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상 일지 ***
2000.01.30 글 / 윤두한 향우회 부회장
지난해 봄 어느 날이었다. 마침 결혼 30주년을 기념 삼아 국내여행을 하고 있었다. 집사람과
둘이서 서해에서 시작해서 남해를 거쳐 동해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볼 생각으로 가던 중 남원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고적을 구경하고 지리산 온천을 거쳐 구례화엄사. 쌍계사며 사찰을 돌아보고
전라남도 완도에서 배를 한 척 빌려서 낚시도 하며 좋은 구경 재미있는 여행을 함에도 불구하고 식사만
하고나면 한 시간쯤 지나서 아랫배가 싸르르 아프고 하는 증세가 나날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약국마다 들려서 약을 사먹고 보았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여행을 포기하고 그 길로
집으로 돌아와 당뇨병을 치료하느라 10여 년간 다니던 청담동에 있는 내과클리닉 주치의한테
찾아가 증세를 얘기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장에 염증이 좀 있는 것 같다고 약을 주며 곧 좋아질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기를 두 달가량 약만으로는 나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체중이 7Kg이나 줄어 배 가죽이 등에 붙다시피 됐다.
어느 날 아랫배를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았더니 우측 중간쯤(상행결장)에서 밤톨만한 딱딱한
물질이 손에 잡혔다. 그래서 즉시 청담동 내과 주치의한테 가서 보였더니 진찰을 하고
초음파검사를 하더니 그제 서야 역시 이상한 것이 보이니 테헤란로 국기원 입구에 있는
방사선과에 가서 C . T (컴퓨터 단층촬영)를 하면서 간호원에게 비용이 얼마나 드느냐
하고 물었더니 대뜸 하는 말이 “찍어봐서
암이면 23만원이고요. 암이 아니면 32만원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암이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나 지금은 의료보험혜택을 못 받더라도
좋으니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촬영을 끝내고 계산서를 보는 순간 앗 차 싶었다. 간호원의 말이 빨리
큰 병원에 가셔야겠어요. 지체하면 안 됩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 사진을 갖고 청담동 내과에를 갔더니
역시 좀 늦었군요. 빨리 종합병원에 가세요. 이었다. 10여년을 한 결 같이 그 병원에 다니면서 매년
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정상이라고 하더니 검사는 눈을 감고했단 말인가? 원망을 해보았다.
이미 때는 늦었다. 부랴부랴 수서동에 있는 S병원으로 가서 전문 의사를 찾으니 그날따라 토요일
오후여서 제법한 의사는 없고 수련의들만 당번을 서고 있었다. 어쨌거나 서둘러서 검사를 하고
월요일 되어서야 수술을 받게 되었다. 정말로 암 이라면 수술한다고 효과가 있을까?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올 수가 있을까?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일찍이 유서라도 써놓을 것을
그랬나! 아이들 출가는 하나도 못 시킨 채로 형제들과의 정분도 정리를 못했는데. 친구들과 고향 분들은
그 동안 고운 정 미운 정 그냥 남겨 놓은 채로 이렇게 빨리 생을 마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인연을
맺지 말 것을 그랬나! 별아 별 생각이 주마등 같이 스쳐가는 것이었다.
5월 21일 아침. 마침내 수술실로 실려 가면서 창밖을 보니 다시는 저 파란하늘을 못 볼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에 차라리 천천히 갔으면 싶었다. 하나. 둘. 셋. 넷....일곱까지 세었을까 잠이
든 듯이 그 후에 일은 깜깜히 잊었고 얼마만인가 깨어나 보니 가족들 얼굴이 아른아른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가 저승인가? 이승인가? 가다듬는 중에 여보. 아빠. 아버지. 오빠. 괜찮으세요.
비몽사몽간에 왜들 야단들인가 했더니 그제 서야 아랫배가 당기고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 살기는 살았구나. 다시 창문을 통해 하늘을 쳐다보면서 한 없이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폭포수처럼 넘쳐흘렀다. 왜 수술해준 의사보다 조상님께 먼저 감사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다시 태어난 기쁨에서 이었던가 아니면 못 다한 효도를 마저 할 수 있게 기회를 갖게 되어 안도한
마음에서 이었을까? 그때 원장선생이 들어서면서 “축하합니다. 살 때가 되셔서 본인이 진단을 해가지고
와서 수술해 달라고 하는 경우는 의사생활 40년 동안 처음 겪는 일입니다. 외과 수술 팀의 보고를
받았는데 수술이 잘 되었으니 걱정 말고 몸조리나 잘하세요.”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젠 빨리 서둘러서 아이들 출가시키고 남을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빨리빨리 마무리를
지어야겠습니다. “그렇게나 빨리요. 이제 마음 놓으시고 차근차근히 하십시오.”하며 의사로서 만족한
웃음을 띠며 돌아서 나가자 이번에는 수술을 담당했던 외과 주치의가 들어서며 “다행입니다.”
마침 수술부위가 복잡한 곳이 아니어서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몸조리나 잘
하십시오.” 하고 만족하게 웃어 보이며 돌아갔다.
수술 후에 9일 만에 정상퇴원을 하고 집에서 통원치료를 하던 중 S병원에서 수술결과를 확인 하기위해
검사가 있으니 며칟날 병원에 와서 종합검진을 받으라는 통고를 받고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려니 하고
오라는 날짜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서 병원으로부터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대장암이 재발할 위험성이 있으니 예방차원에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의아한 결과를 보내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 담당 의사를 찾아가니 의사 말이 2/30의 확률로 전이가 의심되니
방사선치료를 한동안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대한민국에서 내 노라 하는 재벌그룹의 병원에서 의사가 내린 진단인데 게다가 수술까지 마친
입장이다. 어려운 치료인줄을 알면서도 거절할 이유가 마땅치 아니했고 조금이라도 재발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라면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치료에 응해 그 후 5개월 동안이나 항암제
주사를 맞았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처음 5일간 연속으로 주사를 링거 주사식으로 30분간 맞고
25일간 휴식기간을 갖는다. 왜냐하면 원악이나 독한약이라서 환자가 감당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