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 일람 : http://blog.daum.net/511-33/12369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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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관련 정보 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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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7 (금) 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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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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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연결이 안되시면 답글 주시면 고쳐 놓겠습니다◈정명 ◈ |
http://www.gwanunsa.org/bbs/board.php?bo_table=sub03_4&wr_id=3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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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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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1 (금) 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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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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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아함 298경 *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쿠루수의 조우 마을에 계시었다.
그때 세존(世尊)께서는
모든 비구(比丘)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나는 지금 연기법(緣起法)의 법(法)과 뜻(義)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 하리라.”
**어떤 것이 연기법(緣起法)의 법(法)을 설(說)하는 것이라 하는가?
(云何緣起法 法說)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는 것이니,
곧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내지 완전한 괴로움의 무더기가 쌓인다.
(=緣無明 行... 乃至 純大苦聚集)
이것을 연기법(緣起法)의
법(法)을 설(說)하는 것이라 말하느니라.
**어떤 것이 연기법(緣起法)의 뜻(義)을 설(說)하는 것이라 하는가?
(云何義說)
1)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다면,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①전제(前際)를 알지 못하고, 후제(後際)를 알지 못하며,
전제(前際)와 후제(後際)를 알지 못하며,
②내(內)를 알지 못하고, 외(外)를 알지 못하며,
내외(內外)를 알지 못하며,
③업(業)을 알지 못하고, 보(報)를 알지 못하며,
업보(業報)를 알지 못하며,
④부처님(=佛)을 알지 못하고, 진리(=法)를 알지 못하며,
스님(=僧)을 알지 못하며,
⑤고(苦)를 알지 못하고, 집(集)을 알지 못하며,
멸(滅)을 알지 못하고, 도(道)를 알지 못하며,
⑥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因) 때문에 일어나는 법(因所起法)을 알지 못하며,
⑦선(善)과 불선(不善)을 알지 못하며,
⑧유죄(有罪)와 무죄(無罪)를 알지 못하며,
⑨습(習)과 불습(不習)을 알지 못하며,
⑩열(劣)과 승(勝)을 알지 못하며,
⑪염오(染汚)와 청정(淸淨)을 알지 못하며,
⑫연기(緣起)를 분별(分別)할 줄 모르며,
⑬육촉입처(六觸入處)에 대해서 실(實)답게 알지 못하니,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며,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란 것도 모르기 때문에
치(癡)하고 암(闇)하며 밝음이 없어 크게 어둡다.
이것을 이름하여 무명(無明)이라 한다.]
2)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다면,
<어떤 것을 행(行)이라 하는가?>
행(行)에는 3종(種)이 있다.
곧 몸, 입, 뜻(身, 口, 意)의 3행이다.
3) 행(行)을 연(緣)하여 식(識)이 있다면,
<어떤 것을 식(識)이라 하는가?>
이른바, 육식신(六識身)이니,
안식신, 이식신, 비식신, 설식신, 신식신, 의식신
(眼識身, 耳識身, 鼻識身, 舌識身, 身識身, 意識身)이다.
4) 식(識)을 연(緣)하여 명색(名色)이 있다면,
<어떤 것을 명(名)이라 하는가?>
이른바 4무색음(4無色陰)이니,
수음, 상음, 행음, 식음 (受陰, 想陰, 行陰, 識陰)이다.
<어떤 것을 색(色)이라 하는가?>
이른바 4대(4大)와 4대로 이루어진 색(=4大所造色)이다.
이 색(色)과 앞에서 말한 명(名)을 이름하여
명색(名色)이라 한다.
5) 명색(名色)을 연(緣)하여 육입처(六入處)가 있다면,
<어떤 것을 6입처(六入處)라고 하는가?>
이른바 6육입처(六內入處)니,
안입처, 이입처, 비입처, 설입처, 신입처, 의입처
(眼入處, 耳入處, 鼻入處, 舌入處, 身入處, 意入處)이다.
6) 6입처(六入處)를 연(緣)하여 촉(觸)이 있다면,
<어떤 것을 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六觸身)이니,
안촉신, 이촉신, 비촉신, 설촉신, 신촉신, 의촉신
(眼觸身, 耳觸身, 鼻觸身, 舌觸身, 身觸身, 意觸身)이다.
7) 촉(觸)을 연(緣)하여 수(受)가 있다면,
<어떤 것을 수(受)라고 하는가?>
이른바 3수(3受)이니,
고수, 락수, 불고불락수(苦受, 樂受, 不苦不樂受)이다.
8) 수(受)를 연(緣)하여 애(愛)가 있다면
<어떤 것을 애(愛)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3愛)니,
욕애, 색애, 무색애(欲愛, 色愛, 無色愛)이다.
9) 애(愛)를 연(緣)하여 취(取)가 있다면,
<어떤 것을 취(取)라고 하는가?>
(이른바) 4취(4取)가 있나니,
욕취, 견취, 계취, 아취(欲取, 見取, 戒取, 我取)이다.
10) 취(取)를 연(緣)하여 유(有)가 있다면
<어떤 것을 유(有)라고 하는가?>
(이른바) 3유(3有)가 있나니,
욕유, 색유, 무색유(欲有, 色有, 無色有)이다.
11) 유(有)를 연(緣)하여 생(生)이 있다면
<어떤 것을 생(生)이라고 하는가?>
만일, 이러저러한 중생이
이러저러한 몸의 종류로 한번 생(生)하면
뛰어넘고, 화합하고, 태어나서(超越和合出生)
쌓임(陰)을 얻고, 계(界)를 얻고,
입처(入處)를 얻고, 명근(命根)을 얻나니
이것을 생(生)이라 한다.
12) 생(生)을 연(緣)하여 노사(老死)가 있다면
<어떤 것을 노(老)라고 하는가?>
만일,
털은 희어지고 정수리는 들어나며,
피부는 늘어지고 기관(根)은 숙(熟)해지며,
사지는 약해지고 등은 굽어지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呻吟),
숨길은 짧고 헐떡거리며,
앞으로 숙여지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며,
신체(身體)의 색깔은 누리고 검으며,
온몸에 얼룩얼룩한 저승꽃이 생기며,
정신은 희미하고 행동하기도 어려우며,
파리하고 쇠약해지면 이것을 노(老)라고 한다.
<어떤 것을 사(死)라고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衆生)들이
이러저러한 종류(種類)로 사라지고 옮기되,
몸(身)이 무너지고(身壞)
목숨(壽)이 다하며(壽盡)
더운 기운이 떠나고 목숨이 멸하여(火離命盡),
쌓임(陰)을 버릴 때가 도달하면,
이것을 사(死)라고 한다.
이 사(死)와 앞에서 설명한 노(老)를 합하여 노사(老死)라고 한다.
이것을 연기법(緣起法)의 뜻(義)을 설(說)하는 것이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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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佛)란? -불교신문에서-
<p style="line-height: 2;"><span style="font-size: 11pt; color: rgb(255, 255, 255);">진리를 깨달은 사람</span></p><p style="line-height: 2;"><span style="color: rgb(255, 255, 255); font-size: 11pt; line-height: 2;">부처님을 뜻하는 불(佛)은 불타(佛陀)의 줄인말로 각자(覺者), 즉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 불타(佛陀)는 범어 buddha의 음역으로 불타(佛陀)이외에도 불타(佛馱), 부타(浮陀), 부도(浮屠), 부도(浮圖), 부두(浮頭) 등 다양하게 음역된다. 부처님을 의미하는 불(佛)은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한정해, 불교의 창시자요, 신앙의 대상인 고유명사로 쓰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의미 가운데에서는 우선, 앞서 밝혔듯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있다. 둘째는 석가모니 부처님과 동격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다는 부처님이다. 과거에는 유명한 일곱 부처님이 있었다고 한다.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등 이다. 미래에는 미륵불이 있다. 셋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이다. 불교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이 될 수 있다(成佛)고 믿고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불(佛)을 설명하면서, 사찰에 모셔진 불상에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데, 원래 부처님 자신은 그 스스로가 신앙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했다. 오직 진리와 법만을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고 부촉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로서는 불교의 가르침을 절실히 동감하면서 그 분에 대한 흠모와 숭배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부처님의 일화를 조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으며, 대승불교가 발흥하면서 불상이 제작됐으며, 이와 동격인 여러 부처님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참된 불자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부처님도 중요하지만, 불(佛)의 본래의 의미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 정진하고 수행에 힘써야 한다. -불교신문에서-</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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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
<p style="line-height: 2;"><p style="line-height: 2;"><span style="color: rgb(255, 255, 255); font-size: 11pt;">깨달음을 구하는 사람</span></p><p style="line-height: 2;"><span style="color: rgb(255, 255, 255); font-size: 11pt;">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등 불교에서는 보살의 명호를 가진 분이 많다. 또 대승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 나라의 절에서는 여신도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보살의 의미는 무엇인가.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보디사트바(Boddhi-sattva), 팔리어 보디사타(Bodhi-satta)의 말을 한자로 음사한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준말이다. 의미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나 일반적으로는‘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다. 한단계 더 나아가 보살은 ‘지혜화 덕성과 행동이 모두 탁월하여 현재는 아직 부처가 아니지만, 반드시 부처가 되도록 확정되어 있는 후보자’란 의미를 갖고 있다. 보살관의 등장은 대승불교가 성립하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부처님이 취한 이타(利他)의 실천적 입장을 강조하고 중시한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살이란 ‘깨달음을 사회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이라고 대승불교에서는 이해한다.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불교인은 보살이며, 또 마땅히 보살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구제에 앞서 남의 구제를 위해 힘쓴다는 것이 바로 보살의 진정한 실천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또 이는 남을 구제하는 자체가 자신을 구제하는 것이다. 즉 이타(利他)가 곧 자리(自利)이며, 자리가 곧 이타인 셈이다. 자신의 것은 남에게 아낌없이 다 주고 자신은 알몸을 땅속에 감추고 있는 분이 지장보살이다. 또 지옥이 텅 빌 때까지 자신의 성불은 미루겠다는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모든 보살이 그렇듯이 보살은 항상 자신보단 중생을, 나보단 남을 먼저 생각한다. 자비구현 및 중생구제의 실천적 종교로서 불교는 바로 모든 불자가 스스로 보살이 된 것을 강조한다. 즉 여기서 보살은 단순히 신앙의 대상뿐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우리 자신임을 강조한다. ♬:슈베르트:세레나데</span></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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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용어 풀이및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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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20 (토) 1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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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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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 (摩訶般若 波羅蜜多 心經)
당나라 현장 번역 반야심경 혹은 심경이라 약칭
전문(全文) 십사행(行)의 작은 경이나 대반야경의 정요(精要)를
뽑아 모은 것으로써 여러 나라에 널리 유통되고 있습니다.
반야 바라밀다(般若 波羅蜜多)는 지도(智度)
도피안(到彼岸)이라 번역
즉 반야는 실상를 비쳐보는 지혜로써 나고 죽는 이 언덕을 건너
열반의 저 언덕에 이르는 마음의 경전이라 생각하시면 맞을 뜻 합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동, 서, 남, 북 사유와 동북, 동남, 서남, 서북, 상, 하의 열군데 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다 아시는 관세음보살님 이십니다.
*소승(小乘)
대승(大乘)이 적극적인 수행방법이라면 소승(小乘)은 아주 소극적인
자기국집(自己局執)인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성문승(聲聞乘)
사제(四諦)의 이치를 관하여 성문의 사과(四果)를 증득하여
열반에 이르는 것을 교리로 함.
즉 소승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자(舍利子)
부처님 제자 중에 지혜 제일인 스님
*진여(眞如)
대승불교의 이상개념(理想槪念)의 하나
우주 만유에 보편(普遍)한 상주불변하는 본체
이것은 우리의 사상 개념으로 미칠 수 없는 진실한 경계
오직 성품을 증득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거짓이 아닌 진실이란 뜻과
변천하지 않는 여상(如常) 하다는 뜻으로 진여(眞如)라 합니다.
*포대화상(布袋和尙)
시문에 있어 요약 이상한 행적이 많은 분이시죠.
양(梁)의 정명(貞明) 삼년 악림사(嶽林寺)
반석위에 앉아서 입적하였다.
보통 미륵불의 화현이라고 합니다.
*습득(拾得)=보현 보살님의 화현이라고 전해 집니다.
*무명(無明)
불교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당체
또는 진여에 대하여 그와 모순되는 비진여라 생각 하시면 됩니다.
*십이인연(十二因緣)
삼계에 대한 미(迷)의 인과(因果)를 열둘로 나눈 말 입니다.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목인석녀(木人石女)
시문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 모두 격외(格外)의 선지(禪旨) 입니다.
*부랑(浮?)
옛날에 털을 짜서 작은 배를 타고 다녔는데 이것을 부랑이라 합니다.
사공은 털을 하나라도 남에게 주지않는 다는
법화경의 고사(故事)가 있습니다.
*밀인(密印)
인계(印契) 부처님과 보살에게는 각기 본원(本願)이 있고
그 본원을 표시하기 위하여 두손의 열 손가락으로써
여러 가지 모양을 짓는다.
이것이 본원(本願)의 인상(印相)이며 인계(印契)이므로 인(印)이라 하고
그 이치는 아주 비밀하고 아주 깊은 것이므로 밀(密)이라 합니다.
*삼계(三界)
생사 유전(流轉)이 쉴새 없는 미계(迷界)를 셋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욕계(欲界)
삼계(三界)의 하나.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 남녀의 성별이 있고 ,
식욕, 성욕 수면욕 등의 욕망에 사로잡힌 중생이 머무는 영역.
위로는 6욕천, 중간에는인간계인 4대주,
아래로는 8대지옥에 이른다. 기세간(器世間).
색계(色界)
삼계(三界) 중 욕계의 위에 있으며 물질적인 것이 모두 청정한 천계.
욕망은 끊었지만 육체는 남아 있는 자의 세계.
욕계만큼의 욕망이 번성하지는 않는 세계.
청정한 물질의 세계.
남녀의 구별이 없고 음식이 필요없으며 분노도 없다.
여기서는 광명이 음식과 언어를 대신한다.
4선천으로 구성되고, 다시 저마다 세분되어 모두 17천을 이룬다.
눈의 대상인 색깔과 형체.
무색계(無色界)
삼계(三界)의 하나.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비물질성의 세계.
물질을 초월한 세계. 육체를 지니지 않고 정신적 요소,
즉 5온 중의 4온(수.상.행.식)만으로 이루어진 세계.
4무색정(無色定)에 의해 들어갈 수 있는 단계적인 4처로 구성된다.
⑴공무변처(空無邊處). 을
욕계와 색계의 모든 물질적 형상 떠나 공의 무한성을 관찰하는 경지.
⑵식무변처(識無邊處).
공무변처를 초월하여 인식 작용의 무한성을 관찰하는 경지.
⑶무소유처(無所有處).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관찰하는 경지.
⑷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상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경지
*윤회(輪廻)
사람이 죽었다가 나고 났다가 죽어 몇 번이고 이렇게 반복함을 말한다.
불교에서 삼계(三界) 육도(六途)에서
미(迷)의 생사를 거듭한다고 합니다.
승사락(僧娑洛), 유전(流轉).
육도(六道)
중생들이 윤회하는 여섯 곳의 세계. 태어나고 죽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미혹의 세계로서,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수라도, 인간도, 천상도 등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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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念佛)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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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5 (화) 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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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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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念佛) 염불은 마음 속으로 부처님을 항상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석가모니불' 등은 부처님을 염원하는 소리입니다. 즉 부처님께 귀의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의 뜻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염불인 것입니다. 염불에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생각하는 법신염불과 부처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에 그려 보는 관상염불, 그리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이 있습니다.
≪아함경≫에는 염불의 종류를 세 가지, 여섯 가지, 열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염불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 번뇌가 사라져 극락세계에 태어나거나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하고, 대승경전에는 삼매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설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죄를 없애고 삼매 중에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물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길 발원하면 반드시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미타경≫에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도 죽음에 임박해졌을 때 하나의 마음(일념, 一念)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서방전토에 왕생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염불은 중국에 이르러 그 방법과 내용이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모든 부처님을 마음 속에 떠올리는 통염불과 특정한 부처님만을 떠올리는 별염불로 구별하기도 하였는데, 이런 구분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신앙하는 일이 일반인들이 하기 쉬우므로 나중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부르는 것만을 염불이라고 했습니다.
염불은 쉽게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으므로 수행법으로 호응이 높았고,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교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극락왕생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수행법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시대 원효스님이 무애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부르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 이래 염불은 불교인의 일반적인 수행법입니다.
염불하는 방법은 부처님을 그리워하면서 지극히 부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하며 부처님과 함께 살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염불에서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염불을 하면서 자신의 소리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해져서 입으로는 염불을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마군, 외도, 잡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부르는 동작 하나에도 정신을 모아 흐트러짐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진정한 염불인 것입니다.
염불은 부처님을 염하는 것입니다. 이법(理法)으로서의 부처님을 염하는 법신염불(法身念佛)과 부처님의 공덕이나 부처님의 상(相)을 마음에 떠올려서 보는 관념염불(觀念念佛), 부처님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이 있습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예배 찬탄하며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그 명호를 염불하게 되면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마침내 열반의 도리를 얻게 되는데 이것은 관념염불과 칭명염불을 합한 방법입니다.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에 왕생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칭명염불을 중시하나 역시 부처님 공덕에 대한 관념을 여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음에서 형상을 그리거나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는 마음은 수행에 큰 장애가 됩니다. 염불은 큰 소리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소리를 내어 염불하는 고성염불에는 다음의 10가지 공덕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명이 없어지고<일자공덕 능비수면(一者功德 能批睡眠)>, 둘째는 천마가 두려워하며<이자공덕 천마경포(二者功德 天魔驚怖), 셋째는 염불소리가 주위에 퍼지고< 삼자공덕 성변십방(三者功德 聲邊十方)>, 넷째는 삼악도의 고통이 쉬며< 사자공덕 삼도식고(四者功德 三途息苦)>, 다섯째는 잡다한 소리가 들어오지 못하며< 오자공덕 외성불입(五者功德 外聲不入)>, 여섯째는 염불하는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육자공덕 염심불산(六者功德 念心不散)>, 일곱째는 용맹스러운 정진심이 나며< 칠자공덕 용맹정진(七者功德 勇猛精進)>, 여덟째는 제불이 환희하시고<팔자공덕 제불환희(八者功德 諸佛歡喜)>, 아홉째는 삼매력(三昧力)이 깊어지며<구자공덕 삼매현전(九者功德 三昧現前)>, 열째는 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십자공덕 왕생정토(十者功德 往生淨土)>.
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불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감사한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조계종 불교용어 사전에서 발췌)
너무길다............정명 합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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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眞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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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5 (화) 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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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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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眞言)
진실한 말이나 진실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밀교에서는 절대진실한 말로 불보살 및 그들의 작용을 나타내는 비밀스런 말이다. 한역으로는 주(呪), 신주(神呪), 밀주(密呪), 밀언(密言)이라고 한다. 불보살의 본서(本誓)를 나타내는 비밀어이고 주(呪), 주문(呪文), 다라니(陀羅尼)와 같은 의미이다.
<반야심경>은 반야바라밀다의 진언을 구송하면 모든 고액(苦厄, 고난과 재액)으로부터 해방된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대신주(大神呪)라고 말했고 반야심경은 일체의 고(苦)를 제거시켜 준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를 계속 외든지 반야심경 전체를 외면 큰 가피를 얻을 것이라고 <반야심경>은 강조합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 사바하
揭帝 揭帝 般羅揭帝 般羅僧揭帝 菩提 僧莎訶
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한자(漢字) 독송은 독경시의 독송법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독법은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상가테 보디 스바하'가 됩니다. 의미는 '가는 사람이여, 가는 사람이여, 피안으로 가는 사람이여, 피안으로 완전히 가는 사람이여, 깨달음이여, 영원하여라'라고 통속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주문을 열심히 외우면 높은 공덕을 지닌다는 주장은 <능엄경> 제7권에 너무나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사람이 전생에 업과 습기(習氣)가 두터워서 그를 없애지 못할 경우 '능엄신주'를 일심(一心)으로 외우면 그 업이 제멸된다고 합니다. 능엄신주는 부처님이 연화대에서 직접 주신 무상신주(無上神呪)이기 때문입니다.
다라니를 열심히 외우면 지옥의 고통·아귀의 고통·축생의 고통·맹농(盲聾)의 고통·원한의 고통·증오의 고통·사랑과 이별의 고통·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갖가지 횡액·군대로부터의 난·폭정의 난·천재지변·수마·한발·빈곤 등의 고통이 소멸되어진다고 <능엄경>은 확언합니다.
<법화경>은 제26 <다라니품>에는 다라니를 외우는 사람을 약왕보살과 용시보살(勇施菩薩)과 비사천(毗沙天)과 지국천(持國天)이 보호해 주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또한 열 명의 나찰녀(羅刹女)와 귀자모(鬼子母)가 다라니를 지닌 불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나찰녀가 귀자모는 모두 사람을 해치는 잡귀들입니다. 이들 귀신 중에 가장 악한 귀신이 다라니 독송인을 수호하겠다고 나왔다면 그 밖의 호법 신중들의 옹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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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三法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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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금) 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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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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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三法印).**
일체무상인 I 일체개고인 I 일체무아인 I 열반적정인 ▩ 삼법인(三法印)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야 존재할 수 있다(相依性)는 연기설은 곧 불교의 세계관이다.
석존께서는 이러한 세계관을 삼법인으로 설명하였다. 또한 일체의 고뇌에서 해탈하려는 문제에 대한 해결로 제시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 자체의 실상 즉 고뇌에 싸이고 고뇌의 어둠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생, 현실의 참다운 모습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 불교의 출발점인 것이다. 따라서 불타의 근본 관심은 세계의 발생이나 인간의 전생 또는 후생의 문제 등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실의 인생을 여실히 관찰함으로써 어두운 인생으로부터 해탈의 길을 발견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불교의 근본 문제 즉 인생의 현실적 실상에 대한 불타의 판단을 설한 것이 삼법인이다.
“일체행(一切行)은 무상(無常)이다. 일체행(一切行)은 고(苦)다. 일체행(一切行)은 무아(無我)다.” 라고 설한 원시경전의 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요약할 수 있다. 법인(Dharma-mudra)은 법의 특성, 법의 포식, 도장이란 뜻으로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은 진리란 뜻이다.
삼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 불교의 특색을 가장 단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교의이다.
원시경전에 “일체는 무상하고, 일체는 괴롭고, 일체는 무아인 것이다.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다.”는 설은 삼법인을 잘 정의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법인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의 삼법인이 초기 원시경전에서는 줄기차게 설해지고 있었으나 후대에 와서는 일체개고를 빼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 삼법인으로 하는 설이 보편적이다. 혹은 다 합쳐서 사법인으로 하기도 하나 보편적으로 삼법인으로 정리하고 있다 ▩ 일체무상인 (一切無常印, 諸行無常印) 일체의 모든 현상법은 한 순간의 정지도 없이 끝없이 생멸 변화하고 있다.
모든 행이 무상하는는 것은 우리의 눈앞의 사실로서 일상 경험하고 있는 자명한 일이다.
삼법인 중에 제일 먼저 무상을 설하여 무상하기 때문에 고(苦)이며 무상하며 괴롭기 때문에 무아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현상이 무상하다는 말에는 늘고(老), 병들고(病), 죽는(死) 등과 같이 사태가 나쁘게 변화한다는 비극적인 뜻만 연상되지만 그러나 무상은 그렇게 나쁘게 전개되는 것뿐만 아니라 좋게 전개되는 것도 변화하는 무상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슬픈 일도 생기지만 무상하기 때문에 불행을 행복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무상의 실천적인 뜻을 무상관(無常觀)이라 하는데,
첫째, 부모 형제나 이웃의 죽음에 의해 생의 무상함을 느껴 종교심을 일으키게 하는 자기 반성의 계기로 삼고,
둘째, 하루아침에 이제까지의 재산이나 지위·명예를 잃어버림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집착이나 교만심을 버리게 하는 계기로 삼고,
셋째, 한 번 주어진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시간은 절대로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가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느끼고 촌각을 아껴 현재의 순간 순간의 행위에 최선을 다 하라는 세 가지 뜻이 있다.
▩ 일체개고인 (一切皆苦印) 일체가 괴로움이라는 법인은 일체가 무상하다는 설이 성립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불타는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라고 설하신다.
일체가 다 고(苦)라는 설에 대해 세상에는 그렇게 괴로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즐거움도 있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젊고 건강하고 오래 산다는 것이 어찌 즐거움이 아니며 더구나 거기에 미워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구하는 바를 얻을 때 그 즐거움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도 영원히 머물러 주지 않고 한정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라고 설한다. 따라서 인간의 느낌(受)에는 괴로움(苦)과, 즐거움(樂)과, 그 중간(不苦不樂의 捨)의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고(苦)만 괴로운게 아니라 락(樂)과 사(捨)의 이수(二受) 모두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의 구체적인 내용은 원시경전에서부터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괴로움이다. 미운 사람과 만나고(怨憎會),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愛別離),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求不得)과 오음(五陰)이 치성한 것 (五陰熾盛)도 괴로움이다.”라고 팔고(八苦)를 설하며, 또 괴로움의 괴로움(苦苦)의 삼고(三苦)의 설도 있다.
▩ 일체무아인 (一切無我印) 모든 행은 무상이다. 그러므로 무상이 아닌 상주불변하는 현상은 있을 수 없다. 더욱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리고 절대적인 지배력을 가진 실체아(實體我)의 존재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체만물은 자아 또는 우주아(宇宙我)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4대 또는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의해 존재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무아란 아가 없다, 아가 아니다 이며, 아란 생멸 변화를 벗어난 영원 불멸하는 실체와 본체를 뜻한다. 불타 당시의 외도에서는 모두 불생불멸의 영원한 존재로서의 본체인 아(我 : Atman)와 범(梵 : Brahman)을 인정하고 있었으나, 불타는 이를 인식할 수도 없고 그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다고 하여 무기(無記)라 설한다. 또 그러한 아는 우리의 현상계와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수행이나 해탈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으며, 원시경전인 전유경(箭喩經)의 독화살 비유는 바로 경험 불가능한 본체론을 고집하는 너도 곧 죽어서 윤회의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친 것으로 이러한 뜻을 잘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불타의 가르침은 중생들로 하여금 현실을 바로 인식하고 그 실상인 괴로움을 벗어나도록 하는 데 근본 뜻이 있다 할 것이다.
▩ 열반적정인 (涅槃寂靜印) 현실의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동시에 괴로움이 없는 이상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까지 ‘모든 현상계는 무상한 것이다. 모든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고 모든 것은 무상하고 괴롭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다.’는 근본 불교 삼법인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모든 것이 무아임을 알았으면 바로 괴로움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자리를 증득해야 하는 것이 불타의 가르침으로 후대에 이 열반적정이 삼법인으로 설해지게 되었다.
열반(涅槃 : Nirvana)은 ‘불어 끄는 것, 불어서 꺼져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모든 번뇌의 불을 불어서 끄는 것 또는 없어진 상태를 뜻한다.
원시경전에는 “모든 탐욕의 다함, 모든 성냄의 다함, 모든 어리석음의 다함,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열반은 크게 고요하고 괴로움이 없이 편안한(無苦安穩) 이상경이므로 열반적정이라고도 하는데, 열반과 적정은 같은 뜻의 말로서 열반이라 함은 타오르는 욕망이 그쳐져 없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괴로움이 사라져 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또는 ‘번뇌의 숲이 없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열반은 모두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며 본래 우리의 마음이기도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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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인[四法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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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금) 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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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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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법인(三法印)[사법인(四法印)];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부처님의 깨달음 가운데서 가장 근본적이며 당시의 다른 사상과 비교해 특별히 두드러진 사상이 이른바 三法印說이었다. 여기서 法印이란 '법의 표식' '불법의 특징' 등을 일컫는데, 중국에서는 어느 경전이든 법인사상에 합치되지 않으면 이를 바른 불법이 아니라고 판정하였다. 삼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과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印'이라고 한 이유는 법인으로 사실이 진리로서 허망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삼법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의 형식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어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여기에 일체개고가 포함되면 사법인이라고 한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행(諸行); 일체의 만들어진 것, 다시 말하면 물질적 정신적인 모든 현상. 무상(無常); anita 를 번역한 말로써 항상함이 없다. 변화하고 변천한다는 말. 따라서 제행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항상함이 없이 변화하는 것이다라는 의미.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바뀌고 변하며,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거치지 않을 수 없듯이 이 우주 세계의 모든 존재도 한결같이 나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산이나 바위 같은 것도 외견상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것일 뿐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 존재란 여러 요소들이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모여있는 집합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와 조건들이 변하거나 사라진다. 자연과 인간의 바탕을 이루는 물질적 요소는 원자가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소립자 또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고 현대과학이 실증하고 있다. 그리고 정신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영혼 역시 오온이 무상함으로써 항구불변 하지 못하는 것이다.즉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니, 모든 존재는 무상한 것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불교의 무상설은 중생들의 무상함을 유상함으로 보고 집착하는 무지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올바른 인생관을 수립코자 한다면 먼저 현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제행무상은 이러한 목적을 가진 것이다.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제법(諸法); 모든 존재를 의미. 무아(無我); 아(我)가 없다라는 의미. 모든 존재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적인 아가 없다라는 의미. 모든 존재는 비실체적인 여러 가지 요소<오온(五蘊)>로 이루어져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 고정불변한 실체적인 아가 없다. 무아(無我)이론의 특징은 모든 것에는 고정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고정성이 없는 것을 무자성(無自性)이라고도 한다. 자성(自性)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형이상적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정불변한 형이상학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근본불교의 기본적 이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무아임을 꿰뚫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보통 '나'라고 할 때 그 나는 육근(六根)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인간이 나라고 할 때는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육근.오온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다. 무상함은 상일성이 없기 때문이고, 괴로움은 주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결코 나의 실체라고는 못하는 것이다. 불교의 무아관은 나의 절대적인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한 기초작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 아닌 것을 나로 착각하고 있다면 참다운 나는 그러한 착각의 부정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온(蘊, khandha); ‘모임’을 의미. 오온; 다섯 개의 요소가 모인 것이라는 뜻. 색(色, rupa)은 물질로서의 육체를 가리킨다. 육체는 4가지 기본요소인 사대(四大)와 사대에서 파생된 물질인 사대소조색(四大所造色)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대란 지, 수, 화, 풍으로 지(地)는 뼈, 손톱, 머리카락 등 육체의 딱딱한 부분이고, 수(水)는 침, 혈액, 오줌 등 액체부분이다. 화(火)는 체온이고, 풍(風)은 몸속의 기체를 가리킨다. 사대소조색이란 사대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의 감각기관인 눈, 코, 귀, 혀, 몸 등이다. 수(受, vedana)는 괴로움과 슬픔 등의 감수작용이다. 수는 내적인 감각기관과 그것에 상응하는 외적인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수에는 성질상 세 가지가 있다. 즉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이다. 고수란 즐거운 감정이고, 낙수란 괴로운 감정이고, 불고불락수란 사수(捨受)라고도 하는 것으로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감정을 가리킨다. 상(想, sanna)은 개념표상의 취상작용(取象作用) 또는 심상(心象)이다. 상 역시 감각기관들과 그것에 해당되는 대상들과의 만남에서 생긴다. 상은 대상들을 식별하고 그 대상들에게 이름을 부여한다. 행(行, sankhara)은 의지작용 및 그 밖의 정신작용이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윤리생활을 할 수 있고 업을 짓게 되는 것은 이 행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행은 수, 상, 식을 제외한 모든 정신작용과 현상이다. 식(識, vinnana)이라는 것은 인식 판단의 의식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식의 영역은 대상을 인식하는 데까지 가지 않는다. 그 전 단계인 주의 작용일 뿐이다.
오온의 이론은 인간 존재란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잡아함경에서는 이것을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 데 모아 세상에서 수레라 일컫는 것처럼 모든 온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존재라고 부른다”라고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수레는 바퀴, 차체, 축 등 여러 요소가 모였을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일 뿐 이 요소들과 관계없이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인간 존재도 마찬가지로 색 수 상 행 식 등 다섯 가지 요소가 모일 때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도 성립할 수 있게 된다. 오온 이론에 의하면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제외한 영혼과 같은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수, 상, 행, 식과 같은 정신현상은 영혼과 같은 존재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각기관과 그 기관에 관계되는 대상과의 만남에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과 그것에 관계하는 여섯 가지 대상[六境]이 합칠 때 여섯 가지 식[六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오온 이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존재란 5개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이 각 요소들은 모두 비실체적인 것이므로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역시 비실체적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고정불변적이거나 초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
열반(nirvana); ‘불어서 끄다’혹은 '불어서 꺼져있는 상태'를 의미.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번뇌의 불을 끈 상태. 초기경전에서는 열반을 “탐욕의 사라짐, 분노의 사라짐, 어리석음의 사라짐,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寂靜; 마음에 번뇌가 없고 몸에 괴로움이 없는 편안한 모양. 그러므로 열반적정은 모든 번뇌를 없애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는 의미.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는 現象界에 관한 불교의 철학적인 진리관인데 비해 涅槃寂靜은 불교의 종교적인 실천이성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체현될 이상세계. 초기경전에 의하면 당시의 열반설에서는 색계정(色界定)이나 무색계정(無色界定) 등의 여러 가지 선정의 상태를 이상적인 열반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욕락에 빠지는 세속적인 쾌락이 열반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었던 듯하다. 석존이 수행시절에 가르침을 받은 두 선인(仙人)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고 하는 뛰어난 무색계정이 열반의 이상이라고 하였는데 석존은 곧바로 그들과 동일한 선정에 들어갈 수 있었어도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뛰어난 무색계정도 실제로는 이상적인 열반으로 간주될 수 없다고 여기고 이 두 스승으로부터 떠났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6년간의 고행후에 열반은 신체를 혹사하여 고통스럽게 하는 고행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체험하였기 대문에 이 고행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고행이나 욕락과 같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 아닌 중용적인 생활과 심신상태 아래에서 세계 인생의 진리를 깨달음으로써 비로소 열반의 경지에 도달하여 불타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열반은 단순한 고행이나 선정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와 인생의 진리에 관한 올바른 지혜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경전에서 열반이란 말을 멸(滅), 적(寂), 불사(不死), 최상의 안락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최상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의 이상이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결국 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열반적정인은 불교의 이상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개고인(一切皆苦印)
일체가 영원히 머물러주지 않는 곳에, 즉 무상한 곳에 불안과 서글픔이 있는 것이다. 인간의 느낌에는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그리고 버림(捨, 不苦不樂)의 세 가지가 있다. 삼법인설의 괴로움은 괴로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과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것까지 괴로움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지에서 부처님께서는 '무상한 것은 고(苦)다.' 라고 단정하신다. 그래서 생로병사, 미워하는 사람과의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함, 오취온(五取蘊)이 치성함 등이 모두 괴로움이라고 하셨다. 삼법인 중에는 일체개고의 항목을 빼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는 항목을 넣어 삼법인으로 할 때도 있으며 또는 여기에 일체개고의 항목을 다시 합하여 사법인(四法印)이라 할 때도 있다. 無常이고 無我인 존재를 놓고 有常이요 有我이길 바라는 중생의 헛된 욕망의 불만족으로 인하여 무상이고 무아인 것에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일체개고는 十二因緣說로 보면 順觀에 해당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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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三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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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25 (금) 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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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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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 (三學)
불타의 교법을 바르게 알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닦아야 할 세 가지의 가르침이 바로 계·정·혜(戒·定·慧) 삼학이다. 삼학은 대장경의 수많은 가르침을 계·정·혜로 분류하여 공부하는 자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을 제시해준 슬기로운 가르침이다. 해탈도론(解脫道論)에서는 “계·정·혜를 해탈도라 하니 계는 위의를 뜻하고 정은 어지럽지 않음을 뜻하며 혜는 알고 느낌을 뜻하고 해탈은 속박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또 계는 나쁜 업을 제하며 혜는 번뇌의 때를 제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계학(戒學)·정학(定學)·혜학(慧學)은 각각의 수행이기보다는 계를 닦음으로써 정이 생기고, 정을 닦음으로써 혜가 생기고, 혜를 닦음으로써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① 계학(戒學) 계란 심신을 고르고 바르게 하는 것이며 심신에 대해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이며, 또 그릇됨을 막고 나쁜 것을 고치는 것이 본래의 뜻이다.
계의 종류에는 지악계(止惡戒), 행선계(行善戒), 이타행(利他行)의 계가 있다.
우리가 흔히 계라고 말하는 재가자(在家者)의 오계, 팔재계와 출가자(出家者)의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사미 십계는 지악계에 포함된다.
② 정학(定學) 정이란 마음을 한 곳에 머물게 하여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인데 정을 얻기 위해서는 조신(調身)·조식(調息)· 조심(調心), 즉 신체와 호흡과 마음을 잘 조정해야 한다.
정에는 2종이 있으니 나면서부터 마음을 한 곳에 머물러 두는 심작용이 있는 생득선정(生得禪定)과 수행하여 얻어지는 수득선정(修得禪定)이 있다.
③ 혜학(慧學) 선종의 최종적인 목적은 깨침의 지혜를 얻는 데 있다. 이 삼학과 육바라밀에서도 혜(慧)가 맨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으며 실천적으로 진실한 도리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능(能)과 소(所), 자(自)와 타(他)의 대립을 무마시키려는 청정세간지(淸淨世間智)를 지(智)하 하며 출세간무이지(出世間無二智)를 지혜(반야)라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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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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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금)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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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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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 고제(苦諦:dubkha) ·집제(集諦:samudaya) ·멸제(滅諦:nirodha) ·도제(道諦:m嚆rga)
인생문제와 그 해결방법에 관한 4가지의 진리.
제(諦:satya)는 진리 ·진실의 의미이며, 그 진리가 신성(arya)한 것이라 하여 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라고도 한다. 미혹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의 인(因) ·과(果)를 설명하는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 조직으로 고제(苦諦:dubkha) ·집제(集諦:samudaya) ·멸제(滅諦:nirodha) ·도제(道諦:m嚆rga)의 네 가지 진리를 말한다.
① 고제:현실세계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범부(凡夫)의 생존은 괴로움이라는 진리. 인생의 고(苦)는 생 ·노 ·병 ·사(生老病死)의 4고로 표시되며, 또는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怨憎會苦),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괴로움(所求不得苦), 그리고 이러한 괴로움의 근본인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괴로움(五取蘊苦, 五陰盛苦:생존에 대한 집착)의 넷을 더하여 8고라고 한다. 여기서 자연현상으로서의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이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생 ·노 ·병 ·사가 괴로움인 것이다. 그럼에도 생 ·노 ·병 ·사는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자기존재의 기반이다. 그러므로 이를 가리켜 고제라고 한다.
② 집제:괴로움의 원인. 자기가 취하는 생존이 바로 고가 되는 것은 마음 깊이 갈애(渴愛)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욕망의 근저가 되는 욕망이며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다. 갈애에는 욕애(慾愛:감각적 욕망) ·유애(有愛:생존의 영속을 바라는 욕망) ·무유애(無有愛:생존의 단절을 바라는 욕망)의 세 가지가 있다. 행복을 구하는 것도 욕망의 일종이지만 갈애는 그것과는 달리 욕망의 근본에 있는 불만족성을 말한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집제라는 것은 갈애를 근본으로 하는 여러 가지 번뇌이며, 괴로움의 원인이다. 따라서 집제와 고제는 미망의 원인과 결과.
③ 멸제:이 갈애가 남김 없이 없어진 상태. 이것은 이상적 경지로서 열반(涅槃)이라고 말한다. 또한 마음이 갈애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해탈(解脫)이라고도 한다. 결국 갈애에 물들지 않고 행동하는 마음의 자유로운 상태이며 이것이 참된 즐거움이다. 열반은 멸(滅)로도 번역되고, 멸은 갈애의 멸이지 마음 그 자체의 멸은 아니다. 갈애가 멸함에 따라 올바른 지혜가 나타나며, 그 지혜에 의하여 알게 되는 부동의 진리가 열반이다.
④ 도제:이 고(苦)와 집(集)의 멸을 실현하는 길. 이 수행방법은 8정도(八正道) 또는 팔성도(八聖道)로 표시된다. 8정도란,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8가지 실천사항을 말한다. 정견은 올바른 견해로서, 있는 그대로 보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다. 이에 의하여 자기와 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연기(緣起)의 도리를 알게 된다. 정견에 기초하여 올바른 사유가 생긴다. 나아가 이 생각에 의하여 올바른 말,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 올바른 노력이 행해진다. 이것은 일상생활이 정견에 기초하여 진리를 실천하는 생활이 이루어짐을 말한다. 이들에 의하여 정념이 확립된다. 정념은 올바른 주의력, 올바른 기억으로 마음을 줄곧 올바른 상태로 유지하는 마음의 힘이다. 마지막의 정정은 정견~정념에 기초하여 실현되는 마음의 통일, 즉 올바른 선정(禪定)을 말한다. 이상의 8정도는 서로 유기적인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올바른 선정에서 올바른 지혜가 생기며, 또한 정견은 올바른 지혜, 즉 정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8정도는 점진적인 수행 단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길이다. 이러한 사제설은 석가가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비구(比丘)에게 설한 최초의 설법[初轉法輪]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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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緣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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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금)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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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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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 十二緣起;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연기설(緣起說)을 12의 지분(支分)으로 정리한 것. 미혹한 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12지 연기 또는 12인연이라고도 한다.
① ‘무명’은 미혹의 근본으로서의 무지로, 사제(四諦)와 연기 등의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고뇌와 불행이 일어나는 근본원인은 올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② ‘행’은 형성력으로서의 행위, 행위의 집적(集積)이다. 사고행위(意行), 언어행위(語行), 신체적 행위(身行) 등의 모든 행위는 그 행위 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축적 ·보존되어 인격의 내용이 된다. 행은 무지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윤회(輪廻)의 원인으로서의 업(業)을 가리킨다. ③ ‘식’은 인식판단의 의식작용임과 동시에 인식판단의 주체이다. 감각작용으로서의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5식과 의식(意識)을 가리키는데, 의식은 6식을 주체적으로 보는 것으로, 식체(識體)라고도 한다. ④ ‘명색’과 ⑤ ‘육처’는 앞의 ‘식’과 밀접한 상호의존 관계에 있다. ‘식’은 식체 즉, 인식판단의 주체이며, ‘명색’은 이 ‘식’의 대상으로서 인식된 물질(色)과 정신(名)이다. 명색은 6식의 대상으로서의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6경(六境)이다. 이 6 경을 인식판단하기 위한 능력이 있는 기관이 ‘육처’인데, 이것은 안근(시각기관 또는 그 능력) ·이근(청각기관) ·비근(후각기관) ·설근(미각기관) ·신근(촉각기관) ·의근(사유기관)을 말한다. 이와 같은 ‘식’,‘명색’,‘육처’의 관계를 도식하면 위와 같다. ⑥ 일반적으로 ‘촉’은 근 ·경 ·식의 셋이 접촉하는 것이다. 즉 3자의 화합이 ‘촉’이다. ⑦ ‘수’는 근 ·경 ·식의 3자가 화합하여 생긴 고락(苦樂) 등의 감수작용(感受作用)이다. ‘수’에는 고수(苦受) ·낙수(樂受) ·불고불락수의 3수가 있는데, 이것을 다시 육체적 ·정신적인 두 방면으로 나누어 우(憂) ·희(喜) ·고(苦) ·락(樂) ·사(捨)의 5수로 나누기도 한다. 이 3수와 5수와의 관계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⑧ ‘애’는 갈애(渴愛), 즉 맹목적인 사랑을 말한다. ⑨ ‘취’는 취착(取着)의 뜻이다. 즉 싫어하는 것을 버리고, 좋아하는 것을 취하는 취사선택의 행동이다. ⑩ ‘유’는 취착적 행위가 계속되고 선악업이 축적되어 잠재력으로 자리잡은 것을 말한다. 우리의 현존재는 과거의 행위경험이 축적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현존재가 ‘유’이므로 현존재로서의 인격이 기본이 되어 우리의 미래를 규정하게 된다. ⑪ ‘생’은 내세의 생이라 할 수도 있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여 새롭게 나타나는 모습을 생이라 할 수도 있다. ⑫ ‘노사’란,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죽게 마련인데, 이러한 자연적인 사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노사와 관련된 고통을 가리킨다. 즉 이 노사는 모든 인간고의 총칭이기도 하다. 이상과 같이 미혹의 현실세계가 무엇에 기초하여 성립되어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유전문(流轉門)의 연기, 순관(順觀)의 십이연기이다.
유전 연기의 일반적인 형식은 “무명(無明)에 연(緣)하여 행(行)이 있으며…”이다. 이것은 곧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행이 멸하며…”로 표현될 수 있는데, 이같은 형식이 환멸문(還滅門)의 연기, 역관(逆觀)의 십이연기이다. 원시불교에서는 그 어느 것에 속하는가 하는 확정설은 없다. 그러나 부파불교 시대가 되면 십이연기는 과거세에서 현재세, 다시 미래세에 이르는 삼세(三世)에 걸친 인과관계로 설명되어 이른바 삼세 양중인과(兩重因果)로서의 연기설이 십이연기의 유일한 해석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에 의하면 십이연기 중 ‘무명’과 ‘행’은 과거세에 속하는 것이며, 이 둘이 원인이 되어 그 결과로서 현재세에 ‘식 ·명색 ·육처 ·촉 ·수’의 5지(支)가 나타난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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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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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금) 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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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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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뇌
몸과 마음의 108가지 번뇌
사찰에 가 보면 ‘108 계단’을 비롯해, 108과 관련된 숫자가 많다. 염주의 숫자도 108개가 있고, 절을 할 때도 108을 기본 숫자로 한다. 일천배를 한다는 것은 108배를 열번 한다는 것임으로 정확하게 세면, 1000배가 아닌 1080배가 되는 셈이고, 삼천배는 3000번이 아니라 3240번 절을 하는 것이 된다.
특히 108이란 숫자와 관련해서는 ‘108번뇌(百八煩惱)’를 자주 듣게된다. 그렇다면 과연 108번뇌란 무엇인가. 번뇌의 가짓수가 108가지란 의미인 듯 싶은데, 그렇다면 108가지 번뇌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원래 불교에서 108이란 숫자는 매우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108번뇌란 사람이 끊어야 할 번뇌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불교 교학이 발달하면서 이 108이란 숫자의 의미도 더욱 정확하게 산출하게 됐다. 대체로 두 가지 설이 유력하다.
두 가지 설은 모두 ‘36’을 기본 숫자로 본다. 모든 번뇌를 36가지로 나누고 이것이 과거(전생), 현재(금생), 미래(내생)에 모두 있다고 해서 3을 곱해 108가지로 설명하는 것이다.
기본숫자가 되는 ‘36’에 대해서는 첫째, 사람의 감각(六根)과 감각의 대상(六塵)이 결합해 여섯 가지 작용, 즉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분별작용 등을 하고, 이것이 각각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平) 세 가지로 느껴 18가지의 번뇌가 있으며, 또 이 18가지 번뇌는 각각 더러움(染)과 깨끗함(淨)이 있어 36가지(18×2)의 번뇌가 있다고 보는 견해다.
또 다른 설명은 여섯 가지의 작용들이 각각 좋고(好), 나쁘고(惡),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平), 괴롭고(苦), 즐겁고(樂), 괴로움도 아니고 즐겁지도 않은(捨)은 여섯 가지가 있어 모든 번뇌를 36(6×6)으로 보는 설명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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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수지 독송과 실천 수행의 중요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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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3 (토) 0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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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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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수지 독송과 실천 수행의 중요성 배움을 실천하는 공덕
부처님은 왕에게 말씀하셨다. “배움이란 반드시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며 배운 것으로 행하는 것이 으뜸입니다. 어진 이 반특은 한 게송의 이치를 정밀하게 알고 몸과 입과 뜻이 고요하여 마치 천상의 금(天金)과 같습니다. 사람이 비록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행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이때 세존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비록 천 장(千章)을 왼다 하더라도 글귀의 이치가 바르지 않으면 하나의 요지(要旨)보다 못한 것이니 듣고서 생각을 없애야 되느니라.
비록 천 언(千言)을 왼다 하더라도 이치가 없으면 무엇이 이익되랴. 하나의 이치보다 못한 것이니 듣고 행하여야 제도될 수 있느니라.
비록 경전을 많이 왼다 하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무엇이 이익되랴. 하나의 법 글귀라도 이해하면서 행해야만 도를 얻을 수 있느니라.
《법구비유경》 한글대장경20 180쪽~183쪽, 대정장4-588하~589중
자기와 남을 모두 이익되게 하는 일
“…비록 경을 잘 들으나 만약 받아 지니지 아니하면 또한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며, 비록 잘 받아 지니나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한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며, 비록 그 의미를 알았으나 그 말과 같이 잘 수행하지 아니하면 또한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거니와, 만약 믿음과 계행과 희사하는 마음을 잘 갖추고 자주 절에 가서 법을 들으며 받아 지니고 그 의미를 이해하며 말과 같이 수행하면 그는 만족한 행이라고 말하느니라. … 여덟 가지를 갖추면 능히 자기만 이롭고 남은 이롭게 하지 못하느니라. 무엇이 여덟이냐 하면, 우바새가 자기만 믿음을 지니고 능히 남들을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깨끗한 계행을 지니고 능히 남들에게 계행을 지니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희사하는 일을 행하고 능히 사람들에게 보시를 행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절에 가서 비구를 친근하고 사람들에게 절에 가서 비구를 친근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잘 법을 듣고 능히 사람들에게 바른 법을 듣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잘 받아 지니고 능히 사람들에게 받아 지니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의미를 잘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하며, 자기만 능히 말과 같이 수행하고 딴 사람들에게 말과 같이 수행하도록 가르치지 아니함이니, 그를 여덟 가지만 갖추어 오직 자기만 이롭고 남들은 이롭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 만약 능히 열 여섯 가지를 갖추면 그와 같은 사람은 능히 자기와 남들이 이익되게 하나니, 자기가 믿는 마음을 내고, 남들에게도 믿도록 가르치며, … 자기가 말과 같이 수행하고, 또한 사람들에게 말과 같이 수행하도록 가르치는 그것이라.…” 《별역잡아함경》 한글대장경8 283쪽~284쪽, 대정장2-432상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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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미산님의 글 스크랩 http://blog.daum.net/511-33/12369659
<팔정도(八正道, Ariyo a??ha?giko maggo)>
----팔리어 ‘아리요 앗땅기꼬 막고(Ariyo a??ha?giko maggo)’, 영어 ‘The Noble eightfold Path’라 해서 팔정도는 반드시 ‘성스럽다, 고귀하다, 숭고하다’라는 뜻의 출세간적(出世間的)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팔리어 “Ariyo-성스러운, a??ha?giko-8지, maggo-길”의 합성어이다.-------
※출세간(出世間)이란 불교가 지향하는 최종 목적에 해당하는 것으로 범부 중생들이 사는 일체의 세간적 존재 양태를 벗어난 경지를 가리킨다. 즉, 생멸 변화하는 미혹한 세계를 벗어나 해탈 경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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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는 원시불교의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 제시된 근본교리 가운데 하나로서 사성제(四聖諦) 중의 하나인 도성제(道聖諦)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자, 중도(中道)를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팔정도이다.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에서 말했듯이, 중도가 곧 팔정도이고, 팔정도를 통해서만 궁극적으로 열반은 성취된다. 그리고 열반은 중도에 대한 이해로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중도를 지켜라’는 말은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말라”는 이론적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팔정도를 실천하라’는 말이 내포돼 있다. 중도는 팔정도의 실천이며, 이는 곧 올바르게 살아가는 실천의 길이다.
따라서 중생이 고통의 원인인 탐(貪) ? 진(瞋) ? 치(痴)의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 ?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실천 수행해야 하는 여덟 가지 실천 항목 혹은 여덟 가지 길 또는 그 방법을 말한다.
팔성도(八聖道), 팔정도분(八正道分), 팔지성도(八支聖道), 팔성도지(八聖道支)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모두 여덟 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도(道)라는 의미이다. 그 여덟 가지 항목은 아래와 같다.
① 정견(正見) - 올바로 보는 것.
② 정사(正思) - 올바로 생각하는 것.
③ 정어(正語) - 올바로 말하는 것.
④ 정업(正業) - 올바로 행동하는 것.
⑤ 정명(正命) -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
⑥ 정정진(正精進) -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
⑦ 정념(正念) -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
⑧ 정정(正定) -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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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여덟 가지는 단계적인 것이 아니고 상호관련성 속에서 동시통합적(同時統合的)으로 이루어지며, 불교적 이상세계에 이른 사람의 삶은 이 여덟 가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볼 때 불교의 교육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 팔정도에 의해 수행하고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팔리어에서 길(道)은 막고(maggo)라는 단수형으로 표시돼 있는데, 이것은 여덟 개의 길이 전체로서 하나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각각의 길은 나머지 일곱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여덟 개의 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실천되면 다른 일곱 개의 길이 그 하나에 포함돼서 동시에 행해지는 서로 포섭하는 관계(相攝關係)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팔정도의 영어 번역어도 ‘Noble Eightfold Path’라고 해서 길(path)을 복수가 아닌 단수로 표현하고 있으며, 여덟도 단순한 여덟(eight)이 아닌 팔중(八重, eightfold)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팔정도에서 정(正)자에 해당하는 Samma는 있는 그대로 바르게 아는 알아차림, 혹은 바르다는 뜻이지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뜻하기도 하며, 이 정(正)에는 세 가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첫째 진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흐릿한 생각으로 현상을 잘못 보는 망령됨을 떠난 명석하고 여실(如實)함을 뜻한다.
둘째 전도(顚倒)를 떠나는 일이다. 전도란 관찰과 판단에 임해서 그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놓치는 일이다. 대(大)와 소(小)를 거꾸로 아는 것, 미(美)와 추(醜)를 잘못 판단하는 것,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마치 영원불변한 듯 착각하는 것 등의 4전도가 있다.
? 상전도(常顚倒)---무상한 존재를 영원한 것인 양 잘못 생각하는 것.
? 낙전도(樂顚倒)---고(苦)라고 보아야 할 인생을 즐거운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 정전도(淨顚倒)---부정한 인간 존재를 청정한 것인 듯 잘못 생각하는 것.
? 아전도(我顚倒)---무아인 존재를 자아가 있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
셋째 극단을 떠나는 일이다. 즉, 중도에 설 때 바른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팔정도는 욕락과 고행 등의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이며, 올바른 깨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이고 올바른 방법이다. 이 팔정도는 중정(中正) ? 중도(中道)의 완전한 수행법이므로 정도(正道)라 하고, 8종으로 나누었으므로 지(支), 또는 분(分)이라 한다. 그 하나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정견(正見, Samma ditthi) = 바로 봄
정견이란 바른 견해로서 불교의 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이라 할 수 있고, 사성제(四聖諦)를 바로 아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견은 팔정도의 기체(基體)로서 나머지 일곱 가지 정도의 기초가 된다. 즉, 정견으로부터 바른 행위가 흘러나오고, 바른 생활태도가 선택되며, 바른 수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계(戒)를 강조하는 정어, 정업, 정명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혜(慧)에 해당되는 정견을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하겠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자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 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정사(正思, Samma sankappa) = 올바른 생각
정사유(正思惟)라고도 한다.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하기 전의 바른 생각, 바른 의사, 바른 결의, 바른 마음가짐 등 바른 의업(意業)을 가리킨다. 즉, 탐욕스러운 생각, 성내는 생각, 남을 해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온화한 마음, 자비스러운 마음,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있어서 바깥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고, 나의 삶을 바로 세우고, 내 마음을 정화하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주위에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사유이다. 따라서 출가자라면 출가자다운 유화(柔和:부드러운 조화)와 자비와 충정의 마음으로 사유(思惟)하는 일이다.
(3) 정어(正語, Samma vaca) = 올바른 말
바른 어업(語業), 즉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언어적 행위로서 바른 말을 하는 것이며, 거짓말[妄語], 이간시키는 말[兩說], 나쁜 말, 욕하는 말[惡口], 꾸며대는 말, 속이는 말[綺語]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남을 사랑하며, 융화시키는 유익한 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말, 성실한 말,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다. 당나라시대 무착(無着)스님의 게송에,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미묘한 향이로다(口裏無瞋吐妙香).
라는 말과 같이 부드러운 말 한 마디가 남을 위하는 공양이요, 사회를 부드럽게 하는 향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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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업(正業, Samma kammanta) = 올바른 행위
정사유 뒤에 생기는 바른 신체적 행위, 바른 행동이 정업(正業)이다. 원래 업이란 말은 신(身), 구(口), 의(意)의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모든 행위의 원인이 되며, 그에 따라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란 말이다. 헌데 의업(意業)으로서의 정사(正思)와 구업(口業)으로서의 정어(正語)가 이미 앞에 나왔기 때문에 여기에서의 정업이란 주로 신업(身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른 행위란 바로 몸의 행동(身業)을 바르게 함을 가리키는 말로서, 살생, 도둑질, 음란한 짓을 하지 말고,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애호하고, 곤궁한 자에게 시여자선(施與慈善:자비로 베풂)하며, 술, 담배, 마약과 같은 중독성 물질을 복용하거나 보관하지 않는 청정한 생활을 하는 것이 바로 정업, 즉 바른 행위이다.
(5) 정명(正命, Samma ajiva) = 올바른 직업
그릇된 생계수단을 버리고 바른 생계수단으로 살아가기, 바른 직업에 의해 바르게 생활하는 것,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구하는 것이다. 도박이나 도둑질, 남을 속이는 일, 바가지를 씌우는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생활하면 안 된다. 그리고 출가 수행자의 경우에는 재가 신도의 바른 신앙에서 우러나는 보시를 받아 생활하는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정명이기도 하다. 수면 ? 식사 ? 업무 ? 운동 ? 휴식 등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건강이 증진되고, 일의 능률도 향상되며,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건전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6) 정정진(正精進, Samma vayama) = 올바른 노력
정근(正勤)이라고도 하며, 용기를 가지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 이상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이른다. 종교 ? 윤리 ? 정치 ? 경제 ? 건강의 모든 면에서 선법(善法)을 더욱 자라게 하고, 악법(惡法)을 멀리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으로, 바로 사정근(四正勤)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정근은 아래 네 가지이다.
? 이미 생긴 선은 더욱 자라도록 노력하고(隨護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선은 생기도록 노력하며(修斷),
? 이미 생긴 악은 끊도록 노력하고(斷斷),
? 아직 생기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律儀斷).
(7) 정념(正念, Samma sati) = 올바른 정신
사념(邪念)을 버린 올바른 마음챙김(mindfulness)과 올바른 알아차림(awareness)으로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질적 현상이나 정신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의 행위 혹은 마음의 작용(심소/心所)을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이나 주변의 것을 올바르게 알아차려서 탐(貪) ? 진(瞋) ? 치(痴) 3독심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이른다. 그것은 곧 바른 의식을 가지고 이상과 목적을 언제나 잊지 않는 일이고, 사념처관(四念處觀)을 확립하는 일이다.
? 마음은 늘 대상에 따라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는 제법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 심념처관(心念處觀).
? 자아라고 할 실체가 없고,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는 진리를 파악하는 것, 즉 제법무아(諸法無我)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 법념처관(法念處觀).
? 모든 것은 괴롭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진리를 알아차리는 것, 즉 자녀 ? 재물 등이 즐겁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실은 즐거움이 아니라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고통[苦]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 수념처관(受念處觀).
? 이 몸은 부정하다(身不淨)는 것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일어나는 탐욕을 극복하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고는 것. - 신념처관(身念處觀).
(8) 정정(正定) = 바른 집중(正定, Samma samadhi)
산란한 생각을 여의고, 마음을 가라앉혀 고요하고 평정되게 바른 정신 집중을 하는 것, 즉 마음을 한 점에 집중해서 정신통일을 하는 삼매(三昧) 혹은 선정(禪定)을 가리킨다. 정(定, samadhi)을 닦는 구체적인 방법이 선(禪, dhyana)이기 때문에 이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산란하다는 말은 번뇌가 많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정정은 번뇌를 소멸시켜 열반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깊은 선정은 일반인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은 바른 지혜를 얻거나 지혜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필요하다.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심지어 들에 나가 일을 해도 정신집중이 안 되고, 마음이 산란하면 능률이 오르지 않고 발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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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팔정도야말로 실천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깨달음이나 해탈 ?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반드시 닦아야할 덕목이다. 그리고 팔정도는 순서대로 실천해야 하다. 정견을 닦아야 정사가 생기고, 정사를 닦아야 정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이다.
팔정도의 마지막 목표는 정정(正定)이다. 팔정도의 앞 7항목은 모두 정정을 이루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정정을 닦아야 지혜(prajna)를 얻게 되고, 지혜를 가짐으로써 번뇌를 털어버리고 열반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팔정도는 여덟 가지 항목이지만, 이것은 하나의 성도를 이루는 각 부분이며, 여덟 가지는 일체로서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기 때문에 별개의 것이 아니다. 또한 팔정도를 계(戒) ? 정(定) ? 혜(慧) 삼학과 관계 지어 보면,
정견 ? 정사유---→ 혜학,
정어 ? 정업 ? 정명---→ 계학,
정정진---→ 삼학에 공통되고,
정념 ? 정정---→ 정학.
또 팔정도를 정진과 수행의 측면에서 분류를 하면,
정견---바르게 보는 것,
정사 ? 정어 ? 정업---바른 행위,
정명---바른 생활,
정정진 ? 정념 ? 정정---바른 수행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곧 팔정도는 사성제 ? 12연기와 함께 불교의 기본적인 근본 교의가 되는 것이고, 중생을 미혹의 세계인 이곳(차안)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네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 배(船)나 뗏목(筏)에 비유되기도 한다.
------------------------------------------------성불하십시요 작성자 이덕호(아미산)
*이 글을 작성함에 있어서 많은 분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크? 해 가시는 분은 출처를 분명히 밝히며 이용해 주세요. 아니면 저적권법에 저촉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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