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유산
3월에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다. 문득 아버지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난다. 어릴 때 아버지와 재미있게 읽었던 삼국지¹가 보고 싶다. 누렇게 바래고 모서리가 닳아진 책갑²을 보니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가슴 가득 옛 추억이 차오른다.
삼국지는 내 서가에 있는 책들 중 가장 먼저 나와 인연을 맺은 책이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삼국지를 월부(月賦)로 사오셨다. 그 책을 제일 먼저 보신 분은 시골에서 와계셨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보시다가 가끔 나를 보고 읽어 달라고 하셨다. 몇 번을 읽어드리다가 어느새 나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학교에 갔다 오면 책가방을 던져두고 삼국지를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읽는 속도는 내가 빨랐다. 3권을 볼 때는 아버지와 책을 번갈아보면서 아버지는 갈피끈을 끼워두시고 나는 보던 쪽의 모서리를 접어두었다. 때로 아버지와 나는 삼국지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도 삼국지만 보면 그때의 아버지가 생각나고 곁에 계신 듯하다.
아버지는 내가 스물아홉에 돌아가셨다. 살아생전에 자주 찾아뵙지도 못한 것이 한이 되고, 남자 형제가 없이 자란 내게 형처럼 대해주셨던 아버지가 목메게 그리웠다. 어머니한테 야단맞고 울상이 된 내게 "괜찮다. 사내놈이 뭐 그까짓 거 가지고... ."하시면서 어깨를 툭 쳐주셨던 아버지, 직장에서 영화관 초대권을 가지고 오시면 늘 어머니께 드리셨지만, 가끔은 한 장씩 빼서 내 호주머니에 슬쩍 넣어주셨던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삼국지를 우리 집으로 가져 왔다. 지금 내게 생전의 아버지를 추억할만한 것은 아버지와 같이 보았던 그 삼국지뿐이다. 오늘처럼 마음이 울적하거나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책장 한가운데 꽂혀 있는 삼국지를 꺼내들고 아무데고 쪽이 열리는 데서부터 읽곤 했다. 젊은 날 비행사고로 죽을 뻔 했고, 결핵으로 고생할 때도 삼국지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전역 후 민간항공사에서 비행을 나갈 때도 삼국지 한 권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삼국지를 보는 것은 나의 소중한 취미가 되었고, 다른 작가들의 삼국지도 거의 다 보았다. 어느 땐가 청계천 고서점가를 뒤지다가 1928년 발행, 원본현토 삼국지(原本懸吐 三國志)를 발견하여 한문공부를 하면서 읽었고, 외국에서 영문판 만화 삼국지를 사오기도 했다. 또한 삼국지에 관한 논문을 써서 학교와 관련 잡지에 내는 등 지난 세월 삼국지와 벗하며 지냈다.
삼국지에 관한 평전(評傳)이나 처세를 논하는 책에도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삼국지 속에 경세(經世) 철학이 있고 시대를 초월하여 세상사는 이치가 들어있다는 말을 한다. 소설가 정비석은 그의 <소설 삼국지>서문에서 '삼국지는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 문학적인 면에서 보면 뛰어난 문학 작품이요, 철학적인 면에서 보면 우수한 철학 교본이요, 군인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병서이기도 하다. 삼국지는 그만큼 인지(人智)의 보고(寶庫)요, 인류의 귀중한 재산이다.'라고 한다. 세간에는 한중일 삼국에서 나온 '삼국지 인간학', '삼국지 정치학' 그리고 '제갈공명 전략과 현대인의 전술', ‘삼국지 인물 소프트’ 등 등장인물을 분석한 책이 많이 나와 있었다.
나도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내 삶에 어떤 변화 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중년이 되자 앞날에 대한 생각도 많아지고 때로는 이유 없이 초조해지기도 했다. 나는 삼국지를 통하여 처세나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보았다.
군을 전역하고 민간항공사에 들어와서도 나의 삼국지 기행은 이어졌다. 그즈음 야간 비행을 하면서 밤하늘만 보면 왠지 모르게 고적하고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럴 때면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늘 가지고 다니는 삼국지를 펴들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침대에 들기 전에 잠시 책을 볼까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내가 찾는 삼국지는 보이지 않고 '조조평전'이라는 책이 손에 잡혔다. 책을 잡은 손에 힘이 죽 빠졌다. 표지와 제목도 낯설어 보였다. 시장에서 어머니 손을 놓고 길을 잃은 아이처럼 막막하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언제부터일까, 내 속에서 삼국지를 밀어내고 처세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니. 늘 삼국지를 가까이 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혼란한 오늘을 살면서, 후한말(후(後漢末) 황건적(黃巾賊)³이 횡행(橫行)하고 나라가 기울어가던 때, '치세지능신 난세지간웅(治世之能臣 亂世之奸雄) 태평한 세상에서는 능한 신하가 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특한 영웅이 된다.'라고 했던 조조(曹操)가 생각났다.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고 삼국지를 찾다가 엉뚱한 책을 들고 있는 내 손이 부끄러웠다.
창밖에 함박눈은 그칠 줄을 모른다. 봄은 정녕 오고 있는 것일까. 삼국지를 펴들었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따뜻한 아버지를 만나려고 잠시 한눈을 팔고 길을 잃었나 보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좌우명을 떠올려 본다.
담박이명지(淡泊以明志) 담박한 마음으로 뜻을 밝히고
영정이치원(寧靜以致遠) 편안하고 고요히 멀리 생각한다.
1. 김동성역(金東成譯), 삼국지(三國志) 전5권. 단기4293년3월10일 발행, 을유문화사
2. 책갑(冊匣) : 책을 넣어 두는 갑, 또 책을 겉으로 싸는 갑
3. 황건적(黃巾賊) : 중국(中國) 후한(後漢) 때, 장각(張角)을 우두머리로 하여
일어났던, 머리에 누른 수건을 두른 유적(流賊)
첫댓글 조용하시고 부드럽고 여러모로 살피시는 선생님의 깊음속에 삼국지가 있었네요.이제라도 좋은책을 찾아 읽야겠습니다.
그저 삼국지를 재밌게 읽었을 뿐입니다. 졸작을 잘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께서 참 좋은 유산을 주셨군요... 나는 무엇을 받았는가...그리고 무엇을 물려줄것인가.....
겨우내 한 편도 쓰지 않고 지내다가 지난 주에 교수님께 꾸중을 듣고 동면에서 깨어난 것 같습니다. 금요반 기성작가들이 요즘 글을 안쓴다고 주의 받았거든요.ㅎㅎ 근데 미남 얼굴 언제 보여주실건지요?
님의 글을 읽다보니 삼국지가 또 읽고 싶어지네요. 정말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던 그 책.
그런데 글 중의 '구한말'은 '후한말'로 고쳐져야 되는 것 아닐까요? 밑의 주석에선 후한말로 썼는데----.
네, 그렇습니다. 후한말이 맞습니다. 어른이나 아이나 야단을 맞아야 정신을 차리는가 봅니다. 교수님한테 야단맞고 저와 다른 한 분이 써오셨는데, 이번 주에는 더 좋은 글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졸작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삼국지를 퍽 좋아합니다. 초한지도 좋아하지요.
끝에서 두번째 문단 뒷부분 "내가 좋아하는 제갈공명 ~멀리 생각한다" 까지
3행을 말미에 넣으면 어떨까요? 그 문장이 곧 아버지의 유산이기도 하니까요.
조조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셔요. 그가 정말 간웅이기만 했을런지.
같은 전략을 썼어도 승자에게는 '지혜로운 전략'이 되고,
패자에게는 '간교한 전략'이었다고 평가를 하는 것이 세상인심이거든요.
말씀대로 '내가 좋아하는 .... 멀리 생각한다.'를 말미에 넣었다가 교수님이 빼거나 중간에 넣어라고 하셔서... . 근래와서 조조에 대한 평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관중의'삼국지연의' 즉 소설 속의 인물로만 보았고. '난세지간웅'이란 말도 허소가 관상을 보면서 한 말이지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祖父님으로부터 3 代가 '삼국지'를 곁에 두고 숙독하셨군요. 李作家님의 지혜의 근간은 '삼국지' 였음을 알았습니다. 系譜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