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네발, 점심엔 두발, 그리고 저녁엔 세발로 다니는 것은 무엇이냐?”는 스핑크스의 유명한 수수께끼가 있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데 어떤 지식이 필요할까? 아마 동물학 박사라도 이 수수께끼를 만났다면 스핑크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틀려야 한다.
최근 기업경영에 있어서 ‘창의성’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됐던 20세기 경영과 달리 물건은 물론 마케팅, 디자인, R&D, 아이디어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야 21세기 경영이다“라는 이건희 삼성그룹 전회장의 발언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두고 있다. 지금 우리 한국경제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기업의 주력 시장인 전자, 철강, 자동차 등에서 맹추격해오는 중국기업과 첨단기술을 자랑하며 우리에게 쉽게 기술 1위 자리를 빼앗기려 하지 않는 일본기업의 틈바구니 속에 우리 한국기업은 생존을 서서히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가격을 아무리 싸게 만들어도 중국기업을 쉽게 따돌릴 수 없고 품질강화에 주력해도 일본기업을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해외 전문가들도 “한국이 더 이상 산업화 시대의 경쟁논리인 원가, 생산성, 품질에 치중한다면 영원히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견해를 이구동성으로 내놓고 있다. 결국 창의성이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미국 노스웨스튼 대학교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앤드류 라제기 교수가 쓴 리들(수수께끼, 원제 : The Riddle)은 창의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던져주며 그 수수께끼를 함께 풀어주고 있다. 본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 창의성에 관한 오해와 진실에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창의성에 관한 오해를 명쾌한 논리로 풀어주고 있고, 제 2부에서는 비즈니스의 창의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인지, 행동, 발달 심리학의 개념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마지막 3부에서는 비즈니스의 창의성을 깨우는 다섯 가지 열쇠를 소개하고 있다. 본서의 특징은 책의 구성이 상당히 간명하면서도 창의성, 특히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창의성을 해결할 수 있는 실천적 방법론이 제시되고 있다.
■ 비즈니스는 ‘고안적 창의성’이 필요
저자는 먼저 독자들에게 “예술적 창의성과 고안적 창의성의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하라”고 주장한다. 창의성이란 단어와 만나는 순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천재, 예술가 등을 떠올리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것은 비즈니스에 필요한 창의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은 고유의 아름다움이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예술적 창조물은 비길 데 없이 유일할 수 있지만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감상의 대상이면 그만이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필요가 없고 할 수도 없다. 반면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할 때 필요한 것은 예술적 창의성이 아닌 고안적 창의성이다. 저자는 이 고안적 창의성이 비즈니스 창의성이며,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핵심 목표이자 키워드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안적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채워지지 않은 욕구, 또는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갖는다. 사람들이 흔히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예술적 창의성과 문제를 해결하는 고안적 창의성의 차이를 오해하거나 간과하기 쉽다. 그런데 이 오해의 결과는 실제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알기 쉬운 예가 바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신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에서 실패로 끝나는 결정적 원인의 하나로 작용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독창성(예술적 창의성)에 치중한 나머지 무조건 새로운 것, 무조건 다른 것을 우선시 하면 그 결과는 예술적 창의성에서는 성공했지만 비즈니스적 창의성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또한 비즈니스 창의성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순도 100%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창의성이란 우리의 생각들을 시장 경쟁력이 있는 아이디어로 통합하고 재조합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비즈니스 창의성은 우리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이것은 몇몇 경영 천재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이에게 잠재해 있는 사고 과정과 능력이다. 결국 개인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창의적 아이디어의 발현은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충분히 논리적이고 인지적인 과정을 통해 도출할 수 있다.
■ 비즈니스 창의성을 깨우는 다섯 가지 열쇠
그렇다면 어떻게 고안적 창의성을 일깨울 수 있을까? 저자는 고안적 창의성을 발휘하기 전에 반드시 문제를 찾아내어 그 성격을 철저히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인 문제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것은 병을 진단하기도 전에 수술부터 하겠다고 나서는 외과의사와 같다. 문제가 구체화되었다면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데, 저자는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호기심, 제약, 연관성 맺기, 관습에 도전, 창의성 코드, 이 다섯 가지를 강조한다. 고안적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문제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져야 하며 문제 해결에 따르는 제약을 예측해야 하고, 사회통념상 가능한 해결방법이라고 규정된 선을 넘을 줄도 알아야 하며,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영역 간에도 관계성을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전과정을 하나의 틀로 자신에게 체화해야 해야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 다섯 가지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 번째 열쇠, 호기심은 혁신의 어머니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호기심을 갖고 주목해한다는 아주 인상 싶은 주장을 하고 있다. 제품개발부서나 마케팅부서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조사하는 내용이 소비자 조사가 있다. 그런데 이 조사가 갖는 기본 가정은 소비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소비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본 전자업체 중 가장 독창적이라고 평가받았던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우리는 대중들에게 어떤 종류의 제품을 원하느냐고 묻기보단 새로운 제품으로 그들을 이끌려고 한다. 대중은 무엇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우리는 안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조사를 하는 대신, 대중들을 교육시킴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려 한다.”
두 번째 열쇠, 제약이 없으면 아이디어도 없다. 이 이야기는 긴장감이 조성되지 않으면 창의적 아이디어 발휘가 어렵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만약 ‘돌에서 물을 짜내라’는 과제와 ‘과일에서 물을 짜내라’는 과제 중 어느 쪽이 더 창의적 아이디어와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인가? 돌에서 물을 짜내는 과제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제약은 창의적 통찰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어떻게 해서든 문제를 해결한다. 1919년 미국의 호텔사업자인 레이몬드 오티그(Raymond Orteig)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로 뉴욕∼파리간 무착륙 비행에 성공한 사람에게 2만 5천달러를 주겠다”는 선언을 한다. 당시 2만 5천달러는 현재 가치로 약 200만 달러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1919년 대서양 무착륙 비행이라는 절대 불가능한 목표였지만 막대한 상금에 자극받은 무수한 비행사와 엔지니어가 엔진, 기체, 연료 등의 기술개발에 매달렸고 상이 제정된 지 8년 후인 1927년에 찰스 린드버그가 33시간 31분의 비행 끝에 성공하여 상금을 획득했다. 이 사례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적 제약이더라도 과감한 목표와 동기부여가 된다면 충분히 혁신적 아이디어로 극복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준다.
세 번째 열쇠, 연관성은 별개의 영역들 사이에 통상의 관념과 규칙을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것이다. 통념을 깨고 연관성을 찾고 싶다면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지 않을 때도 풀리지 않은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의 증가는 개인이나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지만 창의성에는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 잘 알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만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는 데 투자하는 것이 좋다. 특히 기업을 이끌고 있는 CEO는 ‘사색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져야 한다. 자기계발과 미래구상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에 시간을 배분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 회장 빌 게이츠는 매 6개월마다 한 번씩 일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에서 전혀 구속받지 않는 사색의 시간(약 1주간)을 갖고 컴퓨팅, 트렌드, 아이디어 제안서 등 수백편의 문서를 탐독하며 스스로 창의성을 일깨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연관성도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절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네 번째 열쇠, 관습을 깨어야 한다. 관습이란 삶의 방식, 혹은 사물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보편적 믿음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싶다면 이 관습에 도전장을 던져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문제를 거꾸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동차용 에어백은 보편화 되었지만 오토바이용 에어백은 최근까지 상용화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의 혼다는 왜 오토바이에 에어백을 달면 안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대당 300만엔에 달하는 최고급 오토바이 Gold Wing을 100여대나 파손하면서 2006년 세계 최초로 오토바이용 에어백을 탑재한 Gold Wing을 출시했다. "왜 안 되지?(Why Not?)"는 바로 관습을 깨는 알파와 오메가인 셈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열쇠, 창의성 코드(creative code) 가져야한다. 창의성 코드는 특정 영역에서 수년간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 진다. 이러한 창의성 코드는 직관 또는 직감의 모태가 된다. 특정기술, 산업 분야에서 오래 종사한 베테랑이 갑자기 어느 날 ‘바로 이거야’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우에 그는 이것이 왜 좋은 아이디어인지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방법인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하면 잘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결국 이 창의성 코드는 전술한 비즈니스 창의성을 깨우는 호기심, 제약, 연관성, 관습 등이 통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도출시키는 틀이 된다. 이노디자인社을 이끌고 있는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인 김영세 대표는 어떻게 하면 차별화된 디자인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상상(imagination)이 공상(daydream)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평소에 생활화된 습관들, 즉 사물에 관심을 갖고 사용자를 관찰하고 스스로 경험하고 또 관련지식을 챙김으로써 아이디어가 축적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탕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상상이 아니라 공상이랍니다.” 창의적 디자인 구상을 위해 꾸준히 단련에 단련을 한다는 김영세 대표의 이 이야기는 창의성 코드와 일맥상통하다.
앤드류 라제기 교수의 저서 ‘리들’을 읽으며 느낀 것은 창의성이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점이다. 성공한 기업은 그 성공을 가능하게끔 한 행동을 쉽게 되풀이한다. 그 결과 그 기술에 더욱 익숙해진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실패할 걱정도 없고 그 능숙도도 더 증가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의도적 거부감이 생기고 이것이 결국 성공기업을 위험으로 빠뜨리게 된다. 이것이 성공기업이 경계해야 하는 ‘성공의 역습’인 것이다. 창조경영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