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기 전까지의 한국의 경기장 상태는 말 그대로 후진국 수준이었다. 2만석 급 접시 혹은 쟁반형 경기장으로 표현되는 동대문 운동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경기장이었고 전광 라이트가 없던 경기장도 부지기 수였다. 이것이 1980년대 당시 한국 경기장의 현주소였다. 아시아권에서도 대만, 필리핀 등과 함께 꼴찌에서 손꼽을 정도로 낙후된 수준이었다.
1990년대 초반 들어서 POSCO 박태준 회장님의 각별한 관심에 힘입어 포항과 광양에 2만석 미만 급의 아담한 축구전용구장이 들어서 축구계의 숙원이었던 전용구장 시대를 맞이했고 2002월드컵 유치를 계기로 4만석 급 이상 경기장 10개가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아울러 4만석 이상 급의 고양 대화운동장 (2003) 과 인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2014) 이 모습을 드러냈고 규모는 이보다는 작지만 의정부 (2002) , 부천 (2001) , 안산 (2007) , 화성 (2011) , 용인 (2018) 에도 진일보한 디자인의 경기장이 건립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양적인 외형만 놓고 보면 한국의 경기장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질적인 부문에서 살펴보자면 우리나라 위상에 비추어볼 때 기대에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혹자는 그 근거로 돔구장 부재를 지적한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지적사항이 될 수 있다. 필자 입장에서 기대에 미흡하지 못했던 부분은 경기장 설계 시점에서부터 폭 넓게 고려되어야 할 많은 사항을 건설관계자들이 간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들이 이제는 개선되어야 할 사항으로 기사화되고 있다.
물론, 고려되어야 할 부분을 충분히 숙지했음에도 비용문제로 포기했을 수도 있다. ‘간과’보다는 ‘포기’가 더 정확한 정황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래 언젠가 개보수에 용이하도록 설계하지 못했다는 점은 다소 안타깝다.
현 시점에서 한국이 새로운 대회를 유치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부지에 경기장을 건립해야 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만약 새로운 부지에 새로운 경기장을 건립하게 되면 인천광역시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White Elephant 현상에 직면하게 된다. 5만석 급의 인천 문학경기장과 6만석 이상의 인천 아시안 게임 경기장은 인천 재정을 갉아먹는 이른바 ‘돈 먹는 하마’이다.
이제는 새로운 부지에 경기장을 신축하기 보다는 기존의 경기장을 개보수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현재 경기장과 관련하여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도 경기장의 리모델링에 주안점을 두고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
오늘날 기사화되고 있거나 활로를 모색 중인 내용은 크게 2가지 문제인 것 같다. 하나는 종합경기장을 축구전용구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콘서트나 집회와 같은 각종 행사로 인해 야기되는 경기장 잔디 훼손을 막는 방안이다.
여기서 논의될 내용은 후자인 ‘잔디보호를 전제로 한 경기장 활용법’이다.
잔디상태 문제로 2018년 10월 12일에 예정된 우루과이와의 A 매치 친선경기가 열릴만한 곳이 없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우루과이 대표팀의 일정상 수도권에서 경기가 열려야 하는데 마땅한 경기장이 없다는 점은 실로 유감이다.
폭염과 각종 행사가 잔디상태를 나쁘게 만드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도 폭염은 기상 관측 100 여년 만에 최고라고 하니 기후 문제는 언급하지 말기로 하자.
일각에서는 잔디 보호를 위해 콘서트와 같은 각종 행사를 경기장에서 치르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대안으로 콘서트 전용 경기장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잉글랜드 Wembley 구장처럼 국가대표 전용경기장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이 모두가 축구를 관전하는 입장에서 밝히는 주의주장이다.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위 주장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콘서트는 기존처럼 경기장에서 치르되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기장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관계자 입장에서 이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축구 경기 하나만으로는 경기장이 수익을 낼 수 없다. 축구 경기 하나만으로 경기장을 운용하면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업종에서 회전율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듯 경기장 관리자 입장에서 볼 때 가동률을 최대한 높여 수익을 낼 수 있는 이벤트가 상시 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록 경기장이 국가 산하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는 건조물이긴 하나 수익을 내야하는 것은 영리시설과 같은 입장이다.
일주일에 축구 경기가 한 번 열린다면 나머지 6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축구장 크기의 넓은 부지를 놀리는 것 자체가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非효율적인 운용이다. 경기든 콘서트든 아무런 행사가 없을 때에는 유료주차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6일 동안 일반인이나 차량으로 하여금 잔디를 밟게끔 방치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런 견해에는 당연히 잔디를 온전히 보호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6일을 다른 용도로 개방하면서 어떻게 잔디를 보호할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실 텐데..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나 장기적인 청사진은 다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콘서트와 같은 다양한 행사가 빈번히 열리는 경기장을 우선 선정한다. 아마도 2002 월드컵 경기장과 잠실종합운동장 그리고 수도권 경기장이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이제 내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경기장 개보수작업이 요구된다. 엄청난 비용이 들겠지만 신축(新築) 보다는 비용이 덜 든다고 본다. 예컨대 서울월드컵경기장이나 잠실종합운동장을 대체할 신축 경기장을 건립한다는 것은 현재로선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개보수가 이루어져야 할 곳이며 특히 잠실의 경우 논의가 상당히 구체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개보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경기장에 아래와 같은 방안을 제안한다.
벤치마킹이 될 만한 경기장을 아래와 같이 열거해 보았다. 미국의 Glendale , 독일의 Gelsenkirchen , 네덜란드의 Arnhem 그리고 일본의 Sapporo 경기장이다. 공교롭게도 경기장 4개가 모두 돔구장이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동식 잔디판’(slide out pitch) 이다.
건축(建築)의 建 자도 모르는 사람이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래 경기장처럼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USA , Glendale (Arizona) , University of Phoenix Stadium , 63,400 , 200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