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의 인연이 다시 시작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인연 - 1980년 12월부터 인천연안부두의 한 암염공장에서, 스무살의 저는 일당 6천 원을 받으며 3개월 간 일한 적이 있습니다. 1981년 대학 입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함인데, 한 달 만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고된 노동이었습니다. 부평에서 새벽에 겨울바다 칼바람을 맞으며 연안부두에 가서, 장작불에 언 손을 녹이기도 전에 분쇄기 모터가 돌아갑니다. 야적장 한데 쌓인 암염을 곡괭이질과 삽질을 해가며 투입구로 넣으면, 실내에선 마대에 퍼 담아 무게를 달고 재봉으로 입구를 봉해 한 편으로 쌓아 둡니다. 소금 가루가 날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공간에서, 새참으로 자장면을 먹고는 또 자리를 돌려가며 힘을 씁니다. 11톤 트럭이 들어오면 컨베이어를 이용해서 상차를 하고 싸온 도시락을 나무 난로 위에 올렸다가 한 끼를 때웁니다. 오후에 또 트럭 한 대를 채우고 나면, 동태찌개와 막걸리가 배달돼 오고 마스크와 장갑을 끼곤 일당 값을 했습니다.
그중 가장 일을 잘했던 장씨라는 성을 가진 30대 남자가, 제일 힘든 배출구에서 계속 배치 받으면서 사장과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간 뒤, 이를 소재로 연세춘추에 [젊은 인테리겐챠의 어떤 갈등]이라는 소설을 썼지요. 벌써 오랜 된 일인데, 엊그제 같군요
두 번째 인연 - 금년 12월 16일(토) 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소재 염전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개설한 쇼핑몰 [한우리두레공동체]에 천일염을 올려 판매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하여 염전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의 안내로 염부장을 비롯한 인부(가족)들을 소개받았습니다. 마침 정부에서 수매하는 소금(20Kg포장) 430포를 컨베이어를 이용해 트럭에 상차하고 있어, 우선 염전을 둘러보며 최고의 소금 생산 현장을 살펴보았습니다.
1) 태안해안국립공원 (청포대 해변)의 맑은 해수를 끌어들여 만들고 있었습니다.
2) 햇볕과 바람만으로 증발시켜 시간이 오래 걸리며, 간수를 뿌려 소금 결정체를 만듭니다.
3) 염전 바닥에는 장판 대신에 깜파리(항아리 깨진 조각)를 깔아, 수년 뒤 산소 공급 차단과 유해 화학 물질 오염을 방지합니다.
4) 염도가 낮고 알이 곱고 자라(슴슴하다) 단맛이 납니다.
5) 주변 소나무 동산에서 모내기철에는 송악 가루가 날려서, 원하시는 분께 송악소금 소량을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연로하신 아버지 염부장님을 도와 힘을 모으는 아드님과 두 분 따님의 모습이, 최근 보기 어려운 장면으로 너무 흐뭇했습니다.
www.hanwooridoo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