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큰 여자 / 문정희]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 하며
뜻없이 시들어가는 이 거리에
나날이 오염되고 황폐화 되어가는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l해설l
시인은 차라리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라며 반항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인간에게 자신의 육체마저 자본으로, 그리고 소비대상으로 취급하게끔 강요하는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도발적인 저항인 셈입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igmund Baumann, 1925~)이 《액체 근대》에서 “생산자 사회가 그 구성원이 지켜야 할 기준으로 건강을 내세우는 반면, 소비자 사회는 그 구성원들에게 이상적으로 균형 잡힌 몸매fitness를 보여주느라 호들갑을 떤다"라고 적절히 표현했듯이, 우리가 우리의 육체마저도 자본으로, 그리고 소비 대상으로 취급하도록 '호들갑을 떨며 후기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상인의 술책'이 바로 유행과 광고입니다.
프랑스 제화회사 슈발리에의 광고 문안이자 오규원 시인이 1987년 발표한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의 첫째 연은 광고가 사람들의 욕망을 어떻게 부추겨 스스로를 상품화시키는지 잘 보여줍니다.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중에서
맹태영 옮겨 적음
그림은 페르난도 보테르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