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고려시대 건설관련 관청중에 선공사 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선공시 라고 개칭되었습니다. 고려말기에 양우룡 선조님께서는 선공시에서 승의 벼슬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은 시승공파로 분파하였습니다. 병부공의 자손은 1세에서 9세까지의 선조님은 같으며 10세부터 분파합니다. 10세에 판서공/밀직공/묵제공/동정공/제주공/집의공 으로 분파합니다. 시승공께서는 묵제공의 장자이십니다.
글을 통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 올려 보겠습니다. 보통 족보의 책자는 한 페이지에 여섯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1세에서 6세까지 기록하고 마지막 칸에 기록된 6세는 다음페이지의 첫번째 칸에 다시 기록하여 출처를 확인하고 대를 이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윗 글이 이해가 되셔야 설명이 됩니다. 족보 첫페이지는 1세조에서 6세조까지 여섯칸에 나누어 기록하고 마지막 칸에 기록된 6세조는 페이지를 넘겨서 첫번째 칸에 기록합니다. 그러면 6세에서 11세까지 기록하게 되니 11세가 마지막칸에 기록됩니다. 양우룡 선조님께서는 병부공 11세이시니 마지막깐에 기록됩니다.
@천산족보의 마지막 칸에 기록할 때는 일반적으로 마지막 칸에는 이름만 기록하고 페이지를 넘겨서 다시 첫번째 칸에 이름과 함께 행적을 기록합니다. 다만 절손이 될 경우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므로 마지막 칸에 행적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시승공께서는 마지막 칸에 시승을 지내시고 동락은사 이셨다는 내용을 기록합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절손이겠지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겨서 첫번째 칸에 시승공께서 다시 기록됩니다. 선공시의 승을 지내시고 동락은사 이셨다는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됩니다. 이것은 기록자의 실수인 것이지, 다른 분이 아닌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땐 너무 어처구니 없습니다만 우리 종문의 안타까운 다툼입니다.
첫댓글 고려시대 건설관련 관청중에 선공사 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선공시 라고 개칭되었습니다. 고려말기에 양우룡 선조님께서는 선공시에서 승의 벼슬을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후손들은 시승공파로 분파하였습니다. 병부공의 자손은 1세에서 9세까지의 선조님은 같으며 10세부터 분파합니다. 10세에 판서공/밀직공/묵제공/동정공/제주공/집의공 으로 분파합니다. 시승공께서는 묵제공의 장자이십니다.
시승공께서는 고려가 무너지자 은거하셨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벼슬을 계속하여 장관인 전서에 올랐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하여 전서공파라고 칭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천산 다만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의 시승공 자손들께서는 시승공께서 병부공의 자손이 아니라 대방군의 자손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시승공께서는 틀림없이 묵제공의 장자이십니다.
글을 통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말씀 올려 보겠습니다.
보통 족보의 책자는 한 페이지에 여섯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1세에서 6세까지 기록하고 마지막 칸에 기록된 6세는 다음페이지의 첫번째 칸에 다시 기록하여 출처를 확인하고 대를 이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윗 글이 이해가 되셔야 설명이 됩니다.
족보 첫페이지는 1세조에서 6세조까지 여섯칸에 나누어 기록하고
마지막 칸에 기록된 6세조는 페이지를 넘겨서 첫번째 칸에 기록합니다. 그러면 6세에서 11세까지 기록하게 되니 11세가 마지막칸에 기록됩니다. 양우룡 선조님께서는 병부공 11세이시니 마지막깐에 기록됩니다.
@천산 족보의 마지막 칸에 기록할 때는 일반적으로 마지막 칸에는 이름만 기록하고 페이지를 넘겨서 다시 첫번째 칸에 이름과 함께 행적을 기록합니다. 다만 절손이 될 경우 다음 페이지를 넘기지 않으므로 마지막 칸에 행적을 기록합니다.
그런데 시승공께서는 마지막 칸에 시승을 지내시고 동락은사 이셨다는 내용을 기록합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절손이겠지요
그런데 페이지를 넘겨서 첫번째 칸에 시승공께서 다시 기록됩니다. 선공시의 승을 지내시고 동락은사 이셨다는 동일한 내용으로 기록됩니다.
이것은 기록자의 실수인 것이지, 다른 분이 아닌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땐 너무 어처구니 없습니다만 우리 종문의 안타까운 다툼입니다.
시승공파에대해 알게되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