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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처녀지 아침가리골 (상원사 - 두로령 - 아침가리골 - 현리)
코스소개 (총거리 62k)
상원사 주차장 - 두로령 - 국립공원관리공단 내면매표소 - 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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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휴양림 입구 - 월둔교(아침가리 입구) - 월둔고개 - 조경동 - 방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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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리(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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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 두로령 - 아침가리 - 현리 코스는 원래는 겨울철에 시도하려고 했지만 두로령부터 내면매표소까지의 북쪽 코스에 눈이 1미터 이상 쌓여 있어서 실패하고 여름철 코스로 변경하여 다시 시도한 것이다.
이번 여정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 겨울에 두로령 정상까지 갔다가 너무 많이 쌓인 눈 때문에 포기했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이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두로령, 홍천 내면 명개리, 월둔고개, 아침가리를 거쳐 방동약수터에 이르는 길로 비포장 길이 대부분이어서 도보여행으로는 최적의 코스이다. 특히 상원사에서 명개리, 월둔고개에서 방동약수터에 이르는 길은 차량통행이 금지된 원시림이 그대로 남아있는 비경이면서, 한편으로는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코스이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도보여행의 백미라고 감히 부르고 싶다.
내가 정선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다시 북쪽으로 올라온 이유는 이번 주말에 내 친구 부부 3쌍이 필례약수 아래 군량밭에 있는 푸른농원으로 주말나들이를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요일에 도보로 상원사를 출발하여 아침가리를 거쳐 현리에 있는 3군단사령부 앞에 가서, 토요일에 차를 타고 서울에서 이동하는 그들과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여정에서는 늦잠을 잔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12시 정오 이전에는 출발해야 저녁 어스름에 명개리에 도착할 수 있는데, 오후 3시 반에서야 상원사 주차장을 출발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났으나 피곤하여 조금만 더 잔다는 것이 9시가 넘어버렸다. 10시 반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 12시 10분 진부 도착, 2시 20분 진부 출발, 2시 40분 월정사 도착, 3시 30분 상원사 주차장 도착. 진부에서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가 3시 30에 있어 우선 월정사까지 가서 히치하이킹으로 상원사까지 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내면분소(명개리)까지 거리가 18킬로에 비포장이기 때문에 내 걸음으로 최소한 다섯 시간은 걸린다. 그러니까 12시에는 국립공원관리공단 상원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야 저녁에 내면 분소에 닿는 것이다.
똑같은 길을 걷는데도 지난 겨울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여름엔 주위가 온통 녹색 모노톤이어서 주위 경치가 단순하다. 그래도 겨울엔 눈 쌓인 산과 벌거숭이 나무들이 어우러져 좀 더 동양화다운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여름 바람은 시원하여 반갑지만, 겨울바람은 매섭게 추워 트레킹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 여름엔 나뭇잎 때문에 시야가 차단되지만, 겨울엔 시야가 멀리까지 틔여 원경까지도 감상할 수 있다. 여름엔 장마와 집중호우로 길이 엉망으로 망가져 있어서 힘들고, 겨울엔 눈이 쌓여 있어서 힘들다. 너무 많은 눈만 아니면 날씨가 덥지 않아서 겨울이 걷기에 더 좋은 것 같다.
겨울에 보기 힘들었던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에 흐드러져 있다. 꽃 이름을 몰라도 야생화는 그 자체로 자연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주연이다. 인적이 끊긴 길이라 다람쥐 세상이다. 사람을 보아도 도망가지도 않는다. 가만히 서서 내 눈치를 살피는 놈들이 한없이 귀엽다. 우리 파피(강아지)를 데리고 왔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같은 길을 다른 계절에 걷는 것도 그런대로 색다른 맛이 있다. 트레킹 하면서 한번 지나갔던 길은 잘 지나가지 않게 되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다. 이 길은 도보 이외에는 자전거, 오토바이, 차량 등 모든 교통수단이 통행금지이기 때문에 두로령 정상까지 가는 방법이 도보 말고는 없다. 그래서 홍천 명개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이 길을 다시 걸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가지랭이까지 빠져서 정상에서 내면 분소(명개리)까지 12킬로 구간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다. 설피를 사서 그 다음 주에 다시 도전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려 또 포기하고 말았다. 올 겨울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여 눈 쌓인 겨울에 이 고개를 반드시 넘고 말겠다.
이번 장마와 폭우로 길이 엉망이다. 길이 유실되고, 패이고, 바위가 굴러 내려서 그냥 걷기에도 만만치 않다. 이번 여정에는 70리터 배낭을 빼서 배낭은 두 개 밖에 안되지만, 수레를 끌고 이런 길을 올라가자니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지난 겨울 진부 모리재 올라갈 때만큼 힘이 든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패인 길에 수레가 수도 없이 뒤집어지면서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건(?)이다. 오전에 진부에서 점심을 먹고 간식으로 먹을 바나나 4개와 햇사과 두개를 샀었다. 겨울에는 쵸콜렛이나 카라멜 등 단 것들이 먹기에도 좋고 에너지 보충에도 좋지만, 여름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난 주에 정선에서 영월까지 걸으면서 깨달았다. 우선 쵸콜렛은 더운 날씨에 녹아버리고, 단 것을 먹으면 내내 갈증이 더 심해진다. 그래서 여름엔 단 것보다는 제철 과일이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바나나와 사과를 사서 배낭에 매달았던 것인데, 수레가 이러 저리 넘어지면서 바나나가 묵사발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봉지가 터져버려서 배낭과 수레에 바나나 묵사발로 엉망이 되고, 날파리들이 들끓었다.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날씨는 덥지, 땀은 줄줄 흘러 내리지, 바나나 으깨진 찌꺼기를 씻어낼 물은 부족하지. 이것도 아주 좋은 경험이다. 트레킹 중에 바나나는 절대 가지고 다니지 마라. 바나나가 으깨지면 배낭 다 버린다. 다행히 사과는 멍만 들었지 으깨지지는 않아서 나중에 귀중한 양식이 되었다.
가도 가도 정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한번 와본 길인데도 계절이 정반대로 바뀌니 모든 주변환경이 낯설다. 저멀리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해맑은 스님이 한분 내려오신다.
“안녕하세요, 두로령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북대사에 계세요?”
“네.”
“제가 지난 겨울에 물을 얻으려고 거기 들른 적이 있습니다.”
“아, 그래요.”
“물이 떨어져서 오늘 또 들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감사합니다.”
헤어지면서 내려가시는 스님 등 뒤에 대고 성함을 물었다. 잠깐 망설이시더니 ‘법오’라고 알려주신다. 법명이 법오(法悟?)라. 불법을 깨치라는 뜻인가. 어째든 산중에서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워낙 사람이 잘 안다니는 곳이라 정상까지 6킬로를 걷는 두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마음대로 뛰노는 다람쥐들 말고는 등산객 네 명을 만난 것이 전부다. 사람은 커녕 다람쥐 한 마리 본 적도 없는 지난 겨울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런데 훌훌 아무 짐도 없이 고개를 내려가는 스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무소유의 편안함과 여유로움. 홀홀 단신으로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가는 스님을 보면서 나는 너무 많은 짐을 갖고 다닌다는 사실을 개달았다. 한 끼 굶는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텐트, 버너, 코펠, 라면, 햇반, 김치까지 짐을 바라바리 싸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짐이 많기 때문에 그걸 수레에 실어 밀고 당기며 고개를 오르느라고 생고생을 하는 건 아닌지? 작은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다니면 돈은 더 많이 들겠지만 몸은 홀가분할 거 같다. 걷기도 훨씬 더 쉽고. 나 자신의 소유욕이 결국 나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진 것이 많으면 그걸 관리하고 지키느라 인생이 고달파지지 않을까?
스님이나 신부님들처럼 가진 것이 적으면 인생살이가 훨씬 더 홀가분하지 않을까? 그 답을 다음에 만난 스님한테서 얻었다. 북대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다 나무 지팡이를 휘저으면서 내려오는 스님 한 분을 만났다. MB정부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스님.”
“짐을 끌고 어디를 그렇게 가세요?”
“통일전망대에서 해남까지 국토종단 도보여행 중입니다.”
“고행하시네,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이 되게 시끄럽다면서요? 왜 그렇게 밀어부치는지 모르겠어.”
“네, 그런가봐요. 스님이 이 산속에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아, 우리 신자들이 그러더라고. 절에 다녀요?”
“안다니지만 절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절에 안다니는 거 같은데.”
“어떻게 아세요?”
“우린 딱 보면 알지.”
“북대사에 계세요?”
“네, 스님이 네 명 있지.”
“아까 올라오면서 법오스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혹시 아세요?
“그럼, 우리 절에 함께 있는데.”
“월정사 말사인가요?”
“아니 상원사 소속이야. 모든 걸 거기서 지원해주지.”
“눈 쌓인 겨울에 와서 스님이랑 얘기 좀 더 하고 싶어요.”
“나는 곧 다른 곳으로 갑니다. 동안거나 하안거도 인기가 좋은 곳은 스님들이 많이 몰려서 순번제로 돌립니다.”
“스님들은 저희들 일반 사람보다는 좀 편하시겠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들 중이나 일반인이나 인생살이에 대한 번뇌와 고통은 똑같습니다. 산속에 사는 우리라고 덜하지 않아요.”
“법명이 어떻게 되세요?”
“그건 알아서 뭐하시게.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내내 무탈하게 여행하소.”
우린 이렇게 땅바닥에 앉아서 한참이나 노변한담(路邊閑談)을 나눴다. 애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벌써 6시가 다 되어 내가 먼저 일어섰다. 스님은 지금 저녁 공양을 드시고 산책중이란다.
바로 전에 들른 북대사는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암자이다. 물을 좀 얻으러 들어갔더니 지난 겨울엔 못 보고 지나친 네모난 큰 돌확에서 샘물이 퀄퀄 넘쳐흐르고 있었다. 돌확 앞면을 자세히 보니,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민일동’이라고 적혀 있다. 역시 돈의 위세가 이렇게 깊고 높은 산중에까지 미치는구나. 그래서 나 같은 이름 없는 길손이 그 은덕을 누리는구나. 그 돈의 위세를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북대사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만발하고 다람쥐들이 이러저리 뛰어놀고 있었다. 지난 겨울 눈 쌓인 북대사의 모습은 참 스산하고 쓸쓸해보였었는데. 아무런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야 공양을 준비하는 한 스님으로부터 물 한통을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한 보살 아주머니만 보았을 분이다. 밥 해주는 아줌마인가?
드디어 내리막이다. 두로령(해발 1,312미터) 정상에 오른 것이다. 내가 트래킹 도중에 오른 고개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이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두 시간이 걸렸다. 여기서부터 두로봉, 상왕봉, 비로봉, 홍천 내면 분소(12킬로), 상원사주차장(6킬로)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하나 서있다. 지난 겨울 나에게 통한의 후퇴를 안겨준 악연이 있는 곳이다. 눈이 가지랭이까지 푹푹 빠져 100미터쯤 전진하다 후퇴한 곳이다.
이번에도 그런 악연은 계속된다. 지난 겨울엔 눈이 괴롭히더니 이번엔 안개다. 북쪽으로 고개 아래 쪽을 내려다보니 온통 안개에 가려 있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내려가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올라올 때는 날씨가 말짱했는데. 알 수 없는 게 산속 날씨라더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보통 맑은 여름 날씨라면 저녁 8시에도 날이 훤하다. 그런데 이 고개는 워낙 울창한 원시림으로 터널을 이룬 곳이 많고 장대비까지 내리니 7시에도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고갯길은 지난 장마에 패여서 울툴불퉁 그 자체로 수레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이고 엄청 힘이 든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수레가 이리저리 넘어지고 나뒹군다. 12킬로를 걷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하기야 이런 날씨에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런 오지를 걷는 사람이 미친 놈이나 미친년이지. 이런 상황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설상가상이라고 고개 중간쯤 내려왔을 때, 수레가 덜컹거린다. 덜컥 겁이 났다. 수레가 빵꾸가 나면 이렇게 균형을 잃고 덩컹거리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왼쪽바퀴가 바람이 다 빠져 덜컹거린다.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빵꾸를 수리하겠지만 날이 어두워지는데 이걸 고칠 시간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작은 배낭 하나를 등에 메고, 중간 배낭 하나만 수레에 실고 계속 내려간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화를 내봤자 나만 손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져야 한다. “트래킹을 통해서 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져서 8시가 넘자 주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명개교에서 수레를 멈추고 배낭에서 헤드랜턴을 꺼내 머리에 달았다. 랜턴은 생각보다 훨씬 밝다. 길이 훤히 다 보인다. 정말 훌륭한 길잡이 노릇을 해주었다. 2-3만원 투자비용에 비한다면 정말 몇 십만 원의 가치가 있는 귀한 장비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정말 대견하다. 혼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었다.
오른쪽으로 랜턴 빛에 반사된 이정표가 하나 선명하게 보인다. ‘명개리 3킬로미터.’ 맥이 탁 풀린다. 아직도 3킬로가 남았다니. 8시 반이면 정상에서 3시간 동안 걸은 셈인데, 아직도 3킬로라니. 아무리 비포장길이라지만 내리막길 12킬로를 3시간 넘게 걷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붉은 불빛과 밝은 불빛이 보인다. 얼마나 반갑던지. 붉은 불빛은 내가 그렇게도 고대하던 국립공원관리공단 내면분소이고, 밝은 불빛은 바로 옆에 있는 오대산타운 민박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이제 살았다.” 나도 모르게 이 말이 새어 나왔다. 이럴 거면 이정표를 가까운 내면분소로 표시하지 왜 멀리 있는 명개리로 하여 사람 애간장을 다 녹일까?
내면분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식당을 함께 하는 민박에 들어가자 부부가 놀라면서 나를 반긴다. 막 식당을 정리하고 안집으로 들어가려는 눈치다. 가게 앞에 있는 자연수도에서 흙탕물로 엉망이 된 수레와 등산화를 물로 씼었다. 2리터 생수를 한 병 사고 방에 짐을 풀자 마음이 놓이면서 피곤이 몰려온다. 방에 ‘취사금지’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비가 내리는 중에 처마 밑에 버너를 피우고 라면과 햇반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3만원인 민박치고는 따뜻한 물이 퀄퀄 쏟아졌다. 불행 중 다행이다. 비와 계곡물에 젖은 등산화와 양말, 옷가지와 배낭을 방바닥에 널어 말린다. 민박집 뒤로 내가 따라 내려온 계곡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쿵쾅거리는 계곡물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별로 내키지 않는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억지로 먹고 8시 10분에 아침가리를 향해 출발했다. 타이어 빵꾸를 수리하지 못해 수레와 45리터 배낭은 민박집에 맡겼다. 아침가리는 한자로는 조경동(朝耕洞)으로 나의 국토종단코스에서 가장 험하고 힘든 구간이다. 골짜기에 드는 해가 짧아 아침에만 밭을 갈 수 있다고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월둔교에거 방동교까지의 거리는 대강 22킬로미터쯤 되는데, 약 20킬로 구간에는 민가가 전혀 없다. 이승복 살해사건이 일어난 울진삼척무장공비 사건 때 북한 게릴라들이 북쪽 탈주로로 삼았던 바로 그 루트다. 내가 상원사 - 명개리 구간과 함께 지난 겨울에 실패한 구간이다. 남쪽 출발지는 명개리에서 56번국도를 따라가다 원당삼거리 조금 못미쳐 오른쪽으로 월둔교를 건너면 된다.
내면분소(매표소)에서 월둔교까지는 14킬로미터쯤 된다. 계방천과 내린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서 별로 힘든 코스는 아니다.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명개리는 내가 본 시골마을 중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강원도 산골마을 중심으로 이번 트레킹을 하면서 시골마을에도 등급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역시 아름다운 마을은 미산계곡에 있는 개인산방이나 살둔마을 그리고 여기 명개마을처럼 산에 둘러 쌓여 있고, 계곡물이 흐르면서, 축사나 대규모 비닐하우스 농사가 없어야 한다. 축사나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소득증대효과는 높을지 모르지만 경관을 망치게 되고, 계곡물을 오염시키게 되어, 관광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건 나 같은 외부인들은 논할 자격이 없고, 현지에서 사는 주민들이 선택을 해야 한다. 어떤 업종을 택할 것인지.
12시에 아침가리 남쪽 입구인 월둔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월둔고개를 넘어 아침가리를 지나 말바위고개를 넘으면 방동약수가 나오고, 2킬로쯤 더 가면 418번 지방도로에 자리잡은 방동에 이르게 된다. 이 고개 는 지도에도 그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방동약수 앞에서 옥수수를 파는 이정길씨 어머니에 의하면 동네 어른들이 옛날부터 말바위고개 또는 맞바위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높이는 지도로 확인하면 해발 800미터 정도인데, 워낙 급경사라 체감 높이는 1000미터가 넘어 보인다.
이 지역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오지 중의 오지로 사시사철 비경을 자랑한다. 나도 앞으로 봄 가을 겨울에 한 번 더 이 길을 탐방할 계획이다. 이 부근에는 정감록에서 난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한 3둔 4가리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즉 남쪽으로는 홍천 내면의 3둔인 살둔(생둔), 월둔, 달둔마을이 자리잡고 있고, 북쪽인 인제군 기린면에는 아침가리, 적가리, 연가리, 명지가리(거리)가 자리잡고 있다. 월둔은 한글로 하면 달둔이 되는데, 지도에는 분명히 다른 지명을 가리킨다. 모두 육이오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하는 깊은 산골이다. 그런데 외부와 접촉 없이 오랫동안 스스로 살아가려면 마을이 산골에만 있어서는 안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과 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고루 갖춘 곳이 바로 이 지역이라고 한다. 울진삼척공비침투사건 때 여기 화전민들을 모두 방동의 화전민정착촌으로 이주시켜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텅빈 오지가 된 것이다.
12시에 월둔1교를 출발했다. 월둔1, 2교를 건너자 몇 채의 농가가 보인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1킬로쯤 지나자 비포장 길이 나오고, 길 양쪽으로는 고추, 옥수수, 오이 등 다양한 채소를 경작하는 밭이 계속 이어진다. 역겨운 거름냄새도 심하게 풍긴다. 지난 겨울 진부 모리재를 넘어 나타난 비닐하우스 농가 부근에서 만났던 바로 그 냄새다.
비닐하우스 하나에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주인이 있으면 하나 사거나 얻어먹으려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없다. 마침 땅에 떨어진 오이가 하나 있어 얼른 주워들었다. 누가 보았으면 딱 오해받기 좋은 행동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나 할까.
나는 아침가리 코스에 민가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침에 출발할 때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다. 버너와 코펠이 든 배낭을 민박집에 맡겨놓고 왔으니까 점심을 따로 챙겨야 했는데, 일이 꼬일려고 그랬는지 쵸코바 하나도 사지 않았다. 내가 맨 배낭 안에는 쵸코파이 4개와 사과 한 알이 전부였다. 쵸코파이는 명개리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벌써 다 먹어치우고 사과 하나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 사과 하나로 22킬로를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오이 하나는 귀중한 양식인 것이다. 한참 더 올라가다 길가에 흐르는 물에 씻어 맛있게 먹었다.
오이를 정신없이 먹으면서 한눈을 팔면서 걷다가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눈 앞에서 뭔가 붕붕거리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보았더니, 벌통 수십 개가 길 양쪽으로 놓여 있고, 그 주변에 수많은 벌떼가 윙윙거리고 있다. 으악!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되돌아서 100미터쯤 도망쳤다. 누가 길에다 저렇게 벌통을 갖다 놓았지? 아마도 사람이 거의 안다니는 길이라서 양봉하는 사람이 갖다 놓은 것 같다. 벌통으로부터 오른쪽으로 한 50미터 정도를 우회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거기에 양봉업자 한 사람이 텐트를 치고 기거하고 있었다. “사람 다니는 길에 벌통을 갖다 놓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겨우 참고 그냥 지나갔다.
아저씨 3명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침가리가 얼마나 되는냐고 물었더니 정확한 거리는 잘 모른다고 한다. 무조건 길을 따라 서너 시간 걸어가라고 한다. 돌아서 가는데,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서 돌아보았다.
“뭐라고요?”
“설마 간첩은 아니지요?”
“도보여행 하는 사람입니다.”
“농담입니다.”
그만큼 이 길은 찾는 사람이 드문 길이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2미터 높이의 안내판 하나 서 있다. 1996년에 탑동마을에서 주민 3명이 무장공비에 의해 살해되었으니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래에는 해당 관청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이 안내문을 읽고 나니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설마 요즘에 이런 일이 일어날라고” 하는 심정으로 길을 재촉한다.
지난번 폭우로 길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상원사-명개리 코스는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수레를 끌고 왔으면 이번 여정을 포기할 뻔했다. 빵꾸 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비포장길로 폭우가 흘러내려 길이 50센티 이상 패인 곳이 부지기수였다. 아예 통째로 유실된 곳도 수없이 많다. 다행히 며칠 전에 보수공사를 한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도 차량들이 다니기에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길을 4륜차량을 타고 지나가겠다고 온 청년들이 있었다. 얼마쯤 더 올라갔을 때 멀리서 라면 끓이는 냄새가 바람결에 불어왔다. 직감적으로 앞에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다가가자 젊은이 2명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그들은 고개 너머에서 오는 길이란다. 그들은 내가 지나온 길의 형편을 물었고, 나는 고개 너머의 길 상태를 물었다. 고개 너머 아침가리에는 다리가 유실되어 물에 빠진 채 계곡물을 건너야 하는 곳이 많다는 말을 듣고 좀 겁이 났다.
오후 2시에 월둔고개에 도착했다. 월둔교에서 2시간이 걸린 셈이다. 월둔고개는 해발 850미터 정도로 오르기가 대체로 완만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고개를 올라가는 길이 S자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향해 곧바로 올라간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 오르기에 힘이 별로 들지는 않았다.
“야호!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수레도 없이 이런 길을 가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원시림이 우거져 길에 통로를 만든 길을 가 본 적이 없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야 하는 구간이 수없이 많다. 길은 비로 많이 유실되거나, 망가져 있거나, 길 한 가운데에는 물 웅덩이가 수도 없이 많았다.
길과 계곡물이 수시로 서로 교차되었으며, 폭우에 휩쓸려간 콘크리트 간이다리는 셀 수도 없었다. 어림잡아 스무 개도 넘었다. 그런데 그 뒤에 아무도 보수한 흔적이 없었다. 인제군에서 포기한 길 같았다. 어쨌거나 울창한 원시림이 계속되는 월둔고개에서 조경동교까지의 약 10킬로 정도의 길은 명상치유나 나무향기를 이용한 의료관광이나 치료레크리에이션 목적으로 개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좋지만, 유용하게 친환경적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곳곳에서 종아리까지 빠지는 계곡물을 건너느라 등산화가 흠뻑 젖었다. 발이 젖은 김에 열목어를 찾아보겠다고 열심히 물속을 쳐다보았으나 한 무리의 물고기떼만 보았을 뿐이다. 고 녀석들이 열목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도 열목어서식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오후 3시가 넘어서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슬비로 시작해서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여기는 계곡 구간이라 소나기가 잠깐만 내려도 순식간에 계곡물이 불어나 고립될 수가 있다. 다행히 비는 중간 정도의 비만 내리고 장대비는 내리지 않았다. 천만 다행이다. 거꾸로 얘기하면 오늘 나의 트래킹이 무모한 짓이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여름철에는 이 코스는 완전한 장비를 갖추기 전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언제 어떻게 기상이 변하여 폭우가 쏟아지고 계곡물이 불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가 적게 내리는 봄이나 가을이 좋을 듯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도 몰랐으니까 시도했지, 이렇게 끊어진 다리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면 출발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인적이 너무 드물어서 여자 혼자서는 삼가는 게 좋을 듯하다.
오후 5시쯤 다리가 끊어진 계곡 하나를 건너는데, 왼쪽으로 4륜차량들이 몇 대 보인다. 월둔고개를 넘어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방동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가까이 가보니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다. 세상에, 이 빗속에 고스톱이라니. 밖에는 중년 사내들이 몇 명 서성이고 있었다. 이들은 계곡물 속에 수박이랑 참외랑 막걸리를 넣어두고 놀고 있었다. 한 노인이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내게 묻는다.
“이 빗속에 어디서 오는 거요?”
“월둔고개를 넘어오는 길입니다.”
“혼자서?”
“네, 도보여행중입니다.”
“진짜 여행가이시네. 소주나 한잔 하시고 가구려.”
“감사합니다.”
“보신탕도 있는데, 좀 드실랴오?”
“아니 됐습니다. 여기 이 참외나 하나 먹겠습니다.”
다른 노인이 나와서 내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더니, 알아서 먹으라고 하고선 고스톱을 친다며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접시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참외 중 작은 놈을 골라 껍질까지 다 먹었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이 참외가 없었으면 방동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배가 고픈 상태였다. 월둔고개에서 먹은 사과가 오늘 마지막 식사였다.
“방동까지는 얼마나 걸리나요?”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이 말이 쥐약이었다. 나는 한 시간만 더 가면 방동이 나온다고 착각했다. 얼마 더 걸어가자 오른쪽 산 밑으로 방동초교 조경분교가 외로이 서있다. 태극기가 나부끼고 있다. 나는 이 집이 규모가 별로 크지 않아 폐교인지를 몰랐다. 단지 “왜 가정집에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을까”라고만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게 폐교인지는 그날 밤에 방동약수 주인할머니에게서 들어 알게 되었다.
다시 얼마를 더 지나 조경동교가 나오고 길은 조경동계곡과 헤어져 왼쪽으로 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내리막길인줄 알았는데, 다시 고개라니. 나는 뭔가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지 혼란에 빠졌다. 어제 밤에도 그랬지만 비가 내리는 어두운 저녁에는 사람은 평상심을 잃고 당황하게 된다.
시간은 이미 6시를 넘고 있었다. 그 노인들의 말이 맞다면 나는 이미 방동에 도착했어야 맞다. 그런데 나는 아직 산속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비가 계속 내려 지도를 꺼내 확인할 수도 없다. 지도를 본다 한들 이 구간에는 동네 이름 하나가 없다. 고개 이름도 없다. 조경동 다음에는 방동약수다. 그 사이에는 도로 표시 말고는 아무 표시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GPS 말고는 도움이 안된다.
말바위고개는 가팔랐다. 신기한 것은 월둔고개와 마찬가지로 해발 900미터 가까이 되는 고개가 지그재그가 아니고 직선으로 곶바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폭 2미터 정도의 시멘트 포장길 양쪽에는 숲이 우거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냥 앞만 보고 계속 걷는 상황이었다. 불안했다. 혹시 다른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도에는 분명히 외길이었는데. 비만 안내려도 좀 덜 불안하겠는데. 마침 앞에서 차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4륜구동차가 한 대 다가온다.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고 물었다.
“이 길이 방동 가는 길인가요?”
“맞습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이 고개를 넘어야 하니까 앞으로 한 시간은 더 걸으셔야 합니다.”
“네, 한 시간이나요?”
아이고 맙소사,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다시 한 시간이라니.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그냥 여기서 포기하고 다음에 여기부터 다시 시작할까? 너무 배가 고파서 다리에 서 있을 힘도 없었다. 배만 고프지 않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기가 지니까 몸에 힘이 빠지고 자꾸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빈 초소가 하나 서있다. 내리막은 오르막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서 있으면 몸이 저절로 떠밀려 내려갈 정도로 급경사다. 그런 경사를 몸을 뒤로 버티면서 내려오니 무릎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고, 오른쪽으로 ‘방동약수 400미터’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저멀리 고개 아래로는 방동마을이 보인다. 2킬로쯤 되어 보인다. 지금 이 빗속에 걷기에는 너무 먼 거리다.
아까 노인들이 방동약수에 가면 식당에서 숙박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왕복 800미터니까 속는 셈치고 한번 가보자. 약수터 가는 길 왼쪽으로는 멋지게 자란 왕솔나무들이 쭉쭉 뻣어 있다. 드디어 방동약수에 도착했다. 민박이라는 글씨도 선명하게 보인다. “야호! 이제 살았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젯밤에 명개리에서 그랬던 것처럼.
방동약수 바로 아래에 민박이 딱 하나 있었다. 우선 약수터로 가서 약수부터 한 사발 떠서 맛을 보았다. 지난 번 필례약수에서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맛을 테스트한 것이다. 그런데 톡 쏘는 탄산가스 맛과 비릿한 철분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비릿한 맛이 강한 필례약수보다는 훨씬 더 마시기에 부드러웠다. 비가 주룩주룩 계속해서 내리고,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약수터 주변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닭백숙이 먹고 싶었으나 카드가 안된단다. 방값까지 하면 9만원인데, 카드가 안되면 어떻게 하라고. 다른 식사가 될 만한 것이 없어서 감자전에 맥주 1캔을 시켜서 바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허기가 좀 가시는 것 같다. 그걸로는 배가 안찰거라고 하면서 주인할머니가 닭죽 한 그릇을 갖다 주신다. 맛있게 다 먹었다. 옷이 비에 다 젖어 밥을 먹는 동안 몸에 한기가 올라온다.
5만원에 밥까지 주어서 그런지 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경험한 민박 중 최악이다. 비는 내리는데, 방에 온기가 전혀 없고, 따뜻한 물은 찔끔찔끔 흘러나와 샤워를 할 수가 없다. 마침 대야가 있어서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다. 온수에 발을 담그고 발마사지를 했더니 발의 통증이 좀 풀리는 것 같다. 그래도 주말마다 아무 탈없이 자기 할 일을 다하는 내 발에게 감사를 표한다. “고맙다, 내 발아.”
아침에 방값을 치르고 민박집을 나서려는데, 주인할머니가 아침밥을 먹고 가란다. 그냥 가겠다고 말씀드리자 가면서 아침 사먹으라면서 만원을 돌려주신다. 어제 밤에 방에 대해 속으로 불평한 것이 미안했다. 보통은 민박집에서 아침을 안주는데, 여기는 아침 포함해서 5만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줄 알았으면 아침을 먹고 올걸 그랬다. 어제 저녁까지 먹었으니까, 방값은 3만원을 낸 셈이다.
주인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주차장으로 내려오자, 마침 어떤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큰 솥에 삶고 있었다. 옥수수를 하나 달라고 하자, 아직 안익었으니 30분 정도 기다리란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그 여인의 남편과 말문을 텄다. 남편은 아내 맞은 편에서 자기가 농사를 지은 감자, 가지, 상추, 씀바귀 등 남새를 약수터를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팔고 있었다.
남편 이름은 이정길이다. 그이는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말투가 북한말과 똑같다. 지금까지 들었던 강원도의 구수한 사투리가 아니고, 그보다 훨씬 톤이 강하다. 말투가 북한말과 정말 비슷하다고 하자, 과거에는 여기가 북한이었으니까 당연하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신을 심을 캐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여기서는 산삼을 심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얼굴이 검게 타고 호리호리한 몸매만 보아도 산을 많이 탄 사람인줄 금방 알아챌 수 있겠다. 다음에 오면, 여기 농부들이 다니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트래킹 코스를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씨는 20여년 동안 대구에서 객지생활을 하다가 5년 전부터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민박도 하고, 산약초와 산삼, 버섯, 산나물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이씨에 의하면, 인제에서 나는 산삼은 기삼, 강원도에서 나는 산삼은 강삼이라고 부르고, 가격도 인제산이 더 비싸다고 한다. 자연의 냄새를 좋아해서 도시보다 여기 생활이 훨씬 더 좋단다. 진동리에는 자기 친척이 살고 있다고 하면서 겨울에 꼭 한번 놀러오란다.
12시에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3군단사령부까지는 대강 10킬로쯤 된다. 방동교를 지나서는 방태천을 따라 418번 도로를 걷게 된다. 418번 지방도로는 56번 국도에 있는 서림에서 출발하여 진동리와 방동리를 거쳐 현리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이다. 야생화로 유명한 곰배령과 점봉산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기도 하다. 지난 겨울 MBC에서 특집으로 제작한 ‘곰배마을 사람들’의 배경이 바로 이 부근이다. 이 지역은 눈이 엄청 내리고 쌓이는 한 겨울철이 더 멋있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갓길이 거의 없어 트래커들에게는 최악의 길이다. 도보여행자들이 걷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어쩌면 도로를 만들면서 갓길을 30센티도 만들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물론 그 30센티에서 1미터에 이르는 갓길 공사비용은 건설업자의 부실공사로 인한 부당이득과 관련 공무원에 대한 뇌물비용으로 사라져버렸겠지만. 우리나라는 언제나 사람을 배려하는 갓길이 있는 도로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기술은 충분한데, 건설업계와 공무원 사회의 부정부패로 인해 그런 날은 요원한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12시에 오기로 한 친구들은 오후 2시가 다 되어 나타났다. 아내가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출발시간을 10시로 잡았단다. 주말이라 경춘고속도로가 많이 막히기도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3군단사령부 정문초소 건너편에 있는 휴게소에서 양말을 벗어 말렸다. 자가용을 타고 자식 면회를 온 부모들이 몇몇 보인다. 부러워 보인다. 나는 인제 왼쪽에 위치한 양구 방산이라는 곳에서 31개월 동안 포병으로 군생활을 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한 번도 면회를 온 적이 없다. 하기야 자식 면회 갈 시간도 없이 부지런히 살았던 분이니까.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그 때는 그렇게 매정한 어머니가 섭섭했었다. 그런 어머니도 이제는 다 늙은 노인이 되어 올해 여든 두 살이 되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2007년 7월 23일 - 26일)
교통
상원사 주차장은 서울에서 직접 오는 버스가 없다. 진부로 와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동서울에서 진부행 버스편이 하루 8회 운행되며, 첫차는 6시 32분, 막차는 23시 25분이다. 소요시간은 2시간 15분이 걸린다. 현리에서는 인제로 나가거나 홍천으로 나가서 서울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숙박
상원사 주차장부터 명개리 국립공원관리공단 내면분소까지 18킬로미터 구간은 국립공원이기 때문에 숙박업소가 전혀 없다. 내면분소 바로 앞에 민박과 식당을 겸하는 집이 하나 있다. 명개리부터 월둔교까지는 도로변에 민박과 팬션이 다수 있다. 월둔교부터 방동약수까지 22킬로미터 구간에는 숙박업소가 전혀 없다. 방동약수터 바로 앞에 민박이 하나 있다.
식당
상원사 주차장부터 내면분소까지는 식당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 먹을거리를 준비해 가야 한다. 내면분소 바로 앞에 식당이 하나 있다. 명개리부터 월둔교까지는 도로변에 식당이 다수 있다. 월둔교부터 방동약수까지 22킬로미터 구간에는 식당이 전혀 없다. 방동약수터 바로 앞에 민박에서 식사가 가능하다.
주변 관광지
이 코스는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할 만큼 청정자연 자체가 관광자원이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명개리로 넘어 가는 코스와 아침가리골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명품 도보여행 코스이다. 주변에 삼봉자연휴양림과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있으며, 방동약수터가 유명하다. 북대사는 한적한 절집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첫댓글 이 코스저도 한번 꼭 걸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