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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BC 4000년 이전의 선사 유적도 많으나 이란고원에 최초로 건국한 나라는 에크바타나(지금의 하마단)를 수도로 한 메디나왕국(BC8∼BC6세기 중기)이다. 이것이 그 후 파르스지방에서 일어난 아케메네스왕조의 페르시아로서 고대제국으로는 강대한 세력을 누렸다. 그러나 BC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東征)으로 아케메네스왕조도 멸망하고, 그 후 셀레우코스왕조, 파르티아제국을 거쳐, AD3세기 초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아케메네스왕조의 영화를 이은 사산왕조도 651년 아랍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다. 그 후 이란은 정치적으로 아랍에게 지배당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아랍의 영향을 받아 이란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파할레비 문자 대신 아라비아 문자가, 조로아스터교(拜火敎) 대신 이슬람교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9세기에는 한때 사파르왕조, 사만왕조가 일어났으나, 11세기부터는 투르크계의 셀주크왕조, 몽골계의 일한국(汗國), 티무르제국(帝國) 등의 지배가 계속되었으며 1502년 사파비왕조가 일어나서 강력한 이란민족국가가 부활되었다. 당시의 수도 이스파한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만큼 크게 번영을 누렸다. 18세기 후반부터는 투르크멘인을 지배자로 하는 카자르왕조가 창건되어 수도를 테헤란으로 옮겼다. 19세기 초 카자르왕조시대의 후반에는 러시아의 압박에 굴하였고, 1857년 아프가니스탄 문제로 영국과 싸워 패하였다. 대외적인 패전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는 전제정치를 강행했으므로 1906년 국민은 이에 반발, 헌법 제정과 국회 개최를 요구·실행케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국토는 싸움터로 변하였다. 20세기 초 이란에 진출하고자 하는 영국, 러시아에 눌려 반식민국가의 상태를 면치 못하였다. 1918년 페르시아-영국조약으로 영국보호령이 되었으며, 이에 항거하여 이란 카자크 병단(兵團)의 대장(隊長) 레자한은 무력 정치개혁을 일으켜 카자르왕조를 무너뜨리고 1925년 스스로 레자샤라 자칭하고, 팔레비왕조의 기초를 닦았다. 레자샤는 중앙집권제를 실시하는 한편, 치외법권의 철폐, 철도의 부설, 여성의 차도르 착용 금지 등 후진성 탈피에 노력하였다. 또한 각종 불평등조약을 폐기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는 한편,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동맹하여 유럽세력 배제를 위한 투쟁을 펴고, 1935년에는 국호를 이란으로 선언하였다. 1941년 부제(父帝)의 퇴위로 즉위한 무하마드 레자샤는 석유 수입의 증대를 배경으로 하여 1963년 농지개혁, 문맹퇴치, 중립과 석유외교, 여성참정권 등을 골자로 하는 ‘백색혁명"을 단행하였다. 1973년 제5차 5개년경제계획 시행 중 석유, ·중공업에 치우친 나머지 보수 시아파의 반(反)팔레비투쟁의 격화로 1979년 1월 팔레비는 이집트로 망명하였고, 반정부 이슬람교혁명을 주도한 호메이니는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공화국 수립을 선언함으로써 실질적 지도자로 군림했다. 1980년 9월 샤트알아랍수로와 아트그섬 영유권을 둘러싸고 이라크와 8년간의 전쟁을 치르었으며, 그 결과 국제적인 고립과 막대한 인적·물적·경제적인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전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함께 1989년 호메이니의 사망으로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계승하고, 라프산자니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전후복구 및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실용주의 정책을 채택하였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이 취임하에서도 역시 경제난 회복을 위한 개방, 개혁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
이란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중간지대에 위치하여 동서문명(Silk Road)의 가교역할을 했으며, 북방 유목민족 문화와 유사성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인더스-메소포타미아 문명을 흡수, 복합문화를 형성한 세계성을 지녔다. 복합민족국가로서 인종의 다양성에도 불구, 인구의 90% 이상이 열두이맘파의 시아파 이슬람을 신앙하고 있어 이러한 종교적 연대에 의해 국가의 단일성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단일성 때문에 셀주크투르크, 몽골 등 이민족지배에도 동화되지 않았다. 회교 이전의 페르시아적인 조로아스터교, 노루즈(Nou Roz) 등 고유문화도 회교 문화속에 융해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회교혁명후 국민생활의 이슬람화가 촉진되었으며, 금요기도회는 종교행사인 동시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일체감과 정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아파 최대 종교행사는 아슈라(Ashura)로서 전국가적인 애도 분위기가 된다.(3대 이만 후세인Imam Hussein이 전장에서 순교한 날). 라마단(금식월)을 준수하고, 매년 Hajj기간중 8-9만 명의 순례객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성지를 방문한다. 이슬람 율법(Islamic Code)은 특히, 남녀의 유별성을 강조한다. 식생활은 유목, 촌락생활에서 유래한 것이 많으며, 날 것이나 비늘없는 해산물(뱀장어, 조개 등)을 먹지 않으나, 새우는 비늘이 없으나 좋아한다. 돼지고기, 개고기는 금기시 되어 있다. 이란인들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훼르도우시(Ferdowsi), 사디(Sadi), 하페즈(Hafez) 등 뛰어난 시인의 작품 싯귀절을 일상생활에 되새기고 있으며, 이들을 민족적 영웅으로 숭상한다. 이슬람 문명과 회교혁명에 따른 문화, 사회생활은 1997년 8월 카타미(Khatami) 신정부의 "문명간 대화" 통한 개혁, 개방정책에 따라, 개방화가 계속되고 있다. |
1.비자 이란 대사관에서는 보통 7일짜리 Transit Visa 를 줍니다. 한국내 이란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게 되면 비자 발급 비용은 3만 6천원, 비자가 나오는 기간은 2주 - 신청일로부터 2주후에 확인 전화를해야합니다.필요한 서류는 신청서 두장, 사진 두장, 1개월짜리 관광비자(유효기간 3개월)를 받게됩니다. (단, 미혼여성에게는 관광비자를 내주지 않는답니다.) 국외의 이란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다면 터어키나 시리아, 파키스탄, 인도에서 받아야 되는데 파키스탄은 비자를 언제 받게 될지 확실치않습니다. 인도에서 받게되면 일주일이 걸리고 비자는 7일짜리 Transit Visa입니다. (인도비자는 파키스탄에서 일주일이 걸리구요. 3개월짜리 복수비자입니다) 터어키에서 받는다면 이스탄불, 앙카라, 트라브존에서 받을 수 있는데, 가장 좋은 곳은 이스탄불입니다. 별다른 말도 없고 대사관 편지도 필요없죠. 기간은 대략 일주일이 걸립니다이란 영사관은 "탁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비자는 30일짜리입니다. 2.출입국 Dogubeyazit에서 미니버스가 Agli Ili까지 운행한다. 요금은 흥정할 것. 터어키에서 이란으로 국경을 넘으면 여자는 "룻싸리"(머리에 쓰는 스카프 종류 ; "차도르"는 온 몸에 두르는 천을 말한다)를 써야 하고 남자는 반바지를 입을 수 없다. Iran - Turkey 의 경우 Tabriz에서 Maku로 버스가 운행. 거의 7 - 8 시간이 걸린다. Maku에서 Bazargan까지는 미니 버스 운행. 국경에 들어서기 전에 남은 이란돈을 터키돈으로 환전하는 것이 좋다. 내내 변변한 화장실 하나 없던 이란과 달리 터어키에서는 제법 깨끗한 화장실에 입장료까지 받으니 잔돈을 미리 준비하자. 터어키에서 이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Dogubeyazit버스정류소에서 Minibus를 타고 가면 Agli Ili-Bazargan의 Gurbulak국경이 나온다. 근처에 폐허가 된 집들이 보이며 약 1km가량 걸어올라가면 터어키측 국경사무소가 나온다. 그리고 커다란 콘테이너 트럭들이 많이 보인다. 그곳에서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고 나와 이란 측 국경 사무소의 조그만 창구에 여권을 주고 기다리면 좀 시간이 지난 후 이름을 불러준다. (이란의 국경을 통과하기위해서는 거대한 철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하는데, 그 큰 문은 차량이 지나가는 것이고 그 문 한쪽에 달린 조그만 문으로 사람이 지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갈려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여권을 주면서 간단한 질문(뭐하러 왔냐? 어디로 갈꺼냐? 돈은 있냐? 등등)을 한다. 역시 간단하게 대답을 하고나면 배낭을 메고 밝은 밖으로 나오면 이란이다. 이란 입국시 $1000 이상을 가지고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는데 암말 안해도 상관없다. 검사 안한다. Gurbulak국경은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이란도시 Maku가 아래쪽에 훤하게 보인다. 몇km되는 거리이지만 걱정할 것 없다. Agli Ili-Bazargan의Gurbulak국경을 통과하면 Maku까지 태워줄 Minibus(거의 트럭 수준이다)가 있고, 이곳에도 환전상들이 있지만 터어키에서 쓰고남은 돈 정도만 환전하자.1~2불 정도의 돈이면 충분히 Maku까지 가는 Minibus를 타고 남는다. (차비를 계산해보면 100~200원 정도밖에 안된다) Maku에 도착하면 환전상들이 많이 있으니 그 곳에서 제대로 환전을 하고, 택시로 Tabriz까지 가면 된다. Mirjabeh 나 Pakistan의 Taftan 모두 사막한 가운데 있는 조용한 동네이다. 입출국 심사는 간단하다. 상인들의 밀수품 조사가 엄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가면 빨리 수속을 끝내 준다. Pakistan 입국시 Pakistan 입국사무소로 가면 간단한 몇마디 질문을 하는 인터뷰를 거쳐 입국스탬프를 찍어준다. 인터뷰는 영어로 하는데 서로 짧은 영어로 하는 대화라 인터뷰라고 뭐 긴장할 필요는 없겠다. 이 곳 국경에서의 환전은 Pakistan, Iran 어느 쪽이든 꼭 필요한 $10 ~ 20 만 환전하자..(만약 Pakistan에서 Iran으로 입국했다면 억울하지만 개인당 $30 정도를 환전하는 것이 안전하다. Bam까지 가는 동안 식사와 차비 그리고 Bam에 도착해서 숙소를 잡을 경우까지의 경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Pakistan으로 입국했다면 Taftan 에는 마땅한 숙소가 없다. Quetta 에 도착하면 반드시 Hotel 앞에까지 가도록 요구하자. Quetta는 상당히 넓은 도시다. 그리고 국경 도시에서는 거의 12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Quetta 에 도착하면 십중팔구 자정을 넘긴 시각일 것이다. 그러므로 차를 타면 가려고 하는 Hotel의 이름을 찾아서 운전수가 물어볼 때 알려주면 Hotel 앞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파키스탄에서 이란으로 입국시에는 파키스탄의 국경사무소에서 출국 스탬프를 받고 통과한 후, 그 사무소 정면의 벽 옆에 난 좁은 문을 지나면 이란 국경사무소가 나온다. 파키스탄 것 보다는 훨씬 큰 건물이다. 이 곳에 가서 간단한 짐 검사와 몇 마디 질문을 받고 도장을 받고 나오면 약 1km 가량의 거리를 걸어서 국경을 빠져나오게 된다. 빠져나오면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타고 Mirjabeh로 들어가거나 Zahedan으로 직행해야 한다. 이 곳의 경치도 유명하다는 어느 곳 못지않게 아름답다. 근처에는 황무지의 사막이 넓은 평지로 펼쳐져 있고 아프카니스탄쪽의 산들은 히말라야의 끝자락 답게 날카롭게 솟아있다. Zahedan은 숙소를 잡기가 어렵고 있다하더라도 다른 곳보다 좀 비싸다. Zahedan에서 Bam까지의 거리도 반나절 정도가 걸리는 길이고 사막으로 통과하는 길인데다 Bam까지 직행하는 버스보다는 Bam을 경유하는 버스가 많은데 경유하는 버스는 Bam 시내까지 들어가지 않고 몇 km떨어진 정션(바로 옆에 주유소가 있고 화단으로 만들어진 원형의 로타리가 있는 곳)에 내려주므로 한 밤중에 Bam에 도착할 것 같으면 차라리 좀 비용이 들더라도 Zahedan에서 일박을 하고 Bam으로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
한국에 있는 이란 대사관
위치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726-126
전화번호 (02) 793-7751
http://www.mofat.go.kr/ira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