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기근과 경제난으로 시작된 북한주민들의 북한사회 이탈 현상은 최근 외부정보의 유입으로 인한 체제불신과 생활개선에의 욕망 등 탈북 이유가 다양해지면서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 등 제 3국을 거쳐 남한으로 입국하는 새터민들의 수도 급증하여 그 수가 현재 1만여명에 달한다. 이들 새터민 가운데 청소년의 비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절대적 규모로 보자면 국내에 거주하는 6세 이상 20세 이하 취학연령층인 새터민 청소년들의 숫자는 2007년 1월 현재 1,047명으로 이는 새터민 전체의 10.8%정도에 불과하다. 그 결과 새터민 정책은 성인 탈북자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새터민 청소년은 또한 남한 사회 전체 초․중․고등학교 학생수 780만명의 0.01%에 불과하여 대청소년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주요한 정책대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 청소년들은 북에서 영․유아기의 영양결핍으로 신체발육 부진을 겪었고, 북한 학교 교육시스템의 붕괴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기근으로 인한 가족해체와 중국 및 제 3국을 유랑하는 과정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 남한에 와서는 아무런 문화적/경제적 자원도 없는 상태에서 경쟁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학교에 던져져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중층적 문제를 가지며,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 적절한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실제로 새터민 청소년들의 제도권 학교 취학률은 상급학교로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는 추세이다. 2005년 5월 현재, 새터민 청소년들의 초․중․고 취학률은 각각 70.3%, 58.4%, 10.4%로, 각각 99.9%, 99.7%, 82.1%인 남한 청소년 취학률에 비해 아주 낮다. 또, 학교 입학 후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초등학생의 경우 1.1%, 중학생 중 16.2%, 고등학생 중 14.5%가 학업을 중도 포기했는데, 이는 남한 중학생 중도 탈락률의 8-15배, 인문계 고등학생 탈락률의 8-13배, 실업계 고등학생 탈락률의 3-4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2006년 10월 30일자 프레시안 기사). 이들 새터민 청소년들의 학교적응 실패는 경쟁과 효율, 획일성 위주의 우리 교육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새터민 청소년들의 특성과 교육현황을 이들이 거쳐 온 삶의 경로를 따라 살펴보고, 정책적 차원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논의해 보기로 하겠다.
lI. 새터민 청소년 현황
1. 북한에서의 경험
현재 남쪽으로 온 새터민 청소년들은 대개 북한의 경제난이 심화된 1990년대에 태어나서 영․유아기를 보낸 세대로 대부분 기근과 교육시스템 등 사회복지 체계의 와해, 가족의 해체 등으로 인한 신체적, 심리적 상흔을 가지고 있다.
많은 연구들은 기근을 경험한 이들 세대가 영양부족으로 인한 성장발달의 장애를 경험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으며, 실제 남한에 도착한 새터민 청소년들의 경우 체격 등 신체발달이 남한청소년들에 비해 상당히 지체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면역력 및 체력 또한 저하되어 있으며, 성숙도 지연되어 있다(박순영 2005). 이의 영향으로 많은 수의 새터민 청소년들이 기초체력 부실 문제와 잦은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겪고 있으며, 왜소한 신체적 조건은 키와 외모를 중시하는 남한사회에서 ‘종족적 낙인’으로 작용하여 소외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많은 청소년들이 경제난과 기근으로 인한 가족 해체를 경험하고 일부의 경우는 가족 구성원의 아사를 목격한 경우도 있어 심리적 트라우마를 갖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 경제난을 계기로 인한 북한교육의 파행적 운영과 이에 따른 학습결손도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사회에 적응하는 데 큰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의 대홍수는 전체 중․고등학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설에 피해를 주어 교육기반시설을 무너뜨렸으며, 이후 사회 전체의 교육인프라 복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 그 성과가 크지 않다고 한다(UNICEF 2003). 이러한 교육인프라의 파손에 더하여, 지속되는 경제난과 식량난은 학생과 교사들의 학교 출석 및 출근율을 급격히 떨어뜨려, 정상적인 학급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필자가 만난 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은 북한에 있을 때 학교에 다니기보다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에 바빴다고 전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한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북에서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성장발달 장애와 가족해체의 경험, 그리고 학습결손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사회에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2. 제3국에서의 경험
새터민 청소년들이 북한을 이탈하여 남한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하게 된다. 제3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은 드물게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이 걸린다. 통일부의 조사에 따르면, 새터민 청소년들이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2.5년이다. 탈북자 관련 각종 보고서들은 대다수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심각한 인권유린을 겪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중국은 탈북자들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공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강제송환의 위협에 시달린다. 중국의 공안에게 발각될 경우 강제송환의 과정에서 구타, 고문 등 인권유린을 당하며 최악의 경우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므로, 이들은 ‘잡히면 날이라는 공포와 불안, 극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그 결과 노동착취와 공갈협박에 시달리며 여성의 경우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매매춘의 위험에 처한다. 기본적으로는 주거, 식생활 등의 여건이 아주 열악하며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한다.
노동능력과 은신처 확보능력 등 자립의 수단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중국체류중인 탈북청소년 40명의 생활환경과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윤여상(2003)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탈북청소년의 50% 정도가 부모 없는 고아이며, 70%이상이 중국에서 최소한의 생존에 대한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탈북하여, 50%이상이 노숙과 구걸로 목숨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10대 후반 청소년들의 경우 농촌이나 가내 수공업소, 도심지역 식당이나 시장 등지에서 일을 하는 동안 몇 개월씩 체불 임금에 시달리다 결국 공안에 신고한다는 협박을 받고 무일푼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중국 공안과 북한 체포조의 체포와 구금, 구타, 고문 등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며 17.5%는 중국 공안에 체포되거나 북한으로 송환되어 감금과 구타를 당한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동료 청소년의 죽음을 목격한 경우도 발견된다(윤여상, 2003: 353-359). 또한 여성청소년의 경우, 남초현상을 보이는 중국 농촌의 형편이 어려운 농부에게 팔려가서 인신매매성‘강제결혼’을 당하는 등의 인권유린을 겪기도 한다.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은신처 등에서 머무는 탈북청소년들의 경우도 기본적인 주거와 음식섭취 문제가 해결되기는 하지만 교육적 환경의 조성 등이 기대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역시 발각과 체포의 두려움 때문에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감금상태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필자가 만난 새터민 청소년들 중에는 중국에 체류할 때 발각의 공포 속에서 수년을 좁은 실내에 갇혀 성경 공부 등으로 시간을 보낸 경우가 상당수 있다.
부모나 보호자와 동행한 탈북청소년의 경우, 특히 부모들이 남한의 활동가에 의해 지원을 받은 경우, 어른들의 보호막 아래에 있었으므로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필자가 만난 몇몇 새터민 청소년의 경우, 처음부터 한국행을 기획한 부모와 함께 탈북하여 한국으로 입국하는 데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은 경우들이 있었고 그 중 최단 기록을 가진 남학생의 경우 1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동반 탈북 경우의 상당수는 여전히 부모나 보호자들 역시 중국이나 제 3국에서 불안정한 신분을 갖고 여러 가지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제 3국으로의 이동 과정에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곤 한다. 필자가 만난 다수의 새터민 청소년들도 탈북 당시는 가족과 함께 했으나 남한으로 오는 과정에서 헤어져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가족들 중 일부가 먼저 입국하고 나머지는 나중에 입국하는 등의 ‘이산(離散)’을 경험하고 있음을 증언하였다.
북한을 이탈한 청소년들이 북한이나 중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몽골, 베트남, 미얀마, 태국 등 중국 주변국으로 이동하여 이들 나라와 그 나라 주재 한국공관의 협조를 얻어 한국으로 온다. 이 루트는 어림잡아 4,000-5,000킬로미터나 되고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나들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으로 ‘발각시 북송’이라는 위험요소를 안은 긴장과 공포의 연속이기도 하다. 또한 일단 탈북자들이 이들 국가에 도착한다 하더라도, 이들 국가들과 우리 정부의 교섭 과정동안 장기간 수용소나 숙소에 감금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들 수용소나 숙소는 그 환경이 대체로 열악하여 “교육환경”을 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남한행 루트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탈북 브로커들인데, 이들 브로커들에 의해 남한 정착을 위해 주어지는 기초생활자금이 훼손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조천현 2002; 제성호 2006).
새터민 청소년들의 제 3국에서의 경험은 ‘불안과, 긴장 그리고 공포’로 요약될 수 있다. 언제 북송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이들은 갖가지 인권침해를 경험하며,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숨기고 지낸다. 또한 여러 나라를 떠도는 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나는 누구인갗 등에 대한 정체감의 혼란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이들에게 심각한 심리적 상흔을 남겨, 남한 정착 이후의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3. 남한에서의 교육 현황
가. 학교교육현황
새터민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국 후 탈북동기․입국경위 등에 대한 정보기관의 조사를 마친 후 통일부 산하 사회적응교육시설인 북한이탈 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으로 옮겨져 약 2개월간의 사회적응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하나원 재원기간동안 삼죽초등학교, 한겨레중․고등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이외 북한인권시민연합과 무지개청소년센터가 방문교육, 비교문화체험학습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원 수료 이후, 만 20세 미만 무연고 새터민 청소년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동 보호시설 및 정규교육기관으로 등록된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며, 보호자가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주소지 인근 학교에 배정된다. 이 때 북한 또는 제3국 체류 시 획득한 학력확인과정을 거치고 각급학교장이 연령/수학능력을 감안하여 입학 및 편입학을 결정하게 된다. 고등학교 이하의 학교에 편입학할 경우 만 25세 이하, 전문대 이상의 학교에 편입학할 경우는 만 35세 미만인 사람에 대해서는 교육비가 지원된다.
그러나, 이 글의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터민 청소년들의 제도권 학교 취학률은 상급학교로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는 추세이다. 학자들은 새터민 청소년들의 낮은 취학률과 높은 중도 탈락률을 다음의 이유를 들어 설명한다(배혜정, 길은배, 윤인진, 이영란 2006; 유가호, 방은령, 한유진 2004; 이향규 2006; 정병호, 전우택, 정병호 2006; 정진경, 정병호, 양계민 2006).
첫째, ‘학업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새터민 청소년의 경우, 북한의 교육시스템 붕괴와 중국 및 제 3국에서의 체류기간동안의 교육 공백으로 인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고, 또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교육체계, 교과과정, 교육내용, 학교운영방식 등의 이질성 때문에 별도의 준비와 지원체계 없이 남한의 교육과정을 따라가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남한에서 계속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 중에서도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학교교육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랜 탈북과정에서 만들어진 ‘움직이는 몸’이 훈육적 교실 셋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언어 차이’는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외국어와 외래어가 다량 섞인 데다 남한 사회의 가치관이 그대로 배어 있는 한국말은 이들에게 ‘외국어’와 같이 다가간다. 인터뷰에 응한 한 새터민 지원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초등학교는 좀 나아요.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적응을 꽤 잘 하는 편이죠. 북한에서 사회화가 덜 된 상태고, 교과과정도 비교적 쉽고, 여유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중고등학교로 들어가면 버티기가 어렵죠. 하루종일 하나도 못 알아듣는데 딱 앉아서 듣고 있는다는 게, 여기서 자란 우리도 힘든데, 버티기가 쉽지 않죠. 교실에 그렇게 오랜 시간 앉아 있는 훈련도 안 되어 있고. 말도 완전히 외국말이예요. 우리랑 북한이 같은 말을 쓴다고 하는데, 문제 풀게 해 보면 문제 자체를 이해를 못 해요. 영어도 많이 섞여있고 해서 단어도 문제지만, 문화적으로 워낙 다르니까 맥락 파악이 안 되잖아요. 그런 문제가 있었어요. 다음 중 성취지위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 딸, 교사, 사장, 화가. “성취지위“라는 단어를 모를뿐더러 단어 뜻을 북한식으로 설명을 해 줘도 답이 두 개라고 하는 거예요. 딸이랑 사장. 사장은 지주놈들 자식들이 아버지 부를 물려받아서 노력 않고 되는 것이니까 성취지위 아니라는 거죠. 이런 식인데, 그냥 와서 중․고등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들으라고 하는 건 새터민 애들한테 고문이죠, 뭐.
실제로 필자가 만난 새터민 청소년 철우(가명)의 경우, 남한으로 온 후 중학교 2학년 과정으로 편입을 했다가 ‘도저히 못 알아먹어서 (교실에 앉아 있는 게) 너무 괴로와서’ 며칠만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둘째, ‘친구 사귀기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공부가 어렵더라도 또래관계가 즐거우면 학교생활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데,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학교에서의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화해와 협력이 남북한 관계의 주요한 원칙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념적 갈등이 여전한 분단 상황에서,‘북한’은 여전히 위험한 기호이다. 또 다른 한편 우리 사회에서 ‘북한’은 남한보다 열등하고 촌스럽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큰 위축감을 느껴서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걸 숨기려고 노력한다.
2006년 일반학교에 재학중인 새터민 학생 1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 ‘북한출신임을 다른 아이들이 아는갗라는 질문에 ‘모두 알고 있다’ 43.1%, ‘몇 명만 있다’ 24.1%, ‘아무도 모른다’ 32.8%로 대답하였다(정병호, 이향규 2007).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는 상황에서 친구사귀기가 쉽지 않음은 자명한 일이다. 철우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학교 가서 (반 아이들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말할까 하지 말까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얘기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왕따 당하면 어쩌나 싶고. 고민하다가 말을 못했죠. 그런데 말 안 해 놓고 나중에 들키면 어쩌나 불안하더라고요. 들키면 거짓말쟁이 되는 거잖아요.
셋째는, ‘연령과 학력차’문제이다. 새터민의 경우, 북한에서 수학한 연수에 따라 편입학 학년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북한교육시스템의 붕괴와 탈북과정에서 긴 학습 공백을 겪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남한 학교에 편입하려 했을 때 자신의 연령보다 두세 살, 많게는 서너 살 아래 학년에 편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새터민 청소년의 경우 연령과 학년 사이에 2년 이상 나이차가 나는 경우가 75%에 육박한다고 한다(정진경․정병호․양계민, 2006). 심지어는 20세의 새터민 청소년이 남한 학력기준으로 초등학교도 졸업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은데 이들의 경우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에 배정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새터민 청소년들은 정규학교 편입학을 포기하고 검정고시 준비를 하여, ‘잃어버린 나이를 따라잡으려’ 시도하고 있다.
정규학교 편입학을 결정하는 경우도, 두세살, 많으면 대여섯살 어린 아이들과 한 반에 소속되어 함께 수업을 받게 되는 상황은, 북한에서의 기근으로 인한 신체 조건이 열악한데다, 학업 부진, 또래 집단의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보태져 안 그래도 어려운 친구 사귀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학교생활의 의미화를 어렵게 만든다. 5년 이상 새터민 관련 일을 해 온 한 활동가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이는 또래보다 몇 살씩 많은데, 덩치는 작고 왜소하지, 애들 문화, 게임이나 유행어 같은 건 하나도 모르지, 거기다가 공부도 못하지, 걔네들 말로 ‘완전히 쪽팔리는’ 나날이지요.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에요. 그렇게 쌓이다가 어느 날 사소한 일로라도 확 터져서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러면 반 아이들이 더 따돌리고, 악순환이죠.
즉,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작은 키에 대한 열등감, 연령주의 사회에서 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는 데에 대한 좌절감, 성적지상주의 분위기에서 성적부진으로 인한 분노에다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갈등 등등이 중첩되어 새터민 청소년들의 학교생활은 유독 어려움이 많다.
넷째, ‘경제적 어려움’을 들 수 있다. 새터민 가정들은 대체로 기초수급권자로 저소득층을 형성한다. 게다가 가정해체의 경험을 겪은 경우가 많다. 모자가정이 다수(32%)이며, 조손, 형제 가정도 많다(10%).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탈북과정 및 제 3국에서의 어려운 생활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으며, 신변불안, 죄의식과 외로움 등으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우가 많은데다, 사회문화적 자본의 부족으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전우택 2000). 정부에서 일정 정도의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가족 구성원들의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입국 브로커에게 준 돈과 임대아파트 관리비, 통신요금, 차비, 식비 등을 모두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무연고 청소년의 경우 돈관리가 더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무연고 청소년들의 경우, 북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한편 이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편한 학교에 다니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나와서 빠른 길(검정고시 혹은 취직)을 선택해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것이다.
다섯째, 북한이나 제 3국에서의 어려운 경험으로 불안, 긴장, 우울 등을 포괄하는 ‘심리적 외상이 많음’을 들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새터민 교육전문기관인 한겨레학교 학생 중 3분의 1이 정서적 문제, 충동조절 문제, 타해 혹은 자해 위험성, 대인관계 부적응 중 한 가지 이상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정병호 외, 2007). 무연고 청소년들의 경우 특히 북에 남은 가족에 대한 죄책감, 이들을 하루 빨리 데리고 와야 한다는 책임감 등등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한 치유나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긴장과 심리적 압박이 심한 학교생활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겪는 이러한 어려움들은 기대치와 현실상황 사이의 차이로 인한 혼란 때문에 더욱 가중된다. 대다수의 새터민 청소년들은 탈북 후 입국 과정 및 입국 초기,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갖게 된다. ‘같은 민족이니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겠지’, ‘부유한 남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겠지.’ 하는 기대는 이러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며, 막상 정착하여 생활을 시작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분노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해서 현재의 남한 학교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소통과 돌봄이 없는 학교, 동질적이고 획일적인 교육, 경쟁 체제의 핵심을 이루는 학교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중첩적 주변성을 가지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 삶에 대한 전망과 희망을 갖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정책은, 기존의 시스템에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 몇 개를 보태는 방식을 넘어서서 우리 교육 시스템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질 때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 새터민 청소년의 대안적 학습공간
학교에 머무는 청소년들이 적다고 해서 학교를 나온 새터민 청소년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새터민 청소년들은 고학력에 대한 엄청난 기대가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수가 학력증진의 또 다른 통로로 검정고시 학원을 찾고 있다. 검정고시 학원은 학생들의 인적구성(나이, 계층 등등에서)이 비교적 다양하고, 일상적으로 얽히는 문화가 비교적 적어서 탈학교한 새터민 청소년들이 많이 선택하는 학습공간이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특히 대입검정고시 경우) 역시 쉽지 않은 학습과정이 된다. 학교에 다니는 새터민 청소년들에게는 각종 장학금이 주어지나, 학교를 나와서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게 되면 장학금 지원이 거의 없다. 그런데, 검정고시 학원은 구속력이 학교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이탈하기가 쉬우며, 학교에서도 부적응을 경험한 새터민 청소년들이 학원에서도 이탈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상황에서 방황하게 된다. 알코올이나 게임 등에 중독되기도 하고 충동적 과소비로 정착금을 탕진하기도 하며 우울증을 앓거나 범죄나 폭력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철우의 경우도 학교를 나와서 검정고시학원을 다녔는데, 얼마 가지 못했다.
학교 그만 두고 나와서 좀 놀다가 검정고시 학원을 갔죠. ** 학원이라고 새터민들에게는 할인도 해 주는 학원인데요, 그런 학원이 두세개 있어요. 가서 깜짝 놀랐어요. 우리 같은 아이들은 별로 없고, 전부 아저씨, 아줌마인 거예요. 그게 오히려 편하기도 했지만, 이상하더라고요. 학원은 잘 가르쳐요. 요점만 딱딱 찝어서. 학교보다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죠. 검정고시 문제가 쉽기도 하고요. 기출 문제집만 몇 권 풀면 되요. 그 안에서 다 나오니까. 학원 다니다가, 두세달쯤 다녔나, 그만 뒀지요. 학교처럼 잡지를 않으니까. 다니다가 그만 두고 또 좀 놀았어요. 여기 저기 친구들 만나러 다니고. 맘 잡기가 힘들더라고요.
가족과 함께 오지 않은 무연고 청소년의 경우, ‘가족을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 ‘자기를 낳고 길러준 사회를 버렸다.’는 배신자 의식 등등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들의 경우, ‘알아듣지도 못하는 학교 교실’에서 철저히 소외감을 느끼며 몇 년씩 앉아 있느니, 한두 해 고생해서 검정고시를 보거나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서 북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데려올 꿈을 꾸는데, 검정고시 학원에조차 적응하지 못하여 이 꿈이 좌절될 경우 방황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대학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한 청소년의 경우, 자동차 정비, 미용 등의 기술직 직업경로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문화적/언어적 자본의 취약함으로 인해 학원 수업내용을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좌절하곤 한다.
이렇듯 학교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해 정부는 많은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여전히 파편적이고 실효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2006년 새터민 청소년 교육 특성화 학교로 ‘한겨레 학교’가 생겨서 중․고등 과정의 무연고 청소년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있는데, 아직 그 효과를 판단하기에 이른 상태이다.
한편, 공식적 학습공간에서 이탈한 새터민 청소년들을 돌보아 온 공간으로 다양한 대안학습공간/학교가 있다. 결국 철우가 최종적으로 검정고시 준비를 하여 대입에 합격하게 되는 공간도 이러한 대안학교 중 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학습공간/학교 등은 민간단체의 헌신적 노력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열악한 재정/시설상황과 인력부족으로 인해서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의 규모나 내용이 여전히 아주 제한적이다. 셋넷학교, 여명학교 등 몇 몇의 대안학습 공간이 나름의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으나, 안정적인 운영비가 확보되지 않고 있으며, 주요 활동가의 개인역량과 네트워크에 의존적이다. 이들 대안공간들은 대체로 얼마 되지 않은 후원회비와 프로젝트 기금에 의존하여 불안정하게 꾸려지고 있고, 이런 상태에서 장기적 전망을 갖고 심화된 교육내용을 개발/발전시키고, 정보화하여 공유하기가 어렵다.
대안학교/학습공간 자체의 경제적 취약성 외에도, 비인가시설인 대안학교에 다니는 새터민 청소년들의 경우 18세가 넘으면 ‘학업중’이라는 증명을 받지 못해 기초생활수급자금조차 끊겨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기 어려운 문제점도 있다. 필자가 만난 대안학교 교사 중 한명은 학교에 잘 다니던 아이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그만 두게 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고 언급하였다.
한편, 대안학교/학습공간이 비인가 시설이기 때문에 학력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또래의 남한출신 청소년들과 교류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남한에 와서 위축되는 경험을 많이 한 새터민 청소년들은 많은 경우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훨씬 더 편해하는 경향이 있으며 남한 출신 청소년들과의 교류를 꺼린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 출신 주민들과 부딪혀 기본적인 자신감을 잃는 것도 문제이지만, 전체 사회에서 고립되어 섬을 만들어 사는 기한을 지나치게 연장시키는 것도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신감 회복을 위한 준비를 하도록 잠정적인 분리교육과, 함께 살기 위한 통합의 연습을 일상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대안학습공간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또 하나의 문제이다. 전국의 새터민 대안학습공간 15개 중 지방소재 공간은 부산의 지구촌 고등학교, 천안의 하늘꿈 학교 두 개 뿐이며 이에 비례해서 지방으로 배정받은 청소년들의 정착성공률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III. 정책과제와 방향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새터민 청소년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이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교육적 지원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최근 들어 새터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교육적 지원이 시도되고 있으나, 경쟁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시스템과 문화 속에서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이러한 지원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새터민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차별적 시선과 연령차를 극복하고 중․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거나 짧은 시간 안에 검정고시를 마치고 대학입학을 하는 청소년, 혹은 일찌감치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나타나고 있다.
지극한 어려움을 겪어 왔고 따라서 많은 상처를 가진 청소년들이지만, 이들은 동시에 그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긴 여정 끝에 자신들이 목표로 한 사회에 도착한 저력있는 ‘생존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 ‘성공적인 청소년’들의 이야기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회적 부담’이라는 새터민들에 대한 지배적 이미지를 교정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고, 후배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모델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성공사례’가 집단으로서의 새터민 청소년들을 주변화하고 소외시키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무디게 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만난 많은 교사들은, 우리 교육 시스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개별적 프로그램 몇 개로는 새터민 청소년들처럼 중층적 주변성을 가진 청소년들의 구조적 주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온 사회가 ‘경쟁’이라는 화두에 사로잡혀 그야말로 교육이 그 본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작부터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 새터민 청소년들이 주류의 청소년들과 정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는 일이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지원의 방식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획일성’과 ‘경쟁성’을 골간으로 짜여진 한국 사회에 대한 틈내기의 계기로 작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터민 청소년들의 문제는 현재 우리교육과 사회를 조직화하고 있는 지배적인 문법 - 효율성, 수월성, 경쟁성, 획일성 등 - 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터민 청소년을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육이 수요자의 처지와 상황에 알맞는 방식으로, 좀 더 유연하게 작동하도록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교육적 지원이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제대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다양성으로의 개방, 기회균등과 평등, 그 위에서의 소통과 통합이라는 큰 틀을 중심으로 우리 교육이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선, 제도적 측면에서 청소년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간주하고 만들어진 학력인정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북한에서의 수학연수로 편입학을 결정하는 방식을 개선하여, (특히 의무교육인 초중등 과정의 경우는) 연령을 중심으로 학년을 배치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는 또한, 분리와 통합을 적절히 배합하는 교과 및 학급운영의 유연성 제고와 병행되어야 한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학급에서 동료들과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어 가면서도, 보충이 필요한 학습이나 심리․정서적 측면에 대해서는 전담 교사 및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교사와 프로그램은 새터민 청소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청소년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포괄하는 형태로 체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교육기관 간의 체계적 역할분담 및 연계도 고려하여야 한다. 새터민 청소년의 급증에 대비하고 지역사회에 기반한 통합교육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반학교가 교육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을 것이나, 이 때의 일반 학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새터민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전담교사와 프로그램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고, 아이들이 통합과 분리 교육을 적절한 방식으로 혼합하여 받을 수 있는 학교라야 한다.
한편, 이미 존재하는 특성화 학교는 부분적인 전담교사나 프로그램으로는 학업의 수준을 맞추기가 불가능한 아이들을 위한 디딤돌 학교이자 무연고 청소년이나 일반학교에 부적응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수학교의 개념으로, 민간단체의 대안학교들은 일반학교와의 연계성 속에서 일반학교 부적응생과 방과 후 교육을 위탁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 아이들의 특성과 필요성에 맞는 교육이 다각도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학교들을 지역의 대안적 학습공간들 및 지역복지센터 등과 연계하여, 새터민 청소년 개개인에 대한 다각적이고 연계성 있는 일대일 지원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 수 있을 때 새터민 청소년들이 가진 다양한 어려움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담장 높고 경직된 제도권 학교의 변화모색과 더불어, 다양한 대안교육현장/프로그램의 발굴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때, ‘제대로 하고 있는 현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새터민 청소년들을 정치적/종교적 목적 하에서 도구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활과 공생을 도모하는 현장이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파악된 학습공간들이 안정적인 운영기반 위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정보화하고 새터민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 모델을 발전시키고 공유할 수 있도록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러한 연계망은 또한 학습뿐만 아니라, 진로 지도, 상담 및 부모 교육과 가족 상담도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중 부모교육 및 가족 상담이 특히 중요한데, 새터민 청소년들의 경우 남한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부모들이 학업이나 진로결정 등에서 적절하지 못한 지도를 하거나 세대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터민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적 지원의 내용에서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념적 갈등이 여전한 분단 상황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지나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와 더불어 새터민 청소년들의 북에서의 역사/경험이 긍정되기 어려운 분위기가 이들의 남한사회 적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앞서도 논의했듯이, 분단이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는 남한 사회에서 북한 이탈주민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각종의 ‘특별한’ 지원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러한 지원들이 장기적인 고려 속에서 이들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일방적 ‘적응’ 위주의 교육 및 지원은 자존감을 갖기 어렵게 하고, 낮은 자존감은 이들의 성장에 큰 장애가 된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긍정하고 밝히며, 다양한 경험 위에서 새로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자아실현을 해 나가는 주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제도적, 내용적 측면에서의 변화와 더불어,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진 ‘사람’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새터민 청소년들의 역사와 특성을 잘 파악하고 이들과의 신뢰관계 위에서 학습, 상담, 진학, 진로 지도를 할 수 있는 길잡이 교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한 출신 주민들에 대한 평화교육, 다문화 이해 교육’이 필요하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위축되어 살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주류 구성원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면서 통합적인 질서를 수립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관용의 태도를 키우는 평화교육, 차이를 존중하며 차별을 반대하고 평화적 공존과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다문화 교육이 필수적이다. 소수자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다수자의 변화를 추동해낼 수 있을 때 해결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IV. 나가며
2007년 새터민 1만명 시대를 돌파한 이후, 새터민 청소년 수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청소년들의 교육문제는 그 인적 구성이 점점 다양해져 가고 있는 우리 사회가 '소수집단‘의 교육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앞으로 남북한이 통합되어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는 날 우리사회가 겪게 되는 문제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가진다. 이들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적절한 환경을 만드는 일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정의 차원에서의 지원을 통해 사회통합을 이루어낸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남북의 청소년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날을 대비한 준비라는 측면, 즉 과정으로서 통일을 준비하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데 중요성이 있다.
이 글은 새터민 청소년들이 당면한 교육문제가 상당히 중층적이며 따라서 경쟁과 획일성을 기조로 하고 있는 우리 교육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한 채 부가적 지원책을 보태는 방식으로는 해결이 쉽지 않음을 논의하였다. 물론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일거에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적응지원을 위한 부분적인 개선노력은 필수적일 수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정의가 존중되고, 다름이 이해되고 소통되는 유연한 제도 및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그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이 남한사회에서 기본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주류의 가치와 문화적 규칙들을 보다 잘 익힐 수 있는 ‘맞춤식 교육’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듦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새터민 청소년들의 경험과 역사에 바탕을 둔 자기긍정의 주체형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여 자신들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남한의 주류문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다양성으로의 개방, 기회균등과 평등, 그 위에서의 소통과 통합이라는 큰 틀로 재구성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