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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대한민국 / 21세기 新고전 50권 [2] |
밀란 쿤데라의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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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이다. 1967년에 체코에서 발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장편이 실제로 탈고된 것은 1965년 12월의 일이다. 공산주의 체제 이후 20년간의 사회 상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실주의 소설이란 비평적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7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네 사람의 화자가 등장해 작품이 진행되며 넓은 의미의 모더니즘 소설이라 하는 편이 적절하다.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벽돌공의 아들인 루드빅은 혁명에 동참한 첫 세대이다. 스무 살 대학생인 그는 한 살 아래인 마르케타와 친구 사이면서 그녀를 좋아한다. 그런데 마르케타는 방학 때 당의 교육 연수에 참여하게 된다. 단둘이 프라하에 남아서 그녀와의 관계를 진척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루드빅에게는 실망이었다. 농담을 이해 못하고 매사에 진지한 마르케타는 연수에 열심이었고 건전한 분위기가 연수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서양에서 혁명은 이제 지척에 와 있다고 적어 보낸다. 농담을 즐기는 루드빅은 그녀에게 농담조의 엽서를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이 엽서가 빌미가 되어 루드빅은 당에서 제명되고 학업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죄과를 시인하면 끝까지 곁에 있어 주겠다는 마르케타의 제의를 거절한 루드빅은 그녀마저도 잃게 된다. 군에 소집되어 정치범임을 알리는 표지를 달고 광산 작업에 동원된다. 군복무 중 그는 루치에란 여성을 열렬히 탐하지만 성적 접근을 거부당한다. 루치에와의 만남의 모티브는 작품에서 숨 막히는 박진감으로 처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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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후 루드빅은 자기를 제명한 회의의 의장이었던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한다. 그러나 유혹에 성공한 후 그녀가 남편과 사실상 결별 상태라는 것을 알고 다시 고배를 마시게 된다. 결별을 선고받은 헬레나는 시위성 자살 소동을 벌이는데 변비약을 먹고 변기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라블레적인 웃음을 촉발한다. 모라비아 지방의 민속음악 연주 장면으로 소설은 끝나고, 루드빅은 ‘증오의 대상 제마넥을 쓰러뜨리려는 것을 목표로 했던 이 귀향이 결국은 땅에 쓰러진 내 친구를 두 팔에 안고 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전율하였다’.
첫 번째 프랑스어판이 나왔을 때 루이 아라공은 이 책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라고 격찬하였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의 규탄이라는 반응에 대해서 쿤데라는 ‘농담’은 사랑의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묘지에서 꽃을 훔쳐 애인에게 선물로 준 소녀를 체포한 실제 사건에 영향을 받아 작품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신랄한 규탄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현상학이라고 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설은 본시 아이러니의 예술이어서 진실이 은폐되어 있다는 쿤데라의 소설관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빈번해지는 짤막한 ‘소설적 사고’도 이 책의 중요한 매력이다. 쿤데라의 또 다른 대표작들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불멸’의 매력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특히 주제나 기법 면에서 ‘농담’은 20세기만이 생산할 수 있는 20세기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 영문학
밀란 쿤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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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최대의 소설가들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 한 소설가에 대한 상찬으로서 이보다 더한 것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상찬의 대상은 유럽의 변방 체코슬로바키아의 무명 작가에 불과했던 밀란 쿤데라. 그의 첫 작품 <농담>의 불역판 서문에서 프랑스의 아라공은 이처럼 희대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밀란 쿤데라는 체코에서 태어나 46세까지 체코에서 살았으나, 고국에서 출간된 그의 작품은 두 편뿐.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 이후 그 자신은 프라하 영화학교 교수 자리에서 ?겨났고, 그의 분신 같은 소설들은 도서관에서 추방되었다. 고국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쿤데라는 세번째 작품 <생은 다른 곳에>를 해외에서 출간했고, 이 작품으로 1973년에 메디치 상 외국작품 부문을 수상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쿤데라가 체코를 떠난 것이 1975년. 프랑스 렌느 대학에서 그에게 교환 교수 자리를 제의하자, 그와 아내는 트렁크 몇 개, 책 몇 상자만 달랑 챙겨 자동차에 싣고 체코와 작별했다. 프랑스의 시골 생활을 만끽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 후 1978년 파리에 정착. 1981년 정권 교체로 대통령이 된 사회당 미테랑 정권이 그에게 프랑스 국적을 허가했다. 이미 1979년 <웃음과 망각의 책>으로 체코 국적을 상실한 후의 일이었다. 밀란 쿤데라 소설의 화두는 애매함, 패러독스, 우연 같은 것들이다. 그는, 소설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파악하는 실제의 세계는 수수께끼와 패러독스가 넘쳐나는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단언과 확신의 과잉 속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 비극의 원천이다. 이 수많은 단언들을 질문으로, 의문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 쿤데라의 문학이다. 인간이 스스로 그 존재의 가벼움을 깨우치고 겸허히 세상을 대할 때 우리는 보다 행복한 세상에서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인간의 속물성과 운명의 짓궂음을 극단까지 파고들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과 세상살이의 어려움을 너그럽게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와 무라카미 하루키 다음으로 많은 저서들이 번역된 작가다. |
책읽는 대한민국 / 21세기 新고전 50권 [4] |
니코스 카잔차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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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수가 작은 옷을 입은 것처럼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 단 한 벌뿐인 인생이 싸구려 기성품처럼 여겨질 때, 마음의 지퍼를 열어 꽉 졸라맨 감정을 해방시키고 싶을 때, 독자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걸작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라.
빼어난 고전들을 단숨에 제쳐 두고 이 책을 강력 추천하는 까닭이 있다. 바로 주인공 조르바가 현대인들의 신흥 종교인 참살이(웰빙)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영혼을 지녔으며, 천연의 감정을 들판에 방목해 인생을 살찌운 건강형의 표본이다.
이른바 조르바형 인간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파격적인 인생관을 제시한 그! 그렇다면 조르바식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책장을 펼쳐 보자.
‘확대경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면 벌레가 우글거려요. 자, 흉측한 벌레 때문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혹은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쪽 손가락이 자꾸 거치적거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도끼를 내리쳐 잘라버렸어요.’
자신의 욕망에 걸림돌이 된다면, 설령 소중한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잘라버리는 인간! 즉 본능에 채워진 족쇄를 자유롭게 풀어버린 사람이 곧 조르바형 인간인 것이다.
책에는 조르바와 대조되는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조르바가 ‘두목’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그는 정신을 육체보다 우위에 두는 지식인의 전형이다. 그는 이성으로 재단한 인생만이 진실한 삶이라고 여긴 나머지 퇴화된 본능과 감각을 복원시킬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진화된 그의 육신에도 원시형 인간이 둥지를 틀고 있었던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다. ‘나는 조르바가 부러웠다. 내가 펜과 잉크를 통해 배우려 했던 것을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주인공의 뼈아픈 탄식은 책을 읽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염된다.
대체 왜 우리는 조르바처럼 삶에 다걸기(올인)하지 못하는 것일까? 바로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조차 모르는 인생 맹(盲)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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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무도 익숙해서 혹은 너무 쉽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을 전혀 공부하지 않는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가 바라는 삶이 진짜 인생이라고 철석같이 믿으며 허깨비 삶을 살아간다. 여기 조르바식 삶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또 하나의 삶이 있어 독자에게 소개한다.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에 나오는 주인공의 삶이다.
부유한 미남에 아름다운 애인까지 생긴 청년에게 끔찍한 불행이 닥친다. 청년은 처참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흉측한 몰골로 변했건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실을 거부한 채, 자신의 실체를 직시하는 용기 대신 허구의 인생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조르바식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
너무나 친숙해서 오히려 낯선 내면의 자아와 친해지기, 병든 혈관에 자연의 생명력을 수혈하기, 간절히 원한다면 뜸들이지 않고 즉각 행동하기. 이것이 바로 조르바형 인간으로 변신하는 비결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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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니코스 카잔차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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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크레타 섬 이라클레이온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는 터키의 지배 아래 어린시절을 보내며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 전쟁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그는 자유와 자기 해방을 얻기 위한 3단계 투쟁을 계획하였다. 1단계 투쟁은 압제자 터키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이는 크레타가 해방을 맞는 순간 2단계 투쟁으로 발전했다. 즉, 인간 내부의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3단계에서는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들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만끽하고자 했다. 이처럼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호메로스와 베르그송, 니체를 거쳐 부처, 조르바에 이르기까지 사상적 영향을 고루 받았다. 그리스의 민족 시인 호메로스에 뿌리를 둔 그는 1902년 아테네의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났다. 이를 통해 그는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닫는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경화된 메카니즘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를 창출하려 한 앙리 베르그송과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초인'으로서 완성될 것을 주장한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또한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아울러 절대 자유를 누리자는 불교의 사상은 그의 3단계 투쟁 중 마지막 단계를 성립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오랜 영혼의 편력과 투쟁은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의 대표작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1951년, 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다른 작품들로는 <오뒷세이아>,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 <성 프란치스코>, <영혼의 자서전>, <동족 상잔>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