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9일
제목: 기본에 충실한 일군
본문: 디모데전서 3:8-13
모택동의 성공비법을 아십니까? 전투에서 패배하고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1년 동안 행군한 거리가 무려 9,700km였다고 합니다. 전투에서 패하고 퇴로를 찾아 도망가던 모택동의 군대는 세 가지 기본 규율을 지켰다고 합니다. 첫째, 아무리 배가 고파도 민중의 것은 감자 한 알이라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둘째, 잠자리에 사용했던 건초는 반드시 묶어서 제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셋째, 여자들이 있는 곳은 피해서 갔습니다. 본능에 속하는 식욕, 수면욕, 성욕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을 잘 지킴으로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공산당의 성공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통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본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이나 조직이나 기본이 무너지면 결국 무너집니다. 반대로 기본을 지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뢰를 얻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당 군대와 비교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들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지켜야 할 기본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자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7절은 감독에게 요구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고, 8-13절은 집사들에게 요구되는 기준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자세히 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집사에게 요구되는 조건이 아주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단정하고, 일구이언하지 않고, 술에 인박히지 않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의 비밀을 깨끗한 양심에 간직해야 하고,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며,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하고,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기본적인 것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의 직분자는 단순히 교회에서 어떤 일을 맡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에게 특별한 능력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기본적인 인격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일군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삶 세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정중한 사람이 되십시오
본문 8절은 집사의 첫 번째 자격을 “단정하고”라고 말씀합니다. 단정하다는 것은 단순히 옷을 잘 입고 외모를 깨끗하게 하라는 뜻만은 아닙니다. 행동과 태도가 품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르고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의 바른 것은 그리스도인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유치원에서 가장 먼저 훈련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인사입니다. 학교에서도 선후배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마을에서도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방학 때 교회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학생들을 보면 비교적 건전한 사고를 가진 학생들이어서 예절도 바른편입니다. 그런데 가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별다른 패널티가 없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기본적인 예절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마음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 상대방에게 미리 연락하는 것, 다른 사람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 이런 것이 모두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 청소년들에게 가끔 문자를 보냅니다. 답을 주는 사람은 열 명 가운데 한두 명 정도입니다. 그래도 가끔 답장을 보내오는 착한 문자 한 통 때문에 마음이 위로받을 때가 있습니다.
윗사람이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면 응답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동료나 후배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정도는 많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고, 돈을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요즘처럼 기본적인 예절이 점점 약해지는 시대에는 작은 예의 하나가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의 바른 사람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우리의 태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교회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직분자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가 교회에 대한 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중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어린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정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일군다운 모습입니다.
말에 신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둘째는 일구이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집사가 “일구이언하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합니다. 한 입으로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맞춤법이 틀린 곳에는 빨간 줄이 그어집니다. 앞으로는 말투를 교정해 주는 프로그램도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글의 내용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불친절하거나 야비하지 않은지를 점검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프로그램을 우리의 입에도 하나씩 달아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일구이언을 하면 경고음이 크게 울리면 좋겠습니다.
“일구이언하지 말라.” 이것은 사회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윤리입니다.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일반적인 상식입니다. 이미 유치원에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정직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녀들에게도 늘 가르쳤던 말입니다.
그런데 왜 사도 바울은 이것을 집사의 자격으로 강조했을까요? 교회의 일군에게는 말의 신뢰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말이 곧 인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말에 믿음이 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한 말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자들이요 공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에도 품위가 있어야 하고 신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말에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말로 전해집니다. 그런데 진리를 말해야 할 입술에 신실함이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그 입에서 나오는 복음의 증거를 믿겠습니까? 평소에는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교회에 와서는 복음을 전한다고 한다면 그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일구이언하지 않는 입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 앞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말을 책임지고, 약속을 지키고, 누구를 만나든 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탐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셋째는 탐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집사가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집사는 교회의 여러 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특별히 초대교회에서 집사들은 교회의 재정을 관리하고 구제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대한 태도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교회의 재정을 맡은 사람이 욕심이 많고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 직분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말씀합니다. 탐심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많이 부린다고 반드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욕심이 많으면 마음이 늘 가난합니다. 자기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 항상 허기진 삶을 살게 됩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더 가지려고 하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얻되 정직하게 얻어야 합니다. 많이 가지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땀을 흘려 벌어야 합니다. 내 손의 수고 없이 부당하게 이익을 챙겨서도 안 되고, 속여서 이익을 얻어서도 안 됩니다.
불의하게 번 돈은 재산이 아니라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잘살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마음의 평안을 빼앗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인생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불의한 이익을 탐하다가 법의 심판을 받고, 잠깐의 이익 때문에 평생의 명예와 신뢰를 잃습니다.
그러므로 적게 벌더라도 정직하게 벌어야 합니다. 많이 벌지 못해도 떳떳해야 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재물입니다.
그리고 재물을 얻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많은 돈을 벌 연구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도 배워야 합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잘 쓰는 일이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만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사용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입니다.
결론
오늘은 직분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상식적인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믿음, 기도, 예배, 헌신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교리적이고 심오한 진리를 말하는 대신 상식적인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문제는 기본적인 것을 안다고 해서 기본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어가기 전에 제자인 플라톤에게 이런 뜻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잘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는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루고,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갔느냐보다 맡은 자리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중한 사람이 되십시오. 사람을 존중하십시오. 일구이언하지 마십시오. 말에 신실하십시오. 탐심을 버리십시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맡은 자리에서 충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많은 것을 가지는 것보다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거창한 일을 하는 것보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 모두 기본에 충실한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