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신창원에게 여러 사람들이 종교적으로 접근을 해 왔다. 하루는 그를
찾아 갔더니 화가 난 얼굴로 이렇게 내뱉었다.
“감옥으로 날 찾아오는 성직자들은 모두 자기가 나를 전호했다고 하고
싶은가 봐요. 그렇지만 내가 예수를 믿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사람은
따로 있어요.“
그는 잡기기 일 년 전쯤의 이야기를 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한 여름밤,
그는 신림동의 한 집에 가스관을 타고 들어갔다. 책을 읽다가 막 잠을 자려던
여자 대학원생의 방이었다. 신창원은 기겁을 한 그녀의 입을 막고 소리치지
못하게 하면서 속삭였다.
“날 탈주범 신창원입니다. 해치지 않을게요.”
잠시 후 여자는 안정을 찾은 것 같았다. 계속 내리는 장대비 때문에 그의
옷을 흠뻑 젖어 있었다.
“아무데도 갈 데가 없습니다. 잠시 있다가 나가겠습니다. 조금도 괴롭히지
않을 테니 염려마세요.“
신창원은 그녀를 안심시키느라 지난날을 조금씩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는 그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경찰의 끈질긴 추적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도주과정까지 말이 나오자 그녀의 눈에 동정의 빛이 역력했다.
여자도 자기 얘기를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학교에 아니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얘기였다. 시계가 어느새 밤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도 아직 먹지 못했다는 신창원의 말에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더니 구석의
싱크대에서 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자는 부글부글 끓는 된장찌개와
밥을 그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는 숟가락을 들자마자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여자는 남차 트레이닝을 한 벌 가지고 와서 갈아입게 했다. 더러운 그의
옷은 빨아 말려주었다. 그는 주차장의 훔친 차 트렁크에 있는 몇 천만 원의
현찰뭉치와 달러가 떠올랐다.
“소원이 뭐예요?”
그가 여자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별게 있겠어요? 돈 벌기 힘들 때면 한번 돈방석에 앉아 보는 거죠.”
잠시 후 주차장에 갔다 온 그의 손에는 검고 큼직한 골프백이 들려 있었다.
그가 골프백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가방 안의 돈뭉치를 신기한 듯
꺼내더니 방에 돈방석을 만들어 앉아 보았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창문이 희부예졌다. 그녀는 돈을 도로 가방에 넣으면서
말했다.
“이제 동생이 돌아올 시간이니까 가세요.”
그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자, 그녀가 돈가방을 그에게 돌러주었다. 그녀는
단 한 푼도 갖지 않았다.
“그러면 왜 저한테 그렇게 잘해줬어요?”
그가 물었다. 잠시지만 그녀가 다른 욕심이 있는 걸로 생각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죄인이 쫓기고 힘들어 할 때 그리 하라고 하셨어요.”
연립주택의 문을 나서면서 그는 언젠가 주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끝
** 원제는 "연립주택에 사는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