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이렇습니다] Q : 만해와 백담사는 어떤 인연이 있기에 매년 만해축전을 백담사에서 여나?
8월 4일자 A8면 '님은 문화의 바다를 안고 다시 왔습니다'를 보면 만해축전이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고 한다. 한용운과 백담사는 어떤 인연이 있기에 만해마을을 백담사 부근에 만들고 그곳에서 매년 만해축전을 여는가?
― 서울 도봉구 독자 김선중씨
A : 만해가 첫 출가한 곳이 백담사, 시집 '님의 침묵'을 집필한 마음의 고향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 ~1944) 선생의 유적지는 크게 세 곳을 꼽을 수 있습니다. 출생지인 충남 홍성과 출가한 백담사, 그리고 만년을 보낸 서울 성북동의 거처 심우장(尋牛莊)입니다.
이 가운데 스님이자 문인·독립운동가로서 만해의 정체성이 확립된 곳이 백담사입니다. 청년기의 방황 속에서 출가의 결심을 굳힌 만해는 스무살 때 처음 백담사에 들렀고 5년 후엔 다시 백담사를 찾아 스님이 됐습니다. 백담사와 오세암 등에서 '기신론' '화엄경' '원각경' 등 불교 경전을 공부하며 승려로서 기본소양을 닦았습니다.
이곳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젊은 날의 기억 때문인지 만해는 백담사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3·1운동으로 3년 동안의 옥고를 치른 후에는 백담사에 칩거해 시집 '님의 침묵'과 '조선불교유신론' 등 명저를 집필했습니다. 그의 몸이 도시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도 백담사는 '마음의 고향'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백담사는 만해 사후 그의 자취가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설악산의 조용한 산사(山寺)로만 알려졌던 백담사가 다시 한 번 '만해의 절'로 거듭나게 된 것은 현재 백담사 회주(會主)인 오현 스님 때문이었습니다. 원로 승려이자 저명한 시조시인이기도 한 오현 스님은 불교계와 문단의 대선배인 만해의 정신을 되살리는 데 10여년 전부터 힘을 쏟고 있습니다. 1996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만들고 1999년부터 백담사에서 '만해축전'을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2003년에는 백담사 계곡 입구의 1만7450㎡의 부지에 '백담사 만해마을'을 만들었습니다. '만해문학박물관' '만해사(寺)' '만해학교' '님의 침묵 광장'과 만해 동상이 들어선 '만해마을'은 언제든 만해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명실상부한 '만해 성지(聖地)'로 거듭났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매년 여름 만해축전은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펼쳐집니다.
조선일보 200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