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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기억나는 일들과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정리를 해 본다.
1월 20일 아침, 아침 식사 후 나는 중창연습을 갔고 늘이는 쉬다가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다.
모자로 감추고 있지만 파르라니 깍은 뒷모습이 괜히 애처롭게 느껴진다. 내일이 생일이지만
내일은 시간이 안되니 점심을 쇠고기미역국 끓이고 감성돔을 3마리 구워 남편, 나, 늘이, 원이가
함께 먹었다.
얼른 정리하고 1시 경 출발, 하룻밤 자야 하므로 가방을 대충 챙겼다. 늘이도 이것저것 챙겨
배낭하나와 크로스백에 넣었다. 은이가 있는 수원에 가서 함께 저녁먹고 하룻밤 묵을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날씨가 맑고 포근했으나 황사의 탓인지 먼 산이 뿌옇게 다가왔다. 여행을 가면 항상 남
편은 먼저 화제를 꺼내 대화를 주도하는 적이 없다. 그저 나 혼자 떠들고 노래하다 만다. 그래서
솔직히 남편이랑 어디 가는 것이 재미가 없다. 어떨 땐 화난 것 같기도 할 정도다. 나는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 자유롭게 웃고 떠들고 무엇보다 함께 화음을 맞춰 노래하며 가는 것이 좋은데. 이 여행의
목적이 그러하기도 하겠으나 그냥 무겁다. 무겁게 간다.
위로 갈수록 간간이 눈발이 뿌리기도 하더니 수원쪽엔 눈이 많이 온 것 같았다. 5시 30분 경 성균관
대학교 후문에서 은이를 태웠다. 며칠 사이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본인은 아니란다. 은이와
늘이의 약간 어색한 해후...이 놈들은 왜 이리 서로간에 살갑지 못한지 원. 은이가 형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는 것 같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늘이는 늘이대로 은이를 불편해하고. 둘 사이엔
알 수 없는 경쟁의식 같은 것이 있어보인다. 이 놈들아 형제간에 우애해야 한다.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다. 서로 마음을 나누지 못하면 그 위급한 때에 남보다 더 멀게 행동할 수 있느니..
눈 덮힌 성균관대학교를 나와 식당을 찾는데 길이 미끄럽다. 이전에 가족밴드에 수야가 수원에서
본갈비를 먹었다고 하여 네비게이션에 검색을 해 보니 본갈비가 여러개 나오는데 남편은 다시 본가갈비
가 있다고 검색, 여러 군데 중에 한 곳을 찍고 가 보니 식당앞이 한산하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 항상
붐비거나 차가 많이 서 있는 집을 찾는다. 그래야 맛있는 집이라고 보기 때문에 ㅎㅎㅎ 수야에게 얻은
정보로 본수원갈비를 찾았다. "본"이라는 이름이 원조의 느낌을 주는지 이름이 인기가 많다.
아...본수원갈비 가는 길..길은 미끄럽고 차는 많고...어떤 차가 빠앙 하면서 경적을 울리고 옆에 서더니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부릅 뜬 젊은 아저씨가 꽥꽥거리며 고함을 친다. 누가 일부러 그랬겠는가?
"야~CCC 왜 내 차 앞을 가로막는거야? 엉, 왜 남의 차를 진로방해하는 거야?" 아 무섭다. 수원아저씨
이유가 뭐겠냐? 우리 차 경남번호야. 눈이 한 두 송이만 와도 사고 빵빵 터지는 경남말이다. 길은 모르고
길은 미끄럽고 날은 어두우니 좀 멈칫했기로서니 저 정도나 리액션을 보이다니. 그 젊은 아저씨의 온
몸은 스트레스호르몬으로 펄펄 끓고 있을 것이다. 부디 건강 조심하소서.
아, 난 성균관대학교에서부터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이 아저씨 기회를 안 주더니 식당 찾는 동안
나는 방광의 압박감 때문에 안절부절 못했다. 조금만 가면 된다고 하더니 네비게이션 소요시간은 자꾸
길어져 가기만 한다. 병원 건물에 설까 싶었으나 차는 도로가운데다. 도무지 못 참을 것 같았다. 마침
조그만 산부인과가 있어-이화산부인과 고맙습니다- 차를 세우라고 하고는 얼른 뛰어가서 두리번거리니
데스크에 있던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화장실 오른쪽이예요"하고 가르쳐 주신다. ㅎㅎㅎ
아이고 시원하다. 살만했다. ㅎㅎㅎ
본수원갈비집은 정말 크고 넓었다. 규모에 비해 곁들이 반찬이 너무 촌스럽고 맛이 없다.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도 별로고 양념게장은 도무지 먹을 엄두가 안나게 크고 양념도 약간 말라 보인다. 잡채도 이 겨울에
너무 차고 그나마 감자와 사과를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가 조금 나았다. 생갈비가 450그램에 38,500원...
2인분 먼저 시켜 구워먹으니 의외로 고기는 맛있다. 3인분 양념갈비를 시켰는데 너무 달다. 차라리 생갈비가
맛다. 된장찌개로 마무리하고 나왔다.
중간에 시념언니로부터 전화가 왔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지난 주일에 은이 데리고 왕송저수지도 구경가고
갈비도 사 주셨을 뿐 아니라 은이 입술 부르텄다고 약도 사 주셨다는데 이 날 오시면 분명히 또 언니가 돈을
내겠다고 할 터이니 언니는 보고 싶지만 오지 말라고 했다. 또 오랫만에 보는 조카들에게 돈이라도 한 푼
쥐어주려고 할 터이니 내가 부담이 되어 언니를 오라고 할 수가 없었다. 서운하지나 않았는지...지금 생각하니
숙소 정하고 만나서 차라도 한 잔 사 드리는 것이었는데..
숙소는 다행히 서수원터미널 주위에 세인터 호텔로 빨리 정할 수 있었다. 5명 다 잘 수 있는 방은 없다며 두 방을
잡아야 한다고 해서 509호, 609호 두 방을 잡고 5층은 아이들, 6층은 우리가 자려고 했으나 늘이가 꼭 엄마 아빠랑
자고 싶다고 하여 우리랑 잤다. 늘이는 밤새 수첩에다가 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옮겨 적고 있었다.
아침은 순두부랑 된장찌개 시켜 숙소에서 먹고 9시에 나와 은이를 학교에 내려주었다. 늘이와 은이가 웃으면서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이제 춘천으로 가는 길...산들은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나뭇가지의 실루엣이
아름답다. 소나무나 잣나무 편백나무 처럼 보이는 침엽수에 쌓인 눈들은 계속 녹지 않고 그대로 햇빛에 반짝이며
쌓여 있는 것을 보니 날이 차긴 찬 모양이다. 그러나 길은 잘 말라 있었다.
시간이 넉넉하여 춘천시내로 들어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춘천 중앙시장안에 있는 닭갈비 골목으로 가서 명동
본가-또 본가 ㅎㅎ-에서 닭갈비를 먹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벌써 도착한 몇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다 한 명씩
머리를 빡빡 민 아들들을 데리고 있는 모습이 짜안했다. 식당종업원들도 자주 보는 풍경인지 조심스럽게 대화하며
위로도 해 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삼천포에서 왔다고 하니 조금 있다가 2층에서 색소폰으로 삼천포아가씨를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려해주는 마음이 고마왔고 괜히 울컥한다. 다 먹고 나오니 아주머니들이 "군 생활 잘 하고
오세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부대는 식당에서 약 20분도 안 걸리는 위치에 있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여기저기서 입영준비물을
파는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시끄러웠다. 우리 늘이는 벌써 시계를 군복 얼룩무늬가 있는 것으로 사서 삼천포에서
벌써 준비를 해 왔었다. 주차장안에 차를 세우고 부대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플래카드가 인사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우리가 나라를 지키겠습니다.' 등등. 연병장 안에는 1시 30분부터 입영식을 한다고 준비하고 있고 전시관에는
아이들이 훈련받을 부대나 일정들, 군생활에 관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지금 이 순간"을 부르는 멋진 테너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입영식전 행사가 시작되었다. 군악대
복장을 한 두 명이 나와 랩을 하며 즐겁게 흥을 돋웠으나 어디 지금이 즐거워하며 함께 어우러질 때, 그런 기분이던가..
의장대(?)와 군악대가 함께 보여 준 제식훈련같은 퍼포먼스가 눈길을 확 끌었고 모두가 열심히 관람했으며 크게
박수를 쳐 주었다. 이어 부모들 중 몇 명, 입대병 중 몇 명이 나와서 서로 할 말을 하고 여자친구도 나와서 뭔가를
하고 안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하는 등 군에서 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들이 연출되었으나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너무 멀어서 잘 볼 수도 알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동안에 우리 늘이는 걱정이 되는지 빨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속옷은 삶아야 하는지 등등 궁금해 했다. 함께 군복과 속옷 전시장에 가서 어떤 옷을 입는지
보았고 여기 와 있는 청년들 모두가 다 너와 똑 같은 입장이다. 이제 함께 생활하면서 배우게 되고 또 선임들이
가르쳐 줄 것이다. 너는 수련회 등에서 빨래를 해 보지 않았느냐 하고 얘기해주니 조금 안심하고 자신감을 회복한다.
2시, 드디어 입영식, 연병장으로 다 모이라는 소리에 늘이를 보내 주는데 늘이는 잘 할 거라고 엄마, 아빠가 늘 기도
한다고 말해 주고 손을 잡고 보냈다. 폰을 나에게 건네고 돌아서는 아들, 한 번 더 손을 잡아 주고 안아줘야 했는데
금새 뒤섞여 버리니 아무리 찾아도 까치발을 해도 의자에 올라서도 다시는 늘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운동장에 가득 서 있는 우리 아들들...그 모두를 보니 우리 늘이 하나만 생각하며 울 수도 없더라. 이 땅의 젊은이들,
십자가처럼 짊어지고 가야하는 우리 아들들,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아이들이 참 귀하게
느껴졌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새삼 내가 사는 이 땅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데 군대를 안
가려고 갖가지 방법을 쓰고 빠져나가는 사회지도자들은 정말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우리나라 지도
자층이나 부유한 기업가들을 보면 나라를 위한다거나 사회를 위한 환원 같은 의무에서 너무 멀어져 있는 것 같다.
결국엔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탐욕에 사로잡혀 평생 혼자 쓰면 쓰지도 못할 정도의 돈을 빼 돌리고 불법을
저지르고 그러면서도 법에 의한 심판을 피해가는...아니 우리나라면 아니라 신문을 보면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오늘 신문엔 그렇게 청렴을 외치던 시진핑조차도 불법자금 유출에 연루됐다니 과연
어느 지도자층이 어느 기업가들이 이 사회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가?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듣고 보고 배우면서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속고 살아왔던 게지.
지금은 그런 것들이 눈에 보여 아마 내가 사모가 아니었다면 시민운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그렇다는 것은
사실 성경에서 늘 말씀하셨기때문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씀따로 내 삶따로 살아왔는데 이제 자꾸 깨달아지는것이다.
도무지 늘이를 찾을 수 없고 가슴이 아팠지만 편영식장로님 모친상 문상을 위해 6시에 삼천포에서 출발하는 팀과
합류하여 예배를 드려야했으므로 2시 30분쯤 돌아나왔는데 주차장을 보곤 숨이 턱 막혔다. 차가 나와야 할 모든 길이
차로 가득했던 것이다. 한숨을 쉬었지만 늦게 도착해서 차를 그렇게 해 둔 사람들은 아예 나타나질 않았다. 입영식이
마친 듯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전히 그들은 늦게 온 회포를 푸는 것인지 등장하지 않았다. 마침 뒷편 차가 빠져
후진하여 찻길로 나섰지만 차는 많고 신호는 자꾸 걸리고 거의 1시간 30분여 만에 춘천시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속도로 진입 후부터 시속 140으로 달리는데 내가 문상받을 뻔 하였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꼼짝할 수 없었다.
죽령터널을 지나니 눈도 거의 없어졌고 달리고 달려서 거의 동시에 삼천포 팀이랑 도착해서 문상드리고 예배를 함께 했다.
춘천 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정민이는 우리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워했다. 함께 점심도 먹고 늘이 얼굴도
보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늘이를 챙겨보겠다고 했다. 말이라고 고맙다. 늘이가 군종병이나 행정병이 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이런...차 시동이 안 걸린다. 남자 집사님들이 여러 명 내려 차를 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기도원에서 차를 가지고 온 신목사님 차에서 잭을 내어 점퍼를 시켜봐도 안 된다. 타고 온 차가 불편하다며 우리 차로
옮겨 탄 박태은 집사님과 안재신집사님이 남기로 하고 렉커 견인을 하려고 서비스를 요청했다. 금새 온 렉커기사가
어떻게 하니 시동이 걸렸는데 절대 멈추면 안 된다고 바로 삼천포로 가되 휴게소를 가더라도 쉬면 안된다고 한다.
그래서 출발은 했으나 길을 잘 못들어 부산으로 한 참 가다가 돌아오니 교회 차 2대가 모두 길을 잘못들어 돌고 있다고
연락이 왔고 정성호 장로님은 두 번째 돌고 있다고 했다. ㅎㅎㅎㅎ 우리는 안 그런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한참을 놀려
먹었는데 그래도 그 두 차가 우리 앞에 가고 있었다. 결국엔 우리 차가 제일 먼저 도착을 하긴 했다. ㅎㅎ
사모님 울었냐고 모두가 물어보고 눈이 부어 보인다고 했다. 너무 울면 아들이 마음 아플테고 안 울면 서운해 할 것
같아 적당히 했다고 답해주었다. 맛있는 것 사먹고 가라고 봉투를 전해주신 분들, 백영순권사님, 어머니, 덕남언니,
강수경장로님, 김경순권사님, 최정은집사님, 차청일집사님, 강성철집사님, 윤복희집사님, 최현희집사님, 이순자집사님,
이서분할머니 모두모두 감사하고요. 밥 사주신 김정임집사님, 청년회, 입대하는 날 전화해 준 은찬이에게 고맙다.
면류관이랑 애영사모님은 조금 두고봅시다요. ㅎㅎ 서운해요. 전화도 한 번 안해주고 격려의 말 한마디 없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