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 쯤 (눈이 있을때)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영월군 수주면 주천(酒泉)이다. 본래 이 고장은 고구려때 주연현(酒淵縣)이라고 불릴 만큼
술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다. '주천'이란 지명은 마을 앞 냇가의 주천석이라는 돌 구유와 망산 밑에
있는 우물에서 유래된 지명이라 한다.
1월1일 새해첫날 주천으로 갔다. 춘천에서는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영월방향으로 약 20km
거리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주천강 섶다리)
나는 이곳 주천에 오면 5일장날에 맞춰 시장구경을 하고, 평창방향(82번)으로 약15분 정도 걸리는
주천강변의 섶다리로 간다. 이 다리는 매년 12월에 설치하여 이듬해 장마때 떠내려 보내고(?)
다시 설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3백년이 넘는 이 다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 1699년(숙종 25년)에 처음 놓이게 되어 그 당시 새로 부임하는 강원관찰사가 단종대왕의
능이 있는 영월의 장릉을 참배하기위해서는 반드시 주천강을 건너야 했으나 사인교와 말
등 그 일행은 일반 섶다리로는 건널 수가 없어 주천 주민들은 주천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주천리,
서쪽은 신일리가 다리 하나씩 놓기 경쟁을 벌여 남여노소 가릴 것 없이 총 동원되어 놓이게 되었다"
해마다 주천면 노인회에서는 12월에 쌍섶다리 재현에 따른 내 고장 발전과 만복을 비는 고유제를
지내고, 찾아오는 관광객과 청소년들에게 쌍섶다리의 유래와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주천(술샘)
에 대한 역사문화 설명회를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말로는 표현키 어려운 애잔함을 느끼곤
하는데, 실제로 울먹이고 있는 초로의 신사도 본 적이 있다.
이제 다시 주천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법흥사방향으로 가는 길이 보이는데 초입에 있는 두부
요리 음식점(콩깍지)은 내입에는 정말 잘 맞는다. 두부정식(8천원)을 시키면 전골, 비지, 구이, 순두부 등
두부와 관련된 것은 모두 맛볼수가 있다.
법흥사 방향으로 약 4km 정도 가면 <미륵암 혹은 요선정>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는데 좌회전후 600m정도
가면 암자 마당에 도착한다. 암자뒤 완만한 낮은 산길을 잠깐오르면 아래 사진과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

(요선정과 마애여래좌상)
분명히 낮은 산(둔덕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시원한 눈맛을 느끼게 하는데, 마애여래좌상 옆에서
강쪽을 내려다보면 60여m의 벼랑이 아득하여 오금이 저리게 된다.
글자 그대로 <노래부르고 춤추는 집>인 요선정(邀僊亭)에는 숙종이 남긴 어제시와 선인들의 감회를
읊은 글귀들이 여럿 걸려 있다. 정자앞에는 창건연대를 알수없는 작은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
(정식명칭: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4호)이 있다.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마애여래좌상은 통통한 두 눈, 큼직한 입과 코, 그리고 거대한 귀를 가지고 있어 상체는 박력이
넘치나 하체는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인다. 마치 선서를 하듯 왼손을 든 모습은 바짝 긴장한 고려
시대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머리 위쪽에 자연석을 지붕처럼 얹어 놓았으며 연화대좌도 조각돼
있다.
나는 이 마애여래조상을 볼때마다 물방울모양의 바위에 조각한 독창성과 희소성 그리고
고려시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최소한 보물급의 대우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물급 문화재중 가장 많은 석탑의 경우(수백개) 모양이 조잡하고 많이 훼손이 되었어도
단지 고려시대 것이라는 이유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사실 보물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 나는 이곳이 좋아 겨울에는 꼭 들리고 싶어진다.

(옆에서 본 마애여래좌상)
이제 신경림시인의 시를 옮기며 맺기로 한다.
요선정에서 10km만 올라가면 법흥사라는 유서깊은 사찰이 있다.
적멸보궁, 전나무 숲길, 징효대사부도비(보물 제612호) 등이 볼만한 곳이나, 나는 <섶다리-마애여래좌상>
에서 느끼는 감정을 그냥 간직하고 싶어 그냥 귀가하곤 하는데, 올해에는 가보았다.
법흥사에 대한 기행문은 다음으로 미룬다.
주천강가의 마애불
- 주천에서
신경림
다들 잠이 든 한밤중이면
몸 비틀어 바위에서 빠져나와
차디찬 강물에
손을 담가보기도 하고
뻘겋게 머리가 까뭉개져
앓는 소리를 내는 앞산을 보며
천년 긴 세월을 되씹기도 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논틀밭틀에
깊드리에 흘린 이들의 피는 아직 선명한데
성큼성큼 주천 장터로 들어서서 보면
짓눌리고 밟히는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숨가쁘게 사랑을 하고
들뜬 기쁨에 소리 지르고
뒤엉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참으려도 절로 웃음이 나와
애들처럼 병신 걸음 곰배팔이 걸음으로 돌아오는 새벽
별들은 점잖치 못하다
하늘에 들어가 숨고
숨 헐떡이며 바위에 서둘러 들어가 끼어앉은
내 얼굴에서는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첫댓글 주천을 지날 때 마다 "왜 酒泉 이라 했을까 ?" 하는 의문도 풀어 주고, 좋은 사진과 좋은글 잘 보았어요. 김 지점장 올해는 좋은 소식 들렸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