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손자병법> 책을 두 권 읽었다. 그런데 두 권 다 그저 손자병법 한자말 풀이 같아서 도무지 뭘 읽었는지, 뭘 얻었는지가 뚜렷하지 않다. 답답한 마음에 책을 뒤지다 임건순의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앞의 저자들처럼 손자병법의 차례에 따라 한자를 해석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자 나름으로 내용 속에 담긴 뜻을 중심으로 손자병법을 재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처음을 <지피지기 백전백태>로 시작한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본래의 손자병법의 차례가 아니라 내용을 중심으로 저자가 연구한 내용을 핵심 개념 중심으로 설명하다보니 하나의 개념에 대해 손자병법 속의 이야기가 종횡으로 옮겨 다닌다. 자칫 손자병법을 차례대로 읽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두 권의 원문에 충실한 손자병법을 읽은 것이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일단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손자병법은 단순한 병법서가 아니라 제자백가 철학자들의 텍스트고 인문학 서라고 여긴다.
즉, <손자병법>은 단순히 병법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최첨단 조직학이고 경영학이자 행정학으로도 읽힌다. 병법이 말하는 조직 관리는 비단 전쟁터, 군사 조직에서만 쓰인 게 아니라 국가 행정과 공적 사무에도 많이 도입되어 고대 중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리가 되었다.
<손자병법> 연구자들은 <손자병법>은 창의와 혁신을 즐기고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지도록 강한 자극을 준다고 한다. 중국학 전문가인 헨리 키신저가 <손자병법>을 알아야 중국과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실용정신의 뿌리가 손자병법에 닿아있고 그 핵심이 바로 이익과 실리를 위해서는 물러섬이 없이 모략을 짜고 책략을 만들어내는데 있다고 한다. 그러한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오면서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싶다.
손자가 병법서를 썼다고 해서 결코 전쟁광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전쟁을 그리 원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전쟁 신중론자라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전쟁을 하지 않고도 이기는 것을 제일로 삼았다. 그러자면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그의 태생과 관련이 있다. 손자는 농경문화 시대를 살았으므로 사상적 기반은 농경이다. 전쟁이 잦으면 농사를 망치고, 농사지은 것을 군량미로 갹출 당하던 시대다. 그러니 전쟁이 나면 자연히 농민은 피폐해지고 설혹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국가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시대로는 춘추시대 말기를 사람이다. 그 시대는 여러 제후국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던 시대였다. 어제의 동맹국이 오늘의 적국이 되는 살벌한 시기였던 것이다. 따라서 힘이 막강하다고 함부로 전쟁을 벌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한발 삐끗하면 천길나락이다.
이런 여러 여건들 속에서 신전론이 나왔고, 그 지혜가 바로 <지피지기 백전불태>, 즉 국가의 생존과 안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전쟁 이후의 상황과 함께 미래의 국익까지 염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손자의 전쟁관은 항상 백성의 편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백성은 일반적 의미가 아니라 성이 있는 사람들, 즉 군벌, 귀족을 말한다. 그 자신이 유력한 군벌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칫 전쟁은 이기고도 귀족들의 피폐해질 수 있음을 늘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전쟁을 하게 되면 속전속결하라고 <作戰篇>에서 강조하고 있다. 전쟁에서 시간을 너무 끌면 병사들이 지치고 사기가 저하되고 아군의 전력이 소모되고 군대가 바깥에 오래 주둔하면 국가 재정이 바닥난다. 그러면 주변 제후들이 그 틈을 노려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전쟁은 경제적 대가를 요구한다. 국가 재정이 파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정보를 동원해 지피지기하고 승산이 있을 때만 전쟁을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작전편은 손자의 전쟁경제학이라고 한다.
전쟁을 하게 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경제 원칙이다. 비용 대비 산출이 적으면 그것은 승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자는 춘추시대에서 전투 중심 전쟁을 전략 중심 전쟁을 최초로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오사칠계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사고는 전쟁 양상을 그 이전과 확연히 구분 짓게 한다. 그런 점에서 손자가 바로 전쟁사의 시작이며, 병법의 종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자가 강조하는 덕목은 대체로 다섯 가지가 있다. 지(知), 전(全무), (無), 선(先), 선(善)가 그것인데, 知는 확실히 파악하나는 의미며, 全은 비용의 최소화를 의미하며, 無는 나를 완전히 숨긴다는 의미며, 先은 상대보다 먼저라는 의미며, 善은 능숙하다는 의미다.
知는 計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산정, 평가, 점검, 파악이란 말을 知로 종합해서 말할 수 있다. 知의 과정에서 知彼知己가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知彼를 위해서 손자가 활용하는 방법이 마지막 편의 <용간>이다. 간첩의 육성과 활용에 대한 것이다.
<손자병법>은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먼저, 손자는 전쟁을 할 때 특히 약탈을 강조했다. 적국 깊숙이 쳐들어갈 때는 그곳 현지에서 곡물이며 마소 먹이를 구하라는 것이다. 이는 엄청난 보급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을 생각하게 한다.
다음으로 전투를 할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승리(전승)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부전승)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기야 싸우지도 않고 승리를 할 수 있다면 최선일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전승이나 부전승도 따지고 보면 경제문제와 연관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전략가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손자는 전쟁은 속임수라고 단언한다. “전쟁은 속임수다. 잘할 수 있는데도 못하는 체하고, 병사를 사용하는데도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하며, 가까운 곳에서 싸울 것인데도 먼 곳에서 싸우는 체하며, 먼 곳에서 싸울 것인데도 가까운 곳에서 싸우는 체하라.”
그의 속임수는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효율을 추구하라는 것이고 창의적으로 전투에 임해 승리로 이끌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손자의 속임수는 효율과 창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계략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다.
한편, 손자병법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세(勢)이다. <손자병법>은 시종일관 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는 조건이요, 우월한 위치이며, 전술적 주도권이며, 무형이 주는 힘, 그리고 기정상생(奇正相生)의 힘이다. 여기서 기는 변칙 공격이고 정은 정공법을 말한다.
손자는 춘추시대에 전국시대적인 사고를 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다. <손자병법>은 중국인들에게 다양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기라성 같은 사상사들인 노자, 상앙, 한비자, 손빈 등 많은 제자백가 사상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