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 부럽지 않은 한강에 흐르는 낭만
◆다리 밑에 숨은 보물창고파리의 다리들을 두 발로 꼼꼼히 건너보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됐다. 파리 중심을 관통하는 센 강에 대한 찬사는 어쩌면 센 강 위에 놓인 수많은 다리들에 대한 예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파리의 다리는 미인 대회에 출전한 미녀들처럼 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센 강 위에 그럴싸하게 서 있다.
파리의 다리 위에선 에펠탑이 늘 아이맥스 극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처럼 훤히 내다보인다. 어떤 다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느낌도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에펠탑은 케이크 위에 세워진 미니어처처럼 앙증맞고, 어떤 에펠탑은 전쟁에서 막 귀환한 개선장군처럼 우람하다. 모든 풍경이 다 볼 만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멋진 다리 위 풍경을 꼽으라면 비라켕(Pont Bir Hakeim) 다리에서 바라본 에펠탑의 풍경을 꼽고 싶다.
- ▲ 파리 비라켕 다리. / 황희연
비라켕 다리가 특별한 이유는 또 하나, 이곳에 근사한 파리의 비밀 아지트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비라켕 다리 근처에 있는 작은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아지트의 입구가 조용히 자태를 드러낸다. '백조의 섬(Ile des Cygnes)' 혹은 '백조의 작은 길(Allee des Cygnes)'이라 불리는 아담하고 예쁜 인공 섬 산책로다.
◆한강 다리 위에서 낭만을
이처럼 파리의 인도교를 따라 낭만적인 걷기 여행을 다니다 보면 문득 한강의 크고 넓은 풍모가 원망스러워지는 것도 사실. 파리의 센 강은 보통 걸어가기 알맞게 아담한 폭을 자랑하지만, 우리나라의 한강은 걸어가려면 족히 30분은 잡아야 할 만큼 크고 넓게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강에는 오랫동안 걷기 좋은 다리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걸을 수 있는 다리가 거의 없던 한강에 걷기 좋은 다리가 생겼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 광나루 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다리 '광진교'다. 한강대교와 더불어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다리 중 하나였던 광진교가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해체 수순을 밟은 것은 1994년의 일.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2003년 11월, 역사적인 다리 광진교가 환골탈태해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새롭게 세워진 광진교에는 한강 다리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자전거 전용도로와 한강 전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돌출 전망대가 생겼다. 다리 중간에 벤치도 있고, 심지어 화장실도 마련돼 있다. 볼일이 급하지 않더라도 이곳 화장실만큼은 이용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한강변을 향해 나있는 창문의 전망이 호텔 전망대 못지않게 근사하기 때문.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한강 다리를 건너다보면 한강의 아름다움에 새삼 놀라게 된다. 경치 좋은 아차산 자락과 현대적인 워커힐 호텔, 횃불 문양의 올림픽대교까지, 파리 에펠탑이 부럽지 않은 절경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 ▲ 2003년 다시 완공된 광진교. 한강 전경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교각 하부전망대‘리버뷰 8번가’는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오른쪽 사진)도 있다. / 영상미디어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유럽의 걷기 좋은 다리들에 반해 작은 강이 최고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한강의 걷기 좋은 다리는 새로운 반전의 역사를 선포해준다. 한강은 작고 아담해서가 아니라 크고 넓기 때문에 훨씬 볼 게 많은 곳. 그 역사적인 현장이 바로 천호동 '광진교'다.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에서 광진청소년회관을 끼고 우회전한 후 100m정도 걸으면 바로 광진교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리버뷰 8번가까지는 약 500m. 지하철 5,8호선 천호역 2번 출구에서 300m직진한 후 한국투자증권을 끼고 좌회전을 해도 광진교 진입이 가능하다. 자동차로 간다면 광나루 한강공원에 차를 주차(소형차 기준 1시간 1,600원)한 후 광진교를 둘러보는 것이 편하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광진교 진입이 가능한 자전거 도로가 있다. 이곳에서 리버뷰 8번가까지는 걸어서 15분가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