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시키(志木)시 호소다(細田)고교생 4백여 명이 정선을 찾는다. 우리 나라에서도 두메산골로 알려진 정선으로 일본 고등학생들이 찾아드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지난 98년부터 벌써 천여 명이 정선을 다녀갔다. 도대체 일본 고교생들이 해마다 정선을 찾아와 아리랑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아리랑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려는 호소다고교 호소다사나에(細田早苗·78) 교장의 교육 철학으로 돌리고 싶다. 이렇게 '교육철학'이라고 거창하게 말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평소 지한파(知韓派)인 호소다 교장이 제자들을 이끌고 우리 나라를 찾은 것은 1978년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 일본인은 많지 않았다. '가깝지만 관심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한국을 '가까우면서도 관심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무려 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수학여행지로 한국을 다녀가게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유산을 통해 한국을 느끼고 한국의 문화를 체험하게 했다. 그러한 노력이 쌓이며 보탬이 되었을까.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한국을 관심 있는 나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997년 겨울이다. 당시 아리랑을 찾아 우리 나라와 해외로 찾아 다니는 나를 주제로 한 KBS 다큐멘타리 「진용선, 그리고 정선 이야기」를 본 서울 양정고교의 엄규백 교장이 호소다교장을 안내해 정선아리랑학교를 방문했다. 조그마한 체구였지만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호소다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생들에게 심어 주고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을 수 있었다. 일본 학생들에게 아리랑 강의와 공연을 부탁할 때 나는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았다. 정선아리랑을 한국 학생이 아닌 일본학생들이 배우러 온다는 사실이 은근히 부러울 뿐이었다.
사실 나는 정선에서 10년 넘게 아리랑을 화두에 두고 살았지만, 정선아리랑을 배우고자 온 우리 나라 고등학교는 불과 몇 학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언제나 일정에 쫓기는 선생님들의 '맛뵈기'라는 말을 은근히 강요받으면서 아리랑을 가르쳤으니 말이다. 어쨋든 아리랑을 배우러 외국인이 몰려온다는 사실은 정선에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정선아리랑의 홍보, 아니 정선아리랑의 상품화 전략에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호소다교장과의 인연은 이렇게 갑자기 시작된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나며, 나는 일본에 대해 조금씩 안목을 넓혀갈 수 있었다. 언젠가는 아리랑을 찾아 일본에 갈 생각으로 재일동포와 아리랑, 일본 음악에 관한 자료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조용한 자리에서 학생들의 부모들은 한국으로 수학여행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호소다교장에게 물어 보았다. 호소다교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수 년 전부터 일본 수학여행의 추세가 한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와 유럽으로 바뀌면서 한국보다는 호주나 유럽으로 가자는 부모들의 등쌀과 성화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국제사회에서 떳떳이 설 수 없다는 그
의 생각을 흔들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호소다고교는 3학년이 되면 누구나 한번씩 한국을 체험할 기회를 갖든다는 것이다. 호소다교장은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한번의 여행으로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리랑을 부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사실 한국에 대한, 아니 정선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한일중등교육자협회 일본측 회장을 역임 할 때부터 백 여 차례가 넘게 한국을 다녀갔고, 이러한 공로로 명예 서울시민, 명예 부산시민이 된 것을 비롯해 우리 나라에서 받은 상만해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미 '한국의 표정(韓國の表情)', '한국여행기(韓國手探りの旅)'등에는 십 여년 전의 정선 일대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 해마다 반복되는 수학여행 코스임에도 2월이면 한국에 들어와 학생들이 찾아갈 곳을 답사하고 식당도 찾아가 음식맛을 본다. 뿐만아니라 학생들은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한달 전부터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
는 시간도 갖는다. 음악 시간에는 학생들 모두가 미리 '정선아리랑'을 배우도록 한다. 일본인 특유의 치밀함과 준비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정선아리랑이 학생들의 입에 붙을 무렵 우리 나라에 들어와 경주 안동 등지를 둘러보고 곧바로 찾는 곳은 정선이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온 탓에 학생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래도 아리랑공연을 감상하고 따라 부를 때는 눈빛이 반짝인다.
여든에 가까운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학생들과 동행하는 호소다교장의 모습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학생들 사이에 어우러져 사진을 찍을 때 동심이 묻어나던 얼굴은 '교장선생님'하면 무섭게 여겼던 나 자신의 학창시절과 대비돼 부럽기까지 했다.
나는 호소다교장의 한국사랑, 정선아리랑 사랑에 정말 많은 감동을 받았다. 내가 그를 명예 정선군민으로 추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정선아리랑제때 명예군민증을 받기 위해 부인 호소다데이꼬(細田貞子·77)여사와 함께 정선으로 오면서 옛 고향집을 찾아오듯 감격스러워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올해 초에는 일본 호소다교장의 초청으로 일본에 가 호소다 고교생들에게 특강을 했다. 제목은 「한국음악과 정선아리랑」이라는 주제로 좀 무거운 듯했지만 전교생과 모든 교직원이 자리를 가득 채운 대강당은 들뜬 분위기였다. 이들 학생들에게 '정선아리랑'이라는 단어는 이미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간동안 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아리랑을 하나하나 설명한 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지며 끝을 맺었다.
"나는 음악이 그 사회 안에서 나름대로의 용도를 갖고 다양하게 쓰인다고 생각합니다. 또 음악을 통해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고 민족의 정서가 나타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서로가 가까워진다고 믿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의 차이가 한번의 한국 방문으로 해소되기는 힘들겠지만, 아리랑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호소다교장의 생각과 다름없었다. 이날 강의가 끝난 후 나는 숙소에서 여러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일본 호소다 고교생의 조용한 아리랑 배우기가 반가우면서도 부럽게 느껴졌고, 호소다교장의 정선아리랑 사랑이 아직은 골 깊은 한일관계에 빛과 소금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로 돌아오는 날 나는 비행기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에 관심을 갖는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어섰다는 기사를 읽었다.
진용선(ararijys@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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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진용선 님은 아리랑연구가로 정선에서 태어나 인하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졸업 후 싱가폴휴먼서비스 통역 담당으로 근무하다가 귀향해 정선아리랑연구소와 정선아리랑학교를 세워 아리랑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있습니다. 현재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작물로는 <정선아리랑 찾아가세>, <함께 하는 아리랑>, <동강아리랑> 등 5권의 아리랑 관련 저서와 <해외동포 아리랑> CD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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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곧 나올 21세기 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될 원고내용입니다. 책이 너무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적은 인원에 예산부족 등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으로 불가피해졌습니다. 너그러이 용서바랍니다. 빠른 시일안에 책을 내겠습니다.
우선 맛보기로 먼저...(혼자 보기 너무 아까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