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의 대표적인 공간이라면 역시 대학로이다. 여전히 연극과 문화의 메카로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때때로 연극에 빠져들기도 하고, 아니면 잘 꾸며놓은 카페에서 수다떠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노라면 행복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싶다.
대학로는 20대라면 1년에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이지만, 의외로 대학로에 '낙산공원'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멀리서도 보이는 산이지만, 주택가에 숨어 있는 탓인지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붐비는 대학로에서 비집고 나와 호젓한 시간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 숨겨진 낭만의 장소!
그러나 찾아가다보면 왜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는지 수긍이 간다. 도심이라는 지리적 이점에도 불구하고 홍보가 잘 되지 않았다. 홍보는 둘째치고, 변변찮은 안내표지판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로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을 한참 헤매야 갈 수 있다보니 관심 갖고 찾아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들다. 사실 이 자리에서 길을 설명하려고 해도 쉽지 않아서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지도를 아래 첨부한다. 그러나 마로니에 공원 골목으로 쭉 올라가다보면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니 '느낌'을 믿고 가보자.
- 주변 지도. 서울의공원 홈페이지에서.
한참 가게들과 주택들을 지나야한다. 대학로답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곳도 많고, 의미심장(?)해 보이는 벽화나 장식이 있는 곳도 많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재밌을 것들이나, 낙산공원을 찾을 이들을 위해 숨겨놓은 재미로 남겨두고 바로 입구로 간다.
- 낙산공원 입구. 오른쪽에는 낙산의 상징인 좌청룡이 그려져있다.
낙산공원은 2002년 6월에 개월하였다. 이제 만 7년쯤 지난 셈이다.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은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낙산 자체가 유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서울의 형국을 구성하던 내사산 중 하나가 낙산이다. 낙타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 때 도성 안 5대 절경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후 방치되다시피 한 낙산에 있던 아파트가 철거 되고 그 자리에 오늘날의 낙산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 입구 앞에서 바라본 동네.
- 들어서면 무대와 낙산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뒤에 매점도.
- 여느 공원의 산책로와 비슷하다.
낙산공원은 다른 유명 공원들처럼 화려함이나 웅장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저 동네 뒷 산에 있을법한 작은 공원의 이미지가 오히려 더 가깝다. 아,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평탄함과도 거리가 멀다. 흔히 생각하는 '산' 정도는 아니더라도 산은 산이다. 높이가 좀 있으므로, 걷기 편한 복장으로 가도록 하자.
- 나무 계단에 석재를 중간에 끼운 것이 돋보였다.
- 멀리 정자를 끼고 둘러가는 산책로.
- 어느 계단인가 올라서면 길 위에 클로버가 새겨져있다.
대신에 아기자기한 재미가 숨어있다. 어느 계단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계단을 다 올라가니 바닥에 무엇인가가 그려져 있었다. 가까이보니 네잎클로버였다. 자세한 설명은 없어 무슨 연유로 이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콩콩 밟으면서 행운을 빌어보는 것도 추억이 될 듯 싶다. 멀리 있지는 않으니, 보물 찾는 셈치고 찾아보자.
- 낙산정. 이 곳에 있으면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이 있으니, 바로 산 위의 정자이다. 정자 자체로는 평소 보던 여느 정자와 비교해서 특별한 점이 없다. 그러나 낙산정이 특별하다면, 위치 때문일 것이다. 낙산이 야트막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곳 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경치는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 정자 위에서 내려다 본 낙산공원.
낙산공원의 또 다른 매력이라면 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꽃이 절정인 봄이나 여름을 지나 가을에 갔는데도 평소에 쉽게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른 계절에는 그 계절에 맞는 꽃을 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관리가 잘 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보라빛 열매가 아름답다.
- 분홍바늘꽃. 처음 보는 꽃인데, 색이 예뻤다.
- 보고 있으면 새들이 지저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 홍덕이밭. 여기에는 역사적인 내력이 있다.
낙산정에 가는 길에 작은 밭이 있다. 홍덕이밭이라고 이름 붙여진 밭인데, 안내 팻말에 적혀 있던 것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낙산 아래 동승동에 있던 밭.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한 뒤, 효종(당시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심양에 있을 때 따라가 모시던 나인 홍덕이라는 여인이 심양에 있으면서 채소를 가꾸어 김치를 담가서 효종에게 날마다 드렸는데 볼모에서 풀려 본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 홍덕이의 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이에 효종은 낙산 중턱의 채소밭을 홍덕이에게 주어 김치를 담가 대게 했다 하여 낙산에 "홍덕이밭"이라는 지명이 전해진다.
일종의 에피소드이지만, 이렇게 다시 밭을 꾸며놓으니 재미있다. 왕과 음식이 관련된 일화는 간혹 있는 것 같지만, 누구나 풍족하지 않을 때는 평범한 음식에도 감동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왕에게 바치는 채소라 그런지, 일반인은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 주말엔 배드민턴 한 판?
낙산공원은 멀리서 일부러 찾아도 좋은 곳이지만, 지역 주민의 휴식처라는 공원 본연의 기능에도 충실하다. 곳곳에 운동 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잘 조성된 산책로하며, 이따금씩 공연이 열리고, 군데군데 휴식 공간까지 흠 잡을데 하나 없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커플들만큼이나 가족단위 방문객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 무대가 내려다보이는 계단.
- 토요일 저녁의 여유로움을 더해주었던 '유리아'의 국악 퓨전 공연.
- 놀이마당.
위의 약도에서도 볼 수 있지만, 낙산공원은 크게 봐서 3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 중 3층의 정점을 이루는 것이 놀이마당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운동장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넓은 광장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오순도순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도상으로는 최고점이라 할만하기 때문에 전망도 괜찮지만, 탁 트인 곳이 없어 기대만큼은 아니다.
- 놀이마당에서. 나무들 사이로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 중에 명당!
- 제2전망광장.
이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나중에 지도를 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이고, 실제 이 곳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공원에 와서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보인다. 하지만 작명 센스를 좀 더 살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 내려가는 길. 발걸음도 가볍다.
여기까지 낙산공원을 보았다면, 절반만을 본 것이다. 낙산공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라면 역시 성벽이다. 조선 시대 한양을 에워싼 성곽의 일부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으니 그 중요성이 컸을테지만, 지금은 과거의 정취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랜드마크로 낙산을 지키고 있다. 그래도 주변의 소소한 유적들이 한 때 이 곳이 도심 안이었음을 알려준다.
- N서울타워를 끼고 한 컷!
- 성벽은 여전히 서울 도심을 지키고 있다.
- 성벽은 쉼터이자 전망대.
- 혹은 창문?
- 담쟁이는 모든 벽의 친구이다.
하지만 낙산공원의 가장 큰 볼거리는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63빌딩이나, N서울타워처럼 높이 우뚝 솟아 있어서, 시야가 넓은 장소도 있다. 그렇지만 낙산은 높이에 비해 상당히 넓은 범위를 볼 수 있다. 꼭 서울 시내를 구경하겠다고 오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장관이 펼쳐지는 곳에서의 산책은 색다른 경험이 된다.
- 하늘하늘거리는 버들강아지가 좋다.
- 정자에서 바라다보이는 풍경.
- 성벽 뒤로 보이는 전경.
- 좀 더 시야를 멀리 본 모습.
- 다시 서울 시내 한 컷!
- 좀 더 멀리~
사실 야경도 전망의 일종이므로, 따로 분리하여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따로 언급할 정도로 낙산공원에서 볼 수 있는 야경은 아름답다. 아무래도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라서 그런지, 해가 진 이후에 공원을 찾는 이가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경이 멋진 만큼, 낮에 와서 저녁까지 시간을 보내는 것은 공원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오래 있기 힘들다면, 해 진 이후의 낙산공원을 추천하고 싶다.
사실 HDR을 연습해보려고, 사진마다 노출값을 다르게 찍어왔다. 그런데 개인적인 불상사와 사진이 아주 못 봐줄 정도는 아니라는 안도감(?)으로 HDR은 나중으로 미루고, 무보정 사진을 정리하지 않고 모두 올리도록 하겠다.
- 놀이마당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 제1전망광장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 위의 위치에서 서울 N타워를 중심으로.
- 밤에 불이 들어오면, 성벽은 더욱 더 낭만적이다.
- 성벽을 등지고 공원을 찍은 모습.
- 제1전망광장에서 내려오는 길.
- 정자에서 바라본 낙산공원 야경.
- 정자공원과 산책로.
- 정자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
- 광각으로 넓게 바라본 모습.
사실 전망이 훤히 보이는 광장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성벽 위이다. 물론 위험하므로 못 올라가게 하지만. 어린이는 따라하지 말자! 하지만 연인들과 친구들과 나란히 위에 앉아 전경을 바라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그 자체만으로 여유가 묻어나온다.
- 시내를 바라보며.
공원을 가는데 누구에게 제격이라든지 하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바로 공원 아닌가. 그러나 젊은이들을 위한 공원이 있다면 바로 낙산공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대학로라는 젊은이들의 공간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데도 잘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책을 보며 여유를 찾는 것도 분명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오늘은 자연에 취해보고, 서울 밤 풍경에 흠뻑 빠져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