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햇볕알러지
- 은유시인 -
“참 희한한 알러지가 다 있지? 햇볕알러지라니…….”
지난 일요일, 부산근교 서창의 천성산에 산행을 갔을 때 팔뚝과 얼굴, 그리고 목덜미와 앞가슴 일부가 가렵기 시작하더니 그걸 참지 못하고 계속 긁어댄 것이 탈이었을까?
마치 벌레한테 쏘인 듯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안면과 팔등 언저리로 퍼져나가며 붉게 부어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아침에 일어날 땐 눈이 아예 떠지질 않았다. 눈꺼풀이 퉁퉁 부었기 때문이다.
얼굴 피부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게 느껴져 두 손바닥으로 얼굴 구석구석을 더듬어보니, ‘오…… 이런!’ 이마와 양 볼떼기가 퉁퉁 부어 손에 닿는 감촉은 마치 두툼한 썬키스트 오렌지껍질을 어루만지는 기분이었다.
낮에 귀한 사람 만나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이럼, 큰일이다’ 싶어 득달같이 거울로 달려가 얼굴을 비춰보니, 거울속의 남자…… 그건 ‘나’라기보다는 차라리 헐크에 가까운 전혀 낯선 사내의 얼굴이었다.
눈동자도 위아래 부풀어 오른 눈두덩에 파묻혀 십리쯤 움푹 들어가 있고, 그나마 보일 둥 말 둥 한 것이다. 특히 양 볼의 벌겋고 탱탱해진 살집들은 잘 익은 감 홍시처럼 금방이라도 톡 터질듯했다.
산행을 인도하는 우리 대장은 침이 마르도록 당부하길, 특히 오뉴월의 산행에서는 긴팔셔츠로 두 팔을 가리고 장갑을 꼭 끼라고 했다. 그리고 목에는 타월이나 손수건을 두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라고 일렀다.
나뭇잎이나 덤불 속에 숨어있는 독이 잔뜩 올라있는 애벌레들이 피부에 달라붙거나 머리위로 떨어질 수도 있고 느슨한 목깃을 타고 속옷 사이로 들어갈 수도 있다며, 옻나무엔 살짝 스치기만 해도 심한 옻을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늘 팔을 둥둥 걷어붙이는 것이 내 습관이다. 하물며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타다보면 숨이 턱에 닿고 머리꼭지까지 열이 뻗칠 정도로 덥지 않나, 땀도 물먹은 스펀지 쥐어짜듯 쏟아지는 판에 팔뚝과 손마저 천 쪼가리로 칭칭 감으라하니 그게 어찌 가당찮은 소리가 아니란 말인가.
그날은 매주 일요일마다 산행에 나서기로 작정한 이래 여섯 번째 산행으로, 비온 뒤라 습하고 바람도 없어 유난히 덥고 고되게 느껴지던 산행이었다.
산 중턱도 못 밟았는데 이미 기운은 탈진하여 아예 정상에 오르길 포기한 채 원효암에서 발길을 멈추어 턱에 닿는 가쁜 숨을 겨우 다스리고는, 계곡을 따라 하산하다가 무지개폭포 근처 물 좋다는 계곡에 잠시 머물며 점심을 먹었다.
분명 발을 담그면 시릴 정도로 얼음처럼 차디찬 계곡물인데도 얼굴은 연신 찜통에서 갓 끄집어내놓은 찐빵처럼, 씻고 또 씻어도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길 그 뜨거운 열기가 얼굴로 해서 머리꼭지로 뻗쳐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보나마나 얼굴 피부는 탱탱하니 부풀어 올랐을 테고, 땀구멍도 꽤나 확장되어 주독 오른 주정뱅이 딸기코를 닮아있을게 분명하다 여겼다.
얼굴뿐이 아니다. 양 팔뚝이며 허벅지며 잔등이며 할 것 없이 찬물에 듬뿍 적신 수건으로 아무리 문질러대도 시원하기는커녕 나중엔 피부가 벌겋게 부어올랐음은 물론 살짝만 건드려도 쓰라릴 지경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하산할 땐 두 다리의 근육마저 풀려 내리막길을 내디딜 땐 휘청거리질 않나, 발바닥의 인대도 늘어났던지 제대로 딛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어디라 할 것 없이 온 삭신이 다 쑤셨다.
앞서 다녀온 다섯 번의 산행에서는 그래도 하산하여 산 어귀동네로 들어설 때까지 피곤함을 별반 못 느꼈었는데 말이다.
이틀이 지나도록 병원은커녕 약도 안 사먹고 퉁퉁 부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 커피 한잔 생각이 나서 들렀노라 는 대장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설쳐대더니, 기어코 옻에 걸린 모양이구나. 옻나무에 살갗이 스쳤거나, 아님 계곡에서 몸을 씻을 때 물속의 독벌레가 옮겨 붙었거나 했겠지’라며 병원부터 다녀오라 성화였다.
그 말에 얄궂은 애벌레들이 내 살갗을 뚫고 들어가 못된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끔찍한 생각마저 떠올려졌다.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동네 피부과의원을 찾아 나섰다. 장황하게 자초지종 설명을 늘어놓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햇볕알러지요’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햇볕알러지라니요? 그런 것도 있나요?”
전혀 엉뚱하게도 햇볕알러지라니……, 뭔가 미심쩍다는 생각에 목소리 톤이 저절로 높아졌다.
“예, 햇볕알러집니다.”
“아니, 난 여태껏 그런 걸 앓아본 적도 없고, 또 그런 알러지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인데요.”
“예, 그런 게 있습니다. 햇볕을 오래 쬐면 햇볕알러지에 걸립니다.”
의사는 자신의 진단이 틀림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햇볕알러지라…… 햇볕알러지라…….”
- 끝 -
(200자 원고지 14매 분량)
2003/06/28/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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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특히 한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햇볕이 마치 융단폭격이라도 가하는 듯 강렬하게 쏟아 붓는 한여름을 맞게 되면, 우리의 피부는 예민해지고 저항력마저 떨어진다. 산이다 바다다 하여 놀러가는 일이 빈번할수록, 햇볕에 노출된 신체부위 얼굴, 앞가슴, 손등의 피부가 부어오르고 가렵거나 수포가 생기는 일종의 접촉피부질환인 햇볕알러지에 걸릴 확률이 높다.
산행을 하면서 부주의로 나무나 풀, 흙, 물속에 기생하는 곤충이나 애벌레 등에 접촉된 부위가 햇볕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경우엔 넓게 번지는 햇볕알러지와는 달리 노출부위에만 발생한다. 그리고 햇볕을 쬐는 즉시 피부가 울퉁불퉁해지며 가렵고 화끈거리는 ‘햇볕두드러기’도 알러지의 일종이다.
햇볕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원천이지만, 반면에 강한 직사광선은 우리 피부에게는 위험한 존재이다. 특히 햇볕의 자외선은 피부를 노화시키는 주범일 뿐더러, 햇볕을 오래 쬐면 피부가 예민하게 반응해 붉은 반점이나 발진을 일으키는 햇볕과민반응, 즉 햇볕알러지를 앓게 된다.
햇볕알러지에는 유전적인 것과 환경적 것이 있다. 광과민성 체질로 햇볕알러지에 쉽게 걸리는 사람이 유전적이라면, 평소에는 별 탈 없이 지내던 사람들도 심장병이나 관절염 약을 복용한 뒤 햇볕알러지가 생길 수 있는데 이는 환경적인 것이다.
주요 환경적 요인 중엔 약물복용으로 인해 체내에 축적된 광과민성 반응물질 설파제, 테트라싸이클린 등이 햇볕을 흡수하여 높은 에너지의 상태가 되거나, 단백질과 결합하여 알레르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광과민성 물질은 약물 외에도 당근, 파세리, 셀러리, 무화과 등과 같은 식물에도 함유되어 있고, 간혹 연고나 화장품에도 들어 있다. 따라서 이런 약물을 복용하거나 섭취한 다음에는 햇볕의 노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햇볕은 여러 종류의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해를 입히는 것은 적외선, 가시광선 및 자외선이고, 그중 자외선은 다시 자외선 A와 자외선 B, 자외선 C로 구분된다. 햇볕알러지는 이들 중 가시광선과 자외선 A, B에 의하여 발생한다.
햇볕에 예민한 사람은 산이나 바다 등지를 찾을 경우, 반드시 자외선 차단제 ‘썬크림’을 사용하고, 선글라스, 양산, 모자 및 긴 의복을 착용하여 피부의 노출 부위를 최대한 줄여 햇볕에 예민한 피부를 보호하면, 어느 정도 햇볕알러지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썬크림도 자외선 및 가시광선 등 태양으로부터 방출되는 광선의 파장을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한다.
햇볕에 오래 노출되어 피부가 화끈거릴 경우엔, 즉시 얼음주머니나 찬 물수건으로 피부의 열기를 식혀 주어야 한다. 차가운 스킨로션을 화장 솜에 적셔 15분쯤 얼굴에 올려놓은 채 휴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피부가 진정되면 오이팩, 감자팩, 수박팩, 레몬팩을 하는 것도 좋다.
※ 알러지 = 알레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