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땡초넣은 찌지미 탁배기가 생각납니다
얼빵하다본께 아침부터 요런 정신없는 햇소리가 나오네요
목욕탕 자동때밀이 기계에 가슴빼기를 얼매나 갈았는지
손도 못댈만큼 아푸고 따까리가 벌겋게 앉은 꼬라지를 보니
기도 안찹니다
확실히 2프로가 모자라는 조푸요
우짜겠는기요
그런되로 봐주소
나는 비오눈 날이 겉으로는 정말 실타
근데 속으로는 엄청시리 좋다
말안해도 알것지요
내가 파전은 진빠 좀 꿉소
이기 미거지국 대구탕 하고 지금이 또 제철이야
묵은김치넣고 미거지국 한번 끼리 잡숴바
상상이 안되제
기똥차요
오늘은 일찍 토끼야 겠소
조종이 안된다
생 존 !
이 글은 "1t트럭 행상" 최장수씨의 모 신문기사 내용입니다.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쫓겨다닐 때마다 가족은 절대 안 굶기겠다고 다짐했죠"
“식당 입구를 막고 있으면 어떡해요? 당장 차 빼요.”
지난 10일 저녁 서울 대학로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부근. 1t 포터 트럭을 대고 귤을 팔고 있는 최장수(36·서울 수유동)씨에게 식당 주인이 쏘아붙였다. 바로 운전석으로 들어가 시동을 거는 최씨. 10여m 떨어진 다른 식당 앞으로 차를 옮겼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가겟집 주인이 또 뛰어나왔다. 이번에도 최씨는 두 말하지 않고 차를 옮겼다.
최씨가 집을 나서는 시간은 아침 8시.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하루 16∼17시간을 거리에서 보낸다. ‘사람이 많겠다’ 싶은 곳이 일터인지라 아침에 집을 나설 때가 가장 막막하다. 이날은 점심 무렵에는 직장인들이 모이는 여의도, 오후에는 대학생들이 모이는 신촌, 저녁에는 연인들이 많이 찾는 대학로에서 종일 “한 꾸러미에 1000원. 굵은 것은 달콤하고, 작은 것은 새콤해요”라고 외쳤다.
▲ 1t 트럭 행상을 하는 최장수씨. 열심히 살았지만 2004년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의 내년 꿈은 남은 빚을 털어 내고 가족들과 ‘빚’ 파티를 여는 것이다.
하루에 10여 차례씩 메뚜기처럼 인근 상인들에게 쫓겨 요리조리 자리를 옮기는 생활이 4년째. 최씨는 “막막하고 서러운 느낌이 들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나는 할 수 있다. 절대 식구를 굶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고 했다.
충북 음성이 고향인 최씨는 공고를 졸업한 뒤 상경해 레미콘업체에 다녔다. 중소 무역업체에서 영업사원 일을 한 적도 있다. 95년 결혼해 2년여만에 경기도 안산에 20평 짜리 연립주택도 마련했다. 화려하고 번듯하진 않지만 열심히 살면 그럭저럭 큰 풍파 없이 인생을 살아나갈 자신감도 생겼다.
굴착기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최씨가 굴착기를 장만해 공사현장에서 일을 해주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97년 8월. 하지만 그 해 11월 시작된 IMF 경제위기로 공사대금을 줘야 할 업체들이 줄도 산, 순식간에 1억5000여 만원이 날아갔다. 빚 청산을 하고 나니 네 가족이 소박한 꿈을 키워 가던 연립주택도 사라졌다. 최씨는 “둘째 분유 값이 없어 쩔쩔매는 상황이라 한탄할 시간도 없었다”며 “화공약품 회사에 임시직 운전사로 취직도 했고, 식당에서 주방 보조 일도 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트럭 인생’은 2000년 시작됐다. 그는 떡볶이와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를 하다 1년쯤 뒤 피자 기계를 싣고 다니며 즉석에서 피자를 만들어 파는 장사로 업종을 바꾸었다. 사업 아이디어가 좋아서인지 한동안 한 달에 300만∼400만원을 버는 ‘호시절’도 경험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가장들이 여기저기서 작은 점포를 냈고, 자신과 같은 ‘트럭 인생’들도 늘어나면서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가파른 하강 곡선을 그리던 수입은 올 들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점포주 등살에 이리저리 쫓겨다니다 보면 하루 매출이 2만∼3만원에 그치는 날이 잦아졌다. 사업자금과 모자라는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끌어다 쓴 카드 빚이 3000여 만원. 매월 80여 만원씩 빚을 갚아나갔지만 올 봄부터 이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최씨는 지난 9월 말 신용불량자가 됐다. 일을 놓은 적이 없고 낭비한 일도 없이 열심히 네 가족이 살아 왔지만, 결과는 이랬다.
최씨는 찬바람이 불면서 귤 장사로 업종을 다시 바꿨다. 불황에는 ‘호사스러운’ 피자보다 1000원짜리 한 장으로 한아름 가져갈 수 있는 귤 장사가 더 나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제법 큰 귤은 6∼7개, 작은 귤은 10개 정도를 한 꾸러미에 묶어 1000원에 판다. 15㎏들이 귤 20박스, 6∼7개가 든 귤 꾸러미 400여 개를 다 팔면 손에 남는 돈은 10만원 안팎. 물론 장사가 잘 되는 ‘특별한 날’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습니다. 시내 큰 서점에 데려가 읽고 싶은 책을 한아름 사 주고 싶은데, 그때가 연말 대목이라….”
아내도 집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 조립 일을 하고 있다. “반찬값이라도 보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 융자금 50여 만원과 1t 트럭 차량 할부금 40여 만원을 갚고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와 유치원생 아들 교육비를 빼면 한 달 살림이 빠듯하다. 아직 갚지 못한 빚이 1600여 만원. 그래도 그는 버티고 있다.
“2005년?…” 최씨는 꿈꾼다. “지긋지긋한 그놈의 빚을 툭툭 털어 버리고 그럴싸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카드 빚’을 자축하는 가족 파티를 벌일 겁니다.” 자정을 넘긴 시각 마지막 남은 귤 꾸러미 3개를 2000원에 넘겼다.
허리에 찬 전대가 제법 두툼해 보였다.
1t트럭 행상 최장수씨의 인생 역경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내일의 꿈을 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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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꿈을 갖고 살아가는 그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구나
난 여태 어떤 꿈을 갖고 살아왔지? 스스로 자문하게 되는구려
좋은 글 고맙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