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한창 인기 있었던 드라마인 '파리의 여인'을 보면서 이동건이 한 멘트인 "이 안에 너 있다"라고 한 말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의문을 품었습니다. "과연 우리 안에 누가 있는 것일까?"
님이 이렇게 의문을 품은 것은 다름 아닌 성령님[하나님]과의 관계성에 관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님은 다음과 같이 궁금해 하며 질문하였습니다.
"보통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합니다?? 과연 올바른 표현이 뭘까요??"
님이여!, 성경에 보면 성령님[또는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주]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하는 표현이나 또는 우리가 성령님[또는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 주] 안에 있다는 표현의 묘사는 어렵지 않게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몇 군데만 보겠습니다.
먼저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표현하고 있는 곳부터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로마서 8장 11절.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게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린도전서 3장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가 하면 다음으로 우리가 성령님 안에 거한다고 하는 표현은 더욱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11절.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로마서 12장 5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서 14장 14절.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로마서 15장 16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장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린도전서 1장 4-5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고린도전서 1장 30절.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빌립보서 1장 1절.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어찌 지금 여기 소개하고 있는 이 몇 구절들뿐이겠습니까? 성경은 총체적으로 성령님과 우리와의 관계성을 '안에'라는 말로 해 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일하심을 우리는 봅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그분의 붙들림 속에서 그분의 생각과 의지를 좇아 그분이 하시는 일을 하며 삽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님의 말을 빌면,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배우 이동건이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면서(또는 가슴을 치면서) "이 안에 너가 있다"고 했다지요. 이동건은 사랑하는 연인이 결코 잊혀질 수 없기에 잊혀지지 않고 언제나 자신의 마음 안에 존재하여 살아 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과의 관계성을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동건이 말했던 것처럼. 그러나 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하는 표현은 결코 단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으며 그래서 언제나 기억하고 생각하며 그래서 언제나 자신의 마음 안에 존재하여 살아 있다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실제적 연합'의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님은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관계가 '교회'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한몸, 즉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조직체로서의 한몸이 아니라 유기체로서의 한몸의 성격을 띱니다.
그런데 이것의 보다 쉬운 이해의 용어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한몸인가? 하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일차적인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왕국 형태를 사용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분의 보호를 입고 그분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공동체의 관계성을 이스라엘이라는 왕국을 통해서 실질적으로 가져나갔습니다. 이스라엘에게서 이들의 머리, 곧 주(主)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이스라엘은 자기 생명체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우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 생명의 공동체를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된 공동체를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스라엘을 언약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한몸된 성격은 공동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로서 '통치적'으로, 그리고 '관계론적'으로 이스라엘 안에 실질적으로 연합하여 계십니다.
신약에서는 보다 신비적 연합의 성격을 띱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왕국의 형태를 벗어나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세상의 온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백성]들의 생명이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되어 시작되고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영적인 유대 관계를 가져 함께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에게로 자라가는 영적인 유기체를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이 실질적이고 생명의 연합은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하여 갖게 되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세례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을 하셨을 때 그리스도의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고 장차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의 한 부분이 되었을 때부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에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까닭에 되어지는 것이며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에도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 까닭에 되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는데 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라는 실질적인 생명의 연합과 그 생명의 발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상에 드러내신 모습이 다름 아닌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님이여!, 하나님의 영이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 자신인 '이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떠나 있는 상태에서 계시는 일을 결코 하시지 않으시며 우리 또한 성령님을 떠나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다음의 사실에서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또는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는 이 관계성을 성령님의 임하심에 의한 내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이 갖는 의미를 성령님이 우리 육 안에 들어와 박혀 계시면서 머물러 계신다는 식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알고 있다면 얼마나 유치한지요!. 그런가 하면 또한 단지 성령님에 대한 생각을 갖고 그러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져나가는 식으로도 알고 있지 않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유아적인 생각입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또한 우리가 성령님 안에 있는 이 관계론은 성령님께서 인격적 존재 상태로서 우리와 실질적으로 교제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로, 또한 '성령님의 소욕을 좇음'으로 이해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님은 이러한 말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님이 의문을 품었던 "과연 우리 안에 누가 있는 것일까?"는 더 이상 의문으로 남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보통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고 합니다. 과연 올바른 표현이 뭘까요?" 하였는데, 이 표현이 틀린 것이 아니며 또한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을 달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님이 이 표현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서 그에 대한 믿음으로 성령님과의 관계성을 가져 나가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와 같이 '안에'라는 언어적 표현을 즐겨 쓰고 있는 까닭입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님의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자 합니다. 부디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그래서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아 나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있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첫댓글삼위일체에 대한 부분에서 과연 하나님이 안에계시다는 표현이 맞는지 아님 성령님이 안에 계시다는 표현이 받는지 아니면 신앙고백에 맞게 하나님성령님예수님을 상황에 맞게 불러도 되는건지 아니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안에 계시다는게 맞는건지...?? 궁금하네요
태진 형제 안녕하세요!. 형제가 말한 꼬리말 부분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서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에 글로써가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말을 듣고 말로 하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하오니 편한 시간에 여유를 갖고 대화할 수 있을 때 전화(032-323-0150)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첫댓글 삼위일체에 대한 부분에서 과연 하나님이 안에계시다는 표현이 맞는지 아님 성령님이 안에 계시다는 표현이 받는지 아니면 신앙고백에 맞게 하나님성령님예수님을 상황에 맞게 불러도 되는건지 아니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안에 계시다는게 맞는건지...?? 궁금하네요
태진 형제 안녕하세요!. 형제가 말한 꼬리말 부분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서 말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에 글로써가 아닌 대화를 통해서 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말을 듣고 말로 하는 것이 더 좋을 수가 있습니다. 하오니 편한 시간에 여유를 갖고 대화할 수 있을 때 전화(032-323-0150) 주시기 바랍니다. 또는
형제의 집 전화번호와 통화가 가능한 시간을 알려 주시면 내가 형제에게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