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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베트남 Thanh Nien Daily 2012-1-5 (번역) 크메르의 세계
훈센 : "베트남은 캄보디아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부활시킨 것"
Vietnam did not invade, but revived Cambodia: Hun Sen
캄보디아의 훈센(Hun Sen) 총리는 베트남이 1970년대에 이웃의 캄보디아를 침략했다는 주장을 딱 잘라서 부인했다. 그는 베트남 군대의 장병들은 "캄보디아 및 캄보디아 인민들의 생존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훈센 총리는 1월2일 베트남 남부 동나이(Dong Nai) 도에서 자신의 유격부대였던 '125부대(Unit 125) 창설 기념식'에 참석한 후, 1월3일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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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트남'이란 단어의 모든 의미를 결코 완벽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다. 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베트남은 캄보디아의 부활과 발전을 의미한다." |
훈센 총리가 창설한 '125부대'는 캄보디아 저항운동의 출발점으로서, 1978년 12월 2일에 결성된 '캄푸치아 민족해방전선'(KUFNS)보다 앞서서 창설됐다. KUFNS는 이후 마침내 크메르루즈(Khmer Rouge) 학살정권을 물리쳤다. 이번에 제막된 기념탑은 크메르루주 정권 붕괴일인 1월7일의 33주년을 기념하여 설치된 것이다.

(사진: Duc Tam/VNA, VNS)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좌)가 응웬 떤중 베트남 총리(우)와 함께 125부대 기념탑 제막식 테이프를 커팅하고 있다.
훈센 총리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전쟁] 참전용사들 및 "캄보디아 및 캄보디아 인민들의 부활을 위해 희생해준" 순교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전직 크메르루주 지도자들이 지난 달에 열린 국제재판에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했다'고 주장한 일에 대해, '기만적인' 말로서 일고의 대응할 필요성도 없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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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과 학살자들이 죄값을 피하고자 내뱉는 방어의 말이다. 우리나라가 학살 정권 밑에 있었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고, 우리와 국제사회가 그들에 대한 재판을 열고 있다." |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국제법정'(ECCC)을 일반적으로 '크메르루주 재판'(Khmer Rouge Tribunal: KRT)으로 불리는데, 크메르루주 정권의 고위 지도자들을 재판하기 위해 유엔(UN)과 캄보디아 정부의 합의 하에 설치된 캄보디아 국내 법원이다.
크메르루주의 지도자였던 폴 포트(Pol Pot) 서기장은 재판을 받지 않은 채 지난 1998년에 사망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는 4인의 고위급 지도자들은 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주의 범죄 혐의가 적용되어 금년 말부터 ECCC의 본심 재판을 받고 있다. ECCC의 '제002호' 사건의 피고인들에는 누온 찌어(Nuon Chea, 85세)를 비롯하여 이엥 사리(Ieng Sary), 키우 삼판(Khieu Samphan), 이엥 티릿(Ieng Thirith) 피고인들이 포함된다. ECCC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들은 반-인도주의 범죄, 1949년에 체결된 제네바 협약의 수많은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받고 있다.
폴 포트가 이끌던 크메르루주 정권은 이상적인 농업국가를 지향하면서 도시인들의 강제이주, 종교의 금지 등 극단적인 정책들을 펼쳤다. 또한 마구잡이식 처형과 과중한 노동, 그리고 기아 등으로 인해 베트남 군대가 그들을 몰아내기 전인 1975~1979년 사이의 집권기에 약 200만명을 희생시켰다.
<훈센: 캄보디아의 강자>(Hun Sen: Strong man of Cambodia)의 공저자들인 하리시 메타(Harish Mehta)와 줄리 메타(Julie Mehta)는 이 책에서, 훈센이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에 관한 질문을 받자 매우 화를 냈다고 적은 바 있다. 훈센 총리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당시의 분노를 상기시키면서, 일부 사람들이 베트남 군대가 캄보디아를 도운 일을 그릇되게도 '침략'(invasion)으로 묘사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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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러한 주장들을 강력히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출형한 일은 캄보디아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위해 한 일이었다. (중략) 어떤 나라라도 베트남만큼 캄보디아를 도와준 나라가 있단 말인가? 없다! 오직 베트남 인민들과 그 군대만이 캄보디아가 가장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캄보디아를 도와주었다."
"폴 포트 정권은 수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을 죽였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베트남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더욱 강성해졌을 때, 베트남은 그 군대를 철수시켰다. 실제로 그들은 1989년에 군대를 철수했다. 이후 베트남은 20년 이상 캄보디아에 출현하지 않고 있다." |
<보이지 않는 적들: 미국의 베트남 전쟁, 1975~2000년 사이>(Invisible Enemies: The American War on Vietnam, 1975-2000)의 저자이자 '웨스턴 미시간 대학'(Western Michigan University)의 역사학과 소속인 에드윈 마르티니(Edwin Martini) 교수는, 미국이 크메르루주를 지원하면서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을 비난했다고 말한다. 그는 [본지의 자매지인] <비엣위크>(Vietweek)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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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미국의 입장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비난하는 것이었고, 넓게 보면 1980년대 레이건(Reagan) 행정부 시절에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영속화되고 있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의 학살을 중지시킬 수도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워싱턴 당국에게는 단순히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
마르티니 교수는 작년 7월 <비엣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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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대부분의 보급품과 물자들이 크메르루주에게 갈 것이란 점을 알았지만, 미국은 그들이 '반공 레지스탕스'(non-communist resistance)라 부른 세력에게 이 모든 물자와 보급품들을 공급했다. 대부분의 학자들과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베트남이 캄보디아 학살을 종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그러한 침략을 크메르루주가 촉발시켰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
1968~1975년 사이에 남-베트남 주재 'AP통신' 특파원을 지낸 칼 로빈슨(Carl Robinson) 역시 미국이 베트남의 침략을 비난한 일에 대해 유사한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비엣위크>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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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과 크메르루주 정권의 전복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1975년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화라고 생각한다. 더욱 나쁜 것은 미국이 이후로도 여러 해 동안 유엔에서 크메르루주를 지지한 일이다. 나는 당시에 '강경파들'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승리하여, 그런 방법을 통해 [북-베트남이] 사이공 정권을 공격하여 전쟁을 끝낸지 4년 뒤에 하노이 정권을 손보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
미군의 퇴역 대령인 앤드레 소바것(Andre Sauvageot)은 지난 2008년 3월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Relations) 산하 '동아시아 및 태평양 분과위원회'(Subcommittee on East Asia and Pacific Affairs)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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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캄보디아를 해방시킨 베트남에 대적하기 위해, 중국과 학살정권인 크메르루주를 지원했다. 예를 들면 유엔이 '민주 캄푸치아'(크메르루주 집권기의 국가명)가 그대로 의석을 보유하도록 하는가 하면, '아세안'(ASEAN)이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에 대항하여 연합전선을 펼치도록 로비를 하기도 했다." |
소바것은 미 육군 소속으로 1964~1973년 사이의 9년 동안 베트남에서 근무하면서 적극적인 임무를 수행했다. 또한 전후에는 미국 정부에서 정치적 분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베트남이 오직 소련만의 외교적 지원을 받으면서 일방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베트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엣위크>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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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베트남, 오직 베트남만이 폴 포트의 광기어린 학살 정권으로부터 크메르 국민들을 구해냈다. 그것은 영웅적인 일로서, '베트남 인민군'(PAVN)은 1979년 1월 7일에 신속하게 크메르루주 정권을 붕괴시킨 후, 뚜올 슬렝(Tuol Sleng)과 같은 고문센터와 죽음의 캠프들을 폐쇄시키고, '킬링필드'라 불린 대량학살을 중단시키고, 헹 삼린(Heng Samrin) 및 훈센의 지도 하의 캄보디아 정부가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 (중략) 이것은 크메르루주와 같은 공포와 테러가 캄보디아에서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보장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
그는 베트남이 당시 자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수년 간 싸우면서 그 자신도 헐벗은 상태였지만, 캄보디아인들을 돕기 위해 식량을 캄보디아로 보냈다고 지적했다. 당시 캄보디아의 곡물 수확 상황은 크메르루주의 공포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베트남 인민군'의 배치에 따라 혼돈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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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베트남이 소련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중국의 위성국가로서의 지위를 받아들이도록 할 전략의 일환으로, 크메르루주를 이용하여 [베트남 영토를] 습격하도록 했다. 베이징 당국은 베트남이 중국의 동맹세력인 크메르루주에 대해 감히 어떤 일도 하지 못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미국 정부 내의 내 동료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중국과 미국의 평가는 모두 잘못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 역시 당시에 그렇게 예측했었다." |
소바것 대령은 베트남은 캄보디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했다면서, 중국에 대해 크메르루주에 대한 지원을 중단토록 열심히 설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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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크메르루주에 대해서도 습격을 중단토록 설득했지만, 또 다시 성과를 얻지 못했다. 따라서 베트남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하노이 당국에 남아 있는 방법은 '베트남 인민군'의 젊고 영웅적인 장병들을 캄보디아로 보내는 것 뿐이었다. 하노이 당국은 캄보디아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과 정부는 크메르루주 정권의 테러행위(중국의 지원 하에 베트남을 습격하는 일)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필요도 함께 갖고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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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작성 : Minh Nam, Tan Tu, An Dien (Thanh Nien News 소속)
이 기사는 1월6일자 <비엣위크> 출판본에도 수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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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국에 유리한 내용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베트남 기자들도 보기 드물게 정교한 기사를 썼네요..
일단 여기에 거론된 미국인들의 말이
맥락이 어떠한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있어 보이고..
둘째는, 마치 1979년 1월 7일 이후 30여년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듯 한 논조군요..
저의 관점은 크메르루주도 나쁜 정권이었고,
이후 등장한 베트남 위성정권과 훈센 정권 역시..
뭐.. 크게 다를 게 없다는거죠..
사람만 덜 죽이죠..
베트남이 식량을 캄보디아로 실어날랐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죠..
최대 25만명을 진격시켰는데, 안 그럴 수 있나요..
그리고 자발적으로 철군했다???
아니죠..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소련이 여력이 없어서 발을 빼니..
베트남으로서도 혼자서 전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려서
협상을 통해 철군하려다 보니..
하나도 남김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대신 친-베트남 인사들 내지는 진짜 베트남 군인들을
그냥 캄보디아 정부나 군대에 캄보디아인으로 위장해서 짱 박아 놓고 나온거죠..
그래서 사실상 오늘날 캄보디아에서 유권자들의 상당수가 베트남인들로 채워지는 현상이 나타나는건데..
어차피 캄보디아로서는 내년에 열릴 총선이 마지막 결전이 되겠죠,..
그 이후는 정말 예측이 안 되네요
그리고 훈센 씨는 베트남 가서
아주 확실히 발언해주고 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