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금요일 묵상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15: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15: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15: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15:28> 「(없음)」
<15: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15: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본문 해석)
3월 29일 금요일 마가복음 15:16~32
16~20절
16절 군인들이 예수님을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부대원들을 다 소집한다.
17절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운다. 이것은 왕의 복장을 흉내 내서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다.
18절 황제에게 충성과 복종을 맹세하듯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고 외친다. 19절 그리고 박수와 칭송을 표하는 대신, 갈대로 가시관이 씌워진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조롱의 수위를 극대화한다. 마침내 무릎 꿇고 절하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20절 한바탕 대관식 놀이가 끝나자 다시 본래 옷으로 갈아입힌 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골고다로 향한다. 이렇게 군인들이 영광과 승리를 기념하는 왕의 대관식을 흉내 내며 수치와 비극을 극대화했지만, 역설적으로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며 온 인류를 구원하는 왕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대관식이 된다.
21~32절
21절 예수님은 날이 새도록 심문과 조롱을 당하시고, 오전 내내 수치와 폭력을 당하셨다. 이미 육체의 한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단계가 남았다. 자신이 달릴 형틀을 메고 형장인 골고다까지 가야 한다. 예수님은 모진 고문과 폭력에 형틀을 질 기력이 소진된 상태다. 그때 로마 군인은 마구잡이식으로 지나는 행인 하나를 끌어와 대신 지게 한다. 그렇게 강제적으로 예수님의 형틀을 대신 진 사람이 구레네 출신 시몬이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한다. 복음서 독자인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익숙한 정보다.
22절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에 이른다. 골고다는 해골의 곳이라는 뜻이다.
23절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몰약을 탄 포도주를 준다. 이것을 준 이유는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 또는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동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거부하셨는데, 이것은 십자가 길에서 그가 겪는 모든 고통을 하나님의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24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옷을 벗겨 서로 가지려 제비를 뽑는다. 이것은 시편 22:18절의 성취이다.
25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각을 제 삼시라고 한다. 이것은 오전 9시이다. 26절 군인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 패를 썼다.
27절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 두 강도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데,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다.
29절 지나가는 자들의 냉소적 반응이 있다. 머리를 흔들었다는 것은 시편 22:7에 등장하는 표현이다.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라며 조롱한다.
30절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네가 너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저 객기를 부리다 죽음에 이른 어리석은 자였다.
31~32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희롱하여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라고 한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신적인 대리인으로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대행하는 분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21:23에 따르면 나무에 달려 죽는 십자가형은 하나님께 저주를 당한 자의 죽음이 된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메시아라는 것은 유대신학에서 상상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기꺼이 감당하심으로 그리스도 되심을 증명하신다. 마지막 조롱과 비방은 충격적이게도 가장 가까이 있는 좌우편 강도들로부터 나온다. 그들 역시 행인과 종교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비방의 대열에 동참한다.