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2구간(성삼제-매요리)종주 산행기
전북 부안 소재의 금구원에 공중 화장실 설계를 한 것이 있어 착공을 앞두고 시공자와 함께 만나기 위해 부안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문광부에서 지원을 해 주어 공중화징실을 짖게 된 일이다. 김선생은 서울 천문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소속은 달랐지만 한달에 한번 꼴로 별을 보러 가며 알게 되어 일본의 스타파티에도 같이 갔다 온 적이 있다. 예술가로서 서로를 이해하는 점이 있어 금구원에 가서 잠을 자고 함께 낙시를 다녀온 일도 있었다.
나는 이번에 일을 보러 가는 길에 지난번 지리산 종주에 이어 성삼재에서 매요리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2구간을 산행하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중인데 그 첫 시작을 매요리에서 시작되는 3구간에서 시작해서 1~2구간이 땜빵 구간으로 남게 되었었다. 그것을 지난번 지리산 종주로 1구간을 마쳤고 이번 구간만 하면 부담 없이 정기적인 산행에 참가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되었다.
땜빵 산행이란 것 그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자 가는 초행길에 의논할 사람이 없으니 길을 제대로 찾아 갈 수 있을지 걱정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구간은 길을 찾기 어려운 구간으로 소문이 나 있는 터라 더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산행이 더 부담스러운 것은 부안에서 일을 보고 가는 교퉁편이 좋지 않은 점이었다. 산행을 시작하는 성삼재는 구레구역으로 가서 가야 하는데, 부안에서 바로 가는 차편이 없어서 전주로 나왔다 다시 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늦은 시간에 나오면 차편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일을 하다 급히 나선 상황이라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점심 시간이 시작될 때 서울시청에 들러 서류를 제출하고 시간을 보니 12시 50분 부안행 고속버스 타기가 빠듯할 것 같았다. 서소문로에서 택시를 바로 타서 시간은 안심이 되었지만 사진기를 갖고 오지 않은 것을 깨닫았을 때는 이미 도리 없게 되었다. 도착해보니 시간이 조금 남아 표를 사고 바쁜 점심까지 먹을 수 있었다. 칼국수를 시켜 놓고 부안의 김선생에게 전화를 거니 사모님이 받아 부안에 도착해서 격포가는 버스를 타고 알려주면 마중을 나오겠다고 했다.
12시 50분 버스를 타고 4시 부안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4시 35분 격포 터미널에 도착하니 잠시 후 사모님이마중을 나와 인사를 하고 금구원으로 갔다. 그 곳에 도착하니 김선생이 공사 하실 분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도면을 설명하고 함께 지을 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매표소 건물을 옮길 위치등을 물어 상의를 했다.
내려가기 전에 새벽 산행을 위해 일찍 나서애 한다는 것을 말했기 때문에 사모님이 시간을 의식하고 바로 식사를 하러 가자고 해서 시공할 분과 두 대로 나눠 타고 격포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평소 단골인 듯한 그 식당에서 회와 생선구이 초밥, 찌게까지 튼 상이 넘치도록 푸짐이 내어 놓았다.
식사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할 곳까지 갈 길을 생각하는데 마침 서울로 올라가는 시공자가 부안까지 데려다 주어 부안에서 8시 15분 전주행 버스를 탔다. 그리고 9시 25분 전주에 진입하여 택시로 갈아타고 전주역으로 갔다. 역에는 9시 45분에 도착했는데 기차는 새벽 2시 13분 차밖에 없었다.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 어디서 눈을 부치려고 찜질방을 찾아 갔으나 깨워 줄수 없다고 해서 바로 앞에 있는 여관에 가서 쉬었다. 1시 40분에 깨워달라고 당부를 하고 잣지만 긴장한 탓인지 그 시각보다 일찍 일어나 역으로 행했다.
전주역에 나가 기차를 기다리다 1시 23분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탔다. 입석이어서 좌석에 앉아 갈수가 없어 바닥에 등산용 깔판을 깔고 앉았다. 등산 차림이어서 그냥 마음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3시 23분 구례구역에 도착하자 등산차람을 한 많은 사람들이 역으로 쏟아져 내렸다. 잠깜깜한 밤에 비슷한 복장을 하고 내리는 것이 마치 입영열차 같은 느낌이었다.
역 광장으로 나서니 택시가사가 다가와 성삼재에 만원에 합승을 해서 가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세사람이 더 모일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그가 손님을 찾다 다시 오더니 한차로 탈 일행이 있어 그러니까 다른 차로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시키는데로 옆 택시를 탔다. 뒤에 탄 3명의 일행과 함께 탔는데 그 팀은 그 들 외에도 회사에서 많은 사람이 참가한 듯 했다.
가면서 날씨를 확인하려고 차창 밖으로 하늘을 올려보니 쏟아질 듯 영롱한 별들이 보였다. 내가 밤길을 걷다고 저 별빛에 취해서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고 했더니 뒤에 탄 여자분이 자기 주변에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호수에 빠져 길을 잃어버릴지 모른다고 했다. 차에 내리기 전 성삼재 올라가는 입구를 물어보았더니 뒤에 탄 남자분이 도착하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4시 성삼재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산행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탔던 남자분이 진행 방향 내리막 길로 100m 쯤 걸어가면서 입구를 찾다 쉽게 보이지 않자 “이상하다 여기쯤인데“ 하며 열심히 찾고 있었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며 살펴보니 리본이 달린 입구가 보였다. 그가 찾아주지 않았으면 처음부터 당황했을 것 같았다. 그는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노고단과 천왕봉쪽으로 가고 나와 같은 방행으로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순간 외롭고 슬픈 느낌이 들었다.
시작할 지점에 나아갈 구간의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처음 목표가 되는 만복대까지 5.3km로 쓰여 있었다. 하늘에 별과 달이 보였다.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기 시작했다. 오늘 가는 구간은 지리산의 외곽 지대이다. 지난 종주 때 그렇게 긴 구간을 지나왔지만 아직도 지리산 품이다. 그런데 길 옆에 나무들에 많은 물방울이 맺혀 몸에 닿을 때마다 물이 쏟아졌다. 이슬이 맺혀 있는 줄 알았는데 길 바닥도 물기가 많은 것을 보니 간밤에 비가 내린 듯 했다. 그대로 가면 금새 온몸이 옷이 젓을 듯하여 우비를 꺼내 입었다. 그래도 바지와 신발은 금새 젖어서 걷기가 불편해졌다. 안개가 많이 끼었는지 주변을 비추는 헤드 랜턴이 뿌옇게 보여 길이 어른거려서 손으로 잡고 조심스레 길을 살피며 걸었다.
오늘 시작한 지점에서 0,5km 지나 첫 이정표가 나타났다. 제대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안도되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갈려진 듯 보이는 곳이 나타나면 신경이 곤두서지곤 했다. 4시 35분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사방이 트여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깜깜한데다 안개가 끼어서인지 주위를 분간 할 수 없었다.
앞쪽 하늘에는 초생달이 뉘어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까 성삼재세 또렷해 보이던 별이 구름에 많이 가려져 있었다. 4시 45분 좌측으로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숲길이 물이 축축하여 곤죽이 된 구간을 지나니 2.0km 지나온 이정표가 서 있었다. 그 곳을 지나 두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걸어 5시 5분 다시 사방이 트인 곳에 도착했다. 헤드랜턴에 풀벌레가 날아들었다. 5시 15분 성삼재를 3.0km 지나온 이정표가 서 있었다. 성삼재서부터 만복대까지 구간 거리의 반을 넘게 지나온 동안 날이 밝으려는지 별이 사라지고 달만 희미하게 보였다.
다시 길을 걸어 앞으로 나아가니 억새 능선이 시작되었다. 그 구간에서는 몸에 물기가 더 많이 쏟아져 신발 안에 물기가 가득 차고 말았다. 그 억새 능선 봉우리를 지나서 5시 35분 다시 앞 봉우리를 죄측에 두고 오른 쪽으로 비켜서 숲길을 지나갔다. 5시 38분 숲 길 나오니 앞으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앞에 완만한 경사의 산이 보이고 우측 멀리서는 큰 계곡 물소리가 들렸다. 또 새가 깨어나 목소리를 내는 소리와 날개짓하는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 등 그 산세의 품안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그 곳에 머물러 선채로 쉬는 동안 깜깜한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면 검푸른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산속은 아직 깊은 어둠에 감싸인 채였지만 널리 펼쳐진 계곡 너머로 먹구름이 가려졌던 산새가 구름이 걷히며 나타나니 깊고 웅대한 느낌이 느껴졌다. 점차 날이 밝으며 풀밭이 제 빛깔을 보이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과 붉은 자주빛 꽃봉오리도 보였다. 나는 그 주변 광경에 취해 스케치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는 어둠 속을 지나며 근심스러웠던 길을 더 이상 마주하고 싶은 심정도 작용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모든 사물을 식별할 수 있게 되자 완전히 새날을 맞은 느낌이었고 어둠속에 길을 걷던 무거운 마음도 사라졌다. 이제 갈 곳을 학인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 힘이 북돋아졌다. 문득 시간을 보니 6시 15분이어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는 생각을 하며 그 곳을 출발했다. 어둠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에서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머무는 동안 신비로운자연 풍경과 넉넉한 산세를 느낀 것이 보람으로 여겨졌다.
다시 길을 나서 숲길을 지나 시야가 트인 오르막길을 걷다가 마주오는 두 사람을 만났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인데 자신들은 백두대간을 끝나고 지금 태극 종주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인사를 나누고 지나쳐 6시 38분 만복대(1,438.4m)에 도착했다. 그 곳은 구례군에 속해 있었다. 방금까지 주변 산세가 넓게 보였는데 거기에 도착해 둘러보려 하니 사방이 안개에 가려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아쉬울 것 같아 거기 있던 사진작가에게 아쉽겠다고 하니 방금 전 찍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날씨야 항상 변하는 것이니 다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그처럼 마음에 여유를 지닌 말이 내 마음도 편하게 했다. 그곳에 서 있으니 바람에 추위가 느껴졌다.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니 바로 앞에 같은 일행인 듯한 분이 숨죽여 꽃을 찍고 있었다. 완만한 길을 내려가 숲길을 지나 오르다 7시 초소가 있는 산봉우리에 닿았다. 거기서도 주변에 안개가 자욱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다시 봉우리를 넘어 7시 20분 정령치(1,172m)에 당도했다.
서산대사 횡령암기에 정령치에 대해 쓰여 있는데, 그에 의하면 정령치는 BC84년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으로 하여금 성을 쌓고 지키게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무슬을 연마한 곳이라고 한다. 우측 발아래에 보일 듯 말 듯 굽어보이는 절경이 장엄하다고 쓰여 있었으나 안개 때문에 그 풍경을 느낄 수는 없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올라 세어져 있는 안내판을 보니 정령치서 7.4km 떨어진 바래봉 등 산세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휴대한 지도를 꺼내보니 그 산들은 백두대간 종주 길이 아니었다. 옆에는 개령암지 마애 불상군 찾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간판도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식사후 7시 40분에 출발했다. 고산 식물 복원중 길가에 출입을 막기 위해 줄이 쳐 져 있었다. 그 곳은 완만한 구릉지대였다. 그곳을 지나 다시 앞산을 향해 나 있는 내리막 길을 걸어갔다. 그리고 조금후 다시 오르막 길을 걸어서 8시 5분 고리봉 앞 중간 봉우리에 올랐다. 안개 속이지만 주변이 밝아져 해살이 비추는 느낌이 들었다. 그 햇살이 곧 안개를 말려버릴 듯이 기대되었다.
8시 8분 고리봉(1,305m)에 도착했다. 거기서 바래봉은 8.6km 거리였다. 거기서는 바래봉 가는 길이 주 능선인데 그리 가면 백두대간 길을 벗어나게 되고 좌측 고리 삼거리로 가야 된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 보았던 터라 주의 깊게 확인하고 좌측으로 내려갔다. 숲길을 얼마쯤 내려가다 좌측으로 트인 지점에서 바라보니 건너 보이는 큰 산 능선에 안개 사이로 햇살이 산에 닿아 밝게 비추고 있었다. 푸른 산자락이 햇살을 받아 빛나는 느낌이 참 좋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모습도 금새 안개에 가려지고 말아서 마치 신기루를 본 듯 했다. 8시 30분 우측 산 능선에 해가 비추었다. 숲길에도 영롱한 햇살이 반점처럼 밖혀 보였으나 그것도 흐려지며 없어졌다. 8시 40분 길을 걷다 곧은 삼나무 숲에 고기 삼거리가 1.5km 남은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서 쉬었다. 올려다보니 숲 사이로 구름이 걷힌 푸른 하늘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이런 평화를 느끼고 맑은 숲 공기를 마시는 것도 살아가는 동안 드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분을 즐기는 심정으로 지니고 있던 매실주를 한모금 마셨다. 깔판을 펴고 앉아 있다가 졸음이 몰려 와서 우의를 깔고 누웠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었다.
다행히 금새 잠이 깨어 9시 5분 그 곳을 출발했다. 숲 사이로 산이 둘러쳐진 가운데 펼쳐진 논에서 벼가 영글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고향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다시 산림을 가꾸기 위해 간벌과 잡목을 베어 사개 청소한 곳을 지났다. 얼마쯤 내려가자 계곡물소리와 늦은 시각에 닭이 훼치는 소리가 들렸다.
9시 35분 도로로 내려오니 우측에 지리산 리빙텔이라고 쓴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였다. 주천면 소재지 표시를 한 입간판도 보였다. 지대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면서 미련 없이 밑바닥으로 내려온 느낌이었다. 좌측에 이원필과 그의 부인 김씨의 효행비와 효행 공적을 기리는 비각이 새워져 있었다. 그러한 것이 그 인근 지역의 인상을 좋게 느껴지게 했다.
도로를 만나면 길 찾기가 애매해진다. 도로 건너 가게주인인 듯한 분에게 다음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물어 보았다. 우측 도로로 곧바로 가다 좌측에 보이는 산으로 가라고 했다. 가는 길 좌측으로 논에 벼가 익어가는 논이 약간 넓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나즈막한 능선이 지나고 있어서 길을 모르면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 같았다.
이 곳은 산세가 잦아들어 평지처럼 낮은 구간으로서 지리산으로 벗어나기 시작하는 구간이다. 그래서 산줄기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아쉬움은 있지만 그로 인해 지리산은 그만의 독립된 산의 세계를 이루게 되어 있었다. 다음 구간은 평지 같은 곳을 지나서 이어지게 된다. 거기서 이어지는 곳 까지는 마을로 가는 길과 들녁을 지나게 된다. 그래서 산으로부터 삶의 현장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특이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 마을은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산중 마을의 소박한 체취가 간직되어 있었다. 그러나 간호사가 고무줄을 묶으며 혈관을 찾는 것처럼 조심스레 길을 찾아야 하기에 긴장감도 느껴졌다. 자칫 방심했다간 엉뚱한 곳으로 빠질 염려가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 걸어가도 알려준 곳이 나타나지 않아 우측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청년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그는 계속가다 버스 정류장 나오면 그 맞은편으로 건너 마을로 들어서서 수정봉으로 오르면 된다고 했다. 백두대간에서 이렇게 산세를 벗어난 구간을 지나는 것이 멋쩍은 느낌이 들었지만 도로를 산길로 생각하며 걸었다. 아까 바래봉이 큰 산줄기지만 백두대간을 잇는 큰 산세 흐름을 따라가는 연결지점이라고 여겨졌다. 좌측에 들꽃향기 팬숀이 나타났다. 건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 이름이 퍽 인상적이었다. 맑은 햇살을 받으며 길옆에 자라난 가을 들꽃 향기가 느껴졌다. 좋은 계절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그 우측으로 나이 듣 부부가 배추를 가꾸고 있었다. 그 앞쪽으로 청년에게 들었던데로 길과 마을이 나타났다. 삼거리서 도로를 건너 마을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다 보니 죄측에 있는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가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소박한 교회였는데 온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좋아할 것 같은 진솔함이 베어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면서 뒤돌아보니 지리산의 산세가 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을의 터가 좋게 느껴졌다.
노치마을회관에 서부지방 산림 관리청과 자매결연 맺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마을 회관 옆 정자나무 아래 그 곳 마을 유래를 적은 표지석이 있었다. 이 곳은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국내 유일의 마을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경주 정씨가 터를 잡고 경주 이씨가 들어와 형성되었는데 해발이 550m 고랭지로써 본래 이름은 갈재였다고 한다. 그것은 고리봉과 만복대에 갈대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치(盧峙)로 쓴다. 이 마을은 한국전쟁때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으로 완전히 불에 탔었는데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동측은 운봉, 서측은 주천면으로 한 마을에 두개의 행정구역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백두대간을 조각해 놓은 표지석도 놓여져 있었다. 백두대간은 1,470km이고 남쪽 구간이 680km라고 써 있었다.
마을안으로 지나다 마을 분을 만나 다시 길을 물어 보았다. 그 분이 그 마을 뒷산에 삼국시대 쌓은 노치 산성이 있다고 했다. 그 곳도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접경으로서 그 성들은 정령치, 고리봉, 그리고 아막산성까지 이어지는 중요 거점에 쌓은 것인 듯 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백두대간을 찾도록 감나무에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여원재까지는 6.7km 거리로 쓰여 있었다. 여원재에서도 10km를 넘게 가야하니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 모서리 좌측에 샘물이 있어 마시고 나오는데 지나던 할머니가 그 물을 마시면 젊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나란히 선 4그루와 그 앞에 수령이 좀 작은 소나무가 한그루가 서 있었다. 뒤에 보이는 소나무들은 둘레가 3m쯤 되어 보이는 아주 큰 소나무였는데 각각이 노송 특유의 조형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기운이 합해져 정말 멈춰서 감상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만큼 자태가 훌륭했다. 하지만 다시 그것을 뒤로 하고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가에 성심인자 산악회, 자유인종주대, 부천 산악회, 대전시청 사모회, 서난진 ․ 송성순 건강 산행(2007.4~), 동두천 생활체육 홀대모, 꿈꾸는 산행 백두대간, 등 갖가지 명칭의 글이 적힌 리본이 내가 갈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등성이에 오라 마른 소나무 숲길을 지나갔다. 흙길이어서 걷는 느낌이 좋았다. 봉우리 능선을 연속 지나가게 되었다. 마을에 들어오면서는 마을 뒤로 보이는 산이 수정봉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산봉우리를 몇 개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가다가 삼거리가 나와 길을 살피니 조금 떨어진 앞쪽에 리본이 매어 있어 그 길로 나아갔다. 혼자 걷는 중이라 역시 갈 찾기가 가장 신경이 쓰였다. 능선을 지나니 능선 좌측 능선 아라로도 마을과 들녘이 보였다. 날씨가 낡아져 있어 풀벌레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다시 벼랑길을 가다보니 ‘2007 백두대간 숲길 조사단 산림청 함양국유림관리소’ 리본이 보였다. 조금 가다 능선 골짜기를 지나는 곳 앞에 공사를 하고 있던 4사람이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나는 언제나 백두대간을 해보나” 하길래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지금 일하고 계신 곳이 백두대간인걸요” 했다.
11시 10분 수정봉(804.7m)에 도착했다. 거기서 여원재까지는 4.2KM가 남았고 고리봉을 7.1KM 지나왔다. 우측으로 들녘 너머로 지나온 산 능선이 푸른 빛을 띠고 펼쳐 보였다. 간식을 먹고 11시 20분 출발했다. 수정봉을 지나면서부터 걷는 길은 마치 산보 하듯 요리조리 굽은 길이었다. 좌측으로 멀리 시야가 트인 곳도 지났다. 그 곳에도 산과 마을 논, 건물들이 어우러진 시골 풍경이었다. 11시 46분 아래로 내려와 백두대간을 가로 질러 난 길을 건너 다시 앞산을 올랐다.
새벽에 출발해 신발이 장화처럼 물이 차고 물기가 쏟아지는 숲을 헤치는 것이 힘들어 진행이 더뎠으나, 남은 거리와 올라갈 시간을 생각하니 좀 더 빠르게 가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밝은 길을 지날 때는 모르지만 길이 어두워지면 난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매요리에서 남원으로 가는 것도 부담스런 숙제로 남아 있었다.
다시 산봉우리를 지나며 뒤돌아보니 지나온 수정봉이 저만치 떨어져 보였다. 그곳도 길이 묘에 벌초하러 가는 동네 뒷산 길처럼 에둘러진 곳이 많았다. 맑은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산행의 기분은 최고로 좋아져 있었다. 앞에 절벽이 보여 그 곳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는데, 우측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니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져 있었다. 다시 능선에 올랐다. 주변이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 볼 때처럼 산이 많고 드문드문 마을과 도로가 눈에 띠었다.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 12시 10분 봉우리 정상에 당도하니 3사람이 거기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등산객인줄 알았는데, 등산길을 보수 공사를 하는 분들이었다. 농사를 지는데 시간이 날 때는 이렇게 일도 한다는 말을 들으니 건강한 삶이 느껴졌다. 실제로 3분 모두 얼굴에서 건강한 힘이 느껴졌다. 여원재까지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그 분들이 주는 소주를 받아 마시다 함께 먹게 되었다. 나도 지니고 있던 매실주를 꺼내 권하며 함께 마셨다.
그분들은 큰 도시락에 밥도 많이 담겨 있어서 그것을 혼자 다 드실 것 같지 않았는데 다 드셨다. 그 에기를 하니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먹어야 된다고 했다. 지게를 메고 60리 산길을 왕복한다는 말을 듣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산을 잘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위 등산 전문가들보다 휠씬 잘 나닌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어릴 적 마이산에 탑을 세운 이갑용처사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진안에서 전주사이를 불과 두어시간 만에 오갔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가 축지법을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분들의 정직한 느낌과 편하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정이 느껴졌다. 12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거기가 지도상에 입방치를 지나고 있는 듯 했다. 내려가다 다시 오름길이 나타났다. 산성 흔적이 보였는데, 그 돌들을 등산로 정비에 쓰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또 다른 팀 3명이 식사를 마치고 길에 누워 오침을 즐기고 있었다. 깨울까 조심하여 묘를 둘러 갔다.
앞으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곧 여원재에 당도하게 될 것 같았다. 정면 좌측으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 꼭대기에 제단처럼 꾸며진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우측 멀리 송신탑처럼 생긴 큰 철 구조물이 보였다.
12시 48분 다시 길을 길게 돌아 내려가니 옆에 난간이 쳐진 넓은 길이 나왔다. 차가 지난 바퀴 흔적도 보였다. 그리고 길가에 오래 전에 달아 놓은 듯한 연등도 있어서 주위에 사찰이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넓은 길로 계속 가서 백두대간 길로부터 빠지지 않게 주의 하도록 좌측으로 많은 리본을 매달아 논길을 찾아 들어섰다. 거기서 논과 도로 비닐하우스와 집들이 어우러진 여원재가 내려다 보였다. 내려가 우측으로 돌아 길을 찾아갔다. 반대 방향에서 오던 사람들이 나에게 위에 절을 어떻게 가느냐고 물어서 아까 지나온 곳을 알려 주었다.
1시 3분 연원재(470m)에 당도해서 도로를 건너 이어진 길을 발견했다. 그 입구 맞은편에 돌장승이 세워져 있었다. 거기서 고남산은 5.4km 그리고 고남산을 지나 매요리까지는 5.1km 도합 10.5km가 남아 있었다.
1시 15분 여원재를 출발해 산길을 찾아 올라갔다. 마을 주변 산들을 빙빙 돌아가는 구간이었다. 아까 입방치 근처 봉우리서 만났던 분들 에기로는 매요리가 여원재서 건너 보이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그런데 산세를 이어 가도록 한 백두대간 길은 직선거리보다 휠씬 길어지게 된 듯 했다. 좌측 야산을 지나가니 10분 후 다시 마을길이 나타났다. 주변에서 벌초하는 기계소리가 들려왔다. 마을로 들어서다 좌측 언덕진 곳에 쓴 묘에서 벌초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그 옆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은 벌초하기 알맞은 때여서 그런 모습이 자주 눈에 띠었다. 그 길을 지나니 다시 아까처럼 야산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는 동안에도 드문드문 벌초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시 우측으로 마을 뒷모습이 보이는 곳을 지나 완연히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구간은 유난히 요리조리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다행히 길 찾기 어려울 것을 알고 주의 하도록 리본을 자주 달아 놓아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곳들을 지나며 백두대간 능선을 유지하도록 길을 이어 놓은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다시 산길을 오르는 길에서도 자주 묘소가 나타났는데, 그 인근 마을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묘소를 써 온 듯 했다.
한참 오르는 고도가 높아진 곳에 다시 묘소가 나타났다. 거기서 우측으로 보이는 길부터는 본격적인 산길의 느낌이 들었다. 길에 물이 고여 늪지가 된 곳을 지나가며 마르고 있는 신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산을 오르며 뒤로 지나온 마을 산들이 보였다. 위에서 바라보니 그런대로 산세를 이루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멀리 자나온 수정봉과 고리봉 등의 산세가 이어져 보였다. 우측으로 길을 가로 지르는 큰 송전탑이 있는 능선에 이르니 그 너머로 마을과 들녘이 넓게 펼쳐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큰 능선도 보였다. 1시 50분 마음을 가다듬을 생각으로 거기서 잠시 쉬며 젓은 양말을 갈아 신고 갔다. 양말을 벗으니 발이 불어 있고 오른발 두 번째 발가락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양말을 갈아 신고 신발끈을 고쳐매고 나서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거기서 고남산까지도 길이 빙빙 둘러가는 길이었다.
길 옆에 가을 빛깔을 띤 갈대가 추적추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시 15분 큰 계곡이 가로놓인 듯 느껴지는 곳을 지났다. 내려가다 다시 오를 것이 걱정되었는데 다행이 우측으로 길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앞에 다다를 것 같은 고남산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마치 내가 산봉우리를 넘으면 고남산도 다시 뒤로 불러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을 오르락 거리다 2시 40분 다시 봉우리를 넘어가니 다시 계곡 건너로 고남산이 보였다. 능선 길 옆으로 키 큰 소나무 숲이 있는 곳을 지나가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고남산까지 쉬지 않고 갈 생각이었지만 벤치처럼 가지가 옆으로 자란 소나무를 보니 앉아 쉬고 싶은 생각이 들어 쉬어 갔다. 그런데 그 앞쪽으로 나가 놓인 계단을 오르는데 뱀이 보였다. 지난번 춘천 오봉산 때 일이 생각나 놀라 피할 생각이었는데 뱀이 먼저 피해 달아났다. 다시 약간 내래간 계곡 너머로 산봉우리를 오르도록 밧줄이 놓여 있었는데 그 곳이 정말 고남산 정상인 듯 했다.
3시 4분 고남산정상(846.4m)에 도착했다. 탑이 놓여 있고 그 우측으로 전북 산 사랑회에서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거기에 매요리까지 4.0km로 나타나 있었다. 거기서 그 앞으로 분지 같은 들녘과 지나온 산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리산의 그 큰 산세 옆에 그처럼 너른 들녘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이 퍽 특이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그 들녘을 지나며 대간이 이어지는 모습이 의미 있게 보여 그 모습을 스케치했다. 실제로 큰 산줄기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백두대간을 가장 설득력 있게 이어주는 지점들인 것 같았다.
백두대간
김석환
불러준 이도
기약한 것도 없건만
나서면 걷고 또 걷게 되는 길
그 땅에 얽힌
아픈 사연도
깃들어 있곤 하지만
어진 산세의 품이 다 아물게 해서
다시 새 살이 돋듯
삶이 어우러지고
청초한 들꽃과
흰 뭉개구름 같은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소중히 다가와서
가난한 삶의 희망을
떠올리게 하는 길
그래서 그 길을 걷다가
내 삶의 길도
찾아질 것 같은 길
그 아래로 멀리서부터 보이던 중계소 탑과 건물이 보였다. 3시 25분 아래로 내려가니 바로 아래 화강암 정상석이 새워져 잇는데 정상부가 아닌 곳에 잇는 것이 생뚱스럽게 보였다. 아래 중계소를 좌로 돌아 내려가니 도로가 나오고 백두대간 길을 표시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어갈 대간 길이 보이지 않았다. 찾다가 이명철 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불어보니 조금 위쪽으로 가면 리본이 보일거라고 알려 주었다. 이 구간은 길 찾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전화번호를 적어갔고 갔었다. 들은데도 가서 길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 그 입구에 남원 콜택시 번호가 써 있어서 1시간 후 매요리로 와 달라고 전화를 했다.
조금 올라가면 리본이 있을 거라고 햇다. 들은대로 리본을 찾아 들어갔다. 거기서 아래로 내려오다 두 번이나 횡단하는 도로를 지나 내려가다 다시 도로를 만났다. 거기서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고 한 말데로 안심하고 걸었다. 조금 가다 벌초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다시 길을 물어보니 내려가다 좌측 산쪽으로 접어들어 가라고 했다. 그 입구를 찾아 조금 더 내려갔으나 보이지 않았다. 마을로 빠져 나가는 것이 이상해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니 잘못 왔다고 하며 저 위로 올라가 능선을 찾아가라고 했다. 급히 다시 돌아 올라가 보니 아까 도로가 꺽여내려오는 곳에서 직진하여 능선길을 찾아가도록 리본이 매어 있는데 보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었다. 아까 벌초하는 사람이 알려줄 때 그 지점을 착각하고 잘 못 알려준 듯 했다.
4시 40분 능선을 따라 올라갔다. 고남산에서부터 지도상에는 2시간 반이 넘게 써 있었지만 내리막 구간이라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기다리게 될 것 같아서 서둘러 갔다. 기사에게 전화가 걸려와서 미안한 마음에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하고 산길을 뛰다시피 걸어갔다. 그러나 금방 막바지에 다다를 것 같은 하산길을 가다가도 다시 오르기를 몇 번 반복해야 했다. 정말 아래쪽이 트이고 밭이 보이는 지점으로 내려왔다. 밭에서 일하는 분께 마을 회관을 물으니 앞에 난 고개 길을 넘어가라고 했다. 5시 20분 매요리에 마을 회관에 다가하니 그 앞에 택시가 한대 서 있었다. 지나가던 동네 분에게 다음 구간으로 가는 곳을 물어 보았다. 조금 가서 좌측으로 오르면 된다고 했다.
전에 3구간을 시작하며 밤에 도착할 때 개가 시끄럽게 짓고 있어서 마치 개를 사육하는 동네인양 동네 인상이 좋지 않게 여겨졌었다. 그런데 낮에 보니 백두대간이 지나는 산세가 감싸고 있는 평화로운 인상이 느껴졌다. 그 마을에 사시는 분들의 심성도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다시 와 보지 않았으면 매요리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지녔을 것 같아 다시 찾게 된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되었다. 대문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안이 보이는 집으로 들어서서 물을 얻어마셨는데 시원한 물맛이 좋았다.
택시를 타고 지나며 밤에 올라갔던 곳을 기억으로 더듬으며 지나쳤다. 남원에 도착해 차표를 사고 보니 45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길을 건너 바로 보인 편의점에 가서 시원한 캔 맥주를 사 마시며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근처서 가장 맛있게 하는 집을 물어 알려준 곳으로 찾아가 뚝배기를 시켰다. 식사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확인하니 어제부터 전화기를 꺼놓은 사이 걸려온 부재중 전화와 호출 번호가 기록되어 있어서 확인 전화를 하다보니 다시 속세의 번잡스러움과 마주치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저녘을 먹고 6시 30분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070908)
첫댓글 하하하하하 혼자서 산행한다는것이 쉽지않은데 용기가 대단합니다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 지난번 암벽 등산 학교 다녀오셨다는 말씀 듣고 놀랐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