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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 바나바(행 11:24-26)
할렐루야! 지난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느 주일처럼, 별다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가운데, 아름다운 땅을 보고 돌아온 기쁨을 소유한 주일입니다. 베트남 여행, 참 좋았습니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3박 5일간의 여행을 기쁨 가운데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조금 시간이 흘러갔지만, “놈, 놈, 놈”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지난 번 추석 때 텔레비전에서 보여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보셨습니까? 보물 지도 가지고, 보물을 서로 찾기 위하여, 서로 쫓고 쫓기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이 ‘놈, 놈, 놈’이란 영화에서는 세 놈이 등장합니다. “좋은 놈(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등장을 합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놈, 놈, 놈’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놈, 놈, 놈’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첫째, 좋은 놈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운 사람들입니다.(좋은 놈)
둘째, 나쁜 놈은, 존재하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몸으로, 살면서 있는 것 보다 없는 게 좋은 놈입니다.(나쁜 놈)
셋째, 이상한 놈은, 어떤 때는 필요한 것 같다가, 어떤 때는 있으나 마나한 연구 대상인 놈입니다.(이상한 놈)
“좋은 놈, 나쁜, 이상한 놈” 가운데,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합니까? 여러분들은 좋은 사람, 착한 사람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 8시 비행기로 베트남에 갔습니다. 다음날 호치민 광장을 찾았습니다. 2010년 10월 10일, 바로 오늘이 하노이가 수도로 지정된 지 천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내 곳곳에 천년 행사 관계로 시끌벅적 했습니다. 호치민 광장에도 연습하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호치민 박물관을 관람했는데, 호치민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호치민, 베트남 공산당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의 예로 든다면, 김일성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2차 대전, 인도차이나 전쟁을 치루는 동안, 그리고 그후, 거의 30여 년 동안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은 제2차 세계대전 뒤 아시아의 반식민지운동을 이끈 인물로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입니다. 79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직 베트남의 독립을 위하여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언젠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역임한 분이,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은 29만원 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치민이 죽고난 다음에, 그의 전재산은 29만원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29만원 밖에 없다고 말한 의도는, 호치민처럼, 겸손하고, 정말 가진 것이 없이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만 일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역사를 보면, 베트남 전쟁 때, 우리나라는 호치민이 이끄는 인도차이나 공산당과 적이 되어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별로 호치민에 대하여 좋은 놈이란 평가보다는 나쁜 놈이라는 평가가 앞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 가 보니, 호치민의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위대한 민족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곳곳에서 넘쳐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나쁜 놈이지만, 그 나라 백성들이 보았을 때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먼 데 있는 사람들의 평가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평가가 좋아야 합니다.
대구제일교회를 시무하셨던 이상근 목사님이, 집사를 세울 때는 동네 반장에게 물어서 세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자를 세울 때에는, 기도하고 세우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동네 반장에게 물어서 세우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만 좋은 사람이 아니라, 동네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교회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 일군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누가 보아도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총무 겸 회계로서 다른 목사님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갔다 와서, 다음날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한 여행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저는 지금 일어나 가을 향기에 도취된 화가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첫 문자를 보냅니다. 목사님과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난 후, 참 좋았습니다. 여행 기간 동안, 함께 한 목사님들에게 나쁜 놈이 아니라 좋은 놈이었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착한 사람 바나바”입니다. “좋은 사람 바나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의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이었고, 소아시아의 많은 이방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이방인 선교의 주역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바나바가 없었다면, 안디옥 교회도 있을 수 없었고, 이방인 선교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나바의 본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요셉입니다.
사도행전 4:36절 말씀을 보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고, 요셉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요셉에 대하여 3가지 별명을 붙여서 소개를 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아멘.
별명은 그 사람의 가치관, 삶의 모습, 역할 등을 담아서 붙여집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좋은 이미지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행 11:24)
착한 사람이란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자기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더 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이기적이 아닌 이타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폭스 잭슨이라는 신학자가 바나바에 대해서 이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신약성경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의 하나이다. 그는 질투를 모르고 남의 허물을 용서했으며 장점을 보기에 빨랐으며, 형제간의 평화를 위해 타협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바나바는 초대교회를 살맛나게 해 주는 사람이었다”
교회를 살맛나게 하는 사람, 감칠맛나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은 착한 사람 바나바의 모습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바나바는 재물과 관련해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행 4:37).
사도행전 4:37절 말씀입니다.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아멘.
바나바에게 밭이 있었는데,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게 됩니다. 물질적인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아울러 받게 됩니다.
바나바는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린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밭이 있으매 팔아서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재물과 관련하여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십시오.
만약 호치민이라는 사람이 죽었을 때, 숨겨진 재산이 나왔거나, 비밀 통장이 발견되었다면, 그는 백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재산은 그가 입고 있었던 옷과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29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2:41-44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헌금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옆에 계시다가,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헌금함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누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까요? 누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없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가난한 사람들이 헌금을 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부자들은 가진 것이 있으니까,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헌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액수가 비록 적다고 하나, 그것은 생활비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적은 액수라 할지라도 헌금을 하고나면, 생활하는 데 당장 지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으면, 아무리 작은 액수라고 할지라도, 헌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십시오. 인간관계에서 가장 일차적인 판단자료로 쓰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에 대한 욕심에 집착할 때, 결코 친구관계나, 어떤 관계에서나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림으로 착한 사람이 되십시오.
둘째, 바나바는 사람과 관련해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25-2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아멘.
바나바는 안디옥에 가서 목회를 하다가,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려다가 사울과 함께 협력목회를 했습니다.
바나바가 처음에는 담임목사였는데, 그 담임목사 자리를 사울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부목사가 되어 사울과 교회와 교인들을 섬깁니다. 어느 누구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보다 유능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내세우고 협력할 수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만 하고, 다른 사람과 친밀하게 협력할 수 없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 사람들의 의심과 비판을 받았을 때 바나바는 사울을 적극적으로 변호했습니다.
사도행전 9:26-27절 말씀입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아멘.
어떤 사람이 의심과 비판을 받을 때, 그를 변호하기는커녕 함께 덩달아 비판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내세우고, 그리고 그 사람과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 착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자기보다 유능한 사울을, 그리고 허물 많은 과거가 있는 사울을 귀하게 여겼고, 앞에 내세웠고, 그리고 함께 협력했던 참으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섬기고, 사랑하고, 변호해 주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 하노이 공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금요일 새벽 2시에 비행기가 이륙하기 때문에, 수속을 밟고서, 2시간 이상을 공항 의자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다리면서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 청주 롯데마트보다 작기 때문에, 무척 심심했습니다. 심심하기도 해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열심히 떠들고 있는 한국 여행객들 옆에 앉았습니다. 특별히 아줌마 3명이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어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계모임에서 베트남으로 여행을 왔습니다. 이 분들은 계모임 총무일을 다 해 본 사람들입니다. 이 분들은 몇 년씩 계모임 총무일을 했기 때문에, 여행을 하면서, 되어지는 일들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화제의 주인공으로 삼은 사람은 현재 총무였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 총무가 일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은 이렇게 하기 원하는데, 총무가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가이드에게 팁도 많이 주고 싶은데, 총무가 가이드에게 팁을 많이 안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라도 직접 팁을 챙겨서 주고 싶었는데, 쇼핑하면서 돈을 다 써 버렸기 때문에 가이드에게 팁을 많이 못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드하고 헤어지면서, 악수를 하려고 했는데, 가이드가 피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이드 얼굴 보기 민망했다고 했습니다.
또 쇼핑할 때, 총무가 물건 값을 자꾸 깎으려고 해서, 가이드가 싫어하더라고 했습니다.
짧지 않은 여행 일정 동안, 되어진 일들을 놓고 총무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사람의 결론이 무엇이었을까요? 지금껏 열심히 총무에 대하여 비판했는데, 자신들이 나눈 이야기는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할 이야기를 왜 합니까?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가이드에게는, 잘해 주지 못해서, 화가 나면서, 왜 곁에 있으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총무는 왜 그렇게 비판합니까? 왜 깎아 내립니까?
여러분! 멀리 있는 사람 잘해 주려고 하지 마시고,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잘해 줍시다. 그래야 칭찬 들을 수 있습니다.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이라고 칭찬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착한 사람 바나바는 모든 것을 은혜로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11:22-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아멘.
착한 사람은 모든 일을 은혜로 본다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특이하게 사도들이 없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그럴 때 그 파송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는데, 23절을 보면,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라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어떤 일을 볼 때,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실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보지 않고, 자꾸 사람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나바의 눈은 복된 눈이었습니다. 은혜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많은 사람들의 약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람들의 약점을 은혜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날카로워서 사람을 바라보기만 하면, 약점만 바라보고, 부정적인 것만 바라봅니다. 비판만 합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모든 것을 은혜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행동을 볼 때, 항상 긍정적으로, 은혜로 보아야 합니다.
인천공항에 오고가면서, 인천대교를 건넜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도와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신도시를 연결하는 다리로, 2005년에 착공하여 2009년 10월 16일에 완공, 2009년 10월 19일 자정부터 차량 통행이 시작된 다리입니다. 개통된 지 1년이 됩니다. 다리의 총 길이는 21.38㎞이고, 바다 위에 길이만도 18.35㎞입니다. 어마어마한 다리임을 오고가면서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알려지지 않았던 섬, 영종도가 공항이 생기고, 다리가 생김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서울 아름다운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거제도 출신 목사님이라고 합니다. 그분이 어렸을 때, 거제도는 가장 낙후된 섬이었습니다. 그쪽으로 발령을 받아 온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촌놈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때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서울은 못가도 부산이라도 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 거제도가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현금이 가장 잘 도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옥포조선소를 포함 17개 조선소가 있고, 지금 주문되어 있는 물량만도 향후 20-30년을 만들어야 한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조그마한 다리가 하나 놓여 지면서부터 그 지역이 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곳입니다.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기회를 엿보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올 12월에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개통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제도에서 부산까지 거리가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됩니다. 다리로 인하여, 거제도는 섬이 아니라, 육지가 되었습니다. 작은 섬이 아니라, 큰 영향력을 끼치는 육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멋진 곳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의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는 다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나바처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 속에서 착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기적인 삶이 아닌 이타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섬기는 삶을 사십시오. 받기만 하지 말고 대접하는 삶을 사십시오. 누구에게든지 인정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은 교회의 다리 역할을 하십시오.
교회는 섬입니다. 세상과 교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십시오. 그렇기 위해 착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평생을 신앙생활 잘 해 오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교회에서는 존경 받고, 많은 봉사를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습니다.
“할머니. 이제 교회에 나오시죠” 할머니가 반문하셨습니다. “교회 나가 예수 믿으면 천국 가죠?”
“그럼요” / “그래서 안 나가는 거예요.”
“아니 왜요” / “지금도 지긋지긋한데 죽어서도 저 영감태기하고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끔찍해요. 천국이고 뭐고 다 싫어요. 저런 영감태기하고 빨리 헤어지고 싶을 뿐이예요”
우리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 믿는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실화를 기초로 해서 만든 ‘쉐클턴’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는 영하 50도에서 남극 대륙 횡단을 시도했던 영국 탐험가 어니스트 쉐클턴과 27명의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그들은 큰 꿈을 가지고 남극에 도전했지만, 가는 도중에 엄청난 재앙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배가 웨델 해의 두꺼운 얼음 덩어리에 열 달 동안 갇혔다가, 간신히 엘리펀트(Elephant) 섬에 도착했지만, 추위와 배고픔과 극도의 고통 때문에 살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때 쉐클턴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죽어도 대원들은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극 저편의 고래잡이 캠프로 걸어가서, 구조를 요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길은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바다를 걸어서 횡단하고, 최종적으로는 3일간의 남극 고봉을 등정해 넘어가야 하는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쉐클턴은 2명의 대원을 데리고, 그 죽음의 길로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남은 대원들은 얼음 바위 사이에 만든 조그만 오두막에서, 몇 달 동안 쉐클턴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을 시찰하던 한 사람이 구원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대원들은 “배가 왔다!”고 소리치며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쉐클턴이 죽음의 길을 뚫고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세계 탐험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죽을 것 같아도 사는 길이 있고,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아도 풀리는 길은 있습니다. 시험지가 있으면 반드시 답안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막힌 길이 열리게 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헌신하고, 새로워지고, 예수님을 위해 죽기로 각오해야 합니다. 남을 탓하지도 말고, 남을 바라보지도 마십시오. 내가 변하면 됩니다. 내가 변하면 가정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자녀들이 변합니다. 내가 변하면, 교회가 변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하면, 가정이 시끄럽습니다.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사도행전 9:31절 말씀을 보면,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안디옥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우리 교회를 위해 착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니라”(요 12:24)
땅에 떨어져 죽기로 결단하신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어 나를 살려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밀알이 되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가 오기에는 불편하게 느끼는 섬입니다.
이 섬에 여러분들이 다리가 되셔야 합니다. 멋진 다리가 되셔야 합니다.
바나바처럼 착한 다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할 때, 사람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멋진 삶을 통하여,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가정에서는 구원의 역사,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여러분의 삶은 더욱 더 하나님께 칭찬 듣고 쓰임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매순간마다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언제나 착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의 다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합니다.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멋진 다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