스는 친구들이여, 나도 도무지 자네들을 이해할 수 없다네. 어찌하여 하나님의 왕자들이 구정물보다 더 더러운 이런 술만 마시고 지내는지 말일세, 난 이처럼 누추하게 보여도 하늘의 왕자가 되었다네.
영월중앙교회의 성도 여러분! 삼손과, 솔로몬처럼 짧은 성공으로 끝나는 성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 영원한 엔학고레의 샘물이 터져서 치료와 축복과 은혜의 생수가 솟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1일 한 맺힌 한나의 기도 1 <본문> 삼상1:9-20 (삼상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 리가 그의 입을 주목 한즉 (삼상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1:14) 엘 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삼상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삼상1:17) 엘 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성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한나의 기도를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여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얻기 위하서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해야 할 것인가? ' 오늘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보면서 그저 감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그처럼 절실한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애절한 기도가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한나의 기쁨과 축복이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1. 한나는 성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실로는 '안식 '의 뜻이있습니다. 성전은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는 곳입니다. '성전 '은 하나님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래도 가장 안전하고, 가장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가까운 안식을 맛 볼수 있는 곳,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음성을 듣고 그의 손길을 느낄수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는 늙어서 영력이 떨어졌다고 소문이 나고, 방탕한 그의 자식들 때문에 황폐해진 성전이었지만, 그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성전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의 종을 따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협력할 줄 압니다.
2. 한나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자식이 없어서 원한이 맺힌 한나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에 약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혀 쓰인 사람들은 좋은 조건에서 평안한 가운데서 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눈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눈물은 필수품입니다. 기쁨의 눈물도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에 넘쳐서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보지 않은 사람을 신실한 크리스챤이라고 말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험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한나는 약한 여자였지만,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눈물의 무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슬기가 있었습니다. 눈물을 아낄 때와 흘릴 때를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눈물을 조금도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3. 주의 여종이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에는 여종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그녀는 원한에 사무쳐서 기도하지만, 막무가내로 내놓으라는 식의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종으로서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할 자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겸손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근신하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그대로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아침 시간에 하나님의 종입니다하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3일 한나의 기도 2 <본문> 삼상1:19-28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삼상1: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삼상1: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삼상1:23)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삼상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삼상1: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우리는 그저께 새벽에 한나가 기도하게 된 동기와 자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한나가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하는 기도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며 바른 기도를 배우는 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1. 그는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나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은 씻을수 없는 수치였고,무엇으로 풀수 없는 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얻기만 하면 자신의 처지가 일거에 달라지고, 지금까지 맥혔던 원한을 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자랑할 사람도 많았고, 특별히 그의 가정에서 남편와 첩들과 그들의 소생들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당했던 수모를 갚아줄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개의 한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인이라고 하면, 아들이 생겼다고 할 때에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이런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 더 부르짖게 되고, 더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냉정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신앙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서 헌신하도록 하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나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축복과 은혜를 내가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하는 결단입니다. 이 서원에는 남편의 동의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이 생겨도 그 아들 때문에 가정에서 얻을수 있는 만족과 위로와 권세를 다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요? 교회마다 기도의 소리가 진동합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또한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아우성으로 들려질 때가 많습니다. 헌신의 자세가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그는 오래 기도했습니다(11)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하셔야 들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오랜기도에는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랜기도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기도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다른 어디에서도 내 문제가 해결 될수가 없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조금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매어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3. 한나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되 뚜렷한 기도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을 아뢰었습니다. '여종의 고통을 들어 주시면... ' 아주 간결하면서도 마음 속에 있는 소원을 가감없이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요설을 늘어 놓는다든지, 장황한 설명을 덧붙인다든지, 빙빙 돌려서 하는 기도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둔하셔서 우리가 설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절실히 하나님께 보여 들릴수 있느냐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나와 같은 기도를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4일
응답받은 한나 3 <본문>삼상2:1-11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삼상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삼상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삼상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삼상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삼상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2: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한나는 성전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무친 원한을 안고 정신없이 구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특권이요, 무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응답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 주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장 많이 강조한 것 중에서 하나가 바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한나는 어떤 응답을 받았을까요?
1. 그의 시련이 끝났습니다. 축복과 응답이 있기 전에는 전주곡처럼 시험과 고통이 있습니다. 사실 이 시험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자녀를 가지지 못해서 오랫동안 겪었던 한나의 시련은 눈물겨운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을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럭저럭 살다가 끝나는 것이 한사람의 삶이 아니냐?고 체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매달려 그의 그늘진 삶을 끝내고, 광명의 빛을 맞이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어떤 시험도 끝까지 버티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시면, 모든 환난은 한순간에 거두어 가십니다. 이 순간을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2. 제사장을 통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엘리 제사장은 네가 언제까지 취해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서러움에 복받쳐 기도하는 한나에게 이게 무슨 청천 병력입니까? 와서 다정히 위로하고 안수를 해주어야 할 제사장의 책망과 진노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 한나에게 있어서는 위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예수님께 멸시를 당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을 원망하지 않았고, 낙심해서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공손히 자신의 심정을 아뢰었습니다. 그 때에 그녀는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며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절) 엘리제사장은 능력의 종이 아닙니다. 햇볕을 쬐려고 문설주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졸고 있는 늙은이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을 잘못 키워서 망신을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불신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엘리제사장을 신뢰했고, 그의 축복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응답하시고,그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약속을 지켰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자녀들을 3년을 젖을 먹입니다. 이 기간이 끝나자마자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그녀는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자기 아들도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망나니로 만든 늙은 엘리 제사장의 손에 자신의 젖먹이를 맡기는 한나의 모습을 보세요. 그런 한나의 믿음은 엘리 제사장의 대를 그의 아들들이 잇지 못하고, 사무엘에게 돌아 오는 놀라운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상식적으로 믿는 사람은 상식적인 축복 밖에 못 받습니다. 그러나 상식을 뛰어 넘어 온전히 말씀대로만 믿을 때에 하나님은 지각 밖에 뛰어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한 아들을 헌신 하므로 여섯명의 아들을 더 낳아 다복한 가정의 복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그 영화로운 생애를 통해서 어느 여인도 누릴수 없는 영광을 생전에 뿐 아니라,영원토록 누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5일 기도의 사람 사무엘 <본문>삼상3:1-14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삼상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삼상3: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삼상3: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삼상3: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삼상3: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 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삼상3:9)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삼상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3: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삼상3: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삼상3: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삼상3: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오늘은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기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이는 축복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부모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웃 어른들의 축복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 아이라야 자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위해서 일할 줄 알고, 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1. 사무엘은 부모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의 영적인 발달은 성령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신 임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139편 13-16절에도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기록 되었나이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부모의 신앙과 기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부모가 심은 것은 자녀를 통해서 거둡니다. 1000대까지 그 열매가 이어집니다. 육신으로 심어서 육의 열매를 거두는데 그치지 마시고, 기도로 영적인 것을 자녀에게 심으시기 바랍니다.
2. 3살까지 부모님의 기도로 자라났습니다. 한나는 그처럼 처절한 기도로 사무엘을 잉태했고, 10달의 임신기간에 잠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으며 기도의 생활을 하고, 3년을 젖을 먹이면서 밤낮없이 기도의 손길로 보살피다가 성전에 드려 제사장의 손에 맡겨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기도 속에서 시작해서, 기도에 묻혀서 자라난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보고 배운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의 분위기와 신앙적인 환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신앙의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3. 사무엘은 평생을 제단에서 살았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편히 누워 자는 시간에도 사무엘은 성전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급하실 때 엘리를 찾지 않으시고, 사무엘을 찾으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 사무엘과 의논하셨습니다. 우리들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전에 가까이 나아와 기도의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주 찾으시는 하나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6일 다윗의 소원기도 <본문>시27:1-14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2)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27:11)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27:12)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시27: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시27:14)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 말씀에는 다윗의 소원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관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수준이나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허황되기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힘이있습니다. 바위도 뚫을 수있고, 하늘도 오를 것 같은 넘치는 힘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경건한 사람의 기도는 향기가 있습니다. 마을을 깨끗게 합니다. 죄인들은 부끄럽게 하고, 욕심을 가졌던 사람은 회개하게 만듭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평생의 기도의 목표를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1.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루이틀에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신앙은 평생의 과젭니다. 신앙은 대를 물리는 생명의 뿌리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근시안적이 아닙니까? 우리의 목표는 너무 왜소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너무 현실에 억매여 있지 않습니까?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 '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된다면, 여호와의 전에서 평생을 찬송하며,기도하게 해 달라고 매일 아침 기도의 제목을 삼고 살아 가는 사람이라면 아마, 죄를 지으라고 해도 짓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좀 멀고,좀 어려운 것 같지만, 평생을 두고 이루어야 할 이런 꿈과 목표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소원이 되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신다 '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왜 자꾸 친구들을 찾아갑니까? 그 곳이 좋아서 그럽니다. 마음이 친구들에게 가 있어요. 사모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야 즐겁고, 그들을 만나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거기에서 사는 재미를 느낍니다. 그러다가 잘못되기도 하고,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아기자기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버는 재미 보다도, T.V를 보고, 관광을 다니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재미 보다도 더 좋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다윗이 가진 보배 중의 보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전쟁터에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마는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제일 많이 지어 부른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와같은 축복을 여러분들이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7일 솔로몬의 일천번제 기도 <본문>왕상3:4-15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왕상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3: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왕상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왕상3: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왕상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왕상3: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왕상3:12) 내가 네 말대로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상3: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왕상3: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오늘 아침에는 솔로론이 왕이 된 다음에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일천번제의 제사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겸손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기브온 산당에서 드렸습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4KM 떨어진 곳의 마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솔로몬은 분주하기도 하고,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왕이 될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압살롬 같은 사람은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적도 많고, 또 공신들은 자신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쓰고, 누구와 의논해야 좋을지 참으로 처신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들의 지혜를 얻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도 과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야 왕의 업무를 수행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라는 기도는 교만한 사람은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2. 간절함과 강청하는 기도였습니다. 소 한마리를 잡아 드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형식이 마음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의 행동을 보고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런일을 해서 유익이 없는 데도, 큰 손해를 보는 일을 한다든가, 큰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처음 되어서 위엄을 보이고, 백성들에게 군림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텐데도, 그것보다 하나님께 꿇어 엎드렸을 뿐만 아니라, 일천 번이나 제사를 드립니다. 하루에 소 한마리를 잡았다면 3년동안을 제사를 계속 드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얼마나 끈질긴 기돕니까? 얼마나 간절한 기돕니까? 우리는 때로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런 끈질김과 간절함의 결과가 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솔로몬의 기도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마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오래사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부귀와 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 갚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으니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33) '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일 때에 그 기도는 바로 응답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은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리고 문제투성이며, 또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접하다 보니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신앙생활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부흥시키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복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8일 엘리야의 기도 <본문>왕상18:25-46 (왕상18: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왕상18: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왕상18: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왕상18: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왕상18:29) 이같이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왕상18: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왕상18: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왕상18: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 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왕상18: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부으라 하고 (왕상18: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하여 세 번 그리하니 (왕상18: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왕상18:36) 저녁 소제 드릴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왕상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왕상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18: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왕상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 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왕상18: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 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왕상18: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깊이 빠졌습니다. 잘못된 지도자 아합의 꾀임에 빠진 때문입니다. 바알신은 농사를 잘되게 하는 신입니다. 그리고 아세라는 아들을 낳게 하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각, 육신적인 형통을 찾아가다 보니까 우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죄와 우상은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깊이 빠져든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고 육신의 일을 차츰 쫓다가 보면 어느사인엔가 우리는 타락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까지 와있는 때가 많습니다.
1. 엘리야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사잡니다. 그가 그처럼 위대한 선지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인한 성품과 신앙에 있었던 것같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가 얼마나 심하고, 바알의 권세가 얼마나 높았던지 모든 백성과 하나님의 선지자들 조차도 거의가 바알의 비위를 맞추고, 우상숭배에 빠져드는 데도 그는 의연히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을 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여호와를 섬기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타협하는 사람은 한평생을 편하게 살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룰수 없고, 후대에까지 존경 받고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잘압니다. 많은 위인들은 생전에는 이해 받지 못하고,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우리는 위인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인들이 쉽게 세상의 쾌락과 타협하는 것을 봅니다. 조금 편리하다고 해서 양보하고, 이것 쯤은 괜챦겠지 하면서 양보하다가 보니까 기도교인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신앙인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엘리야의 타협하지 않고 굳게 지킨 신앙의 본을 받아야 겠습니다.
2.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인 앞에서 자랑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제시대에나, 공산치하에서 순교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지켰다는 것으로 길이 역사에 남아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숨어서 전한 것이 아니라, 왕과 왕비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했습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시합을 벌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유일하시다는 신념을 많은 대적들과 백성들에게 당당히 드러내 보일 기회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대적과 싸워야 합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응답이 내리지 않아서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왕과 왕비가 안절부절 못하고 백성들이 웅성웅성하는 가운데 엘리야가 한마디 기도 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제물을 순식간에 태워 버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우직한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불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시면 일순간에 달라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시는 순간에 우리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처럼 우리 주위에 적이 둘러 싸고 있어도, 환경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도 두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기도합시다. 그래서 불의 응답을 받으시는 우리 온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9일 엘리사의 기도 <본문>왕하2:1-14 (왕하2: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왕하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왕하2: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왕하2: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왕하2: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왕하2:7) 선지자의 생도 오십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왕하2: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왕하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왕하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왕하2: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왕하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가 능력의 선지자로 일할때 그를 따르는 많은 선지자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의 능력을 이어 받아서 위대한 선지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엘리야에게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일하게 엘리사는 선생님 엘리야보다 더 큰 영력을 받게 되고,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종으로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엘리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하게 쓰임 받는가를 생각하며 우리들이 하나님께 들려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원치 않으시고 한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숫자를 가지고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기드온을 통해서도 수만명의 사람을 돌려 보내고, 남은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무너 뜨리셨고, 모세와, 여호수아도 거의 혼자서 애굽과 가나안의 강한 5부족을 물리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 와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안됩니다. 더군다나 큰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선택을 받을 만한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특별한 축복을 받고, 특별한 일에 쓰임을 받고, 특별한 은총을 구한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가며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선택하셔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에 맞는 한사람을 더 바라십니다.
2. 엘리사는 사모했습니다. 19-21절에 보면 12겨리 소로 밭을 가는데 엘리야가 겉옷을 던지니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릅니다. 아버지와 작별하고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기구를 불살라 버립니다. 그는 마음에 불타는 소원과 엘리야를 흠모하고, 그의 가진 능력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할수 있었던 행동이었습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만 가지고 가만히 있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 나서 따라야 합니다. 걸리적 거리는 것이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갑절의 영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끝까지 따랐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또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강까지 따라갑니다. '여기 머물러 있으라 '고 엘리야는 거듭 말하지만,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계속 쫓아 갑니다. 다른 생도들도 엘리야의 능력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얼마까지는 함께 따랐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따른 사람은 엘리사 혼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보다 내가 찾아서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다 큰 은혜, 큰 능력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사모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고 구하지 않기 때문에 못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욱 중요합니다. 기도의 발걸음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19일째 더욱 분발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0일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 <본문>왕하20:1-11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20: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왕하20: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왕하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왕하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왕하20: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 갈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왕하20: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왕하20: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 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히스기야는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능한 왕으로 앗수르의 교만을 꺽어 놓은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백성을 잘 다스린 왕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근심과 고민은 있었습니다.
1. 불치의 병이 걸렸습니다. 훌륭한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든 백성에게 있었지만, 더군다나 히스기야로서는 아들이 없어서 왕 위를 물려 줄수가 없으니,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그는 병이 들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닥아옵니다. 용하다는 의사나 명약이 다 소용없었습니다. 왜 의인에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이런 고난이 닦치는지를 완전힌 이해 할려면 하나님 나라에 가야 풀릴 것입니다. 다만 이런 고난을 이길수 있는 방법은 기도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닦칠 때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는 명령으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매어 달릴수 밖에 없습니다.
2. 히스기야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분명히 히스기야에게 예언했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그러나 눈물로 기도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해 그림자를 10도나 물러나게 하고,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게 된 것입니다. 14년간 통치하고 병이 걸려 죽게 되었는데, 기도해서 연장 받은 생명이 오히려 더 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기도와 눈물을 보았다고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눈물의 기도는 역사를 바꿀수도 있고, 사람의 운명을 바꿀수도 있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수도 있다는 것을 히스기야를 통해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3. 의인의 기도는 응답을 속히 받습니다. 히스가야가 응답 받은데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선을 베풀었습니다.진실과 전심으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의 행실이 바르고 정직해야 합니다. 기도는 입으로 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생활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더딘가를 한번 돌아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의 기도는 힘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영월중앙교회식구들은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처럼 소원을 이루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1일 에스라의 구국기도 <본문> 에10:1-17 (스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스10:2) 엘람 자손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스10: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스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스10: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스10:6)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스10:7)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스10: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 내리라 하매 (스10: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스10:10)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스10:11)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스10:12)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스10:13)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스10:14)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스10:15)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스10:16)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스10:17)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남쪽으로는 애굽, 북쪽으로는 바벨론과 앗수르를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징계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남쪽에는 일본, 쪽에는 소련과 중공이 버티고 있어서 시달렸던 것과 흡사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잡혀 간지 70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레스왕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귀국령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1차 귀환이고, 여러해 후에 바사와 아닥사스다의 칙령을 따라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의 인도 아래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했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나라를 잃고 70년간이나 이방의 포로가 되어 황폐해진 이르라엘을 향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전에 영적으로,정신적으로,그리고 생활에 끼어 있는 때를 씻어 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이방에 살면서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순결한 결혼 생활이 이방인의 방탕한 습관에 물든 것을 말하고, 이방의 우상을 가정에 받아 들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잡혼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순수성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염원을 간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을 정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는 것은 아주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돌아 보아 정리할 것을 깨끗이 씻어 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루시는 새 역사에 동참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악에 찌든 생각과 습관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었습니다.
2.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대신해서 에스라는 대신 기도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위대한 지도잡니까? 목자가 양을 위해서,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스승이 제자를 위해서,통치자가 백성을 위해서 내 탓이라고 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겠습니까? 6절부터,15절까지 '우리 '라는 단어가 27회나 나옵니다. 지금 시대의 문제는 우리는 없고, 나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나의 것인것 처럼 회개하는 에스라의 모습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3. 에스라의 회개의 기도는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에스라가 이처럼 울며 하나님의 전 앞에서 기도할 때에, 백성들이 비로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심히 통곡하며 어린아이들까지 모여 들었습니다. 에스라는 저들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고,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문을 여시고 큰비를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의 홍수 때를 생각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여인을 내쫓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견뎌내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끊을 것을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돌아설 자리에서 마땅히 돌아설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2일 예루살렘향한 느헤미야의 기도 <본문> 느2:1-10 (느2:1)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느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느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2: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느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교회의 파숫군이며 일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느헤미야의 신앙과 그의 열정과 그의 끈기를 배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느헤미야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아닙니다. 그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고위관리입니다. 임금의 술을 따르는 총애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부귀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자기 동족을 위해서 봉사하고 존경 받을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한 잠자리에 들면서도 황폐한 조국을 생각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몰랐습니다. 임금과 함께 즐기는 자리에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빼앗긴 유대와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을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지냈고, 수일을 금식하고 기도하기가 보통이었습니다. 동족이 당하는 고난이 자기의 고난이요, 조국이 받는 능욕이 자신이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에게서 경건한 성도의 모습을 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자신이 누릴 수 있는 안락함도 영이 깨어 있기 위해서 내버리는 성도의 삶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나요? 우리는 무엇으로 만족하며, 우리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2.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골방에서, 아니면 혼자 돌아서서 눈물흘리고, 고민하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역사에 개입하시고, 때가 이르매 이방의 왕을 통해서 예루살렘성을 수축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수심을 보이므로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살아 남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종이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사오니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 그 옆에는 황후도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호위케 했습니다. 목재도 보내 주었습니다. 12년간 유다 총독으로 있으면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했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느헤미야와 같은 성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군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3일 에스더의 생명을 건 기도 <본문>에4:1-17 (에4: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에4: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에4: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에4: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에4:5) 에스더가 왕의 명으로 자기에게 근시하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 보라 하매 (에4:6) 하닥이 대궐 문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에4:7)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에4: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에4:9) 하닥이 돌아와 모드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에4: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에4: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에4: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에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4: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에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오늘 아침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자기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기도한 에스더와 그의 삼촌 모르드개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스더의 신앙은 우리의 마음을 밝혀 줍니다. 성서에는 수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밝은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별들 중에서도 더 돋보이고, 아름다운 이름이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란 이름 자체가 '별 '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캄캄한 밤에 빛을 발하는 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림절을 지킵니다. 하만의 모함에 빠져서 한사람도 남김없이 죽을수 밖에 없는 위기에서 구원을 받은 날을 감사하고,하나님께 찬양하며,에스더와 모르드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을 때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능력을 상실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모르드개의 헌신과 사랑을 기억합시다. 위대한 하나의 별이 뜨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눈물겨운 희생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뿌린 신앙과 사랑의 열매가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는 부모를 잃은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해서 왕비를 만들었습니다. ' 버려 두었다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사라져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천덕꾸러기나 ,타락한 인생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한 여인이 한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은 위대합니다. 헌신은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과 희생의 씨앗은 아름답게 꽃피는 법입니다. 모르드개는 자기 사촌 여동생을 돌보면서 그렇게 엄청난 일을 감당할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나라를 건질 위인으로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우리의 이웃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3. 에스더의 변함없는 마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도 축복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을 떠나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의 이웃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난 할 때는 눈물로 새벽에 나와 기도하고, 먹을 것을 아껴가며 헌금하고 봉사하다가도, 부유해지면 사치하고 분주하게 세상일로 바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인색하고 거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더는 궁중에 들어 가서도 그의 믿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민족이 위기를 당하지 금식하며 기도하고, 백성들이 죽음 앞에 서게 되자, 자신의 목숨을 먼저 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저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라 '는 기도가 그래서 우리의 심금을 더 울리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에스더의 이 말 만큼 신앙인들의 가슴에 호소하는 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변치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던 일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지금의 지위와 형편에 취해서 교만해지거나 사치에 빠지거나 나태해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4일 고난속에서 감사기도하는 욥 성 경: 욥1:20-22 (욥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고난이 겹치는 중에도 감사와 찬양을 잃지 않는 멋진 신앙을 배우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욥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까닭도 모르게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자신의 몸에는 악창이 났습니다. 부인까지 포악해져서 남편을 구박하고 멸시합니다. 친구들은 위로한답시고 꾸짖고 아픈 가슴에 못질을 합니다. 그래도 그는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을 우리도 언제든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먼저 나오지 않습니까? '이 고난을 피해달라고만 외치다가 지쳐 있지 않습니까? '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일도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2-13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예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2. 욥은 고난 중에도 인내했습니다. 첫번째 고난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재산-어떤 사람은 현재의 화폐로 따지면 6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함- 을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그래도 의연했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 두번째 고난이 닥쳤습니다. 열명의 자식 중에 하나만 잃어도 성격이 변하고 생의 의욕을 잃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한꺼번에 열명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고난이 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난의 풍파가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3. 욥은 갑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이 오히려 욥의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 앞에 더 인정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의 가증함도 증명되고,그의 친구들의 위선과 엉터리 지식과 교양도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시험은 하나님이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좋은 도구로 쓰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의 시험을 잘 참고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갑절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5일 이사야의 소명의 기도 성 경: 사6:1-8 (사6: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6: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습니다. 비교적 훌륭한 왕이었던 웃시야가 교만해져서 문둥병자가 되어 죽자 슬픔 가운데서 크게 상심하는 중에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1. 절망 중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왕이 죽고,그것도 하나님의 벌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어 죽으므로 민심이 동요하고, 국가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신앙도 흔들릴 때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성전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고, 환상이 보여졌습니다. 위기가 새로운 시대의 꿈으로 바뀌었고, 절망이 감격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영안이 열려지고 나니까 앞에 놓여져 있는 것 이상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영안이 열려져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높은 권세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보좌를 본 이사야는 자신의 더러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보고,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돌아 보게 합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만나니까 자신을 돌아 보고 '죄인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고백하며 주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고 땅을 쳤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났습니까? 자신을 돌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부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요, 이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주의 종이요, 사도요, 선지잡니다. 이 소식이 복음이 아닙니까?
3. 이사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이사야를 하나님은 제단의 숯으로 입을 지져서 정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돌아 보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즉시 응답하시고 속히 찾아 오십니다. 죄의 문제를 하나님은 언제나 지체하지 않고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다음에 소명을 주셨습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이제 하나님과 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고민이 이사야의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마음이 생기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이사야의 은혜가 이 아침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소명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6일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성 경: 애2:11-19 (애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애2: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하도다 (애2: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쏘냐 (애2: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애2: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애2: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애2: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애2: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애2: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 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정이 많은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정다감하면서도 서민적이라할까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1. 어려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 1:6절에 보면 '나는 어린아이 '라는 고백을 봅니다. 14-20세에 부름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경건한 혈통,즉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방백들과 제사장들에게 수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는 40년 6개월 동안 다섯명의 왕의 통치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간이 슬픔과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나이들어 애굽으로 끌려가 11년간을 고난 속에서 예언하다가 77살에 카이로에서 동족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온전히 사명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2. 예레미야는 민족의 앞 날을 바로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시선으로)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이 듣기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백성들이 원하는 예언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축복 '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원수들이 와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평안하다고 비위를 맞추는 예언을 한결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눈을 들어서 보니까,살구나무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한다는 증조입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진 끊는 가마솥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심판, 전쟁의 소용돌이가 북으로부터 몰아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싫어해도,백성들이 듣기를 원치 않아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쳤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대항해도 소용이 없다. 차라리 생명을 부지하려면 그들에게 속히 항복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도 그가 본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외에는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3.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잡니다. 그는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민족이 당하는 고난에 동참하며 고통의 눈물을 함께 흘렸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방탕하고 교만함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닥아올 심판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시대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자녀의 모습, 우리 가정의 모습,우리 교회의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7일 영성회복 위한 에스겔의 기도 성 경: 겔37:1-11 (겔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겔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겔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겔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모든 보화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갔을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 간지 5년 4개월 5일 째 되는 날부터 환상을 보고 영적 깊은 체험을 통하여 예언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에스겔서를 30세 이상의 사람들에만 읽게 했습니다. 교부 제롬은 '성경학자들에게도 너무나 큰 대양이며 신비가들에게도 너무나 복잡한 미궁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깊이 있고 독특한 경험을 가진 에스겔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적인 이런 깊이를 갖기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능력은 개인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자칫 오해가 생길수가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1. 에스겔은 인간의 모습을 바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어느 골짜기에 내려진 에스겔은 무수한 시체들을 보게 됩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였는지 해골과 뼈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인자야,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 에스겔은 대답합니다. '여호와여,주께서 아시나이다 '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습은 보잘 것없습니다. 죽었습니다. 음산하고,썩은 냄새가 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겉모습만 가꾸어 놓고 태연합니다. 이 모습을 볼수 있는 사람이 복 됩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이 뼈들을 살릴 능력과 지혜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에스겔을 망연자실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도 관심을 가지며,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바로 만물이며 인간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이유는 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일을 하실 때에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전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 주는 것입니다.
3. 죽었던 뼈들이 살았습니다. 생기가 들어 가니까 죽었더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죽은 가정,죽은 교회,죽은 민족,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길을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김이 닿으면 모든 만물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모해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이 주시는 살아 있는 기운입니다. 즉 성령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메마른 것도, 우리의 인생이 한없이 답답한 것도, 우리의 삶이 힘없는 것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한 우리들이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면 군대를 이룰 것입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8일 다니엘의 순교적 기도 성 경: 단6:1-28 (단6: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단6: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단6: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단6: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단6: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단6: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6: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단6:8) 그런즉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단6: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6: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단6: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단6:13)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단6: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단6: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단6:16)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단6: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6: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단6: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단6:20)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단6:21)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단6: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단6: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단6: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단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 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단6: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도적적으로 깨끗한 인물임을 알수 있습니다. 요셉과 쌍벽을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도 국무총리 시절에도 변하지 않는 인격과 삶이었습니다. 그의 고결한 성품과 매력적인 인격은 모든 성도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어린 아니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니엘을 누구보다 단호하고 결단력있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일도 죽을 각오로 하면 안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의 입을 봉하고, 원수들의 올무를 끊어 버렸습니다.
1. 시종일관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원수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왕 앞에 가서 애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함정이 빠진 줄을 알면서도 태연히 집으로 돌아 왔습 니다. 대항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혼자 탄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받아 들이려고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평생했는 데도 고난은 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너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 '이라는 말을 왕이 두번이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왕 앞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왕과 모든 바벨론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는 기회였습니다.
2. 그의 기도는 규칙적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규칙적이었습니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습니다. 원수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잡아서 자신을 제거하려는 사실을 알고도 그 기도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있는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규칙적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 너무 깊이 물들고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습관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세상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의 생활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그 어려운 시험을 이길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훈련된 기도와 신앙의 습관이 중요한 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다니엘은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방에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열린 창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보면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실 자임을 믿어야 할지니라(11:6)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허공을 울리고 마는 공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를 드렸고,역사하는 기도를 드렸고,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창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향한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한번 자신이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닫혀진 창들을 활짝 여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9일 요나의 회개의 기도 성 경: 욘2:1-10 (욘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욘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욘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욘2: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욘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욘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욘2: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욘2: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오늘은 요나의 고기 뱃속에서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1.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처음에는 하나님이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기도를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는 스올의 뱃속에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였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선지자였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대로 도망했던 것을 보면 우리 같은 범인들은 더 쉽게 하나님의 뜻을 거리릴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할 수 없습니다. 기도에서 떨어지면 풀랑을 만납니다. 기도의 줄을 놓치면 고기 뱃속처럼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로 들어 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절망 가운에 있으면 자신을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줄을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2.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아니 이미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닥쳐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거역하려고 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요나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습니다. '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나요? 이리저리 하나님이 낯을 피해 볼려고 도망만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다시 찾아서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요나 한 사람으로 큰 성 니느웨를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실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다. 당시의 한나라의 수도였던 대도시 니느웨도 요령꾼이 요나 한사람을 통해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요나와 같이 말썽꾼이고,요령을 피우고, 도망 다니기 좋아하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나를 이리저리 몰고, 이런 환경 저런 환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이런저런 사람들을 통해서 인도 받게 하셔서 지금 우리 영월중앙교회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우리 영월중앙교회식구가 되어 기도하는 대열에 서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불타는 염원인 지역의 복음화와, 민족의 구원과 세계를 향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해도 좋습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약해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나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는 일어 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0일 하박국의 부흥을 위한 기도 성 경: 합3:1-19 (합3:1)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합3: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3:5)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합3: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합3: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합3: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 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합3: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셀라) 주께서 하 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합3: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닷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합3:11) 주의 나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합3: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돌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합3: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합3:14)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합3: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합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바국 선지자는 B.C 600년경 살았던 유다 사람으로 그 때의 유다 나라의 내부적인 타락과 쇠퇴를 보고, 또 외부적으로는 바벨론 나라가 점점 강해지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를 위협하게 되자 하나님께 걱정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런 죄악의 어두운 시대에 그 유명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는 유명한 말을 남긴 확신에 찬 선지자였습니다.
1.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바벨론의 침략이 임박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있던 하바국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는 모습을 기도 중에 보게 됩니다. 그 분은 거룩한 분이시고, 그의 영광이 온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 시간에 고요히 기도하는 중에 우리를 향해서 닥아 오시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영광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절박한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이 오시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2. 하박국은 하나님이 일어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앞드러지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일어 서셨습니다. 우리을 도우려고 일어서 계십니다. 우리를 침략하는 원수들을 치시기 위해서 서 계시고,우리를 지키시기 위해서 일어서서 기다리십니다.
3. 하박국은 진군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노를 발하자 땅에 둘리 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고 하셨습니다. 강한 군대처럼 진군하시며, 열국에 위엄을 보이시고, 대적을 그 발아래 밟으시는 하나님을 이 아침에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벨론도, 애굽도, 로마도 이 진군하시는 하나님의 발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의 군대를 물속에 장사지내고, 미디안의 수십만의 군대를 하루에 멸하시며, 불레셋을 단숨에 불태워 버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오늘도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바국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그의 영광을 보고,그의 능력을 보면서 심장이 뛰고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 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할렐루야!!
우리도 하바국의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배부르고,농사가 잘되고, 장사가 번창하고,자식이 잘 되어서 기뻐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바국처럼, 없을 때에도,실패했을 때에도,고난 중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능력이시기 때문에 그 분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고, 그 분만으로 우리는 기뻐하며,찬송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1일 학개의 성전건축의 기도 성 경: 학2:1-19 (학2:1) 칠월 곧 그 달 이십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학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10)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2: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학2: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2: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학2: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학2:15)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학2:16)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 (학2: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학2:18)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학2:19)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 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시고,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을 재건하라 '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재건보다는 자기들의 의식주 해결에 급급하여 15년이 넘도록 성전 재건을 완공하지 못하고 중단한채로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노구(로구)의 학개 선지자는 불같은 메세지를 선포합니다.
1. 너희는 자기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여호와의 전은 황폐하였는데,너희 집은 화려하고,안락한 곳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일에는 무척이나 빠르지만,하나님의 전을 위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고 책망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심령의 상태와 흡사합니까? 그들의 영혼은 무딜대로 무뎌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핑계를 잘 찾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대한 열정과 사모하는 심령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2. 수고해도 거둘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않으며,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구멍이 뚫어진 전대에 넣음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이슬이 그치고, 재난이 모든 곡물과 소산과 육축에 미치겠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집과 자신의 물질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오는 쟁앙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은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헛걸음을 하다고 죽어 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되찾아야 합니다. 처음의 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처음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3.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많은 금은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백향목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주변의 산에 올라가 목재를 구해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난과 궁핍함이 성전을 짓는데 전혀 걸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정성을 드렸느냐?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렸느냐를 보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산으로 뛰어가서라도 나무라도 잘라 올 것입니다. 그것도 안되면, 흙이라도 파다가 벽돌을 찍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강가에 모래로 벽돌을 찍어서 교회를 지어보았습니다. 장마 때가 되면 별돌을 떠내려 보내지 않으려고 비를 맞으면 강 뚝으로 꺼내느라고 밤을 새운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영월중앙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렸습니까?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얼마나 가슴이 뜨겁습니까? 회개하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2일 저주를 물리치는 축복의기도 성 경: 말3:7-12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말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으로부터 귀한한지 100여년이 지날 즈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주의,십일조와 제물에 대한 속임수, 율법에 대한 무지, 성령에 대한 무감각에 깊이 빠졌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세지를 선포하면서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케 되었으며,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망각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돌아 올 것을 선포합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돌아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열조의 날과 여호와의 규례를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고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길을 잃은 나그네,군문에서 이탈한 군인, 남편에게서 도망한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이라 할찌라고 여호와는 '내게로 돌아오라 '고 부르며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지나온 인생길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까? 그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라 '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사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돌아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 했다 '고 말씀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것을 도적질 할수 있습니까? '고 반문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 '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봉헌된 것을 도적질 했으며, 그이 예배에 써야 할 것들을 도적질 했꼬, 그에게 드려야 할 안식일을 도적질 했고,자기들의 재산 중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훔쳤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이 제물로 드리지 못할 부적합한 동물들, 팔아도 돈이 되지 않을 것을 형식적으로 성전에 가져와 드렸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럴듯하게 보이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기근과 궁핍함과 불순한 기후로 또는 땅의 소산물을 먹어 치우는 곤충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 임했습니다.
3.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먼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하여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문을 연다 는 말은 갑작스럽고,풍성한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보화가 가득한 창고의 문을 열고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러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총의 풍성함을 맛보아야 합니다.
영월중앙교회의 새벽기도 용사여러분! 십일조를 온전히 드립시다.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립시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3일 성전봉사자들의 감격의기도 성 경: 시84:1-12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84:3) 나의 왕,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84: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시84: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백성들을 부러워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건절한 마음이 표현된 기도요, 찬송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백성들 사이의 긴밀한 교제를 사모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입니다. 이 고라자손들의 사모와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주의 성전에 거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 왜 여호와의 장막이 아름답습니까? 왜 그토록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합니까? 왜 육체와 마음이 성전을 향하여 간절히 열렸습니까? 성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교회를 뜨겁게 하모하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왔다갔다하면 무감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모하는 열심때문에 뛰어서 오고, 자동차를 타도,한시라도 빨리 가서 하나님을 뵈올 기대로 더딘것 같은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주의 전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제단에 엎드릴 때에 여러분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에, 여러분의 가슴에 기쁨의 찬양이 터질 것입니다.
2. 주의 성전을 향한 순례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5절에 보면,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은 복이 있나이다. ' 주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주님 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주님이 견고한 팔로 붙잡아 주시고, 안전하도록 지켜 주시며, 축복의 대로를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시간과 절기를 잘 지키고, 그 것도 부족해서 더 열심히 찾아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해서 달려 가는 사람에게 복이 됩니까? 여호와의 전에는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해요,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밝은 길로 인도하시고,모든 환난과 고통 중에서 건져 주시고 넘치는 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10)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하루를 주의 전에서 주의 은혜가운데 사는 것이, 세상에서 천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전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하는 신앙이 있습니까? 뜨겁게,뜨겁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4일 백부장의 믿음의 기도 성 경: 마8:5-13 (마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이제까지는 구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신약의 기도의 사라들을 찾아 보면서 더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백부장을 선택했습니다. 하인의 중풍병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은 그의 믿음을 우리의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백부장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군대의 중추적인 인물입니다. 로마의 군대는 한군단이 6000명입니다. 이것은 60개의 100인대로 나눕니다. 이 100인대의 책임자가 백부장입니다. 실제적인 군대의 전투나 모든 작전은 이 백부장의 지휘와 책임아래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과 힘이 이들에게는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종을 '생명이 있는 노예요, 물건은 생명이 없는 노예 '라고 하던 시대입니다. 한낮 보잘 것 없는 이 종을 위해서 유대인인 예수님에게 나와서 간청하는 백부장의 모습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백부장이 이렇게 노예 한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 것은 우연이나,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똑 같은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을 칭찬하기를 '주여 이 종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고 했습니다. 평소에 그는 명령과 권세를 가지고 억누를수 있는 유대인들을 사랑하고,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칭찬 듣는 사람이었고,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베풀며,사랑하며 살았던 백부장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로부터 보상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도,봉사도 갑자기 할려면 안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주님이 오실 때에도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로 부터도 상급을 받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주님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백부장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쾌히 승낙하고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났겠나이다. '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놀라고 감탄했다는 뜻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이 놀랄만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백부장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을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3. 백부장의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모든 일들을 원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아끼지 않고 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무한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제한적입니다. 우리들의 믿은 만큼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간에 큰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우리는 역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5일 은혜입은 여인의 순종 의기도 성 경: 눅1:26-38 (눅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눅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저는 본문을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았습니다. 갈릴리의 나사렛은 레바논 산맥의 최남단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한가한 시골 풍경과 거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순진한 처녀 마리아와 하나님의 사자인 가브리엘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정경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의 만남과 대화가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1. 은혜 입은 여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모친 엘리사벳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더더욱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왕중의 왕, 만와의 왕을 잉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선택된 그릇이 되었습 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이것은 마리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믿음과 더 위대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보면서 죄악 가운데 깊이 빠져 있는 나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시지 않았다면,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2. 목숨걸고 순종하는 마리아의 믿음이 아름답습니다. 순종은 손해가 되더라도 해야 축복이 됩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이유와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뽑혀진 마당에 순종의 고백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혀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위대한 점은 바로 이 순종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할수 있는 방법도 순종 뿐입니다. 그래서 얼마만큼 순종하느냐가 얼마만한 축복과 승리의 삶을 살수 있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큰 축복에는 큰 순종이 따르게 됩니다.
3.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셉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알수없는 수많은 진리와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보화가 가득합니다. 성경66권이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비주의자가 되어 신비한 무엇을 찾아서 헤메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고 잘 못되기가 쉽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어려서는 보고 믿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교만하기 쉽고,잘못 보기가 쉽습니다. 45절에 보면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고 말씀합니다. 요 20:29절에도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 그 자체를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4.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믿음의 교제는 참 아름답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나 빠리 산중 유다 동네에 이르러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납니다. 믿음의 교제를 나누기 위한 빠른 발걸음입니다. 마리아의 발걸음이 빠른 것은 의심을 확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성령의 교제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서 믿음의 확증과 소망의 격려를 받게 됩니다. 좋은 선생이 있는 반은 은혜가 풍성합니다. 좋은 속장이 있는 속회는 삽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섞여 있으면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 집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6일 성령충만을 받은120문도 기도 성 경: 행1:6-14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요한,야고보, 안드레와 빌립,도마와 바돌로매,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셀롯인 시몬,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수억원짜리 기계가 있어도 전기 코드를 꽂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반 동안 이 땅에 오셔서 남겨 놓으신 것이 있다면 12제자를 가르치시고 훈련 시키신 일입니다.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를 보십시요. 아주 좋은 기계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그는 배를 버려두고,그물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단숨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년반동안 주님을 쫑으면서 매사에 앞장을 섰습니다. 수많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의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해야 한다는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때까지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리러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제자들은 아직도 땅에 속했고,육신에 속했고,자기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했습니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매달려 구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을 믿고,매달려 간구해서 성령충만을 받은 120문도들처럼 기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12:4-10절을 보면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또 갈라디아서 5:2-23절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이것을 구분하면, 하나님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이웃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 자신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라 고 할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 구해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주 좋은 축복이요, 은혜인데도 우리는 그 것을 외우지도 못합니다. 그것을 달라고 매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것을 입에 늘 달고 다니며, 늘 마음 속에 묵상하며 살았다면, 눈을 감고도 줄줄 외웠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시간마다 기도하며,은사와 능력을 받아 주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7일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 성 경: 행7:54-60 (행7: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행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7:58)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 아침에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청년 스데반집사데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스데반은 첫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순교자의 상이 가장 큽니다. 마태복음 5장 말씀 중에도 마지막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르려 모든 악을 말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두다 목사나 선교사는 될수 없어도, 순교자는 될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첫번째 순교의 열매를 맺은 것도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터툴리안이라는 교부의 어록에 보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피는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피의 씨는 바울이 결신하는 결신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스데반은 죽었지만, 바울을 통해서 로마가 복음화 되고, 유럽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온세계에 복음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2. 스데반 집사는 말씀충만, 성령충만했습니다. 순교자는 나의 힘이나,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야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위해서 생명도 드릴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의 생활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담대한 용기와 능력을 주십니다.
3. 성도는 끝을 잘 맺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달려 가다가도 노년에 끝맺음을 잘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병들어 죽고,사고로 죽고,늙어서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영광스러운 죽음일수도 있고, 비참한 죽음일수도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름없이 살았지만,그의 마지막 죽음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신앙의 사람이었고,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고, 얼마나 순종의 사람이었나가 증명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언제나 환난날에 드러납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떠뜰썩한 것은 가짜이기가 쉽습니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요란을 떠는 것일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어디를 향해서 달려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쳐질까요? 한번 깊이 생각하면 나의 마지막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8일 안디옥교회의 기도(선교사파송) 사도행전 13:1-3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제 40일 기도가 끝나가는 무렵에 안디옥 교회를 우리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저는 우리 영월중앙교회교회가 본 받을 교회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안디옥 교회라고 봅니다. 그렇게 제가 마음 속에 그려보고 기도하며, 또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안디옥교회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려고 계획 중입니다. 왜 안디옥 교회를 그렇게 본받을려고 합니까? 안디옥교회는 당시에 대단히 큰도시였습니다. 세계의 3대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인구가 400만의 로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그 다음이 인구 50만의 안디옥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안디옥은 수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신전과 예술품과 사치한 물건들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타락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도십니다. 우상으로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스데반집사를 비롯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이 골리앗이라면, 피난온 크리스챤들은 소년 다윗과 같이 아직 연약하고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성냥불이 큰 산을 태우듯이 이 안디옥교회는 로마와 온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만일 안디옥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면,예루살렘과 그 밖의 가난하고 다툼이나 일삼는 교회들을 가지고 세계 복음화가 언제 이루어졌을지 모릅니다.
1. 안디옥 교회는 앞서가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선구자적인 일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환난 속에서 자기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어 할 때에, 이들은 선교를 시작했고, 많은 인재를 길러 내었고, 전도자들과 목회자들을 힘써서 도왔습니다. 기도로 돕고,물질로 돕고,사람을 보내서 도왔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좋은 일꾼들이 모였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의 대선배로 덕망있고,신앙이 좋은 일꾼입니다. 바울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사도들과 교회에 소개한 사람입 니다. 그 이름은 권위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헌신과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들이 따르며, 하나 되게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땅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가난한 사람,종들,멀리서 온 흑인들과도 어울리면서 화합을 이루었고,또 고위층.상류층 사람들과도 교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건강을 염려하여 감옥에도 같이 가는 헌신적인 봉사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존경받고,권위가 있었지만,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사도들을 잘 받들었고, 모범적으로 일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안디옥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영력있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많은 사업을 하고, 많은 일들을 벌입니다만, 그러나 기도하는 열심은 점점 식어져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의 힘은 기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축복의 길 <본문> 겔47:1-5 (겔47:1)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겔47: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겔47: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겔47:4)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겔47:5) 다시 일천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더라
기도를 시작하신 성도님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여러분은 승리의 첫발, 축복의 첫걸음, 성공의 제 일단계에 올라서신 것입니다. 부디 아름다운 열매맺으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축복의 길을 가르치신다.
1. 성전에서 흐르는 물 생수는 축복상징, 생명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생명의 시작을 말한다.
2. 물이 발목에 오르다 열심히 성전을 찾아 나오는 발걸음은 축복과 승리의 시작이다.
성전을 찾는 발걸음 남편 잃은 과부가 먼저 엘리사를 찾아감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부르고 따라감 문둥이들이 에수님에게 찾아옴. 시므온과 안나가 성전에 있다 예수님을 만남.
3. 물이 무릅에 오르다 기도하는 삶은 승리와 축복의 지름길이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습 진실한 기도 - 세리의 기도 간절한 기도 - 겟세마네 기도 큰소리, 손을 들고, 회개하며, 성령받으려,
4. 물이 허리에 오르다 겸손과 봉사의 삶은 승리와 축복을 누리는 방법이다. 승리와 축복속에 살아도 겸손과 봉사가 없는 삶은 가난한 신앙인이다. 교만과 이기주의는 하나님의 축복이 끊어지는 지름길이다.
5. 헤엄할 물이 되다 누리고 사는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런 은혜에 잠겨 감사하며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자. 그 지름길이 성전을 열심히 찾는 것이고, 기도에 힘쓰는 것이며, 겸손과 봉사로 주님을 바라보면, 잔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귀한 축복의 삶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기도제목 : 총동원 주일을 위하여,(5월 26일) 40일 새벽기도학교를 위하여, 병마에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교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하여,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2일 예수님의 기도 <본문> 막6:34-46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막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막6: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막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6: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막6:40)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막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막6:42) 다 배불리 먹고 (막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 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6: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명이었더라 (막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막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요한복음 13: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고전 11:1 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 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닮게 되어 있습니다. 마귀의 제자는 마귀를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수 있을까?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 중에서도 '기도의 삶 '을 제일 먼저 닮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1. 은혜 충만하시고 형통하셨을 때 기도하시는 주님을 볼수 있 습니다. 마 3:16-17절에 보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말씀 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생활을 돌아보면 어려운 고난이 있을 때 기도하다가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닫힌 문들이 열리게 되면 기도를 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를 쉬게 되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기도는 형통할 때도 해야합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여유 있을 때 저금을 하듯이 형통할 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환난과 고난의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신앙의 자셉니다.
2. 예수님은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기도하셨습니 다. 구세주로서 인류 구원의 대역사를 시작하는 첫 발걸음은 광야로 향했고, 그의 첫 음성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었습니다. 12제자를 택하는 중요한 일을 앞에 놓고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기도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기도로 준비하고 기도로 시작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일입니다. 신앙인들이 기도없이 시작한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울의 실패와 다윗의 성공을 비교해 볼수 있어야 합니다.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억지로 임금이 되는 행운을 안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선택 되었지만, 고난의 연속이었고 오랜 시련 끝에 왕좌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실패했고, 다윗은 성공했습니다. 그 차이는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사울은 기도가 없는 사람이었다는데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사울이 좋은 조건이었지만, 그는 기도하지 않다가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전쟁터에서 일생을 보내고 원수에 둘러 쌓여 있었지만 기도하므로 성군이 되고 최후의 승리를 얻을수 있었습니다. 기도로 시작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마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 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는 손님은 마귑니다.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제일 두려워 하기 때문에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찾아와 방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귀의 공격에 넘어지고 쉽게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응답 받는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응답 받을 때까지 굽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전쟁에서 지는 사람은 비참합니다. 이겨야 응답이 있고,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끈질기게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40일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40일은 인간이 견디기에는 상당히 긴 시간입니다. 좋은 일도 40일을 하면 실증이 날 것입니다. 좋은 음식도 40일을 먹으면 짜증이 납니다. 먹고 쉬면서도 40일 기도하자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40일을 금식하면서 기도에만 전념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끈질긴 기도는 그 사람의 신앙과 그의 인격을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요 대화이기 때문에, 몇일이나,몇시간 동안 소리소리 지르면서 하는 기도보다는 일생을 두고 꾸준히 쉬지 않고, 계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0일 기도의 의미도 그런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할 정도면 나의 생명이나, 어떤 것도 다 하나님 앞에서 포기 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만 살겠습니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항복의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일생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라는 주님의 말씀 그대로의 삶이었습니다. 요즈음 40일 금식기도 했다는 사람들이 하나도 변한 것은 없이 '40일 금식기도 '를 간판처럼 들고 다니다면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3번씩 기도했습니다. 찰스 시몬이라는 사람은 매일 새벽 4시-8시까지 4시간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웨슬리는 매일 2시간씩 기도하면서 40년 이상을 살았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만일 내가 매일 새벽 2시간을 기도로 보내는 것을 실패한다면 그날의 승리는 마귀에게 돌아갈 것이다. 나는 너무나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오늘은 3시간을 기도로 보내지 않으면 결코 이 일을 지탱해 나갈 수가 없다." 고 했습니다. 이른 새벽에 하나님 앞에 먼저 나와서 무릎을 꿇는 것보다 더 경건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른 아침에 우리의 몸과 마음, 영혼을 주님께 드리지 않는 다면 우리의 삶은 하루종일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새벽기도는 광신자들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성도들이 하는 영혼의 힘찬 도약입니다.
예수를 닮지 않은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 100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읍시다. 먼저 예수님의 기도하는 삶을 본받아 실천하므로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3일
아브라함의 기도 <본문> 창18:22-23 (창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창18:23)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여러모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육신을 쫓았고, 철저하게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공해서 행복을 누리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어떤 형편이 있습니까 ?
1. 소돔성 사람들을 봅시다. 롯의 집에 천사가 방문한 것을 보고, 소돔성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자, 그들은 이성을 잃고 음난한 생각을 하며 흥분을 했습니다. 이들을 말리는 롯을 향하여도 이놈이 들어와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창19:9)고 폭도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게된 음난과 살인의 광기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아름다움과 화려한 것으로 위장한 죄악의 모습을 볼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롯과 같은 곤경에 처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2. 롯의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을 봅시다.(창 19:14) 천사가 롯의 가정에 긴급대피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이 전해진 것입니다. 이 복음은 롯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의 사위들에게 함께 가지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농담 '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는 사람은 망합니다. 주의 종의 말을 농담으로 받는 사람은 망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이처럼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방법으로 임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깨어서 근신하는 자들 만이 도적같이 임하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롯의 처를 봅시다. 영문도 모르고, 남편을 따라 소돔성을 나서는 이 여인은 이미 그의 마음을 소돔성에 빼앗겼습니다. 아니 그의 몸도 그의 삶의 의미도 이미 소돔성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맛본 쾌락과 풍요로움과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그의 영은 너무도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천사의 경고가 그의 마음에 들어 올리가 없었고, 손을 잡아 끄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자연스럽게 소돔성을 향하여 아쉬운 눈길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나의 추한 모습이 아닌지...,
4. 롯의 두 딸을 봅시다. 육신에 속한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듯 합니다. 천사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겨우겨우 소알성으로 대피합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소돔성에서의 경험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해야할 일을 바로 알지 못했고, 아버지를 돕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짐이 되고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5.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봅시다. 아브라함은 망하게 된 소돔성과 조카 롯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한번 부탁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간청하며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데도 열정을 가지고 매어 달립니다. 이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자셉니다. 구원의 기쁨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자셉니다.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나와 나의 자식을 위한 이기적인 것에만 머물러 있다면, 나의 신앙을 한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형제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할 수 있을때에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들려질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4일 쫓겨난 자의 기도 <본문> 창21:8-21 (창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창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창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창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창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창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창21:15)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창21:16)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창21: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거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창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창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약속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창12:2-3) 그러나 10년이 지난 85세까지 아들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애굽사람인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00세가 되던 해에 사라를 통해서 약속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어린 이삭과 이스마엘이 갈등을 빚게 되고 급기야는 아브라함은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쫓게 됩니다. 아침 일찍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며, 아들과 함께 막막한 광야로 내 몰린 하갈은 방성대곡하며 울부짖습니다. 그것은 절규였고, 탄식이었습니다. 제대로 형식을 갖추지 않은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갈의 기도를 통해서 세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1. 하나님 앞에 나갈수 없는 기도의 무자격자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 합니다. 하갈은 인간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서 버림을 받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출신이 이방 애굽 사람이었고, 종의 신분이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아들을 낳았고, 또 아들을 얻은 것을 빙자해서 주인을 학대하고 교만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울부짖을 때에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가 원한에 맺힌 통곡을 토해 낼 때에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아뢰기만 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2.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하갈이 광야길에 내 동댕이 쳐졌을 때에,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갈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에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집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는 기도 소리를 들었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고, 하나님에 대해서 평소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성대곡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기다리셨다는듯이 달려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절박한 심정에서 오는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속히 들어 주십니다. 3. 자녀를 위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머니 하갈이 기도했는데 17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얼마나 기쁜일입니까? 나의 생명보다 더 귀하고, 더 사랑스러운 우리의 자녀가 비록 기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자녀의 기도로 들어 주시고 응답하시며, 축복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이와같은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은 다 해결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병이 나았습니다. 죽은 딸이 일어 나기도 했습니다. 귀신이 쫓겨갔습니다. 결국 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문젭니다. 자녀의 신앙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육신으로 낳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신앙으로 다시한번 잉태하고 해산하는 십자가를 지면서 하갈처럼 방성대곡하면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5일 이삭의 기도 <본문> 창25:19-26 (창25: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예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창25:20) 이삭은 사십세에 리브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창25:21)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같으면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25: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창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창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생은 개척자의 일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보람과 기쁨도 많이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이삭의 생은 순풍의 돛단 듯한 평탄한 삶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1.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과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의 죄를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20:6)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헌신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았기 때문에 자식인 이삭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이삭의 완전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삭이 아직 어릴때에 모리아산의 제단에 아버지에게 결박 당하여 제물로 바쳐지게 될때에 그는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통해서 이어 받은 신앙이 이삭에게 이르러서는 보다 성숙하고, 체질화 되어 있음을 보게 해주는 사건입니다. 신앙이 갈등을 겪으면, 평안이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한결같은 신앙의 수준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엄청난 재물과 아름답고 현숙한 아내와 하는 일마다 잘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복한 이삭에게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나이 40이 되었으나 20년이 지나도록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 하나님은 이삭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되, 완전하게 주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인생의 그릇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만큼만 주십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십니다. 이삭에게 자녀의 축복도 속히 주셨다면, 교만해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는 것 때문에 그는 겸손히 20년 동안을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에게 기도의 제목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2) 기도를 통해서 얻은 아들이 더욱 귀합니다.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얻었습니다. 큰 아들은 남성적이고, 둘째 아들은 여성적이며, 첫째 아들은 용맹스럽고 둘째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아버지를 즐겁게 하고 둘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울하던 가정이 활짝 갠 봄날이 되었습니다. 기도해서 얻은 것이라야 귀합니다.
3) 영적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삭이 자녀를 낳기 위해서 기도했듯이 우리는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오랜동안의 기도와 10개월의 부담과 수일간의 진통이 따르듯이 우리도 영적인 자녀를 생산하기 위해서 고통을 달게 받고, 수고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럴때에 훌륭한 영적인 자녀를 생산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6일 아들을 위한 축복기도 <본문> 창27:27-29 (창27: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비가 그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성경 중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이다. 나이 많은 믿음의 사람, 존경 받는 족장이 혈기방장하고 앞길이 창창한 아들을 앞에 꿇어 않히고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 기도해 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배경에는 형과의 피눈물 나는 투쟁이 그림자처럼 너울 거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1.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명백히 알수 있다. 에서와 야곱은 모두 자기의 아버지를 존경했던 것 같다. 아들이기 때문에 가지는 인지상정의 감정이 아니라, 인격과 신앙에서 우러 나오는 영적이 권위에다가 가정을 잘 다스리는 족장으로서의 위엄이 함께 어우러진 외경심이었을 것이다. 특히 교활하리만큼, 지혜로운 야곱은 이 아버지로부터의 상속권과 영적인 축복이 형 에서에게 다 돌아 간다는 것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현숙한 여인인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과 공모한 것을 보면, 축복권에 대한 야곱의 염원이 어떤 것인가를 잘 알수 있다. 야곱은 아버지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받는 축복기도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건 모험을 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 한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청춘을 바쳤고, 일생을 나그네가 되어 살았다. 그러나 그는 축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을 아울러 누릴수 있었다. 복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바른 크리스챤이다.
2. 복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고, 포기해야 할 것이 있다. 에서는 장자로서 당연히 받을수 있는 축복에 무관심하다가 빼앗기고 말았다. 나의 몫이라고 하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누릴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에서에게서 배워야 한다. 신앙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알면서도, 또는 바라보면서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선을 다하여 사모하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 '가 얻는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야곱은 둘째이면서도 할수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축복권을 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씀으로 자신이 누릴수 있었고,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힘입을수 있었다. 하나님은 에서를 사랑하시지 않고, 야곱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의욕을 불러일으킵니다.
3. 자녀들을 위해서 축복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이삭은 자신이 누렸던 축복을 잘 지키고, 아들에게 물려 줍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버집니까? 또 얼마나 부러운 아들입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아버지,어머니가 누리던 그 축복을 나에게 주십시요! 나에게 꼭 한번 머리에 손을 얻고 축복해 주십시요! '라고 말할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부모가 되겠습니까? 재산을 탐내서, 형제끼리 다투고, 하루라도 빨리 재산을 상속 받기 위해서 갈등을 빚고 있는 시대 ! 부모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져 버리고, 노인과 어른을 푸대접하는 시대의 풍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아이들을 탓하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인 권위를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에서 조차 이런 불신과 미움이 팽배하는 이유는 부모가 자녀들이 욕심낼 만한 축복과 권위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월중앙교회교회 성도 여러분! 영적 부모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받기위해 야곱과 같은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기도로 승리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7일 벧엘의 서원기도 <본문> 창28:10-22 (창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28:11) 한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창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28: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창28:20)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창28:21)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벧엘은 '하나님의 집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 벧엘을 세운사람입니다. 그는 벧엘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그토록 얻고자 했던 축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을수 있었고, 흔들리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1. 축복의 안수 뒤에 온 것은 시련이었습니다. 야곱은 꿈에도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 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투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당장 찾아온 것은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부모와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그의 가진 것이라고는 손에 잡은 지팡이가 전부였습니다. 그의 등 뒤에서는 분으로 가득찬 형 에서의 칼이 있었습니다. 외삼촌의 집을 향해서 광야길을 걸어가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쓰러지듯이 돌을 베게 삼고, 입고 있던 옷한자락을 이불 삼아 덮고는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사람에게도 이런 시련과 절망은 찾아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야곱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처럼 느껴지고, 하나님이 나에게서 멀어진 것 같이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2. 야곱은 무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놓여 하늘과 땅이 연결되었습니다. 천사들이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희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따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15) 인생의 절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리빙스턴이 옥스포드로 돌아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채플 시간에 그는 아프리카에서 사자의 공격을 받아 불구가 된 한쪽 팔을 늘어 뜨리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학생 여러분, 내가 어떻게 저 검은 대륙에서 지탱할 수 있었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예수님의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내 곁에 서서 함께 걷고 계심을 느낄수 없었다면 도저히 계속 버틸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야곱이 밤을 새워 소리 지른다거나, 유창한 말로 조리있게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지는 못했습니다. 지친 몸을 빈들에 누이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 몸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어떤 말보다도 더 절실한 기도를 그는 하나님께 보여 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침묵시위 '는 함성을 지르는 데모보다 더 위협적인 것을 알고 있듯이, 우리의 말이 떨어지고, 더 어떤 것을 요구할 수도 없는 그 때에 우리는 갈기갈기 찢긴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몸 전체를 하나님께 내어 놓을수 있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은혜에 신속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어 나서 돌베개를 세우고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바로 감사를 해야합니다. 찬양을 해야 합니다.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의 은혜는 날로 더 풍성해 지고, 더 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곳 벧엘을 자신의 신앙의 이정표로 삼아서, 인생의 고비마다 여기에서 새로운 은혜를 체험하고, 도약의 계기를 삼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은혜가 임할 때에 즉시 하나님께 반응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8일 얍복강가의 결사기도 <본문>창32:23-32 (창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창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32: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창32: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창32: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창32: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창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1. 마지막 훈련장이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오랜 피난생활을 통해서 그가 저질럿던,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축복을 도적질한 죄값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형의 진노로부터 해방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향하며, 강을 사이에 두고 형을 만나야할 순간에 그는 다시 좌절을 느꼈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문제들을 미리 해결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옛일을 잊어버리고 기쁨으로 형제가 상봉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20년간 라반에게서 혹독한 훈련을 받은 야곱이었지만, 하나님은 이제 마지막 훈련을 통해서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고통은 사랑의 훈련과정입니다. 어떤 똑똑한 젊은 목사님이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마침 신학교 때에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거기서 목회를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교회에 가서 은사인 목사님을 도우면서 학비도 보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설교를 하는 날입니다. 한참 설교를 하는데, 노인 목사님이 벌떡 일어나서 강단의 제자를 보고 내려와서 여기 앉으라고 했습니다. 설교 도중에 단어 하나를 잘못 사용했다고 심하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교인들 앞에서도 얼마나 혹독하게 야단을 치시는지 속으로 수없이 원망을 했습니다. 그래도 은사님이기 때문에 온갖 수모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자기를 그렇게 무섭게 훈련시키셨던 스승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겸손하고, 실력있고, 경건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서 짐짓 그렇게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서는 감사한 마음을 주체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려고 우리를 연단하시며, 부수고 깨뜨리십니다.
2. 그는 홀로 싸웠습니다. 신앙은 개인적입니다. 하나님과 1:1로 싸울수 있어야 합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러 오면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재산을 보고 든든히 여겼고, 처자식들을 생각하고 자랑스러움이 은근히 있었고, 수많은 종들이 있으니까 염려할 것이 없다고 자신만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하나님 앞으로 홀로 나갔습니다. 처음에 아버지 이삭에게 안수 받을 때와, 벧에서 홀홀 단신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처럼, 이 밤에는 정말로 혼신을 다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치열한 싸움이었습니다. 뼈가 부서지는 아픔을 참고 매어 달리는 씨름이었습니다. 해결 받지 않고는 물러설수 없는 절박한 전쟁이었습니다.
3. 그는 변화 되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격이 바뀌었습니다. 협잡꾼, 거짓말쟁이, 속이는 사람이 '이스라엘 '로 바뀐것입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승리한 것입니다. 일생을 두고 얻으려고 하던 축복을 드디어 손으로 붙잡았습니다. 원수가 되었던 형과도 화해하고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번 기회에 야곱의 기도를 드립시다. 매어 달립시다. 끝까지 싸워봅시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 9일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여 <본문> 삿7:2-8 (삿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삿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삿7: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말것이니라 (삿7: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삿7: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삿7: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삿7: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흔들리게 됩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응답 받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드온이 어떻게 위기에서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나라를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일수 있었는가를 생각하는 중에 우리도 바른 기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큰 승리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역사서인데, 한가지 패턴을 가지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은 평안해지니까 영은 오히려 메마르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옵니다. 이 때에는 이웃의 숨을 죽이고 있던 이방나라들이 발호해서 전쟁을 일으키고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수년 혹은 수십년씩 이방 나라에 시달리고 나서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는 비명을 지르고, 매달려 호소를 합니다. 회개를 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사사)를 보내어 이방 나라를 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평화와 형통을 주십니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였고, 인류의 역사입니다.
개인의 생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신앙생활의 결과가 매맞고 울고불고 회개하는 것이 전부인 경우를 보게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 영월중앙교회교회의 새벽기도 용사 여러분들은 우리의 원수들을 일거에 제압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 실패하지 않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드온의 승리를 잘 관찰해야 합니다.
1.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 6:34 소년 다윗은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에 사울왕과 수많은 대적을 물리쳤습니다. 모세도 호렙산에서 불꽃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난 다음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용기가 없었습니다. 두려워서 감히 사람들이 앞에 나설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증거를 가지니까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분연히 일어나 300명의 소수의 훈련 받지 않은 병력을 이끌고 미디안의 수십만 대군을 대적하여 이길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 앞에서 도망하던 겁쟁이였고, 확신이 없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변화 되었습니다. 용기있는 사도들이 되어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다 이름없는 기드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역사를 바꾸는 기드온이 될 수 있습니다.
2. 기드온은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기드온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를 선택했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육에 속한 생각과 영에 속한 생각이 항상 공존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육의 생각을 이길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양털을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데, 이것은 하나님과 기도의 싸움입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것과 비길수 있고, 모세가 증거를 요구할 때에 손에 문둥병을 주셨다가 고쳐주시고,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던 기사를 보여 주셨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나자신과 싸워 이겨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어떤 대적도 두렵지 않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0일 목마른 자의 기도 <본문>삿15:14-20 (삿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삿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삿15:16)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삿15:17) 말을 마치고 턱뼈를 그 손에서 내어던지고 그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삿15: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께서 종의 손으로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겠나이다 (삿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삿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을 지내었더라
삼손은 블레셋사람들에게 40년간이나 고통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보내신 사사였습니다. 그는 날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 되었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귀턱뼈 하나로 무장한 군사 300명을 죽일 정도로 탁월한 지도자였습니다.
1. 그러나 삼손도 목말라 쓰러질 형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삼손과 같은 장사는 그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태어 났고, 부모들의 신앙과 정성을 힘입어 깨끗하고, 경건하게 자라났습니다. 그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무서운 힘으로 이스라엘을 불레셋으로부터 구하고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삼손은 강했기 때문에 유혹에 더욱 약했고, 더 외로웠는지 모릅니다. 삼손이 강하다고 자신감을 가질 때에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아버렸고, 결국 그는 쓰러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삼손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손을 강하게 쓰셨던 것을 삼손은 잠시 잊었던 것입니다.
2. 연약한 인간이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결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가 강한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계속 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연약하고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붙잡아서 일으키시고, 귀하게 쓰십니다. 삼손은 목이타서 죽을 지경에 이르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여, 샘이 터지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물질로, 건강으로, 사랑으로 목이 마릅니다. 기도의 샘을 파십시요! 생수를 얻기 위해서는 큰 샘을 파야 합니다. 깊이 파야 합니다. 얕은 샘에서는 건수가 나오기 쉽습니다. 깊은 곳에서라야 시원한 샘물이 솟아납니다. 기도의 샘은 파면 팔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수가 솟아 날 것입니다.
3. 삼손의 20년 사역은 몇 줄의 읽을 거리 밖에 안됩니다. 삼손은 나실인이었고, 뛰어난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화는 오래지 못했고,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마쳤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를 다 채우지도 못했습니다. 평범했던 사사들 만큼의 업적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정욕을 잘못 다스려 그가 거둔 성공보다 더 큰 실패와 치욕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거룩하게 쓰임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물질과 쾌락과 세상의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맨발의 성자 프랜시스의 이야깁니다. 아씨시로 구걸 전도하러 갔다가 술집에서 옛날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프랜시스여, 이런 자리에서 뜻밖에 만나게 되어 반갑군. 하지만 우린 도무지 자네를 이해할 수 없다네. 어찌하여 부잣집 귀동자가 이처럼 빌어 먹을 거지가 되었는지 말야 그러나 프랜시스는 친구들이여, 나도 도무지 자네들을 이해할 수 없다네. 어찌하여 하나님의 왕자들이 구정물보다 더 더러운 이런 술만 마시고 지내는지 말일세, 난 이처럼 누추하게 보여도 하늘의 왕자가 되었다네.
영월중앙교회의 성도 여러분! 삼손과, 솔로몬처럼 짧은 성공으로 끝나는 성도가 아니라, 여러분의 가정에 영원한 엔학고레의 샘물이 터져서 치료와 축복과 은혜의 생수가 솟아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1일 한 맺힌 한나의 기도 1 <본문> 삼상1:9-20 (삼상1: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그 의자에 앉았더라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1:11)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상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 리가 그의 입을 주목 한즉 (삼상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1:14) 엘 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삼상1:15)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삼상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삼상1:17) 엘 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성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한나의 기도를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한 여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을 얻기 위하서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해야 할 것인가? ' 오늘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보면서 그저 감동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이 그처럼 절실한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의 애절한 기도가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한나의 기쁨과 축복이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1. 한나는 성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실로는 '안식 '의 뜻이있습니다. 성전은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는 곳입니다. '성전 '은 하나님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래도 가장 안전하고, 가장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가까운 안식을 맛 볼수 있는 곳, 그리고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음성을 듣고 그의 손길을 느낄수 있는 곳이 성전입니다. 한나는 제사장 엘리는 늙어서 영력이 떨어졌다고 소문이 나고, 방탕한 그의 자식들 때문에 황폐해진 성전이었지만, 그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성전 중심의 신앙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성전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의 종을 따릅니다.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협력할 줄 압니다.
2. 한나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자식이 없어서 원한이 맺힌 한나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에 약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혀 쓰인 사람들은 좋은 조건에서 평안한 가운데서 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눈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앙인들에게 눈물은 필수품입니다. 기쁨의 눈물도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에 넘쳐서 눈물을 흘려보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보지 않은 사람을 신실한 크리스챤이라고 말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험하고 우리는 약합니다. 한나는 약한 여자였지만, 현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눈물의 무기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슬기가 있었습니다. 눈물을 아낄 때와 흘릴 때를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눈물을 조금도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3. 주의 여종이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본문에는 여종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나옵니다. 그녀는 원한에 사무쳐서 기도하지만, 막무가내로 내놓으라는 식의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여종으로서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할 자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겸손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근신하는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그대로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낮추시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아침 시간에 하나님의 종입니다하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3일 한나의 기도 2 <본문> 삼상1:19-28 (삼상1:19)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삼상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삼상1: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삼상1:22)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삼상1:23)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삼상1:24)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삼상1:25)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삼상1:26)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삼상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삼상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우리는 그저께 새벽에 한나가 기도하게 된 동기와 자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한나가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하는 기도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며 바른 기도를 배우는 기회를 가지고자 합니다.
1. 그는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한나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은 씻을수 없는 수치였고,무엇으로 풀수 없는 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을 얻기만 하면 자신의 처지가 일거에 달라지고, 지금까지 맥혔던 원한을 풀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자랑할 사람도 많았고, 특별히 그의 가정에서 남편와 첩들과 그들의 소생들에게 지금까지 자기가 당했던 수모를 갚아줄 기회가 될 것입니다. 대개의 한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인이라고 하면, 아들이 생겼다고 할 때에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이런 생각일 겁니다. 그래서 더 부르짖게 되고, 더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냉정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신앙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쳐서 헌신하도록 하겠다는 서원을 했습니다. 나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축복과 은혜를 내가 누리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겠다고 하는 결단입니다. 이 서원에는 남편의 동의가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이 생겨도 그 아들 때문에 가정에서 얻을수 있는 만족과 위로와 권세를 다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닐까요? 교회마다 기도의 소리가 진동합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또한 나의 욕심을 채우려는 아우성으로 들려질 때가 많습니다. 헌신의 자세가 서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 그는 오래 기도했습니다(11)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하셔야 들어 주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래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에게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오랜기도에는 정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랜기도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오랜 기도에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다른 어디에서도 내 문제가 해결 될수가 없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조금 기도하다가 포기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매어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3. 한나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기도하되 뚜렷한 기도제목과 구체적인 내용을 아뢰었습니다. '여종의 고통을 들어 주시면... ' 아주 간결하면서도 마음 속에 있는 소원을 가감없이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요설을 늘어 놓는다든지, 장황한 설명을 덧붙인다든지, 빙빙 돌려서 하는 기도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둔하셔서 우리가 설득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절실히 하나님께 보여 들릴수 있느냐는 것이 기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한 번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나와 같은 기도를 드릴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4일
응답받은 한나 3 <본문>삼상2:1-11 (삼상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삼상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삼상2: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삼상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삼상2: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삼상2: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삼상2: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한나는 성전에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무친 원한을 안고 정신없이 구했습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특권이요, 무기이기 때문에 반드시 응답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 주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가장 많이 강조한 것 중에서 하나가 바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러면 한나는 어떤 응답을 받았을까요?
1. 그의 시련이 끝났습니다. 축복과 응답이 있기 전에는 전주곡처럼 시험과 고통이 있습니다. 사실 이 시험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지요. 자녀를 가지지 못해서 오랫동안 겪었던 한나의 시련은 눈물겨운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을수도 있습니다. 당연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럭저럭 살다가 끝나는 것이 한사람의 삶이 아니냐?고 체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매달려 그의 그늘진 삶을 끝내고, 광명의 빛을 맞이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어려움도, 어떤 시험도 끝까지 버티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 오시면, 모든 환난은 한순간에 거두어 가십니다. 이 순간을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는 사람은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2. 제사장을 통해서 응답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한나를 보고 엘리 제사장은 네가 언제까지 취해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서러움에 복받쳐 기도하는 한나에게 이게 무슨 청천 병력입니까? 와서 다정히 위로하고 안수를 해주어야 할 제사장의 책망과 진노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 한나에게 있어서는 위기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예수님께 멸시를 당했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했습니다. 엘리제사장을 원망하지 않았고, 낙심해서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공손히 자신의 심정을 아뢰었습니다. 그 때에 그녀는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며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17절) 엘리제사장은 능력의 종이 아닙니다. 햇볕을 쬐려고 문설주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졸고 있는 늙은이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을 잘못 키워서 망신을 당하고 손가락질 당하는 불신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엘리제사장을 신뢰했고, 그의 축복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응답하시고,그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약속을 지켰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자녀들을 3년을 젖을 먹입니다. 이 기간이 끝나자마자 하루도 지체하지 않고 그녀는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자기 아들도 제대로 키우지 못해서 망나니로 만든 늙은 엘리 제사장의 손에 자신의 젖먹이를 맡기는 한나의 모습을 보세요. 그런 한나의 믿음은 엘리 제사장의 대를 그의 아들들이 잇지 못하고, 사무엘에게 돌아 오는 놀라운 축복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상식적으로 믿는 사람은 상식적인 축복 밖에 못 받습니다. 그러나 상식을 뛰어 넘어 온전히 말씀대로만 믿을 때에 하나님은 지각 밖에 뛰어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한 아들을 헌신 하므로 여섯명의 아들을 더 낳아 다복한 가정의 복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그 영화로운 생애를 통해서 어느 여인도 누릴수 없는 영광을 생전에 뿐 아니라,영원토록 누리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5일 기도의 사람 사무엘 <본문>삼상3:1-14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삼상3: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삼상3: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삼상3: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삼상3: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삼상3: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삼상3: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 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삼상3:9)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삼상3: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삼상3: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삼상3: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삼상3:13)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삼상3: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오늘은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과 기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어린이는 축복 속에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부모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웃 어른들의 축복을 받고 자라야 합니다. 그런 아이라야 자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위해서 일할 줄 알고, 많은 사람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1. 사무엘은 부모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의 영적인 발달은 성령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신 임신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시편 139편 13-16절에도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기록 되었나이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부모의 신앙과 기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부모가 심은 것은 자녀를 통해서 거둡니다. 1000대까지 그 열매가 이어집니다. 육신으로 심어서 육의 열매를 거두는데 그치지 마시고, 기도로 영적인 것을 자녀에게 심으시기 바랍니다.
2. 3살까지 부모님의 기도로 자라났습니다. 한나는 그처럼 처절한 기도로 사무엘을 잉태했고, 10달의 임신기간에 잠시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으며 기도의 생활을 하고, 3년을 젖을 먹이면서 밤낮없이 기도의 손길로 보살피다가 성전에 드려 제사장의 손에 맡겨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기도 속에서 시작해서, 기도에 묻혀서 자라난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이 보고 배운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의 분위기와 신앙적인 환경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신앙의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3. 사무엘은 평생을 제단에서 살았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편히 누워 자는 시간에도 사무엘은 성전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그는 육신적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급하실 때 엘리를 찾지 않으시고, 사무엘을 찾으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 사무엘과 의논하셨습니다. 우리들과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전에 가까이 나아와 기도의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주 찾으시는 하나님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6일 다윗의 소원기도 <본문>시27:1-14 (시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2) 나의 대적,나의 원수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시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시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27:7) 여호와여 내가 소리로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시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시27:9)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시27:11)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27:12) 내 생명을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위증자와 악을 토하는 자가 일어나 나를 치려 함이니이다 (시27:13)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 (시27:14)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이 말씀에는 다윗의 소원이 담겨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관이기도 합니다. 기도의 수준이나 내용을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허황되기 기도하지 않고 진실하게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힘이있습니다. 바위도 뚫을 수있고, 하늘도 오를 것 같은 넘치는 힘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경건한 사람의 기도는 향기가 있습니다. 마을을 깨끗게 합니다. 죄인들은 부끄럽게 하고, 욕심을 가졌던 사람은 회개하게 만듭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평생의 기도의 목표를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1.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루이틀에 판가름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신앙은 평생의 과젭니다. 신앙은 대를 물리는 생명의 뿌리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근시안적이 아닙니까? 우리의 목표는 너무 왜소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너무 현실에 억매여 있지 않습니까?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 '이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된다면, 여호와의 전에서 평생을 찬송하며,기도하게 해 달라고 매일 아침 기도의 제목을 삼고 살아 가는 사람이라면 아마, 죄를 지으라고 해도 짓지 못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좀 멀고,좀 어려운 것 같지만, 평생을 두고 이루어야 할 이런 꿈과 목표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를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입니다. 평생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 소원이 되어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신다 '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왜 자꾸 친구들을 찾아갑니까? 그 곳이 좋아서 그럽니다. 마음이 친구들에게 가 있어요. 사모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야 즐겁고, 그들을 만나야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거기에서 사는 재미를 느낍니다. 그러다가 잘못되기도 하고,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있는 시간이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재미있고,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아기자기 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돈버는 재미 보다도, T.V를 보고, 관광을 다니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재미 보다도 더 좋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다윗이 가진 보배 중의 보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전쟁터에서 평생을 산 사람입니다마는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제일 많이 지어 부른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와같은 축복을 여러분들이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7일 솔로몬의 일천번제 기도 <본문>왕상3:4-15 왕상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왕상3: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3: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왕상3: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왕상3: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왕상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왕상3: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왕상3:12) 내가 네 말대로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왕상3: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왕상3: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왕상3: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오늘 아침에는 솔로론이 왕이 된 다음에 처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일천번제의 제사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를 기쁘게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겸손의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기브온 산당에서 드렸습니다.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4KM 떨어진 곳의 마을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왕이 된 솔로몬은 분주하기도 하고, 생각도 많았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왕이 될려는 야심을 가진 사람도 많았습니다. 압살롬 같은 사람은 노골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을 이기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적도 많고, 또 공신들은 자신의 수고를 알아 달라고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쓰고, 누구와 의논해야 좋을지 참으로 처신하기 어려운 형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사람들의 지혜를 얻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혜와 능력도 과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야 왕의 업무를 수행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라는 기도는 교만한 사람은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2. 간절함과 강청하는 기도였습니다. 소 한마리를 잡아 드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형식이 마음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보통의 경우는 그의 행동을 보고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런일을 해서 유익이 없는 데도, 큰 손해를 보는 일을 한다든가, 큰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는 것은 믿음의 행동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처음 되어서 위엄을 보이고, 백성들에게 군림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텐데도, 그것보다 하나님께 꿇어 엎드렸을 뿐만 아니라, 일천 번이나 제사를 드립니다. 하루에 소 한마리를 잡았다면 3년동안을 제사를 계속 드렸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얼마나 끈질긴 기돕니까? 얼마나 간절한 기돕니까? 우리는 때로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이런 끈질김과 간절함의 결과가 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솔로몬의 기도제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마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오래사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부귀와 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 갚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지혜를 구했으니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33) '고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일 때에 그 기도는 바로 응답 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구하지 않은 것도 하나님은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그리고 문제투성이며, 또 수많은 사람과 사건을 접하다 보니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신앙생활하는 데에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전도하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를 건축하고 부흥시키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하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복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8일 엘리야의 기도 <본문>왕상18:25-46 (왕상18: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왕상18:26)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왕상18:27)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왕상18:28)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왕상18:29) 이같이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 (왕상18: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왕상18: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왕상18:32)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 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왕상18: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위에 부으라 하고 (왕상18: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하여 세 번 그리하니 (왕상18:35)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왕상18:36) 저녁 소제 드릴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왕상18: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왕상18: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왕상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왕상18:40) 엘리야가 저희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왕상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 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왕상18:43)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 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왕상18: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이스라엘이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데 깊이 빠졌습니다. 잘못된 지도자 아합의 꾀임에 빠진 때문입니다. 바알신은 농사를 잘되게 하는 신입니다. 그리고 아세라는 아들을 낳게 하는 신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생각, 육신적인 형통을 찾아가다 보니까 우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죄와 우상은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을 떠나고, 죄에 깊이 빠져든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쾌락을 사랑하고 육신의 일을 차츰 쫓다가 보면 어느사인엔가 우리는 타락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까지 와있는 때가 많습니다.
1. 엘리야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사잡니다. 그가 그처럼 위대한 선지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강인한 성품과 신앙에 있었던 것같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박해가 얼마나 심하고, 바알의 권세가 얼마나 높았던지 모든 백성과 하나님의 선지자들 조차도 거의가 바알의 비위를 맞추고, 우상숭배에 빠져드는 데도 그는 의연히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의 절개를 굳게 지켰을 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여호와를 섬기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타협하는 사람은 한평생을 편하게 살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룰수 없고, 후대에까지 존경 받고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잘압니다. 많은 위인들은 생전에는 이해 받지 못하고,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산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우리는 위인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인들이 쉽게 세상의 쾌락과 타협하는 것을 봅니다. 조금 편리하다고 해서 양보하고, 이것 쯤은 괜챦겠지 하면서 양보하다가 보니까 기도교인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신앙인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습니까? 내가 그런 사람은 아닙니까? 엘리야의 타협하지 않고 굳게 지킨 신앙의 본을 받아야 겠습니다.
2.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인 앞에서 자랑했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제시대에나, 공산치하에서 순교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핍박 속에서도 끝까지 지켰다는 것으로 길이 역사에 남아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숨어서 전한 것이 아니라, 왕과 왕비 그리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했습니다. 무모한 것처럼 보이는 시합을 벌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유일하시다는 신념을 많은 대적들과 백성들에게 당당히 드러내 보일 기회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대적과 싸워야 합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빛날 것입니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응답이 내리지 않아서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왕과 왕비가 안절부절 못하고 백성들이 웅성웅성하는 가운데 엘리야가 한마디 기도 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내리고, 제물을 순식간에 태워 버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우직한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불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에 개입하시면 일순간에 달라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시는 순간에 우리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처럼 우리 주위에 적이 둘러 싸고 있어도, 환경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도 두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기도합시다. 그래서 불의 응답을 받으시는 우리 온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19일 엘리사의 기도 <본문>왕하2:1-14 (왕하2:1)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왕하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 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왕하2: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왕하2:4)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매 (왕하2:5)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엘리사가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왕하2:6)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에 두 사람이 행하니라 (왕하2:7) 선지자의 생도 오십인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가에 섰더니 (왕하2:8)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 (왕하2:9)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취하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 엘리사가 가로되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2:10) 가로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고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왕하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왕하2:13)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왕하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엘리야가 능력의 선지자로 일할때 그를 따르는 많은 선지자 생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의 능력을 이어 받아서 위대한 선지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안고 엘리야에게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없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유일하게 엘리사는 선생님 엘리야보다 더 큰 영력을 받게 되고, 대를 이어서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종으로 큰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엘리사를 통해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특별하게 쓰임 받는가를 생각하며 우리들이 하나님께 들려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원치 않으시고 한사람을 택하십니다. 하나님은 숫자를 가지고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기드온을 통해서도 수만명의 사람을 돌려 보내고, 남은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을 무너 뜨리셨고, 모세와, 여호수아도 거의 혼자서 애굽과 가나안의 강한 5부족을 물리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 와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도 안됩니다. 더군다나 큰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자랑할 것도 안됩니다. 내가 하나님에게 선택을 받을 만한 사람이냐가 중요합니다. 특별한 축복을 받고, 특별한 일에 쓰임을 받고, 특별한 은총을 구한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가며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선택하셔서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에 맞는 한사람을 더 바라십니다.
2. 엘리사는 사모했습니다. 19-21절에 보면 12겨리 소로 밭을 가는데 엘리야가 겉옷을 던지니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릅니다. 아버지와 작별하고 소를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기구를 불살라 버립니다. 그는 마음에 불타는 소원과 엘리야를 흠모하고, 그의 가진 능력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할수 있었던 행동이었습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만 가지고 가만히 있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 나서 따라야 합니다. 걸리적 거리는 것이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갑절의 영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끝까지 따랐습니다. 길갈에서 벧엘로, 또 여리고로, 그리고 요단강까지 따라갑니다. '여기 머물러 있으라 '고 엘리야는 거듭 말하지만, 결코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계속 쫓아 갑니다. 다른 생도들도 엘리야의 능력에 대해서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얼마까지는 함께 따랐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따른 사람은 엘리사 혼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보다 내가 찾아서 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다 큰 은혜, 큰 능력을 주시기 원하시지만 사모하지 않고, 끝까지 따르고 구하지 않기 때문에 못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이 더욱 중요합니다. 기도의 발걸음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19일째 더욱 분발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0일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 <본문>왕하20:1-11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20: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왕하20:6) 내가 네 날을 십 오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왕하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왕하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왕하20: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 갈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왕하20: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것이 아니라 십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왕하20: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 갔던 해 그림자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히스기야는 경건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에서도 능한 왕으로 앗수르의 교만을 꺽어 놓은 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백성을 잘 다스린 왕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근심과 고민은 있었습니다.
1. 불치의 병이 걸렸습니다. 훌륭한 왕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든 백성에게 있었지만, 더군다나 히스기야로서는 아들이 없어서 왕 위를 물려 줄수가 없으니,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도 그는 병이 들어서 죽음의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닥아옵니다. 용하다는 의사나 명약이 다 소용없었습니다. 왜 의인에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이런 고난이 닦치는지를 완전힌 이해 할려면 하나님 나라에 가야 풀릴 것입니다. 다만 이런 고난을 이길수 있는 방법은 기도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닦칠 때 하나님이 나에게 기도하라는 명령으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매어 달릴수 밖에 없습니다.
2. 히스기야는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특권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분명히 히스기야에게 예언했습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 그러나 눈물로 기도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해 그림자를 10도나 물러나게 하고,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게 된 것입니다. 14년간 통치하고 병이 걸려 죽게 되었는데, 기도해서 연장 받은 생명이 오히려 더 길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기도와 눈물을 보았다고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눈물의 기도는 역사를 바꿀수도 있고, 사람의 운명을 바꿀수도 있고,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수도 있다는 것을 히스기야를 통해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3. 의인의 기도는 응답을 속히 받습니다. 히스가야가 응답 받은데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선히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서 선을 베풀었습니다.진실과 전심으로 행했다고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의 행실이 바르고 정직해야 합니다. 기도는 입으로 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생활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더딘가를 한번 돌아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의 기도는 힘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영월중앙교회식구들은 응답받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히스기야처럼 소원을 이루는 기도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1일 에스라의 구국기도 <본문> 에10:1-17 (스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심히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스10:2) 엘람 자손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스10:3)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스10:4)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스10:5)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 (스10:6) 이에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서 일어나 엘리아십의 아들 여호하난의 방으로 들어가니라 저가 들어가서 사로잡혔던 자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더니 (스10:7)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들에게 공포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스10:8)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좇아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회에서 쫓아 내리라 하매 (스10:9) 유다와 베냐민 모든 사람이 삼일 내에 예루살렘에 모이니 때는 구월 이십일이라 무리가 하나님의 전앞 광장에 앉아서 이 일과 큰 비를 인하여 떨더니 (스10:10)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스10:11)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스10:12)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스10:13) 그러나 백성이 많고 또 큰 비가 내리는 때니 능히밖에 서지 못할 것이요 우리가 이 일로 크게 범죄하였은즉 하루 이틀에 할 일이 아니오니 (스10:14) 이제 온 회중을 위하여 우리 방백들을 세우고 우리 모든 성읍에 이방 여자에게 장가든 자는 다 기한에 본성 장로들과 재판장과 함께 오게하여 우리 하나님의 이 일로 인하신 진노가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하나 (스10:15) 오직 아사헬의 아들 요나단과 디과의 아들 야스야가 일어나 그 일을 반대하고 므술람과 레위 사람 삽브대가 저희를 돕더라 (스10:16)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그대로 한지라 제사장 에스라가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위임하고 시월 초하루에 앉아 그 일을 조사하여 (스10:17) 정월 초하루에 이르러 이방 여인을 취한 자의 일 조사하기를 마치니라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남쪽으로는 애굽, 북쪽으로는 바벨론과 앗수르를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징계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남쪽에는 일본, 쪽에는 소련과 중공이 버티고 있어서 시달렸던 것과 흡사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잡혀 간지 70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레스왕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귀국령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1차 귀환이고, 여러해 후에 바사와 아닥사스다의 칙령을 따라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의 인도 아래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했습니다. 이제 에스라는 나라를 잃고 70년간이나 이방의 포로가 되어 황폐해진 이르라엘을 향하여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 나라를 건설하기 전에 영적으로,정신적으로,그리고 생활에 끼어 있는 때를 씻어 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생각해 봅니다. 이들은 이방에 살면서 이방여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순결한 결혼 생활이 이방인의 방탕한 습관에 물든 것을 말하고, 이방의 우상을 가정에 받아 들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잡혼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순수성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염원을 간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것을 정리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 오는 것은 아주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을 돌아 보아 정리할 것을 깨끗이 씻어 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님의 이루시는 새 역사에 동참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악에 찌든 생각과 습관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없었습니다.
2.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대신해서 에스라는 대신 기도합니다. 얼마나 아름답고,위대한 지도잡니까? 목자가 양을 위해서,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스승이 제자를 위해서,통치자가 백성을 위해서 내 탓이라고 회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겠습니까? 6절부터,15절까지 '우리 '라는 단어가 27회나 나옵니다. 지금 시대의 문제는 우리는 없고, 나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나의 것인것 처럼 회개하는 에스라의 모습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합니다.
3. 에스라의 회개의 기도는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에스라가 이처럼 울며 하나님의 전 앞에서 기도할 때에, 백성들이 비로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심히 통곡하며 어린아이들까지 모여 들었습니다. 에스라는 저들의 죄를 근심하여 떡도 먹지 아니하고,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문을 여시고 큰비를 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아의 홍수 때를 생각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방여인을 내쫓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견뎌내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끊을 것을 끊고, 버릴 것은 버리고, 돌아설 자리에서 마땅히 돌아설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2일 예루살렘향한 느헤미야의 기도 <본문> 느2:1-10 (느2:1) 아닥사스다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느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느2:3)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2:5)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느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느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2:9)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느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며, 교회의 파숫군이며 일꾼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는 느헤미야의 신앙과 그의 열정과 그의 끈기를 배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느헤미야는 제사장이나 서기관이 아닙니다. 그는 대제국 페르시아의 고위관리입니다. 임금의 술을 따르는 총애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와 부귀를 지키면서도 얼마든지 자기 동족을 위해서 봉사하고 존경 받을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한 잠자리에 들면서도 황폐한 조국을 생각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고,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몰랐습니다. 임금과 함께 즐기는 자리에 있어도 기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빼앗긴 유대와 무너진 하나님의 도성을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지냈고, 수일을 금식하고 기도하기가 보통이었습니다. 동족이 당하는 고난이 자기의 고난이요, 조국이 받는 능욕이 자신이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느헤미야에게서 경건한 성도의 모습을 봅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을 찾을 수 있습니다. 육신의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며,자신이 누릴 수 있는 안락함도 영이 깨어 있기 위해서 내버리는 성도의 삶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나요? 우리는 무엇으로 만족하며, 우리가 바라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2.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왔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골방에서, 아니면 혼자 돌아서서 눈물흘리고, 고민하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역사에 개입하시고, 때가 이르매 이방의 왕을 통해서 예루살렘성을 수축하게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수심을 보이므로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살아 남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말합니다. '종이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사오니 열조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 그 옆에는 황후도 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느헤미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군대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호위케 했습니다. 목재도 보내 주었습니다. 12년간 유다 총독으로 있으면서 예루살렘 성을 중건했습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느헤미야와 같은 성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군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3일 에스더의 생명을 건 기도 <본문>에4:1-17 (에4: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에4: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에4: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에4: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에4:5) 에스더가 왕의 명으로 자기에게 근시하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 보라 하매 (에4:6) 하닥이 대궐 문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에4:7)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에4: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에4:9) 하닥이 돌아와 모드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에4: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에4: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에4: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에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에4: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에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4: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오늘 아침에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자기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기도한 에스더와 그의 삼촌 모르드개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예스더의 신앙은 우리의 마음을 밝혀 줍니다. 성서에는 수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밝은 별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별들 중에서도 더 돋보이고, 아름다운 이름이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란 이름 자체가 '별 '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캄캄한 밤에 빛을 발하는 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부림절을 지킵니다. 하만의 모함에 빠져서 한사람도 남김없이 죽을수 밖에 없는 위기에서 구원을 받은 날을 감사하고,하나님께 찬양하며,에스더와 모르드개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구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자리에서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며,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을 때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능력을 상실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 모르드개의 헌신과 사랑을 기억합시다. 위대한 하나의 별이 뜨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눈물겨운 희생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뿌린 신앙과 사랑의 열매가 에스더였습니다. 에스더는 부모를 잃은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해서 왕비를 만들었습니다. ' 버려 두었다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고 사라져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천덕꾸러기나 ,타락한 인생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한 여인이 한사람의 헌신을 통해서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된 것입니다. 그처럼 사랑은 위대합니다. 헌신은 능력이 있습니다. 눈물과 희생의 씨앗은 아름답게 꽃피는 법입니다. 모르드개는 자기 사촌 여동생을 돌보면서 그렇게 엄청난 일을 감당할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나라를 건질 위인으로 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으로 우리의 이웃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3. 에스더의 변함없는 마음을 본 받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도 환경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도 축복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을 떠나고, 어려운 형편에 있을 때의 이웃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가난 할 때는 눈물로 새벽에 나와 기도하고, 먹을 것을 아껴가며 헌금하고 봉사하다가도, 부유해지면 사치하고 분주하게 세상일로 바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인색하고 거만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스더는 궁중에 들어 가서도 그의 믿음이 변치 않았습니다. 민족이 위기를 당하지 금식하며 기도하고, 백성들이 죽음 앞에 서게 되자, 자신의 목숨을 먼저 내어 놓고 기도했습니다. 저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라 '는 기도가 그래서 우리의 심금을 더 울리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지만, 에스더의 이 말 만큼 신앙인들의 가슴에 호소하는 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려분! 변치않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던 일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지금의 지위와 형편에 취해서 교만해지거나 사치에 빠지거나 나태해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4일 고난속에서 감사기도하는 욥 성 경: 욥1:20-22 (욥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오늘은 고난이 겹치는 중에도 감사와 찬양을 잃지 않는 멋진 신앙을 배우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욥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인정한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까닭도 모르게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자신의 몸에는 악창이 났습니다. 부인까지 포악해져서 남편을 구박하고 멸시합니다. 친구들은 위로한답시고 꾸짖고 아픈 가슴에 못질을 합니다. 그래도 그는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을 우리도 언제든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때에 우리의 입에서 불평과 원망이 먼저 나오지 않습니까? '이 고난을 피해달라고만 외치다가 지쳐 있지 않습니까? '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땅에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일도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으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4:12-13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예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2. 욥은 고난 중에도 인내했습니다. 첫번째 고난도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재산-어떤 사람은 현재의 화폐로 따지면 60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함- 을 한 순간에 잃었습니다. 그래도 의연했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 두번째 고난이 닥쳤습니다. 열명의 자식 중에 하나만 잃어도 성격이 변하고 생의 의욕을 잃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한꺼번에 열명을 모두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고난이 왔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난의 풍파가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3. 욥은 갑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련과 고난이 오히려 욥의 믿음을 증명하고 하나님 앞에 더 인정 받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인의 가증함도 증명되고,그의 친구들의 위선과 엉터리 지식과 교양도 드러났습니다. 그래서 시험은 하나님이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좋은 도구로 쓰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고난의 시험을 잘 참고 견디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갑절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5일 이사야의 소명의 기도 성 경: 사6:1-8 (사6:1)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사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6:4)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사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는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야는 왕족이었습니다. 비교적 훌륭한 왕이었던 웃시야가 교만해져서 문둥병자가 되어 죽자 슬픔 가운데서 크게 상심하는 중에 하나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1. 절망 중에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왕이 죽고,그것도 하나님의 벌을 받아 문둥병자가 되어 죽으므로 민심이 동요하고, 국가의 장래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신앙도 흔들릴 때에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성전에 꿇어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임하고, 환상이 보여졌습니다. 위기가 새로운 시대의 꿈으로 바뀌었고, 절망이 감격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영안이 열려지고 나니까 앞에 놓여져 있는 것 이상의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달려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영안이 열려져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높은 권세를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보좌를 본 이사야는 자신의 더러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보고,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이사야는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돌아 보게 합니다. 그렇게 당당하던 바울도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드로도 주님을 만나니까 자신을 돌아 보고 '죄인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라고 고백하며 주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고 땅을 쳤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났습니까? 자신을 돌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울부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요, 이 은혜를 전하는 사람이 주의 종이요, 사도요, 선지잡니다. 이 소식이 복음이 아닙니까?
3. 이사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이사야를 하나님은 제단의 숯으로 입을 지져서 정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돌아 보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즉시 응답하시고 속히 찾아 오십니다. 죄의 문제를 하나님은 언제나 지체하지 않고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다음에 소명을 주셨습니다.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육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이제 하나님과 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고민이 이사야의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한 마음이 생기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이사야의 은혜가 이 아침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소명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6일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성 경: 애2:11-19 (애2: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애2: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하도다 (애2: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쏘냐 (애2: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애2: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애2: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애2: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애2: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지어다 (애2: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 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쏟듯 할지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합니다. 또한 예레미야는 정이 많은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정다감하면서도 서민적이라할까 인간적인 사람입니다.
1. 어려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 1:6절에 보면 '나는 어린아이 '라는 고백을 봅니다. 14-20세에 부름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경건한 혈통,즉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난의 길을 걸었습니다. 방백들과 제사장들에게 수없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는 40년 6개월 동안 다섯명의 왕의 통치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간이 슬픔과 눈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나이들어 애굽으로 끌려가 11년간을 고난 속에서 예언하다가 77살에 카이로에서 동족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온전히 사명을 위해서 산 사람입니다.
2. 예레미야는 민족의 앞 날을 바로 보았습니다.(하나님의 시선으로) 당시에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왕이 듣기 원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백성들이 원하는 예언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축복 '만을 이야기했습니다. 원수들이 와도 하나님이 지켜 주실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평안하다고 비위를 맞추는 예언을 한결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눈을 들어서 보니까,살구나무가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임한다는 증조입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기울어진 끊는 가마솥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심판, 전쟁의 소용돌이가 북으로부터 몰아칠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싫어해도,백성들이 듣기를 원치 않아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외쳤습니다. 너희들이 아무리 살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대항해도 소용이 없다. 차라리 생명을 부지하려면 그들에게 속히 항복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래도 그가 본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외에는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3.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잡니다. 그는 백성에게 회개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민족이 당하는 고난에 동참하며 고통의 눈물을 함께 흘렸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사람들의 방탕하고 교만함을 보고 눈물을 흘렸고, 닥아올 심판을 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시대를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모습,자녀의 모습, 우리 가정의 모습,우리 교회의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눈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7일 영성회복 위한 에스겔의 기도 성 경: 겔37:1-11 (겔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겔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겔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겔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겔37: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으로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모든 보화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갔을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 간지 5년 4개월 5일 째 되는 날부터 환상을 보고 영적 깊은 체험을 통하여 예언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에스겔서를 30세 이상의 사람들에만 읽게 했습니다. 교부 제롬은 '성경학자들에게도 너무나 큰 대양이며 신비가들에게도 너무나 복잡한 미궁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깊이 있고 독특한 경험을 가진 에스겔을 우리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적인 이런 깊이를 갖기 위해서 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능력은 개인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강요해서도 안됩니다. 자칫 오해가 생길수가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1. 에스겔은 인간의 모습을 바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어느 골짜기에 내려진 에스겔은 무수한 시체들을 보게 됩니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였는지 해골과 뼈들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인자야,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 에스겔은 대답합니다. '여호와여,주께서 아시나이다 ' 그렇습니다. 인간의 모습은 보잘 것없습니다. 죽었습니다. 음산하고,썩은 냄새가 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겉모습만 가꾸어 놓고 태연합니다. 이 모습을 볼수 있는 사람이 복 됩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실은, 이 뼈들을 살릴 능력과 지혜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과 우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에스겔을 망연자실하여 있을 때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도 관심을 가지며,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바로 만물이며 인간존재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존재 이유는 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일을 하실 때에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전도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 주는 것입니다.
3. 죽었던 뼈들이 살았습니다. 생기가 들어 가니까 죽었더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죽은 사람,죽은 가정,죽은 교회,죽은 민족,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길을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김이 닿으면 모든 만물이 살아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사모해야 할 것은 이 하나님이 주시는 살아 있는 기운입니다. 즉 성령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메마른 것도, 우리의 인생이 한없이 답답한 것도, 우리의 삶이 힘없는 것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한 우리들이지만, 성령이 함께 하시면 군대를 이룰 것입니다. 십자가의 군병이 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8일 다니엘의 순교적 기도 성 경: 단6:1-28 (단6:1)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단6: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함이었더라 (단6: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단6:4)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단6:5)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단6:6)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6: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단6:8) 그런즉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단6:9)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6:11)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단6:12)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단6:13)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나이다 (단6:14)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단6:15)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단6:16)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단6:17)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단6:18)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단6:19)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단6:20)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단6:21)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단6:22)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단6:23)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단6:24)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단6:25)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단6: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 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단6: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단6:28)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
다니엘은 무엇보다도 도적적으로 깨끗한 인물임을 알수 있습니다. 요셉과 쌍벽을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도 국무총리 시절에도 변하지 않는 인격과 삶이었습니다. 그의 고결한 성품과 매력적인 인격은 모든 성도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고 어린 아니들에게까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니엘을 누구보다 단호하고 결단력있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일도 죽을 각오로 하면 안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기도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의 입을 봉하고, 원수들의 올무를 끊어 버렸습니다.
1. 시종일관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억울한 일을 당했어도 원수들을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왕 앞에 가서 애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이 함정이 빠진 줄을 알면서도 태연히 집으로 돌아 왔습 니다. 대항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혼자 탄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받아 들이려고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평생했는 데도 고난은 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기도했습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너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 '이라는 말을 왕이 두번이나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왕 앞에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왕과 모든 바벨론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의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는 기회였습니다.
2. 그의 기도는 규칙적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규칙적이었습니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했습니다. 원수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잡아서 자신을 제거하려는 사실을 알고도 그 기도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능력있는 믿음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규칙적을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 너무 깊이 물들고 빠져들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습관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세상에서 얻은 것들입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의 생활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그 어려운 시험을 이길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훈련된 기도와 신앙의 습관이 중요한 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다니엘은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방에는 예루살렘으로 향한 열린 창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에 보면 '하나님께 나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실 자임을 믿어야 할지니라(11:6)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향한 믿음의 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기도는 허공을 울리고 마는 공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를 드렸고,역사하는 기도를 드렸고, 기적을 일으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창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향한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한번 자신이 믿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닫혀진 창들을 활짝 여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29일 요나의 회개의 기도 성 경: 욘2:1-10 (욘2: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욘2:2)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욘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욘2: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욘2:5)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욘2: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욘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욘2:8)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 (욘2:10)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오늘은 요나의 고기 뱃속에서의 기도를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1.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처음에는 하나님이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워 기도를 잊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는 스올의 뱃속에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였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도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선지자였던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반대로 도망했던 것을 보면 우리 같은 범인들은 더 쉽게 하나님의 뜻을 거리릴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할 수 없습니다. 기도에서 떨어지면 풀랑을 만납니다. 기도의 줄을 놓치면 고기 뱃속처럼 어두운 사망의 골짜기로 들어 갈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절망 가운에 있으면 자신을 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줄을 놓치고 있지나 않은지.
2.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 왔습니다. 아니 이미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에 닥쳐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거역하려고 하는 사람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습니다. 요나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습니다. '고 고백합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할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요나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나요? 이리저리 하나님이 낯을 피해 볼려고 도망만 다니고 있지는 않은지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 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다시 찾아서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요나 한 사람으로 큰 성 니느웨를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실려고 하면 많은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다. 당시의 한나라의 수도였던 대도시 니느웨도 요령꾼이 요나 한사람을 통해서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요나와 같이 말썽꾼이고,요령을 피우고, 도망 다니기 좋아하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나를 이리저리 몰고, 이런 환경 저런 환경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이런저런 사람들을 통해서 인도 받게 하셔서 지금 우리 영월중앙교회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우리 영월중앙교회식구가 되어 기도하는 대열에 서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불타는 염원인 지역의 복음화와, 민족의 구원과 세계를 향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해도 좋습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약해도 좋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때에 나를 통해서 놀라운 역사는 일어 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0일 하박국의 부흥을 위한 기도 성 경: 합3:1-19 (합3:1)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합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합3: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3:5)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합3:6)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합3:7)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도다 (합3:8)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하수를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을 노여워 하심이니이까 바다를 대하여 성내심이니이까 (합3:9)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살을 바로 발하셨나이다(셀라) 주께서 하 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합3:10)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닷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 (합3:11) 주의 나는 살의 빛과 주의 번쩍이는 창의 광채로 인하여 해와 달이 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합3:12) 주께서 노를 발하사 땅에 돌리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합3:13)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 (셀라) (합3:14) 그들이 회리바람처럼 이르러 나를 흩으려 하며 가만히 가난한 자 삼키기를 즐거워하나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합3:15) 주께서 말을 타시고 바다 곧 큰 물의 파도를 밟으셨나이다 (합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바국 선지자는 B.C 600년경 살았던 유다 사람으로 그 때의 유다 나라의 내부적인 타락과 쇠퇴를 보고, 또 외부적으로는 바벨론 나라가 점점 강해지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다를 위협하게 되자 하나님께 걱정하며 기도했습니다. 이런 죄악의 어두운 시대에 그 유명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는 유명한 말을 남긴 확신에 찬 선지자였습니다.
1. 하박국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내부적으로 부패하고, 바벨론의 침략이 임박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있던 하바국은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는 모습을 기도 중에 보게 됩니다. 그 분은 거룩한 분이시고, 그의 영광이 온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새벽 시간에 고요히 기도하는 중에 우리를 향해서 닥아 오시는 하나님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영광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절박한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크더라도 하나님이 오시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2. 하박국은 하나님이 일어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앞드러지나니....,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일어 서셨습니다. 우리을 도우려고 일어서 계십니다. 우리를 침략하는 원수들을 치시기 위해서 서 계시고,우리를 지키시기 위해서 일어서서 기다리십니다.
3. 하박국은 진군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노를 발하자 땅에 둘리 셨으며, 분을 내사 열국을 밟으셨나이다. '고 하셨습니다. 강한 군대처럼 진군하시며, 열국에 위엄을 보이시고, 대적을 그 발아래 밟으시는 하나님을 이 아침에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벨론도, 애굽도, 로마도 이 진군하시는 하나님의 발길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의 군대를 물속에 장사지내고, 미디안의 수십만의 군대를 하루에 멸하시며, 불레셋을 단숨에 불태워 버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오늘도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바국은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그의 영광을 보고,그의 능력을 보면서 심장이 뛰고 입술이 떨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립 니다.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할렐루야!!
우리도 하바국의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배부르고,농사가 잘되고, 장사가 번창하고,자식이 잘 되어서 기뻐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바국처럼, 없을 때에도,실패했을 때에도,고난 중에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요,능력이시기 때문에 그 분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고, 그 분만으로 우리는 기뻐하며,찬송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1일 학개의 성전건축의 기도 성 경: 학2:1-19 (학2:1) 칠월 곧 그 달 이십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2: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학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학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10) 다리오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2: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학2: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2: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학2: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학2:15)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학2:16)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 (학2: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학2:18)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학2:19)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 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시고, 은혜를 한없이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성전을 재건하라 '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의 재건보다는 자기들의 의식주 해결에 급급하여 15년이 넘도록 성전 재건을 완공하지 못하고 중단한채로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노구(로구)의 학개 선지자는 불같은 메세지를 선포합니다.
1. 너희는 자기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여호와의 전은 황폐하였는데,너희 집은 화려하고,안락한 곳에 거하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일에는 무척이나 빠르지만,하나님의 전을 위해서는 전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고 책망합니다. 이것은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렇게 우리의 심령의 상태와 흡사합니까? 그들의 영혼은 무딜대로 무뎌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은 핑계를 잘 찾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대한 열정과 사모하는 심령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2. 수고해도 거둘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않으며,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구멍이 뚫어진 전대에 넣음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서는 이슬이 그치고, 재난이 모든 곡물과 소산과 육축에 미치겠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 자신의 집과 자신의 물질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오는 쟁앙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은 결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헛걸음을 하다고 죽어 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 와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되찾아야 합니다. 처음의 열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처음 행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3.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처럼 많은 금은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백향목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주변의 산에 올라가 목재를 구해오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가난과 궁핍함이 성전을 짓는데 전혀 걸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얼마나 많이 드렸느냐를 보시지 않고, 얼마나 정성을 드렸느냐?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렸느냐를 보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으면, 산으로 뛰어가서라도 나무라도 잘라 올 것입니다. 그것도 안되면, 흙이라도 파다가 벽돌을 찍을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강가에 모래로 벽돌을 찍어서 교회를 지어보았습니다. 장마 때가 되면 별돌을 떠내려 보내지 않으려고 비를 맞으면 강 뚝으로 꺼내느라고 밤을 새운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영월중앙교회 가족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렸습니까? 하나님의 전을 위해서 얼마나 가슴이 뜨겁습니까? 회개하는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2일 저주를 물리치는 축복의기도 성 경: 말3:7-12 (말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말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말3: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바벨론으로부터 귀한한지 100여년이 지날 즈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식주의,십일조와 제물에 대한 속임수, 율법에 대한 무지, 성령에 대한 무감각에 깊이 빠졌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세지를 선포하면서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케 되었으며,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망각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 앞으로 돌아 올 것을 선포합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는 돌아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열조의 날과 여호와의 규례를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나고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길을 잃은 나그네,군문에서 이탈한 군인, 남편에게서 도망한 여인과 같은 이스라엘이라 할찌라고 여호와는 '내게로 돌아오라 '고 부르며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지나온 인생길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습니까? 그래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라 '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사하며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돌아오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 했다 '고 말씀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하기를 '어떻게 우리가 당신의 것을 도적질 할수 있습니까? '고 반문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 '을 도적질 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게 봉헌된 것을 도적질 했으며, 그이 예배에 써야 할 것들을 도적질 했꼬, 그에게 드려야 할 안식일을 도적질 했고,자기들의 재산 중에 마땅히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훔쳤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고, 하나님이 제물로 드리지 못할 부적합한 동물들, 팔아도 돈이 되지 않을 것을 형식적으로 성전에 가져와 드렸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럴듯하게 보이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율법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속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기근과 궁핍함과 불순한 기후로 또는 땅의 소산물을 먹어 치우는 곤충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이스라엘에게 임했습니다.
3.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서 어찌할바를 모르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먼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시험하여 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문을 연다 는 말은 갑작스럽고,풍성한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보화가 가득한 창고의 문을 열고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이러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총의 풍성함을 맛보아야 합니다.
영월중앙교회의 새벽기도 용사여러분! 십일조를 온전히 드립시다.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립시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3일 성전봉사자들의 감격의기도 성 경: 시84:1-12 (시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84:3) 나의 왕,나의 하나님,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84: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시84: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시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 시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백성들을 부러워하며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건절한 마음이 표현된 기도요, 찬송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을 사모하는 백성들 사이의 긴밀한 교제를 사모하는 영혼의 부르짖음입니다. 이 고라자손들의 사모와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기도와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주의 성전에 거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 왜 여호와의 장막이 아름답습니까? 왜 그토록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합니까? 왜 육체와 마음이 성전을 향하여 간절히 열렸습니까? 성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교회를 뜨겁게 하모하고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왔다갔다하면 무감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모하는 열심때문에 뛰어서 오고, 자동차를 타도,한시라도 빨리 가서 하나님을 뵈올 기대로 더딘것 같은 그런 간절함을 가지고 주의 전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제단에 엎드릴 때에 여러분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흐를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에, 여러분의 가슴에 기쁨의 찬양이 터질 것입니다.
2. 주의 성전을 향한 순례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5절에 보면,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들은 복이 있나이다. ' 주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고, 주님 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이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주님이 견고한 팔로 붙잡아 주시고, 안전하도록 지켜 주시며, 축복의 대로를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예배 드리고 찬양하는 시간과 절기를 잘 지키고, 그 것도 부족해서 더 열심히 찾아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새힘을 주실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해서 달려 가는 사람에게 복이 됩니까? 여호와의 전에는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해요,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밝은 길로 인도하시고,모든 환난과 고통 중에서 건져 주시고 넘치는 은혜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10)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신앙고백이 있습니다. 하루를 주의 전에서 주의 은혜가운데 사는 것이, 세상에서 천날을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전의 문지기가 되겠다고 하는 신앙이 있습니까? 뜨겁게,뜨겁게 주의 전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4일 백부장의 믿음의 기도 성 경: 마8:5-13 (마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8:6)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8:7) 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이제까지는 구약에 나오는 성도들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부터는 신약의 기도의 사라들을 찾아 보면서 더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백부장을 선택했습니다. 하인의 중풍병을 가지고 주님께 나와서 고침을 받은 그의 믿음을 우리의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백부장은 신실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은 군대의 중추적인 인물입니다. 로마의 군대는 한군단이 6000명입니다. 이것은 60개의 100인대로 나눕니다. 이 100인대의 책임자가 백부장입니다. 실제적인 군대의 전투나 모든 작전은 이 백부장의 지휘와 책임아래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권한과 힘이 이들에게는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종을 '생명이 있는 노예요, 물건은 생명이 없는 노예 '라고 하던 시대입니다. 한낮 보잘 것 없는 이 종을 위해서 유대인인 예수님에게 나와서 간청하는 백부장의 모습은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백부장이 이렇게 노예 한 사람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 것은 우연이나,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 7장을 보면 똑 같은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대인의 장로들이 백부장을 칭찬하기를 '주여 이 종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고 했습니다. 평소에 그는 명령과 권세를 가지고 억누를수 있는 유대인들을 사랑하고,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는 칭찬 듣는 사람이었고,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베풀며,사랑하며 살았던 백부장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로부터 보상을 받고 칭찬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도,봉사도 갑자기 할려면 안되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렇게 사는 사람이 주님이 오실 때에도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로 부터도 상급을 받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주님 뜻대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2. 백부장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와서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쾌히 승낙하고 집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여, 내 집에 들어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났겠나이다. '고 말합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이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놀라고 감탄했다는 뜻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예수님이 놀랄만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백부장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을 본 받아야 할 것입니다.
3. 백부장의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 예수님이 백부장의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모든 일들을 원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아끼지 않고 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는 무한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제한적입니다. 우리들의 믿은 만큼 하나님은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더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시간에 큰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우리는 역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5일 은혜입은 여인의 순종 의기도 성 경: 눅1:26-38 (눅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눅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눅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눅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눅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1:32)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눅1:33)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눅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1:35)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1: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눅1: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1:38)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저는 본문을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았습니다. 갈릴리의 나사렛은 레바논 산맥의 최남단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한가한 시골 풍경과 거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순진한 처녀 마리아와 하나님의 사자인 가브리엘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정경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과의 만남과 대화가 더욱 정감을 느끼게 해 줍니다.
1. 은혜 입은 여인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여인이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모친 엘리사벳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는 더더욱 은혜를 입은 여인입니다. 왕중의 왕, 만와의 왕을 잉태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선택된 그릇이 되었습 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이것은 마리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믿음과 더 위대한 무엇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이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보면서 죄악 가운데 깊이 빠져 있는 나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알지 못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로 삼으시지 않았다면,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2. 목숨걸고 순종하는 마리아의 믿음이 아름답습니다. 순종은 손해가 되더라도 해야 축복이 됩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이유와 조건이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뽑혀진 마당에 순종의 고백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혀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위대한 점은 바로 이 순종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할수 있는 방법도 순종 뿐입니다. 그래서 얼마만큼 순종하느냐가 얼마만한 축복과 승리의 삶을 살수 있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큰 축복에는 큰 순종이 따르게 됩니다.
3.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셉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알수없는 수많은 진리와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보화가 가득합니다. 성경66권이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비주의자가 되어 신비한 무엇을 찾아서 헤메는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고 잘 못되기가 쉽습니다. 말씀 안에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믿음이 어려서는 보고 믿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따라가면 교만하기 쉽고,잘못 보기가 쉽습니다. 45절에 보면 '믿는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고 말씀합니다. 요 20:29절에도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주시는 말씀 그 자체를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4. 성령충만한 사람들의 믿음의 교제는 참 아름답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나 빠리 산중 유다 동네에 이르러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납니다. 믿음의 교제를 나누기 위한 빠른 발걸음입니다. 마리아의 발걸음이 빠른 것은 의심을 확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성령의 교제를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서 믿음의 확증과 소망의 격려를 받게 됩니다. 좋은 선생이 있는 반은 은혜가 풍성합니다. 좋은 속장이 있는 속회는 삽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섞여 있으면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나누어 주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 집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6일 성령충만을 받은120문도 기도 성 경: 행1:6-14 (행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 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행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요한,야고보, 안드레와 빌립,도마와 바돌로매,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셀롯인 시몬,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수억원짜리 기계가 있어도 전기 코드를 꽂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반 동안 이 땅에 오셔서 남겨 놓으신 것이 있다면 12제자를 가르치시고 훈련 시키신 일입니다.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를 보십시요. 아주 좋은 기계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그는 배를 버려두고,그물도 버리고 가족을 버리고 단숨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3년반동안 주님을 쫑으면서 매사에 앞장을 섰습니다. 수많은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이적의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죽은자를 살리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하시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천국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해야 한다는 사명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때까지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은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리러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제자들은 아직도 땅에 속했고,육신에 속했고,자기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성령의 충만함이 필요했습니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구하지 않아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매달려 구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명령을 믿고,매달려 간구해서 성령충만을 받은 120문도들처럼 기도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12:4-10절을 보면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또 갈라디아서 5:2-23절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이것을 구분하면, 하나님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이웃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 자신을 위한 3가지 은사와 열매라 고 할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 구해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주 좋은 축복이요, 은혜인데도 우리는 그 것을 외우지도 못합니다. 그것을 달라고 매일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좋은 것을 입에 늘 달고 다니며, 늘 마음 속에 묵상하며 살았다면, 눈을 감고도 줄줄 외웠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시간마다 기도하며,은사와 능력을 받아 주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7일 스데반의 마지막 기도 성 경: 행7:54-60 (행7: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행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7:58)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행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 아침에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청년 스데반집사데 대해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스데반은 첫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천국에 가면 순교자의 상이 가장 큽니다. 마태복음 5장 말씀 중에도 마지막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르려 모든 악을 말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두다 목사나 선교사는 될수 없어도, 순교자는 될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첫번째 순교의 열매를 맺은 것도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터툴리안이라는 교부의 어록에 보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순교의 피는 예루살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피의 씨는 바울이 결신하는 결신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스데반은 죽었지만, 바울을 통해서 로마가 복음화 되고, 유럽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 온세계에 복음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2. 스데반 집사는 말씀충만, 성령충만했습니다. 순교자는 나의 힘이나,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야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위해서 생명도 드릴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의 생활을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담대한 용기와 능력을 주십니다.
3. 성도는 끝을 잘 맺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달려 가다가도 노년에 끝맺음을 잘못하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병들어 죽고,사고로 죽고,늙어서 죽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영광스러운 죽음일수도 있고, 비참한 죽음일수도 있습니다. 스데반은 이름없이 살았지만,그의 마지막 죽음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신앙의 사람이었고,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고, 얼마나 순종의 사람이었나가 증명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언제나 환난날에 드러납니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떠뜰썩한 것은 가짜이기가 쉽습니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서 요란을 떠는 것일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믿음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어디를 향해서 달려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지막은 어떻게 마쳐질까요? 한번 깊이 생각하면 나의 마지막을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 6차 40일 새벽 기도학교 제38일 안디옥교회의 기도(선교사파송) 사도행전 13:1-3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이제 40일 기도가 끝나가는 무렵에 안디옥 교회를 우리가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게 된 것은 뜻깊은 일입니다. 저는 우리 영월중앙교회교회가 본 받을 교회가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교회들 중에서 안디옥 교회라고 봅니다. 그렇게 제가 마음 속에 그려보고 기도하며, 또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안디옥교회에 대해서 자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려고 계획 중입니다. 왜 안디옥 교회를 그렇게 본받을려고 합니까? 안디옥교회는 당시에 대단히 큰도시였습니다. 세계의 3대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인구가 400만의 로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그 다음이 인구 50만의 안디옥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안디옥은 수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신전과 예술품과 사치한 물건들로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타락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도십니다. 우상으로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스데반집사를 비롯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안디옥이 골리앗이라면, 피난온 크리스챤들은 소년 다윗과 같이 아직 연약하고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성냥불이 큰 산을 태우듯이 이 안디옥교회는 로마와 온 유럽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만일 안디옥교회가 세워지지 않았다면,예루살렘과 그 밖의 가난하고 다툼이나 일삼는 교회들을 가지고 세계 복음화가 언제 이루어졌을지 모릅니다.
1. 안디옥 교회는 앞서가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선구자적인 일을 다한 교회였습니다. 환난 속에서 자기 신앙을 지키기가 힘들어 할 때에, 이들은 선교를 시작했고, 많은 인재를 길러 내었고, 전도자들과 목회자들을 힘써서 도왔습니다. 기도로 돕고,물질로 돕고,사람을 보내서 도왔습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좋은 일꾼들이 모였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의 대선배로 덕망있고,신앙이 좋은 일꾼입니다. 바울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사도들과 교회에 소개한 사람입 니다. 그 이름은 권위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헌신과 사랑과 믿음으로 사람들이 따르며, 하나 되게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땅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가난한 사람,종들,멀리서 온 흑인들과도 어울리면서 화합을 이루었고,또 고위층.상류층 사람들과도 교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바울의 건강을 염려하여 감옥에도 같이 가는 헌신적인 봉사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존경받고,권위가 있었지만, 자신의 분수를 지키고,사도들을 잘 받들었고, 모범적으로 일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3. 안디옥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영력있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의 교회들은 많은 사업을 하고, 많은 일들을 벌입니다만, 그러나 기도하는 열심은 점점 식어져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교회의 힘은 기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