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집결지 : 2011.10.15(토) / 06시30분 고속버스 (광주도착 10시)
▣ 참 석 자 : 8명 (김정남, 김종화, 박형채, 이경식, 임삼환, 임용복, 전작, 한양기)
▣ 동 반 시 : "무등을 보며" / 서정주
▣ 뒷 풀 이 : 고교40주년기념행사 참석(부페) / 신양파크호텔
오늘은 무등산 등산일이다. 나는 하루 전 담양 큰집에 왔다. 아침 일찍 담양에서 출발하여 광주터미널에서 기다리니 서울발 금호고속버스가 도착하고, 우리 산우들이 속속 보무도 당당하게 도착한다. 새벽부터 출발하여 피곤하기도 하련만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택시를 잡아타고 원효사 옆 무등산공원관리소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다. 택시비는 거금 15,000원. 모두들 행장을 꾸리는데 전작 산우와 나는 관리소 옆 구멍가게에서 생수와 막걸리 3병, 뻥튀기, 양갱을 사서 배낭에 넣고 일행과 합류, 11시에 산행을 시작했다.
옛길과 작전도로 중 걷기 편한 도로를 따라가기로 했는데 산속으로 난 샛길이 운치도 있고 공기도 좋을 것 같아 샛길로 들어서자마자 때죽나무 연리지가 보인다. 각기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만나 한 몸이 된 연리지는 어찌 보면 애틋한 사랑 얘기 같기도 해서 눈길을 끈다.
늦재 삼거리를 지나니 다시 도로가 나오고 모두들 급경사를 올라온 터라 숨이 차 쉬어가자고 한다. 그러자 임용복 수석이 “조금 더 가면 쉬기 좋은 전망대가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없는지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묻자 조금 위에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옆에서 아직도 총기가 괜찮다고 해서 모두 웃었다.
무등산을 관망하기 좋은 전망대에서 쉬어 가기로 하고 짐을 풀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주변을 돌아보니 안개가 끼어 시내는 보이지 않으나 증심사는 어렴풋이 보인다. 주변의 나뭇잎은 벌써 단풍이 많이 들었다. 먼 산은 울긋불긋 멋진 모습이나 길옆 나뭇잎 중 일부는 가뭄에 말라 비틀린 모습이다. 어제 비가 왔으니 곧 아름다운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 같다.
내가 담양큰집에서 가져온 홍어 무침에 막걸리를 마시는데 막걸리 3병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조금 전 구멍가게에서 막걸리 3병을 추가하지 않았다면 큰 일 날 뻔했다. 막걸리 4병이면 충분하다는 박 총장, 틀림없이 모자란다는 김 전 회장, 누군가 다음번에는 사람 수+1병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나머지 3병은 아껴서 입석대에서 먹기로 하고 행장을 꾸린다.
얼큰한 분위기 속에 천천히 걷고 있는데 뒤에서 매우 요란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공군자동차(버스인지 트럭인지 불분명한)가 지나간다. 아마 군부대 보급차량인가 보다. 차를 타고 가는 공군 아저씨들이 매우 부럽다. 그러나 맑고 조용한 분위기가 일순간에 깨진 기분이다.
중봉 부근에 도착하니 억새가 지천에 피어있고 군부대의 흔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 부대를 이전하고 무등산을 개방했으니 참으로 잘한 일이다. 중봉까지는 5분이면 가지만 편편한 지형으로 생략하자는 의견에 서석대로 오른다.
서석대로 오르는 무등산 옛길로 들어서니 바로 억새밭이다. 아직 다 피지는 않았지만 하얀 억새가 물결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진 한 컷 찰칵하고 억새인지? 갈대인지? 밀물인지? 썰물인지? 농담 삼아 설왕설래하며 걷다보니 벌써 무등산 옛길 종점이다. 참! 갈대는 키가 더 크고 물가에 피니 이곳은 분명 억새 천지인 무등산이다.
이제부터 매우 가파른 길이다. 무등산 정상이 1100미터정도이니 만만하지가 않다. 올라갈수록 고산지대 기분이 난다. 키 작은 나무들이 옆으로 누워있고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온다.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모두 힘들게 서석대에 올랐는데 이게 웬일인가? 온통 안개에 휩싸인 서석대는 그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서석대 모습뿐이다. 정상인 천왕봉도 안개에 가려 처녀의 속살처럼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광주의 기상,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표지판만 보고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인왕봉의 서석대 표지판에서 인증 샷을 빼놓을 수 없다. 서석대를 보지 못했으니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입석대로 향하는 길옆은 온통 편편한 억새밭이다. 참으로 억새 구경 한번 오지게(?) 했다.
식사자리를 잡자고 했는데 바람이 세게 불고 좋은 자리는 이미 사람들이 차지해 편편하고 너른 곳이 없고 입석대 부근은 바위가 가려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한다. 이 높은 봉우리에 웬 산소가 있다. 커다란 비석과 상석이 잘 차려진 ‘처사 최공00 지묘’였다. 비석은 돌이끼가 많이 끼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상당히 오래 된 것 같다
쫓겨 온 산양을 숨겨준 스님과 이무기에 얽힌 전설을 지닌 승천암을 지나 입석대에 도착했다. 다행히 입석대는 안개가 끼지 않아 뚜렷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해발 1000미터의 고원지대에 주상절리 단애 석축으로 된 단위에 5~6모로 된 돌기둥이 반달 같은 모양으로 둘러서 있다.
높은 것은 15~16미터, 대개는 10미터 이상 되는 것 같다. 정말 어떻게 저런 형상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 좋은 곳을 보지 못했던 나와, 전작, 한양기 산우는 계속 감탄하는데 나머지 산우들은 와봤는지 조용하다.
여기서 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병풍처럼 둘러친 입석대 밑에 아담한 산소가 있다. 잔디도 잘 관리 되었고 산소 밑 축대도 제대로 보전되어 있다. 누가 보아도 명당자리임에 틀림없는데 후손들은 매년 조상님 산소를 돌보기 위해 무등산 정상을 등산해야 하니 보통일이 아니다.
입석대 바로 밑 옴팍한 곳에 자리 잡고 점심 식사를 했다. 서석대에 비해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 김정남 전 회장이 올해 처음으로 출시된 석화를 사왔다. 초장이 없어도 짭짤한 맛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김밥, 오이, 포도 등 먹을거리는 충분한데 막걸리가 부족해 좀 섭섭하다. 명색이 1,100미터급의 산이니 오르면서 땀을 많이 흘렸으니 부족한 수분을 막걸리로 채우고 마시다 남으면 김 전 회장이 가져간다니 앞으로 충분하게 사오는 게 좋겠다.
오늘의 기자로 선택받은 본인이 산행시를 낭송했다.
"무등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
여름 山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靑山이 그 무릎아래 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午後의 때가 오거든
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玉돌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 일이요
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1박2일의 여정이니 시 한 수로 부족하다는 김정남 전 회장의 부탁으로 가을 냄새가 물씬 나는 시 한 편을 박형채 총장이 낭송했다. 충분히 구경하고 배도 어는 정도 차온다. 시간이 촉박하다고 재촉하여 하산하니 어느새 장불재 근처에 오니 억새가 지천에 피어있다. 안개가 걷힌 서석대와 입석대가 멀리 보인다.
서석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한 이경식 회장과 박 총장은 그들을 배경으로 한 컷씩. 이 사진을 비롯한 사진들이 K-20마을 동창회 카페에 있으니 방문하기 바란다. 이윽고 중머리재에 도착했다. 넓은 광장에 화장실도 있고 비를 피할 곳도 있는데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큰 표지판을 세워 서석대와 입석대에 대하여 사진과 더불어 자세하게 설명해놓았다. 중생대 백악기 때(약 1억년-6천만년 전)에 화산 폭발로 생성된 용암이 갑자기 식으면서 기둥 모양의 5-6각형의 주상절리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한양기 산우가 고교 시절에 중봉까지 올랐었다고 하자, 김 전 회장이 올라올 때 지나친 중봉은 군부대가 있어 출입을 할 수 없었고 앞 자가 같은 중머리재를 중봉으로 착각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모두 수긍한다. 중봉부터는 약간 가파른 길로 활엽소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길은 돌계단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용추삼거리와 중머리재를 지나 증심사를 향해 오는 중 당산 나무를 만났다. 450년생으로 높이가 28미터, 둘레가 48미터 ,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증심사에 도착하니 벌써 4시 30분이다. 시내에 가면 전작 산우는 산수동 팥죽을 먹자고 하고, 김 전 회장은 충장로 메밀국수가 좋다고 고집을 세워도 사우나탕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40주년 전야제에 참석하기도 바쁜 시간이니 모두 틀렸다. 두 사람은 광주에 연고가 없어 졸업을 하고는 자주 올 수 없는 형편이라 고교 시절의 입맛을 잊지 못하고 늙어가도 입맛은 여전하다.ㅎㅎㅎ!
증심사 주변이 모두 깨끗이 정비되었고 특히 등산 장비 판매점이 온통 널려있다. 증심사 바로 밑에 있는 문빈정사는 얼마 전 작고하신 장모님을 모신 뜻 깊은 곳이다. 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 들러 장모님께 인사하고 왔다. 절을 나올 때 장모님이 웃으면서 손을 흔드시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본다. 장장 5시간 반에 걸친 무등산 등산이 끝났다. 견줄 수 있는 산이 없어서 무등산이라고 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