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을 3번 보다
1.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세 번째 관람했다. 최근 영화 중에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 작품을 만나기 어려웠는데 이 영화를 여러 번 보게 된 것은 특별한 일임에 분명하다. 다른 영화보다 장기 상영하고 있고, 영화관이 가까이 있었다는 점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일은 특별한 매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헤어질 결심>의 무엇이 나를 그 곳으로 이끌었을까? 어쩌면 ‘사랑’에 대한 감각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아쉬움과 이제까지 경험했던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을 정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2. 얼마 전까지 차를 타면서 빠져 들었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들이 주는 쓸쓸한 감흥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이제 ‘사랑’이 나의 현실적 영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지 모른다. 가끔 술을 마시고 싶지만, 그 강도가 약해지는 것도, 술을 마시면서 혼자의 고독으로 스며드는 외로움을 가장한 쾌락을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체적 능력의 감퇴만큼이나 사랑이라는 낭만적 감정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쇠락의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예찬하는 조영남의 노래처럼, ‘사랑의 감각’은 비록 사랑을 하지 않아도 결코 버리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그것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헤어질 결심>은 오랜만에 만난 -‘사랑’에 대한 지나치게 파격적인 감각이나 성소수자의 사랑과 같이 아직까지 쉽게 수용하기 힘든 형태의 사랑과는 다른 -‘고전적 사랑’의 모습과 정취를 가지고 있는 영화였다. 사랑의 오랜 공식을 가장 정통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면서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우연한 만남 속에서 시작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 속에서 상대의 삶에 최선의 가치를 부여하려는 노력과 그것을 지속하려는 용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랑은 다만 욕망의 분출을 위한 도구의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의 사랑은 비록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었지만, 그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서로를 지키기 위한 용기가 뜨겁게 담겨있었다. 자신을 파괴하면서까지 지킬 수 있는 사랑의 근본적인 ‘실체’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모든 아픔과 진실의 슬픔을 안고 물길 속으로 사라지는 여주인공(탕웨이)의 모습은 오랜 전 <애수(워터루 브리지)> 속에서 여주인공(비비안 리)이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 자살을 선택했던 감동과 아픔을 다시금 기억나게 하는 장면이었다. 뜨겁게 사랑했고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안타까웠던, 어쩌면 내가 원한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영화였던 것이다.
4. ‘사랑’의 낭만성 속에서 나의 ‘사랑’(?)을 복기해본다. 나는 사랑을 경험했을까? 그것은 애매한 질문이기도 하다. 사랑이 끌림에서 시작한다는 정의에서 본다면 끌림에서 시도한 사랑은 언제나 실패했다. 나의 끌림은 완성을 위한 시작이 아니라, 말 그대로 관심이었고 그것은 이별을 전제로 한 일시적인 시간 속에서의 관계를 원했을 뿐이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혼자’이기를 원했고, 고독한 삶의 완성을 꿈꾸고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의 여자가 그런 현실적 결과가 없는 형태의 사랑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다만 뜨거운 안타까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원했을 뿐이다. 현실적인 사랑의 실패는 ‘결혼을 꿈꾸지 않는’ 만남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끌림’으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어떤 목표를 두지 않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원하지도, 목표도 없는 만남은 오히려 힘이 강했다. 다른 어떤 요소도 아닌 그 사람 자체의 관계가 핵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5. 일시적 시간이자 관계라고 생각했던 만남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상대에 대한 존중과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과시하거나 개방된 사랑이 아닌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은폐된 사랑은 오래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많은 노력과 관심을 쏟았음을 확인하게 해준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보고서 다시금 정리해본다. 사랑은 형식이나 공식적인 관계가 아닌 철저하게 상대에 대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의 복합체임을.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한 것일까? 영화처럼 절실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믿고 헌신했던 기억이 남았다는 점에서 ‘사랑’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약간은 혼란스러운 ‘사랑’의 정의를 정리해주었다.
첫댓글 - 공부를 한 사람만이 공부의 중요성을 아는 것처럼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사랑의 말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