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번개와 함께 밤새 억수같이 내리던 비가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그쳤다.
간밤엔 날씨때문에 적잖이 걱정도 되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등산하는데 큰 지장은 없을듯 학오름 앞길은 하늘도 늘 도와준다.
9시30분 분당 오리역 4번출구엔 나를 포함해 등산대장 영화, 가짜도사 영호, 대전사나이 형주 , 드림팀대장 창환, 젠틀맨 주영, 청량리블루스 성동, 인품넉넉한 종경, 사진예술가 태암선생 철모, 동기회장님 기현, 어르신 재붕이 모두 11명이 모였다.
날씨핑계로 조금 잔머리굴리면 빠질 구실도 있으련만 11명이 모인걸보면
개인일정으로 빠진 태균회장 없이도 학오름 등산모임은 제대로 잘 돌아가고 있으니
참석한 우리 학오름 친구 모두에게 功을 돌려야 할 듯하다.
오리역에서 도보로 경부고속도로 아래 탄천변과 동막천을 따라 동천동성당을 지나고 굿모닝힐이란 아파트단지 뒤로 올라가니
수지방면에서 광교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나온다.
정말 영화대장이 말한대로 아는사람아니면 길 찾기가 쉽지 않을것같은 한적하고 조용한 등산로는 숲이 많이 우거지고 푹신푹신한 흙길이라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참 좋은 길이다.
등산로 들머리엔 고추 가지 호박 옥수수 깨 고구마 토란등을 심어 놓은 밭들이 군데군데 있는데 지금 계절에 맛볼수 있는 우리 농작물들은 거의 다 있는것 같다.
중국산이니 미국산이니 뭐다해서 온갖 먹을거리가 다 수입돼 들어오면서 우리 식탁을 점령한지가 오래지만
그래도 우리땅에 나는 우리 농산물이 수천년 동안 먹고 살아온 우리에겐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경제의 개방추세에 밀려 가격경쟁력이나 규모의 경제에서 열악한 우리 농업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니
身土不二만 내세울 수 없어 답답한 노릇이고 이러다가 정신도 육체도 모두 외국산이 되는건 아닌지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등산로입구에서 20분도 채 못가서 모두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식히느라 첫번째 휴식을하고
반바지차림으로 등산복을 입고온 내겐 벌써 모기녀석들이 두어놈 물었는지 다리가 가렵고 물린 자리가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밤새 내린 많은 비와 구름 잔뜩 낀 날씨에 끈끈한 습기가 쉼없이 온몸을 땀으로 흥건히 적시지만 우리일행 말고는 등산로에 사람하나 구경할수 없을만큼 한적하고 조용해 마치 광교산을 통째로 전세낸 듯하여 너무 좋다.
물 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쉬엄쉬엄 산길을 다시 오르니 이내 팔각정같은 전망대가 나오는데
동쪽 뒤로는 큰 저수지가 보이는데 낙생저수지라고 한다.
저수지 물위로는 조각배 같은게 여럿 떠있는데 골프연습장에서 스윙타석을 저수지 방향으로 공을 치게 만들어 놓고
골프공이 떨어지면 수거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고 한다 .
산 위에서 멀찌감치 저수지를 보고 있으려니 제법 그림이 괜찮다.
계속 숲이 울창한 한적한 산길은 이어진다. 햇볕이 없어 바람만 조금 불어주면 참 시원할듯한데 기다리는 바람은 불지 않는 법.
또 땀으로 범벅이되어 중간에 한번쉬고 발걸음을 떼니 미륵사란 절이 나오는데
절앞에는 산과 도로가 나뉘는 절개지라 등산로가 콘크리트 도로에서 끊어졌다.
도로를 건너 축대를 넘어올라가 로프가 쳐진 언덕배기로 좁은 등산로가 희미하게 나있고 지금부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숨을 쌕쌕거리며 한동안 부지런히 올라오니 광교산 시루봉이 1.5KM 남았다는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고기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몇 보인다.
지금부터 시루봉까지 올라가는 길이 마지막 오르막 길로 제법 힘든 구간이라고 영화대장이 일러 준다.
과연 정상까지 가는 길은 아까와 달리 경사도 급하고 고도가 높아지며 계단이 계속되는 다소 힘든 코스였다.
여름이 아닌 가을이나 겨울같았으면 한 달음에 올라왔으련만 더운 날씨엔 아무래도 힘이 들었다.
시루봉 바로 200미터 앞 눈아래로 시야가 탁트인 전망좋운 바위는 넓은 공간에 여럿이 앉아도 좋은 넉넉함이 있고
바위틈에 깊게 뿌리박고 서있는 石間松은 수령 수십년은 되아보이는데 자태가 늠름하다.
벌써 도착한 친구들은 영화대장이 정성스레 냉동해 준비해온 막걸리에 족발,해물빈대떡, 창환이가 배급한 6.25이후 가장 맛있다는 주먹밥으로 점심요기를 하고있다,
시각이 12시반이나 되었으니 바쁘게 빈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느라 손놀림들이 무척 날래다.
철모가 거의 정상 막바지에서 힘에 부친 탓인지 조금 늦었지만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올라왔다..
영호가 가져온 복숭아는 달기가 꿀을 바른듯 단맛이 깊은데 장인어른께서 집마당에 심어놓은 복숭아 나무에서 딴것이라 한다 .
사위사랑하는 장인어른 마음이 깊어서일까 참으로 甛蜜(첨밀)같이 달다.
철모는 그 큰 덩치에 땀을 한바가지나 흘렸을텐데 아무것도 먹지않고 복숭아는 알레르기때문에 입에도 못 댄다고하니 참 안스럽다.
모두 허기를 채우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그새 철모는 카메라만 만지면 힝이 샘솟는지
나 종경이 주영이 성동이더러 모델 사진 찍는다고 바위에 비스듬히 걸터 앉으라고 포즈를 정해주고
카메라 보지말고 자연스런 웃음을 지어보라며 찰칵찰칵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댄다.
대단한 不狂不及의 작가정신이다.
그런 치열함과 혼이 예술가나 작가같은 창조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아닐까 나름 생각해 본다.
바로 지척간인 시루봉에 올랐다. 광교산 정상이다.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철모가 단체기념사진 한장 찍고 노루목대피소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어느새 잔뜩 찌푸렸던 날씨는 햇볕 쨍쨍내려쬐는 맑은 날씨로 바뀌어 있다.
올라올때와는 달리 바람도 적당히 불어와 시원한 그늘과함께가는 발걸음이 한결 수월해진다.
내 앞에는 가짜도사와 안원장이 나누는 대화 내용이 사뭇 철학적이고 진지하다.
불과 2주 안팤의 짧은 세상구경을 하는 매미가 세상에 나올때까지 애벌레로 땅속에서 평균 7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것처럼 ,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때엔 몇 劫의 무한한 시간을 기다려서 나오는데
이 세상에 나와살아가는 백년도 못되는 우리의 삶은 윤회의 인연치고는 참으로 찰나일 뿐이다....
전생과 현재의 나는 윤회한다는데 그 속박에서 벗어난 존재가 되려면 신선이 그런 것 아닐까....
많은 존재론적 성찰을 담은 대화에 진지함이 뒤에서도 느껴진다.
노루목대피소를 지나면 통신대 철탑을 통과하고 등산객들이 돌 하나하나 얹어 쌓은 돌탑이 있는 억새밭이 나온다.
억새밭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하산길에 들어서니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한 외지고 어렴풋한 좁은 등산로가 이어지는데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북동쪽 경사면이다 .
칡덩굴과 사람 손이 닿지 않은 나뭇가지들은 가끔 머리맡에 닿기도 하지만 거의 온전한 자연이 남아있는 무공해의 모습이다.
우리11명 모습이 산삼을 캐러 산속을 누비는 심마니들 같다는 생각을 엉뚱하게도 해본다.
마치 산삼이 나올것 같아서....
산삼은 눈에 보였다가도 욕심을 부리면 사라져 버린다 하지 않던가!
최인호의 소설 "商道"에 나오는 戒盈杯 이야기도 과욕을 경계하라는 의미이고 보면 욕심을 자제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리라.
한참을 나뭇가지를 헤치며 내려오니 계곡물 소리가 요란하다.
많은 비가 내린 뒤라 수량도 풍부하고 자리도 넓직한 영화대장이 점찍어둔 곳에서
알탕으로 등목으로 족탕으로 해맑은 아이들마냥 즐겁게 놀아본다,
얼굴은 50대인데 노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樵童이다.
신선이 따로 없다,
옛날 사대부들은 체면때문에 정자가 있는 냇가에서 옷은 차마 못벗고 발만 담그는 濯足을 했다는데 이런 기분은 못 느꼈을 것이리라.
땀으로 절었던 끈적임과 몸에 가득찼던 열기가 때 벗기듯 씻겨 나간다.
상쾌한 기분으로 얼마 남지 않은 하산길을 내려오니 고기리 전원주택동네가 나오고
고만고만한 전원주택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다.
전원주택마을 끝자락에는 관음사라는 제법 큰 사찰이 보이고 냇가 개울에는 물놀이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고기리 유원지 계곡이 여기서 시작되어 아래로 계속 이어진다.
한일쉼터란 개울가 음식점에서 막걸리에 소주에 도토리묵 닭백숙 시켜 실컷 잘 먹고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음식값은 정기모임에 오랫만에 참석했다며 안원장이 쏘았다.
늘 넉넉한 인품에 점잖고 속이 깊은 안원장에게 많은 감사를 하고 싶다.
음식점에서 내어준 승합차로 오리역까지 오는 길엔 재붕이가 조용필의`여행을 떠나요`로 하루를 마감하는 노래 한곡 했다.
오리역에서 영화 영호 철모 성동이는 먼져 헤어지고 나머지 7명은 역앞 맥주집에서 치킨으로 가볍게 한잔하고 헤어졌다.
8월15일 광복절에 광교산에서 땀흘리고 계곡에서 소년처럼 순수하게 놀았던 시간을 오랫 동안 추억하고 싶다.
학오름 만세! 만세 ! 만세!
첫댓글 역시, 뻐꾸기글은 생생하구나. 감정이 묻어나오는 글이구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코스이지만, 다른 멤버들에게는 어떻게 생각될 지 걱정했는데, 다들 고수라서 그런지 알아보는구나.
원래 좋은 것은 널리 알려야 하는데, 이 코스는 제발 널리 알리지 말기를....우리만의 코스로 남겨주기를......
카메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어 놓고 그것을 보고 적더라도 저렇게는 못 적을 것 같다. 그 놀라운 기억력과 유려한 필체는 우리 학오름의 큰 자산이 아닌가 생각한다. 읽으면서 마음으로 느낌으로 살찌우는 것 같아 두고두고 볼 일이다. 수고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