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허 망루따라 2천년역사 뒤흔든 민족갈등의 경계선 걸어 | ||||||||||||||||||||||||||||||||||||||||||||||||||||||||||||||||||||||||||||||||||||||||||
| ||||||||||||||||||||||||||||||||||||||||||||||||||||||||||||||||||||||||||||||||||||||||||
‘산행으로 가는 만리장성 종주길’은 400년 가까이 폐허화 되어가는 자연상태 만리장성 지역에서 경관, 등반성, 역사성이 있는 구간을 선정하여 산행으로 종주하는 것이다. 한반도 백두대간 종주산행에서 축적된 한국적 등산스타일을 만리장성 산악지역의 산줄기 구간에 접목한 새로운 시도의 중국트레킹이다. 도상거리 2천700킬로미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까지 합치면 5~6천 킬로미터 중국 만리장성!
북방계 유목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남방계 농경민족들은 산줄기에 의지해 여기저기 성을 쌓기 시작했다. 이것이 만리장성의 태동이다. 춘추시대부터라 하니 대략 2천5백년 전부터다. 그러다가 1300년대 중반, 북방민족(몽고족)인 원나라의 지배로부터 풀려난 명나라가 “북방민족의 침략에 결코 당하지 않겠다!” 면서 200년 동안 대대적인 보수를 하고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던 성과 성을 연결한 것이 지금의 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은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선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생활과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명나라는 이런 축성의 보람도 없이 결국 북방계 만주족에게 또다시 침략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세워진 나라가 바로 청나라. 우라와도 원한이 많은 청나라! 북방민족이 중국을 통일하니 이 방어선은 무용지물이 된 것. 이때가 1630년경이므로 만리장성이 방치되고 허물어져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현대에 이르러 중국 정부는 이 만리장성의 일부를 보수하여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쪽의 감숙성 남부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요녕성까지 만여리의 성을 연결한 것이 만리장성 이지만 산악지형이 험준한 곳은 자연상태 그대로가 바로 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만리장성 종주는 장성의 동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첫 관문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시작된다. 이곳은 ‘친황다오의 천하제일관’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우는 아름다운 곳이고,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사람들을 배 태워 우리나라에 보내던 곳이기도 한다. 친황다오는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동쪽 랴오둥만(遼東灣)에 있는 항구도시로 땅콩과 콩을 수출하며 무역항으로 발전하고 있다. 남서쪽 해안지구는 경치가 수려해 20세기 초부터 여름철 휴양지로 이용되고 있다. ‘산행으로 가는 만리장성 종주길’은 약 99구간, 1천킬로미터의 종주산행이 가능하다. 이 산행 '대장정'을 계획하고 첫 발을 내딛은 사람은 (사)한국등산안전협회 박종철 부회장(유피트레킹여행사 대표) 이다. 박 부회장은 GPS를 이용, 백두대간과 9정맥을 완주하고 왕성한 해외트레킹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산꾼으로, 2년 전부터 만리장성 종주산행 개척에 나섰다.
다음은 월간 '사람과 산' 주민욱 기자의 동행취재기 일부다. [400년 가까이 허물어지고 있는 만리장성 산줄기 종주산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만만찮다. 마치 너덜지대를 통과 하는듯한 느낌이다. 모두들 신중하게 한발 한발 내딛는다. 두꺼운 성벽을 뚫고 올라온 나지막한 잡목들이 우리나라 잡목보다 억센 것 같다. 아무리 더워도 긴바지는 필수. 능선으로 올라서자 성벽 양쪽으로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2천년 넘게 갈라놓았던 아시아대륙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산맥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첩첩 산줄기를 따라 여러 겹의 성벽 흔적들이 조망된다. 원래 만리장성은 하나의 연결된 선이 아니라, 주변 산악지역 산줄기를 따라서 여러 겹으로 형성되어 있다. 많은 곳은 12겹까지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역사적인 사건 또한 풍부한 곳이다.
세계7대축조물인 만리장성은 1리를 만들 때마다 한 사람씩 희생되었다 해서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 이라고도 한다. 축성공사를 하다가 인부가 죽으면 그 자리에 바로 묻혔기 때문에 그렇다. 만리장성에 얽힌 여러 가지 설화나 전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산길을 이어가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그동안 걸어온 능선이 아득하다.
“와! 벌써 이렇게 많이 왔어?” 모두들 스스로 놀란다. 그리고 앞을 바라보니 이제 가야할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기 네 번째 망루에서 쉬자.”고 누군가 말하자 우리는 모두 눈빛으로 동의한다. 만리장성 종주에는 특징이 있다. 400여 미터마다 폐허가 된 망루가 버티고 있다. 크고 작은 각 봉우리마다 망루가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걸어왔던 길, 걸어가야 할 길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 지루하지가 않다. 산행 팀에게 있어서 망루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쉼터이면서 거리와 방향을 가늠하는 지표의 기능을 해준다.
또한 망루의 건축물 형태가 제각각 달라서 폐허가 된 망루를 감상하면서 아시아대륙 역사의 향기를 호흡하는 재미도 있다. 아마 관광목적으로 잘 복원해 놓았다면 이런 느낌을 전혀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만리장성종주에서 느낄 수 있는 큰 매력은 망루를 통과할 때마다 달라지는 경치입니다. 그래서 힘들면서도 다양한 망루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루하지 않게 산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고 박 부회장은 설명한다.
구문구(九門口) 장성이 있는 구문구 마을은 1구간 산행 후 2, 3, 4구간의 거점으로 삼기에 알맞다. 구문구 장성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성이다. 물길로 공격해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하천을 따라 아홉 개의 장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역사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된다. 옛사람들은 이 장성의 경관을 읊을 때 ‘성이 물위를 달리고, 물은 성안을 흐른다.’며 수상장성(水上長城) 이라 했다고 한다. 구문구 마을은 조용하고 평화롭다.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를 연상케 하는 숙박시설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곳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규모는 작지만 숙박, 시장, 식당이 있어 큰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으며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주변 장성들을 트레킹할 수도 있다.
구문구 장성 능선을 넘는 2구간이 시작되면서 협곡을 지나 본격적인 능선길이다. 기나긴 협곡을 지날 때 수 십 마리의 양떼를 몰고 가는 목가적인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다. 양떼를 몰고 말달리던 유목민족과 고향 흙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짓다 뒷산에 묻힌 농경민족이 서로 충돌하고 갈등했던 경계선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다 눈길을 돌리니 가파른 오르막길이 떡 버티고 있다. 흙과 벽돌이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이 되어버린 장성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자 아기자기한 바위가 산행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준다.
약 10킬로미터 6시간의 산행이 끝나면 2구간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작고 조용한 황토령 마을이다. 특히 이 마을에서는 한국의 자장면과 비슷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니면, 이 마을의 자장면을 한국에서 먹었었나? 농경생활을 하는 마을주민들이 내놓은 음식이지만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황토령 마을을 출발, 걷는 내내 험준한 산맥을 감상할 수 있는 3구간은 경치가 좋다하여 중국 산악인들도 좋아하는 코스란다. 하지만 역시 만만찮다. 가파른 구간은 늘 인내를 요구하고 평평한 흙길은 아주 간간이 나타난다. 그래서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웅장한 바위가 버티고 있는가하면 평화로운 계단식 논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저 멀리 봉우리 위의 망루는 마치 예쁜 처녀 젖가슴을 연상케 한다. 약 10킬로미터 6시간을 걸어 3구간 종점에 다다르자 추자산 앞으로 험한 산세가 버티고 서있다. 이 구간은 약 5km의 거리로서 전문 암벽장비를 이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루트 개척이 안 된 리지등반 구간이다. 워킹과 리지등반을 병행하기에는 많은 체력소모가 예상되기에 그 구간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동가구 마을에서 시작하는 4구간은 능선, 도로, 협곡으로 이어지며 하산로까지 가파른 구간의 고도감을 만끽한다. 바위를 움켜잡고 통과하는 수백 미터 구간은 순간순간 긴장되는 듯하나 차분히 이동하면 안전하게 지날 수 있다. 가파른 내리막길 역시 약간의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는 우회길이 있어 안전하게 하산할 수도 있다. 중급자 수준의 산행을 요하며 산세가 험하지만 역시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산이다. 이번 취재산행에서 장성을 걷는 동안 내내, 장성 축조공사에 동원된 옛 사람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험하고 험한 이곳에 어떻게 성을 쌓았을까?” 하는 의문부호가 따라 다녔다.] ‘산행으로 가는 만리장성 종주길’은 현재진행형으로 이제 그 막이 오르고 있다.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는 관광지 만리장성이 아닌 아시아대륙 2,300년 갈등과 전쟁의 거친 역사의 칼날 위를 발로 걷는 등산의 대상지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신 분은 사단법인 한국등산안전협회 홈페이지 www.san114.org 또는 유피트레킹여행사 / 전화 02-3402-1666 으로 문의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